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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3월29일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매일미사 묵상/붉은 색 꽃사과 3장


[매묵]2017년 3월29일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매일미사 묵상


입당송
시편 69(68),14
주님,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은총의 때이옵니다. 하느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은 참된 구원이시옵니다.      

본기도
하느님, 의로운 이에게 상을 주시고, 참회하는 죄인을 용서하시니, 죄를 고백하는 저희를 자비로이 용서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설령 여인들은 제 젖먹이를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시온을 잊지 않는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으리니,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9,8-15
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내어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으니, 땅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해진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9 갇힌 이들에게는 ‘나와라.’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가는 길마다 풀을 뜯고, 민둥산마다 그들을 위한 초원이 있으리라. 10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11 나는 나의 모든 산들을 길로 만들고, 큰길들은 돋우어 주리라.
12 보라, 이들이 먼 곳에서 온다. 보라, 이들이 북녘과 서녘에서 오며 또 시님족의 땅에서 온다. 13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14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선물을 받고 비오니, 이 성사로 저희가 심판을 받지 않고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성을 주장하십니다. 성부와 성자, 두 분이 온전히 일치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은 하느님 말씀이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뜻이지요. 이렇게 일치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일도 당신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하느님께 온전히 순명하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께 순명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뜻에 순명해야만 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되어 사랑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앞날을 내다보십니다. 당신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신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운명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감히 사람이 저지할 수는 없습니다.
진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떤 위협이라도 진리를 침묵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온갖 유혹과 위협에도 진리만을 따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 결과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심판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느님 안에서 참된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가?’ 우리가 꿈꾸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아니면 ‘부끄러움과 후회 속에서 정화의 과정을 거친 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가?’ 연옥의 상태입니다. 또는 ‘하느님을 끝내 거부하며 영원한 절망과 어둠 속에 머무는가?’ 지옥의 상태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하느님께 영혼은 성실해야 할 거룩한 의무가 있다. 이러한 영혼은 불리움을 받지 않은 일에, 그리고 필요하지 않는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그는 자기 일의 결과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 없이 하느님의 뜻을 채워드리는 것에만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일이 비록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성공적인 때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된다. 또한 인간과 사귀는 기회를 하느님과 친교하는 시간보다 더 중요시 해서도 안된다. 하느님의 섭리하심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하며, 기쁜 마음으로 가난과 어려움, 고독과 고통 등을 받아들여야 한다. 본성적인 욕망의 지배에 따르려 하지 말고, 사도 바오로처럼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욕을 당하고 약해지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영혼은 하느님의 손 안에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고 침착해야 하며, 양초를 만들 때 모형 안에 부어지는

부드러운 촛물처럼 유연하게 하느님의 손 안에서 다루어지기를 원해야 한다.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중에서-


2. 공자께서도 “일흔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마음을 쫓아 그대로 하되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당신의 뜻이 하늘의 뜻과 온전히 일치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물론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마음껏 해도 부끄러움이 없는 일입니까? 인간적인 욕심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우선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바를 하십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주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으로 원하는 바를 마음껏 한다면 부끄러움이 있을 리 없습니다. 결국 우리 마음을 둘 곳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생각에 우리를 일치시키고, 그분의 기도에 우리의 기도를 일치시키고, 그분의 행위에 우리의 행위를 일치시키고, 그분의 생명에 우리의 생명을 일치시킵시다”(마더 데레사). 주님과 하나 되는 기쁨과 행복이 넘쳐 나시길 기도드립니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3.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고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억울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마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사랑은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랐습니다.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사랑이 생명을 살리고, 이 사랑이 희망을 주고, 이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을 잊지 않고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자비와 용서, 친절과 온화함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조재형 신부)


4.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 5,19)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향도 그와 같아야겠지요.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그분의 눈길 앞에 있음을 의식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그분이 하셨던 대로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추종하는 길에는 늘 시기와 질투, 박해와 시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사실 그건 피할 수 없는 십자가이지요. 그러나 마음과 의식,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님과 일치시킬 때, 내 안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 친히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이 하시는 것을 그대로 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오늘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살아내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세상일에 대한 근심걱정을 버리고, 오직 어떻게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고, 어떻게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할지 고민하는 ‘거룩한 고민’과 ‘행복한 몸짓’으로 채우는 오늘이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3월29일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성을 주장하십니다.
성부와 성자, 두 분이 온전히 일치한다는 말씀입니다. 
일치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일도 당신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하느님께 온전히 순명하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께 순명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뜻에 순명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운명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아멘...수산나 -




붉은색 꽃사과 1


붉은색 꽃사과 2


붉은색 꽃사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