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3 ㅣ No.122850
‘데블스 에드버킷(악마의 변호인)’(1997)은 인간의 허영이 자신을 거짓으로 이끌고 그것이 악마의 노리개가 되게 만드는 원천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입니다.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잘 나가는 변호인. 그는 학생을 성추행한 선생님을 변호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의 말을 믿었지만 차차 그 선생님이 진짜 범행을 저질렀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재판이 시작되었고 자신의 커리어를 망칠 수 없어 폭행을 당했다는 학생을 몰아붙여 이번에도 변호를 성공하여 무죄로 이끕니다.
이렇게 유명해진 그는 아주 큰 회사의 변호사로 취직하게 되고 그 회사를 위해 불법을 저지른 거부들을 변호하며 유명해져갑니다. 그런데 그 회사의 회장은 사람의 모습을 한 사탄입니다. 변호사는 그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돈과 음란과 허영 속에서 아내가 미쳐가는 것에도 무관심하게 됩니다. 결국 아내는 자살하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런 생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그 회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데, 바로 그때 다시 처음 선생님을 변호하는 자리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잠깐의 꿈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첫 패배가 되겠지만 선생님이 아이를 폭행했다며 아이의 편을 들어줍니다. 진실을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와 평범하게 사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 위대한 결정을 신문에 내야한다고 기자가 다가옵니다. 물론 처음엔 그를 물리치지만 또 그 정도는 뽐내도 되겠다는 마음에 인터뷰를 허락합니다. 그때 그 기자가 회장의 얼굴로 변합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 얼굴로 우리 주위에서 허영심을 이용하여 우리를 악으로 빠뜨립니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게 무슨 큰 공로라고 유명해지려고 했던 것일까요?
거짓을 말하며 살아야 하는 삶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러나 그 비참함을 알면서도 순간적인 위기를 모면하려고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말하기 일쑤입니다. 죄를 짓게 만드는 자아는 명예욕이기도 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숨기려고 위선자가 되게 만듭니다.
처음 거짓을 말하기 시작했던 사람이 아담입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립니다.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모습을 이미 정해놓았기 때문에 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그렇게 한 것이고 그런 것에 하느님께서 속을 줄 압니다.
야고보 사도는 자신의 죄를 서로 고백하라고 하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야고 5,16 참조). 이것이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마귀의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죄를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치부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십시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깔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다 거짓말쟁이이고 그렇게 죄를 고백할 자신감을 잃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오히려 존경합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 참된 하늘나라의 백성입니다. 진실됨 하나로 참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칭찬을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축일을 맞는 바르톨로메오 사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르톨로메오를 보시며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은 바로톨로메오를 알아보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 질문에 예수님은 알쏭달쏭한 대답을 하십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바로톨로메오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필립보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나자렛에서 메시아가 난다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참된 이스라엘 사람은 나자렛에서 메시아가 났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무과화나무는 믿음이 주제가 될 때 등장하는 나무입니다. 하느님 자비에 대한 믿음을 잃은 아담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을 가렸습니다. 거짓을 말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르톨로메오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대로 거짓 없이 필립보에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지는 않을지라도 이 솔직함을 칭찬한 것이고 그 솔직함을 지닌 바르톨로메오는 아주 쉽게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솔직하지 않은 신앙인보다 솔직한 불신앙인이 더 하늘나라에 가깝습니다. 이에 바르톨로메오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거짓말쟁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쟁이는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바르톨로메오처럼 진실하다면 어린이처럼 쉽게 하느님을 믿게 됩니다. 아주 작은 거짓말도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한 거짓말이라고 하여 거짓말까지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착한 거짓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짓은 그냥 나쁜 것입니다.
잘한 것을 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자신이 죄인임을 감추는 거짓에 가깝습니다. 부끄러운 것들을 말해야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밝혀야합니다. 자신을 가리는 무화과 잎을 떼어내어야 주님 앞에 서고 주님도 그 앞에 서십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열게 만들기 위한 첫 번째 행동은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어 솔직해지려는 노력입니다. 이것만 할 수 있어도 하늘나라 백성이라 불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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