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그룹성경 공부 종강미사 발표를 한다면?
2018년 12월3일 월요일, 10시...어제...
분당 요한성당 소성당에서 수원교구 성경공부 여정과 카톨릭 그룹성경 공부 종강미사를 했다.
나는 그룹성경 회원으로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사진촬영 봉사를 부탁받아 사진촬영을 겸하기도 했다.
종강미사 후 그룹성경 각반의 대표자가 나와서 발표를 했다.
창세기반 1명, 탈출기반 2명, 마르코반 2명, 요한반 2명, 이사야반 1명, 코린토서 1명, 모두 10명이 발표했다.
각 발표자의 모습을 촬영했다. 진지하게 발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떨림을 애써 참으며 발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울림이 왔다.
내가 만일, 저분들처럼 발표자의 위치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2018년 12월4일)은 대림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서 11장1-10절이다.
3년전 쯤의 어느 때, 이 구절을 읽고 그 시적인 표현에 많이 흥분되고 고무되었다.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등.....
다음 해 2월 이사야서를 배우기 위해 그룹성서 공부를 신청하러 갔다.
그러나, 이사야서는 안 된다. 창세기-탈출기-마르코-요한 단계를 거쳐야 이사야서를 배울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그룹성서를 시작한 것이 3년 째이다. 창세기 1년, 탈출기 1년, 마르코반 1년을 마쳤다.
내년에 요한을 공부해야 대망의 이사야서를 배울 수 있다.
창세기 1년을 배우면서, 나에게 섬광처럼 다가온 단어는 '자비'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자비롭다.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는 하느님처럼 자비로워야 한다....
그럼, 자비란 무엇인가?
세상의 아무리 하잖은 미물일지라도, 비록 악한 것이라고 지탄받는 존재일지라도...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불쌍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것이 자비가 아닐까? 나는 생각을 했다.
야생화 사진촬영하면서, 야생화 이름 알기가 나의 취미생활이다. 어느 날, 탄천변으로 나가 야생화 관찰을 했다.
미국실새삼이 극성맞게 탄천변 식물계를 질식시키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미국실새삼은 기생식물이다.
노란색 미국실새삼 줄기에 뒤덮인채 그 아래에 자라고 있는 쑥 등의 식물이 맥을 못 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식물에 기생하여 숙주식물을 죽여 버리고, 자기가 살아남는 저런 기생식물을...
하느님이 창조하실 때에는 필경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에 섬광처럼 떠오른 단어가 '자비'이다.
인간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 미국실새삼이 '악'일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그것이 '선'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떠오른 단어가 '자비'다.
창세기를 배우면서...나는 내 주변의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분명 까닭과 연유가 있어 창조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자비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1년 후 탈출기를 배울 때, 나의 키워드는 '변화'였다. 탈출, 변혁, 탈바꿈, 허물벗기 등의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한 나, 모험심과 도전정신이 없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에게 탈출기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편안한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고통의 광야생활로 탈출하는 이스라엘 민족,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어 탈출시키는 하느님,
그 좋으신 하느님께 틈만나면 불평 불만하고, 반항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신약의 예수님 역시 율법학자, 바리새인 등 지배층에 대하여 변화를 추구하다가...미움를 받게 되어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는가?
시대의 개혁가! 시대의 반항아!이신 예수님은 철저하게 변혁을 추구하다가 기득권층의 세력에 의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죄란 무엇인가?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낸 어떤 기준으로 피조물의 생명력을 침해하는 것. 그것이 죄라는 생각을 했다.
서강대 최진석 철학과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 어떤 기준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이 폭력을 행사하는 잣대가 된다는 말....
미인대회에서 미인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미인의 서열이 정해지면서 폭력이 행사된다는 말...
미인의 조건에 부합되지 못하는 사람을 소외시키고, 열등하게 느끼는 의식을 주입하는 효과가 발생하므로...그것이 폭력이 된다는 것이다.
탈출기를 배우면서...
