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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2년 11월 13일 주일[(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신부님 강론 3개

[매묵]2022년 11월 13일 주일[(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신부님 강론 3개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이날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모범을 보여 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와 연대, 형제애를 실천하도록 일깨우고 촉구한다.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만물의 시작이시고 마침이신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의 살아 있는 성전에 온 인류를 모으십니다. 변하는 이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넘어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리라 굳게 믿으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갑시다.

입당송

예레 29,11.12.1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대영광송>

본기도

주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너희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9-20ㄴ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8(97),5-6.7-8.9(◎ 9 참조)
◎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러 주님이 오신다.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 소리쳐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강들은 손뼉 치고, 산들도 함께 환호하여라. ◎
○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신다. ◎

제2독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입니다.3,7-12
형제 여러분,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1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12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루카 21,28 참조
◎ 알렐루야.
○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5-19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을 살피며 가진 것을 나누고 그들과 함께 희망을 키우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2.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분단의 세월 동안 대부분 단절되고 대립하며 지내 온 이 겨레에 은총을 주시어,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며 대화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하소서.

3. 수험생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혜의 샘이신 주님,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을 보살펴 주시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제까지 애써 준비한 것들을 아쉬움 없이 잘 펼쳐 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저희 가정 공동체를 주님의 은총으로 이끌어 주시어,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며 참행복과 생명의 가치를 실천하는 본보기가 되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어
저희가 오롯이 주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3 :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의 무한한 영광을 보여 주셨으니
그리스도의 천주성으로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을 도와주시고
그 인성으로 저희를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하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73(72),28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

<또는>

마르 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날이 오면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검불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를 것입니다. 그들은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인내로써 생명을 얻읍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하신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비오니
성자께서 당신 자신을 기억하여 거행하라 명하신 이 성사로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어릴 적의 기억입니다. 자주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우리 집을 마련할 때까지 9번 이사를 갔습니다. 주인집이 있고 작은 공간에 세를 들어 살았습니다. 세를 들어 살면 알게 모르게 주인집의 눈치를 보기 마련입니다. 장독대로 있고, 등나무도 있고, 다락방도 있고, 작은 마당도 있던 새 집으로 이사 갔을 때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형들이 쓰던 가방, 옷도 물려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서 참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쌀가게, 연탄가게, 마트, 밥장사를 하였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충실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정한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가난해서 굶주리고, 가난해서 병들고,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가난해서 제대로 입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도록 권고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도와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자신만을 위해서 재물을 창고에 쌓아놓지만 그렇게 해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편히 쉴 수 없었던 것은 집 앞에 머물던 가난한 라자로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금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도와주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최후의 심판 날에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묻습니다. 언제 저희가 그렇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배고프고, 가장 목마르고, 가장 헐벗은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난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발적인 가난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유함보다 가난함을 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도자들은 독신, 순명, 청빈을 서약합니다. 부유함 때문에 하느님께 대한 열정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부유함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부유함 때문에 갈등과 분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유해진 나라들의 교회는 비어가고 있습니다. 부유해진 나라들의 성소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국주의는 그들의 부유함을 채우기 위해서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식민지의 역사는 약탈과 침략의 역사입니다. 교회는 권력을 가지고 부를 축적했을 때 분열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발적인 가난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구조적인 가난입니다. 흙수저로 태어나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가난입니다. 궁핍한 지역에서 태어나서 굶주리는 가난입니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 태어나서 기회는 박탈당하고 있는 것 마저 빼앗기는 가난입니다. 국제사회는 구조적인 가난 때문에 굶주리고, 병들고, 배우지 못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 연대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선교사를 파견하여 병원, 학교, 보육원을 만들었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모범을 보여 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와 연대, 형제애를 실천하도록 일깨우고 촉구합니다. 우리들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발적인 가난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조적인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과 연대하며 그들을 도우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2.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인이 말하는 법: 그리스도의 말을 하라.

 

영화 ‘게임 플랜’(2007)의 줄거리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조 킹맨은 영화 내에서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입니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이기는 하지만 다른 선수들을 믿지 않고 독립적인 플레이를 계속해 우승 트로피는 따내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파티를 즐기며 솔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딸이라며 한 아이가 찾아옵니다. 예전에 이혼했던 아내는 딸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조는 크게 당황합니다. 

