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8년전인 1909년 10월26일. 바로 오늘 입니다.
중국의 하얼삔역..."탕"
"대한제국의 의군 참모중장으로 전쟁 중 작전을 통해 적장을 사살한 것이다."(안중근)
그는 나라 잃은 청년이 아니라 전쟁 중인 군인 이었습니다.
"국제법에 의거한 군사재판을 열어달라"(안중근)
당당하게 요구했으며...
"항소하지 말라. 큰 뜻으로 죽음을 받아들여라."(조마리아 여사가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의연함을 보였습니다.
안중근이란 이름 석자는 그렇게해서...그로부터 36년간 계속된 치욕의 역사를 예견하고 거부했던 이들의 맨 앞자리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그때의 결정적인 한 장면만에서만 멈춰서지 않았습니다.
30년 뒤인 1939년 10월16일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은 이토부미의 위패가 있는 박문사에서...
이토의 아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아비의 잘못을 사죄했습니다.
'호부견자. 호랑이 아비에 개와 같은 자식'이라는 비난은 쏟아졌지만, 그에게도 곡절은 있었겠지요.
누군가 쥐어준 과자를 먹고 갑자기 죽어버린 안중근의 장남...
남겨진 가족에게 돌아온 현실은 잔혹했기에, 애국대신 매국을 선택해서 살아남고자 했던 비극과 통한의 역사는 존재했던 것입니다.
희생으로 싸워 찾은 가치를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그렇습니다.
오늘은 108년전 청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며...
또한 38년전 장기집권을 꿈꾸던 권력자가 자신의 수족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비극의 날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짧았던 봄을 지켜내지 못했고, 그 봄은 다시금 핏빛으로 마무리 되어...
군의 수뇌부는 광주는 월남이라며 시민을 적으로 몰았습니다.
그 시절의 각하는 망월동의 묘역마저 분산시킬 것을 직접 지시했다는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108년전에도. 38년전에도 결국 역사는 거꾸로 갔고, 그 역사는 광장을 지나온 지금의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희생으로 싸워 찾은 가치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
그래서일까 거꾸로 간 역사는 현실은 이렇다고 강변합니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오늘의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 2018년 6월11일 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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