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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굿강]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19년 9월 22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19922.

 

루가 9, 23-26, 로마 8, 31-3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신앙인은 현세(現世)의 목숨을 최대의 가치로 생각하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신앙인은 자기 삶의 최대 보람을 하느님 안에 두는 사람입니다그리고 그것을 위해 현세의 목숨마저 버릴 수 있다는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중국(中國) 북경(北京)에서 이승훈(李承熏)이 세례를 받고 귀국한 것이 1784년입니다그 이듬해인 1785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1882년 조선의 정부가 미국과 수호조약(修好條約)을 맺기까지 약 10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그 동안에 참수(斬首) 혹은 옥사(獄死)로 순교한 분들의 수가 만(10,000)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그분들은 온갖 잔인한 형벌을 받고,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그리고 그 유족들은 관비(官婢)라는 종의 신분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외국에서 선교사가 파견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신앙을 영입하였다는 사실은 세계 그리스도교회사에 예외적인 경우로 기억됩니다신앙이 한국 땅에 들어와서 뿌리도 채 내리기 전에 박해는 시작되었습니다그때 신앙인이 된 분들은 교리교육도 충분하게 받지 않았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명이 훨씬 넘는 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천주교 관계 한문(漢文)서적들,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비롯한 한문으로 된 몇 권의 서적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였습니다첫 번 세례레자 이승훈이 세례를 받기 약 150년 전의 일입니다그때 사람들은 그것을 서학(西學)이라 불렀습니다그 시대 그 문서들을 영입하여 연구한 사람들이 실학파(實學派)라 불리던 유교(儒敎) 학자들이었습니다유교 국가를 표방하던 조선(朝鮮)의 지성인(知性人)들은 유교의 성리학(性理學) 이론(理論)에 빠져 있었습니다실학파 학자들은 합리적이고 현실성 있는 학문(學問)과 사회제도(社會制度)를 찾고 있었습니다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민족적 시련을 겪은 직후의 일입니다그 무렵 실학파가 연구한 천주교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였지만또한 새로운 세계관, 사회관이기도 하였습니다.

 

홍길동이라는 소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그 소설의 저자 허균(許筠)도 이 실학파의 한 사람이었습니다허균에 대한 연구서를 쓴 어떤 학자는 그 시대 조선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첫째, 무고로 죄 없는 사람들을 고발하여 감옥에 가게 하는 일이 많아서 백성은 불안하고 서로 믿지 못하는 풍조가 휩쓸었다둘째, 벼슬 팔아먹기와 뇌물과 횡령이 판쳤다.  셋째, 과거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되는 등 부정이 행해지고 벼슬아치들의 부정부패는 당연한 것으로 되었다넷째, 무리한 토목공사들을 벌려 놓고 관리들은 공사 자재(資材)를 횡령하고, 민생고에 허덕이는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아서 매우 사치스럽게 살았다결국 임금으로부터 지방 수령에 이르기까지 자기 신분을 보호하기 바빴고, 그것을 위해서는 금력이 필요했다임금은 신하들로부터신하들은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는 길밖에 없었다.”(이이화, 허균한길사 1997, 45-47). 그 책의 저자가 소개하는 그 시대의 사회상(社會相)입니다.

 

그런 사회적 여건에서 서학(西學)을 공부한 실학파 학자들에게나 후에 신앙을 영접한 초기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신앙은 대단히 신선(新鮮)하였습니다그리스도신앙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습니다.  군주(君主)가 절대적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시고, 그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그 시대 법()은 조정(朝廷)이 만들어 임금의 이름으로 반포하면, 백성은 그것을 지켜야만 했습니다그러나 신앙은 하느님이 질서 지어 만드신 자연과 마음의 법, 곧 자연법(自然法)과 양심법(良心法)을 가르쳤습니다노예와 같이 법을 지키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의 법을 존중하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소식이었습니다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법()은 당시에 자행되던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를 방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였습니다그러나 그리스도신앙은 하느님이 자비롭고 사랑하신다고 가르칩니다그것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시야(視野)를 열어주었습니다무자비한 법과 제도에 한 마디 항의도 못하며, 짓눌려 살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질서, 곧 정의(正義)와 자비(慈悲)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그 시대 사회가 안고 있던 모든 부조리(不條理)를 한 순간에 걷어내는 기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그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조상(祖上) 제사(祭祀)의 거부라는 당시 순교자들에게 주어진 죄목(罪目)은 그리스도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명분(名分)이었습니다조상제사는 그 시대 유교(儒敎) 가르침의 핵심이었습니다신앙인들이 그것을 거부한 것은 유교국가의 근본 질서를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왕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권력구조의 절대성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그리고 신앙인들이 축첩(蓄妾)을 거부한 것은 유교가 가르친, 남녀 차별의 철칙(鐵則)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신앙인들은 그 시대의 계급차별도 거부하였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느님을 아버지로  당시 순교자들의 심정을 엿보게 하는 고백 하나가 있한 자녀라는 의식은 그 시대의 사회 계급적 차별을 거부하게 만들었습니다.습니다. 순교자들 중 백정(白丁) 출신인 황일광(黃日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천당이 둘 있다하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이고 또 하나는 양반과 쌍것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똑같이 존중하는 이 세상의 천당이다.”  그것은 백정으로 멸시당하며 살던 사람이 신앙인이 되어 그리스도신앙공동체 안에서 느낀 사실을 담은 말이었습니다계급의 장벽 없이, 모두가 형제자매로 통하는 신앙공동체는 그에게 천당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그들의 목숨을 버렸습니다그들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열리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질서를 열망(熱望)하였습니다오늘 우리가 들은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  우리의 순교자들은 그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그들은 그 믿음을 버리지 못하여 모진 형벌을 감수하고 생명을 잃으면서도 그 사랑을 열망하였습니다그분들은 죽음을 넘어 하느님을 향해 떠났습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봉은사 영각


봉은사 영각 옆 홍매화


봉은사 영각 옆 홍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