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2년 12월 19일 월요일[(자) 12월 19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오실 분이 지체 없이 오시리라. 그분은 우리 구세주, 이제는 우리 땅에 두려움이 없으리라.
본기도
거룩한 동정녀의 출산을 통하여 영광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이 강생의 놀라운 신비를
온전한 믿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거행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13,2-7.24-25
그 무렵 2 초르아 출신으로 단 씨족에 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3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4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5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6 그러자 그 여자가 남편에게 가서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 나에게 오셨는데,
그 모습이 하느님 천사의 모습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묻지도 못하였고,
그분도 당신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7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보라, 너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25 그가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자리 잡은 ‘단의 진영’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저의 입은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 영광을 찬미하나이다.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
○ 저는 주 하느님의 위업에 둘러싸여, 오로지 당신 의로움만을 기리오리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이사이의 뿌리, 민족들의 깃발로 우뚝 서신 분 지체 없이 오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25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제대에 올리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바치는 보잘것없는 예물을 주님의 힘으로 거룩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님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분을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을 미리 알려 주고
이미 와 계신 그분을 가리켜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천상 양식을 받고 감사하며 청하오니
저희가 다가오는 구원을 열망하며
깨끗한 마음으로 구세주의 성탄을 맞이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2년 12월 19일 월요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는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앞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를 배치한 까닭은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배열 순서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세례자 요한의 위치와 역할을 반영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자 파견된 예언자입니다.
오늘 복음의 중심 구절은 13절입니다.
즈카르야는 주님의 천사에게서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이어서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르도록 지시합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자비를 보여 주셨다.”라는 뜻을 가진 ‘요하난’에서 유래합니다.
천사를 통하여 전달된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자비가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아이를 못 낳는 여자 엘리사벳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고(1,58 참조),
그분의 자비는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도 베풀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역할 수행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천사의 예고에 따르면, 태어날 아기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로 인도하는 설교자,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자 파견된 예언자입니다(1,15-17 참조).
그 아기는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므로 그의 출생은 많은 이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만,
그 기쁨과 즐거움은 메시아의 탄생을 준비하는 성격을 지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선포된 탄생에 관한 천사의 예고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천사의 선포를 거부한 즈카르야의 부정적 반응은 우리 각자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나요?
2. 12월19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대부분의 성당에는 그동안 있었던 신부님들의 사진이 액자로 걸려있습니다. 제가 미사를 도와주는 퀸즈 정하상 바오로 성당에도 신부님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정욱진 토마스 신부님, 안상인 요셉 신부님, 김인성 요한 비안네 신부님, 서상봉 다니엘 신부님, 이가별 가브리엘 신부님’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지금은 김문수 엔듀류 신부님이 있습니다. 내년이면 본당 설립 50주년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초대 신부님은 공동체의 씨를 뿌렸습니다. 서울교구 신부님들은 공동체에 물을 주었습니다. 잠시 머물렀던 예수회 신부님은 공동체에 거름을 주었습니다. 부르클린 교구 신부님들은 공동체가 꽃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끄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제가 있는 신문사에도 사진이 걸려있지는 않지만 홈페이지에는 역대 신부님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신부님들이 모두 헌신적으로 신문사를 위해서 일하셨고 신문사는 창립 35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문사를 이끄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세종대왕은 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다른데 글은 중국 글자를 사용하니 백성들의 고충이 많다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말을 우리의 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그것을 ‘여민락(與民樂)’이라고 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 또한 ‘여민락’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던 마노아의 아내가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삼손’이며 태양의 힘을 가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는 그 힘으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절망과 좌절 중인 여인에게 희망을 주었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즈카리야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가질 수 없던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질 거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며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많은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거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새로운 길을 준비할 거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자라서 회개의 세례를 주었고, 주님보다 앞서서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의 세례명은 ‘가브리엘’입니다. 성탄 무렵에 많이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천사라는 뜻입니다. 저는 저의 세례명을 참 좋아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좋은 뜻을 전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때로 날개 잃은 천사가 되어서 방황하기도 하지만 저의 세례명처럼 주님의 뜻을 전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미주 가톨릭평화신문에서의 일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저의 세례명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이룬 일로 정해지는 이름도 있습니다. ‘독재자’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욕망에 따라서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독재자의 폭력에 의해서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선구자’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이름입니다. 밤을 새워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류는 그런 사람들이 밝힌 길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목적은 세상의 명예와 세상의 성공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길은 바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초는 자신을 태울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를 태워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봉헌해야 합니다. 이 또한 ‘여민락’의 삶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3. 12월18일, 이영근 신부님 복음 묵상
221218. 대림 제4주일.