하느님이 주신 잣대가 아닌 세상의 기준과 잣대로 남을 판별하는 것이 폭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론매체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는 세상의 잣대를 앵무새처럼 판박이로 떠들면서, 타인을 압박하는 것이 무서운 '죄'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거룩'이란? 단어는 세상과 분리되는 것이다. 세상과 분리된 하느님 나라의 기준을 가지고 사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이다.
내가 무심히 하는 이 행동이 세상의 입맛에 맞는 행동인가? 혹은 하느님의 입맛에 맞는 행동인가?
끊임없이 주님께 묻고 또 물으며, 잘못 된 방향일 때는 방향을 바꾸고,
세상이 주는 멍에일 때는 탈출하면서, 변화하는 것이 성장하는 신앙인의 태도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재산, 명예, 권력, 인기, 인정 등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늘나라의 기준에 나의 몸과 마음과 정신과 혼을 다하여 나를 변신시키리라 작정을 했다.
3년 차 마르코 공부를 하면서 나에게 얻어진 키워드는 '이미 아직'이다.
강하게 이 단어가 나의 마르코반 묵상의 화두가 된 까닭은 지리산 피정 때 알게 된 조진무 신부님 강의 때문이다.
친구들과 지리산 피정을 가서 11월4일 일요일 9시에 강의를 듣고, 11시 미사봉헌을 했다.
그런데, 11월8일 목요일, 조진무 신부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친구에게서 들었다. 너무 놀랐다.
신부님께서 남기신 '이미 아직'이란 말씀이 유언처럼 나의 귓전을 맴돌았다.
"하느님나라는 이미 왔어요.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는 않아요," "하느님의 사랑은 이미 왔어요.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 않아요."
그룹성서 마르코반 제118차 연수를 수지성모교육원에서 2일간 받았다.
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 원장이신 김효준 신부님이 강사이셨다.
"이미와 아직"사이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는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것이 마르코 복음의 주제라고 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충분한 것이 아니다. 가까이 왔다는 것은 아직 안 온 것 이다. 종말론적인 사고이다.
끊임없이 내 손을 잡으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혔던 피 묻은 오른손을 내밀어 내 손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손을 못 잡고 있어요...아직 믿음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느낌, 감정, 체험은 분명히 있어요...그러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인지...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부르심에 나를 아직 충분하게 봉헌하지 못 하는 그런 단계임을 인정합니다...ㅠㅠ...
2011년 3월1일부터 굿뉴스의 매일미사와 우리들의 묵상을 읽으면서, 발췌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작업을 아침마다 하고 있다.
지금까지 7년 8개월째 하는 셈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하느님께서 나의 일상을 알고 계시는 듯...
매일미사와 우리들의 묵상을 통하여, 특별한 지령, 위로, 치유의 말씀 등을 해주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보물찾기를 하듯, 하느님의 지령과 위로, 치유의 말씀 등을 찾는다.
찾은 보물을 읽고 또 읽으면서..."얼마나 좋으신 하느님인가!" 감탄하는 소리를 저절로 한다...ㅎㅎ...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고 한다.
매일미사를 통하여 매일 계시를 받는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사는 나!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에 감동하고 감탄하며 살고 있는 나!
하느님과 나의 비밀스런 만남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나!
그렇지만,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이지만, 아직은 하느님 나라가 아니예요.
하늘과 땅의 경계에 살고 있는 지금, 결정적인 순간에 하늘을 선택할 수 있는 단호함이 있는지 자문해본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재물, 인기와 인정 등을 자캐오처럼 버릴 수 있는지?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지 자문해본다.
남들이 나를 욕하며 손가락질하고, 침뱉기 할 때 내가 과연 하느님 나라를 위해 견뎌낼 수 있는지 자문해본다.
세상을 바꾸자고 말할 용기도 힘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나만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나만이라도....
돈과 명예와 권력과 재물, 인기와 인정 등을 추구하는 세상의 패러다임을 벗어나기를 희망합니다.
내가 변하는 그 만큼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작은 꿈을 가집니다.
작은 꿈들이 모여 하늘나라는 분명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아멘.
- 2018년 12월 4일 화요일..수산나 -
분당 요한성당 교구 성경공부 여정 그룹성경공부 종강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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