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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21212 글]지금을 잘 살아라!(안젤름 그륀)/아타락시아/우리집은 가난했다(손흥민)

2022년 12월12일(월) 오늘의 글 3개

 

지금을 잘 살아라!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얼마나 오래 사느냐,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하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을 활짝 열고
넓은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삶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사는데 있다.


따라서 삶이란 많이 체험하고
노동 후에 즐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란 순간을 사는 것이며,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데
그 의미가 있다.


현존하는 것을 인지하고
삶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여라!


순간을 자유롭게 살고 당신을
억누르는 일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져라!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며
마음이 원하는 일을 행하고,
현존하는 것을 모두 그대로
인정하고 나아가 삶의 비밀을
발견하는데 참 의미가 있다.


시간이란 최대한 이용해야 할 재산이다.
신과 하나가 되는 장소이다.
신에게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그것은 흘러가는 것이지만
또한 영원과 같은 것이다.


순간을 살며 시간을 충만하게
보낼 줄 아는 사람은,
충만한 자신을 감지 할 수 있으며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꽈리

아타락시아(ataraxia)




소크라테스 제자가 플라톤이고 플라톤의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조금 늦게 그리스 세계에 등장한 것이 스토아학파(stoicism)와 에피쿠로스학파(epicureanism). 일반적으로 스토아학파의 도덕을 극기주의 혹은 금욕주의(asceticism)라고 부르고 에피쿠로스학파의 도덕을 쾌락주의(hedonism)라고 부른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평정한 마음 상태, 즉 자연과 일치된 삶을 모토로 삼는 평정한 마음 상태를 이르는 말이 아타락시아(ataraxia)이다.

아타락시아(ataraxia)는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 BC341-BC270)가 사용했던 용어로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고 강건하게 평정한 각성된 상태, 즉 평정심을 가리킨다.

헬레니즘(hellenisum)시대의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근거하여 쾌락의 획득과 고통의 회피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고 주장한 에피쿠로스학파가 감정적, 정신적 동요나 혼란이 없는 평정심의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밀짚꽃


-우리집은 가난했다.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는 컨테이너에 산 적도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세 가지 돈벌이를 하시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다. 학원은 꿈도 꾸지 못했고, 또래 아이들에게는 일상적이었을 게임이나 여행, 놀 거리들을 나는 별로 해 본 기억이 없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께서 나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며 소형 중고차 한 대를 구해오셨다. 120만 원을 주셨다고 했다. 비가 오면 창문 틈으로 빗물이 줄줄 샜지만 그래도 자가용이 생겼다며 우리 가족은 좋아했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 차가웠다. 주위에서 아버지가 '똥차'를 몰고 다닌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 17세 함부르크 유소년 시절 

독일 유소년 구단 시절은 참 힘들게 버텼다.
한국 식당에 갈 돈이 없어서 허기를 꾹꾹 참았다.
유럽에서 뛴다는 판타지의 실사판은 늘 배고픈 일상이었다.

구단 전용 숙소에서 지내야 했는데 나처럼 없는 형편에는 감사했으나, 숙소의 식사가 한국인 청소년에게는 너무 부실했다. 시내 한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불가능했다.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인터넷으로 음식 사진을 검색해 구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 봐 그런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한국일을 정리하고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끌어모아 독일까지 날아오셔서 숙소 근처의 가장 싼 호텔을 거처로 삼으셨다.

그때까지 유소년 신분이었던 나는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1군 선수가 되고,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고, 함부르크 팬들을 열광시킬 때도 나와 아버지는 어렵게 지냈다. 가족과 함께 지낼 집도 없었고, 아버지는 자동차가 없어서 매일 호텔과 클럽하우스, 훈련장 사이를 몇 시간씩 걸어 다니셨다. 훈련이 시작되면 갈 곳이 없어 혼자 밖에서 몇 시간씩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셨다.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내가 함부르크 1군에서 막 데뷔했을 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 실제 생활은 정말 차이가 컸다.
함부르크에서 골을 넣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2011 아시안 컵에 출전하고,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며 한국 언론으로부터 칭찬이 쏟아질 때도 나와 우리 가족은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숙소에서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밥솥을 벽장 안에, 밑반찬을 책상 아래 숨기며 생활했다. '라이징 스타' 아들을 둔 아버지는 매일 몇 시간씩 추위를 뚫고 먼 거리를 걸어 다녔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매일 마음 졸이며 기도만 하셨다.

TV 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신성 손흥민의 일상은 대중의 짐작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 2019년 프리미어리그 시절

‘2019년의 손흥민은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이에요. 프리미어 리그의 인기 팀에서 뛰는 프로 축구선수죠.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에서 뛰어봤어요. 남들이 보기에 이런 제 모습이 화려해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겉모습입니다.
힘들었던 과거와 뒤에서 이루어지는 노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죠. 지금까지 어려웠던 날이 훨씬 많았어요. 좌절하고 눈물을 흘린 순간도 많았고요.
사실 지금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살고 있어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죠.

제 인생에서 공짜로 얻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드리블, 슈팅, 컨디션 유지, 부상 방지 전부 죽어라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믿어요. 어제 값을 치른 대가를 오늘 받고, 내일 받을 대가를 위해서 오늘 먼저 값을 치릅니다. 후불은 없죠.

저는 지금 자제하고 훈련하면서 꿈을 향해 달리고 있어요.’

"-손흥민 에세이" 중에서

 

미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