“그 몸에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20)
오늘은 대림 4 주일입니다. 가까이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채비를 갖추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준비만으로는 부족한 일입니다. 준비를 넘어서, 이제는 우리의 결정적인 협조를 필요로 할 때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탄생이 우리의 협조를 통해서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기 예수의 탄생도 요셉과 마리아의 응답과 협조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이를 잘 보여주는데, 먼저 <제1독서>에서는 임마누엘의 탄생이 예고되고, 곧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이사 7,14)라고 예고됩니다.
<제2독서>에서는 예고된 이 일이 이루어진 다음, 그 은총으로 이루어진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곧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직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로마 1,1-7).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과 예언이 요셉의 협조를 통해 이루어짐을 밝혀줍니다. 이를 먼저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마태 1,18)
이 소식에 요셉은 무척 당혹했을 것입니다. 약혼자의 임신사실에 온갖 의혹과 치욕스런 배신감으로 분노와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서운함과 불신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궁색하고 구차한 변명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약혼녀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사실을 드러내어 재판을 걸게 되면 그녀를 죽음에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그냥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마리아를 집 안에 받아들이는 일도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적인 고소를 통해 마리아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마태 1,19)
참으로, 그는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었습니다.
그럴 즈음에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서 벌어진 일을 밝혀줍니다.
“그 몸에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20)
참으로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자연계의 모든 법칙을 뛰어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이 터무니없는 일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그렇지만, 그는 ‘의심’이라는 악을 떨치고, ‘신비’라는 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 일이 거룩한 분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믿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 안에 자신을 가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지혜로 가히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 은총의 법을 따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은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아직 뜨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빛으로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약혼녀 마리아의 성령잉태 사실뿐만 아니라, 요셉에게도 ‘사명’을 부여합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마태 1,21)
이처럼, 주님의 천사는 그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붙이는 영예를 받았습니다. 비록 아기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지만, 그를 보살필 아버지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마침내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 뜻에 협조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마태 1,24).
참으로, 그는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안락과 평안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결국, 그는 결혼하기도 전에 아내를 포기해야만 했고, 아들을 얻기도 전에 아들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행동하는 믿음과 순명’으로 구원받는 모든 이들의 양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인류를 향한 하느님 ‘구원계획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누리에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우리의 협조’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구원의 협조자’가 된다는 것은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는 “그분의 뜻” 안에 머물고, “그분의 뜻”에 따라 협조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요셉은 오늘 <복음>에서뿐만 아니라, 복음서 전체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침묵으로 하느님의 음성에 마음의 귀를 열고, “아버지의 뜻”에 순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분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요셉 성인과 함께 구원의 협조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활동과 거룩한 분의 힘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의심하기보다 신비를 품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동하는 믿음과 순명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주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당신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게 보여도 ‘당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당신의 뜻’을 세우소서. 아멘.
4. 12월18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영원한 롤모델 성 요셉
-배려와 존중, 침묵과 경청, 겸손과 순종-
"영원한 하늘의 빛 떠올라 있고, 구원의 아침샛별 반짝이나니
찬란한 천상빛이 우리를 불러 천국의 시민되라 초대하시네."
대림시기 제2부(12.17-24) 아침성무일도시 찬미가 5절이 아름다워 나눕니다. 우리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은 참 행복합니다. 큰 산같은 두분의 성인, 즉 성 요셉과 성 베네딕도를 배경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도원 로고에서 불암산佛巖山 큰 산봉우리 둘이 흡사 두 성인을 상징하는 듯 싶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성 요셉이고 마치 오늘이 성 요셉 축일처럼 생각됩니다. 오늘 대림 제4주일, 마음 안팎을 환히 비추는 대림 촛불 넷이 주님 오심이 임박함을 알리며 마치 성 요셉 축일을 경축하는 듯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앞서 참 좋은 아버지 요셉을 마련해 놓으신 하느님의 배려가 놀랍습니다. 어제 “오! 지혜(O Sapientia)”로 시작됐던 M후렴에 이어 12월18일, “오! 하느님(O Adonai)”으로 시작되는 M후렴도 좋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은연중 보여주는 성 요셉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오! 하느님이여 이스라엘 집안을 다스리시는 분이여,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산에서 그에게 당신 법을 주셨으니, 오소서, 팔을 펴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성 요셉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수차례 인용했지만 늘 새롭습니다. 영원한 롤모델인 성 요셉을 참으로 흠모하는 마음에서 쏟아 놓은 고백시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아버지 불암산 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 모자를 벗고
큰 절을 올린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불암산의 품으로 살 수는 없을까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늘 행복할 수는 없을까
불암산처럼!”-2000.11.17.
