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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9년 6월 15일 토요일 [(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용문사 7장

[매묵]2019년 6월 15일 토요일 [(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용문사 7장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송

시편 27(26),1-2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리라.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시니

성령께서 이끄시어 저희가 바르게 생각하고

옳은 일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다며,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며,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14-21

형제 여러분,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19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3-4.8-9.11-12(◎ 8ㄱ)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끝까지 캐묻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

○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

복음 환호송

시편 119(118),36.29 참조

◎ 알렐루야.

○ 주 하느님,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 알렐루야.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바치는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8(17),3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숨는 저의 바위시옵니다.

<또는>

1요한 4,16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 병을 고쳐 주시는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를 온갖 죄악에서 자비로이 지켜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리라는 계명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주님을 두고 하는 맹세입니다. 하느님을 두고 하는 맹세, 하느님을 증인으로 하는 맹세이기에 거기에는 어떤 거짓이 들어가서도 안 되고, 하느님과 한 약속은 성스러운 의무로서 꼭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느님의 이름을 입 밖에 낼 수 없을뿐더러, 하느님을 두고 맹세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나 하느님의 이름 대신 하늘이나 예루살렘을 두고는 맹세할 수가 있었고, 그런 맹세가 남용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늘이 하느님의 어좌이고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사 66,1-2 참조)이라면, 하늘이나 땅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는 것과 같은 것임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은 사람들 사이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다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라고 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도 그렇게 쉽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예.’와 ‘아니요.’로 대답하는 것이 어렵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엇에 ‘예.’를 하고, 무엇에 ‘아니요.’를 해야 하는지 구분하는 것이 어렵고, 또 ‘예.’라고 대답한 것을 실제로 내가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두렵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며,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지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중에 성령의 은사를 하나 뽑았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에 성령의 은사를 뽑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은사를 뽑으셨는지요? 저는 ‘효경’을 뽑았습니다. 안식년을 지내는 저에게 꼭 맞는 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어머니를 자주 찾아가라는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하느님의 말씀을 더 가깝게 접하라는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은 ‘지식’을 뽑았다고 합니다. 지식은 무엇을 많이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식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식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맹세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맹세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오는 위안과 고독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악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게도 꼭 필요한 은사입니다.

대부분 사람의 선택은 기준이 있습니다. 재물, 성공, 권력, 명예가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는 그것들이 많은 것들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직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도,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좋은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의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고, 원하는 곳으로 휴가를 갈 수 있고, 좋은 집을 살 수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좋은 공연을 마음껏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기준은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다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좋은 직장을 포기할 수 있고,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들 곁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분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 행복,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가 함께 일했던 복음화 학교의 봉사자들은 복음 때문에, 주님 때문에 새로운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분들은 봉사하면서도 감사하였고, 힘이 들어도 주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분들을 다그쳤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본당 신부님들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도 본당 신부가 되어 봐라!’ 본당 신부가 되면 모든 것이 편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본당 신부가 된다는 것은 더 많은 희생과 책임을 어깨에 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보좌신부로 지낼 때는 ‘화장실 문고리가 고장 난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칠판에 아이들이 써넣은 낙서도 그냥 보았습니다. 마당에 떨어진 휴지도 그러려니 하였습니다. 소성전에 성수가 떨어진 것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본당 신부가 되면 마음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도 시집가서 꼭 너 닮은 딸 하나 나 봐라!’

요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엄격하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르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자신을 믿는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악의 노예가 되고 악이 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믿지 않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믿지 않는다면 감시를 해야 합니다. 믿지 않아야 하는 것들과 함께 몰려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거울을 놓아두면 자신이 자신의 감시자가 될 수 있고 그러면 자신의 욕구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자신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그리고 어디로 떠내려가는지도 모릅니다. 물 위로 올라와야합니다. 물 위에 서면 자기 자신을 발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기도가 시작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 자신을 바라보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발밑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합니다. 하와가 뱀과 대화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등 뒤에 있던 하느님을 바라보았다면 뱀의 꾐에 휩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설문조사 결과, 80세 이상 노인들의 90% 이상이 자신의 인생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후회하는 것은 세계 여행이나, 많은 돈, 성공 등의 거창한 것을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못 해 준 것”, “가족에게 좀 더 따듯하게 말을 건네지 못했던 것”, “돌아가신 어머니께 좀 더 친절하지 못했던 것” 등의 사소한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사랑을 베풀지 못했던 것이 죽을 때 가장 후회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게 했던 장본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작 해야 했던 일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은 끊임없이 출세하라고 하고 즐기라고 합니다. 만약 한 발 떨어져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그렇게 쓸려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결코 자신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기도를 통해 마치 거울로 자신을 보듯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살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의 눈으로 마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듯 자신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요셉신부)

3. 오늘 복음은 여섯가지 대당 명제중 네 번째 ‘맹세하지 마라.’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함으로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여섯가지 대당 명제를 다시 살펴 봅니다. 1.성내지 마라, 2.간음하지 마라, 3.이혼하지 마라, 4.맹세하지 마라, 5.보복하지 마라, 6.원수를 사랑하여라, 바로 이 여섯 가지 중 우리 수도자에게는 ‘이혼하지 마라’는 조항만 빼고는 다 해당됩니다.

공동번역성서에느는 ‘맹세하지 마라’는 소주제가 새번역 성서에서는 ‘정직하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정직하고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로 맹세를 하지 않습니다. 정말 하느님도 모르고 자기를 모르는 무지에서, 생각없음에서 맹세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단호하기가 추상같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모두가 하느님과 관여되기에 맹세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깨달아야 비로소 겸손입니다. 성령칠은중 효경입니다. 제가 뽑은 ‘효경Pietas’의 뜻은 ‘우리가 하느님께 속한다는 것과 우리와 그분과의 깊은 관계를 깨닫게 해주는 은혜’입니다. 이런 효경의 겸손과 지혜의 사람이라면 결코 맹세하지 않고 다음 예수님 말씀처럼 단순, 담백, 솔직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너희가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우직愚直하고 묵직黙直하고 눌직訥直(어눌하나 정직함)하고 충직忠直한 진실한 사람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19년 6월 15일 토요일 [(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다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라고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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