 

    딸 매디슨 페티스는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리카에 봉사하러 가서 어머니가 아빠 집에 있으라고 했다고 말합니다. 조 킹맨의 메니저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조는 인기 절정의 미식축구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조 킹맨도 갑자기 나타난 딸의 존재로 생활에 균열이 생기게 되어 이러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페티스는 아빠 조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지금 또 다른 여자를 사귀고 있었기 때문이고 당장인 인기와 돈과 명예가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페티스는 언론 앞에서 아빠를 옹호하는 말을 해주기도 하고 또 그러는 가운데 조도 페티스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며 조는 조금씩 더 솔직해집니다. 페티스 때문에 애인과 헤어질 위기에 처하자 조는 페티스가 엄마와 똑같다고 말합니다. 항상 불평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페티스는 엄마의 말을 전합니다. 아빠는 언제나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였다고 말합니다. 페티스가 울자 조는 기타를 쳐 주며 페티스를 위로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다. 나는 아버지다”를 외우며 이상한 복장을 하고 딸이 원하는 발레도 같이 해 줍니다. 

 

    그러다 일이 발생합니다. 아이가 분명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는데도 디저트에 땅콩이 들어간 것을 모르고 페티스가 그것을 먹고 알레르기 발작을 일으킵니다. 병원에 입원시키고 다행히 딸이 안정을 되찾자 페티스의 이모가 찾아옵니다. 사실 엄마는 6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뒤였고 아프리카에 간 것은 이모였습니다. 이모는 페티스를 미식축구에 미친 아빠에게 맡길 수 없다며 아빠의 양육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페티스도 아빠의 커리어를 망치고 싶지 않아 이모의 집에 머물겠다고 합니다. 

 

    조는 점점 진지해집니다. 딸의 양육권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 딸보다 사랑하는 건 없습니다. 축구를 포기해도 좋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슈퍼 볼 경기가 열리는 당일 매니저는 만약 경기에서 이기면 기자가 이제 무엇을 할 것이냐고 질문할 때 “전 이제 패니 버거를 먹으러 가겠어요”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패니 버거가 스폰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페티스 생각에 좀처럼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던 조는 결국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고 맙니다. 이번 경기를 포기하려고 할 때 페티스가 나타나 아빠에게 힘을 줍니다. 아빠는 솔직하게 말해 줍니다.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딸 페티스를 만난 것이라고. 그리고 경기에 나가 우승합니다. 기자의 질문에 “우리 딸을 데리고 집으로 갈 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조 킹맨의 삶은 그 자체로 거짓이었습니다. 그가 솔직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딸을 받아들여 아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더는 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지막 때에 가짜 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왜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나타나게 될까요? 프랑스 속담에 험담꾼은 듣는 이들이 만든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거짓말을 들어주는 이들이 있기에 재림 예수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교리를 몰라서 사이비로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왜 뱀의 거짓말에 넘어갔을까요? 그들이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니아스와 사피라는 왜 재산의 절반을 교회에 바쳤음에도 죽었을까요?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이는 말을 받아 전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아는 사탄의 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내 뜻대로는 예, 아니요, 말고는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을 하는 것 외에는 다 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 이야기에서 조 킹맨은 자신이 아버지라는 믿음을 가지기 전까지는 진실할 수 없었고 남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진실 하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리스도가 되었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임에도 그리스도가 되었음을 믿지 못하면 인간으로 하는 모든 말은 거짓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 이야기를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요한 8,44-45)

 

    우리의 말은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변한 나의 정체성으로 나오는 말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하는 말이 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더욱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20)

 

    오늘 복음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 21,14-15)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진리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진리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요한 8,26)

 

    마지막 때에는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말쟁이가 되면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게 됩니다. 하지만 진실한 사람이 되면 그들의 말은 거북해서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진실한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은 내가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 되는 길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내가 그리스도의 계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사라질 때 세상은 거짓 예언자들로 가득 찰 것입니다. 지금 사이비를 공부할 때가 아닙니다. 성체성사로 내가 진리에 참여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들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를 버리고 그분의 말을 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만큼 좋은 공부는 없습니다. 내가 말하며 내가 듣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거짓 예언자들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조금씩 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3. 2022년 11월 13일 일요일

[연중 제33주일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팬데믹), 기후 위기세대 간 갈등성 평등빈부 격차물가 상승 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 성경 말씀은 어떤 메시지를 던져 줍니까?

1독서에서는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같이 대조적인 내용의 예언을 듣습니다.

악인에게는 종말의 대심판이 내려지겠지만선인에게는 메시아를 통하여 치유와 구원이 실현되리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2독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잘못 이해하던 이들을 경계하고자 쓰인 편지입니다.

종말에 관하여 그릇되게 이끄는 이들에게 바오로 사도는 일상 속 노동의 가치를 거듭 강조합니다.

한편 복음은

성전 파괴 예고와 종말에 닥칠 재난과 표징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특별히 거짓 메시아와 종말에 대하여

그릇된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닥쳐올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인류 역사 속에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 업적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선포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종말을 희망 속에서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우리에게 저마다 맡겨진 일상 속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지어진 자연 생태계와 화해하고,

나와 다른 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물질로 환산하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

그 사명은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을 올바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반드시 죽어야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