이와 더불어 그보다 한참뒤에 쓴 “저녁 불암산”도 제가 좋아하는 짧은 시입니다.
“아,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2007.12.
그대로 성 요셉을 상징하는 듯한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입니다. 제 집무실에는 어느 아픈 자매가 깊은 신심으로 6개월에 걸쳐 그린 “크고 깊고 고요한” 산같은 모습의 성 요셉의 초상화도 늘 바라볼 수 있도록 비치되어 있습니다.
첫째, 성 요셉은 배려와 존중의 큰 마음을 지닌 ‘큰 산’같은 분입니다.
참으로 큰 산같은 연민의 사람 성 요셉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 말씀이 바로 이런 넉넉하고 자비로운,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 요셉의 큰 마음이 정말 잘 드러납니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전에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얼마나 침착하고 지혜로운 대응인지요! 추호도 흥분이나 분노를 감지할 수 없습니다. 성 요셉의 관심은 오로지 마리아의 안전이였습니다. 감쪽같이 마리아를 살려내고 지켜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마음은 더 큽니다.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이 이뤄집니다.
둘째, 성 요셉은 침묵과 경청의 깊은 사랑을 지닌 ‘깊은 산’같은 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전폭적 신뢰와 사랑을 받은 침묵과 경청의 사람, 성 요셉입니다. 경청을 위한 침묵이요, 요셉이 침묵중 경청한 후 조용히 헤어질 마음을 굳혔을 때, 꿈에 주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필경 성 요셉은 깊은 고뇌중에 밤샘 기도에 돌입했음이 분명합니다. 바로 그 순간 하느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개입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요셉을 신뢰했는지 당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참으로 탄생할 아기 예수님이 얼마나 고귀한 분인지 그 심오한 의미가 잘 드러납니다. 예수는 본디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를 뜻하는 히브리 말 이름인 여호수아가 줄어서 된 예수아를 그리스말식으로 음역한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자 성령으로 잉태된 참으로 심오한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바로 제2독서 로마서의 바오로 사도의 고백과 일치합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이런 고백과 일치되는 신비로운 비밀이,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이고 영으로는 하느님의 아드님인 예수님의 고귀한 신분이 은밀히 요셉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느님의 전폭적 신뢰를 받은 침묵과 경청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의 신적 기원을 알았기에 요셉은 참으로 예수님을 헌신적으로 돌봤을 것입니다.
셋째, 성 요셉은 겸손과 순종의 고요한 믿음을 지닌 고요한 산같은 분입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정수유심靜水流深, 심수무성深水無聲).’ 성 요셉이 바로 그러합니다. 참으로 좋은 산은 ‘높은 산’이 아니라 ‘깊은 산’이라 합니다. 겸손과 순종의 고요한 믿음을 지닌 성 요셉은 참 ‘깊은 산’같은 분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심중을 정확히 알아챈 성 요셉은 군말없이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얼마나 충실한 주님의 종인지요! 겸손과 순종으로 빛나는 성인의 믿음입니다. 얼마나 하느님과 깊은 내적 일치의 삶이었는지 깨닫습니다. 이런 성 요셉을 통해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의 실현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7,14).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를 뜻합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이름, 임마누엘인지요! 마침내 요셉의 순종의 믿음으로 마리아를 통한 임마누엘 구원자 예수님이 탄생할 수 있었으니, 성 요셉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 인류의 자부심같은 존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 삶의 영원한 롤모델 성 요셉입니다.
참으로 크고 깊고 고요한 불암산 같은 성 요셉입니다.
1.배려와 존중의 큰 산같은 마음의 사람,
2.침묵과 경청의 깊은 산같은 사랑의 사람,
3.겸손과 순종의 고요한 산같은 믿음의 사람, 성 요셉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주님을 닮은 이런 사람으로 변모시켜 줄 것입니다. 아멘.
[12월19일,되새김 구절]
1. 즈카르야는 주님의 천사에게서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이어서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르도록 지시합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자비를 보여 주셨다.”라는 뜻을 가진 ‘요하난’에서 유래합니다.(정진만 신부)
2.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봉헌해야 합니다. 이 또한 ‘여민락’의 삶입니다. (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주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당신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게 보여도 ‘당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당신의 뜻’을 세우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참으로 크고 깊고 고요한 불암산 같은 성 요셉입니다.
1.배려와 존중의 큰 산같은 마음의 사람,
2.침묵과 경청의 깊은 산같은 사랑의 사람,
3.겸손과 순종의 고요한 산같은 믿음의 사람, 성 요셉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주님을 닮은 이런 사람으로 변모시켜 줄 것입니다. 아멘.
(이수철 신부)
[100일 기도후 제5일차 기도]
하느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하느님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하느님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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