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2년 12월 20일 화요일[(자) 12월 20일]/신부님 강론 5개
입당송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 차리니,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본기도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천사의 아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성령의 빛으로 주님의 성전이 되셨으니
저희도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이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복음 환호송
○ 다윗의 열쇠, 영원한 나라의 문을 여시는 분, 어서 오소서. 어두운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이끌어 내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지극히 거룩한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이 신비에 참여하여
믿고 기다려 온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님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분을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을 미리 알려 주고
이미 와 계신 그분을 가리켜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천상 선물로 저희에게 생기를 북돋아 주시니
이 신비에 참여한 저희를 보호하시어
참된 평화를 누리며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는 이 말을 할 때마다 하느님을 부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을 잉태하십니다. 천사의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이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성모 마리아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요? 주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말을 믿으면 우리 또한 우리 한계, 곧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우리 주위에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인물들이 있고 그들의 특징은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유튜브 채널 ‘비오는 날’에는 ‘장애를 이겨낸 다섯 명의 특별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중 가장 먼저 ‘젠 브리커’(Jen Bricker)는 태어날 때부터 양다리가 없는 여자입니다. 부모는 다리가 없는 아이를 버렸습니다. 루마니아에서 고아로 자라던 그녀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작은 마을에서 온 부부에게 입양되어 세 아들과 함께 자랍니다.
그녀의 양부모는 그녀와 세 아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도록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집안에서는 단 하나의 규칙이 있었는데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라는 규칙이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야구, 농구, 체조 등의 스포츠를 즐겼고 마당에서 트램펄린을 타고 곡예 동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기점으로 그녀는 전문적인 텀블링을 습득하며 일리노이주 챔피언 텀블러가 됩니다. 이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보고 체조에 큰 관심을 두게 된 그녀는 미국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도미니크 모체아누(Dominique Moceanu)를 동경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체아누는 자신의 친자매였습니다. 그녀는 모체아누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보내 그녀와 만날 수 있게 되었고,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쟁취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월드투어를 하며 퍼포먼스 공연을 선보이고 있고 최근에는 30m 높이의 실크 로프에 매달려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행위예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 예로 카일 메이나드(Kyle Maynard)도 나옵니다. 카일은 세계적인 동기부여 강사이고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크로스핏 체육관장, 레슬링 선수권 대회 챔피언, 종합 격투기 선수, 역도 세계 기록 보유자이자 5,895m의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것도 모자라 1,000m 더 높은 아콩카과 산 정상에 오른 이 남자의 기록은 놀랍게도 팔다리가 없이 이루어낸 업적입니다.
그러면 그의 부모는 그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장애인으로 대했을까요? 당연히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믿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신체적 장애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병원에서조차 낙태를 제안했으나 낙태는 선택 사항이 아니며 심지어 고려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카일의 생애 첫해는 평범한 아이와 같이 자랐지만, 한 해가 지나며 카일의 삶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카일은 설 수 없었고 걸을 수 없었으며 손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밥을 먹여줘야 했는데 언젠가는 아들이 스스로 살게 될 것을 미리 걱정한 그의 아버지는 더 이상 가족들에게 카일의 밥을 먹여주지 말자고 했고 카일은 살려면 스스로 밥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할머니와 부모는 그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했습니다. 놀이터로 데리고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였고 카일의 친구들은 카일에게 친절했습니다. 카일의 할머니는 카일이 손과 발이 없다는 것을 깜빡깜빡하며 설탕을 꺼내달라고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카일은 말합니다.
“수백, 수천 번을 실패하였습니다. 단지 꼭대기까지 설탕을 퍼 올릴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포기하려니까 지금까지 시도한 수백, 수천 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 한 번만 성공하면 그다음부턴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카일은 결국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의 경험은 카일의 손재주와 집중력을 늘리는 데 놀라운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한 의지력까지 선물했습니다. 그는 유소년기에 미식축구에 도전했고 레슬링에 도전해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을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심지어 MMA 종합 격투기까지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카일의 아버지는 말합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제야 이 세상이 카일을 위한 세상이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너무 엄했던 날 용서해주렴. 하지만 네가 처한 상황에서 무엇인가 할 수 없을 때마다 포기한다면 앞으로도 네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성공을 이뤄낸 사람들이 믿었던 것은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준 대상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그의 부모입니다. 만약 우리가 무언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 아버지가 하느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 안에서도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젠 브리커의 양부모처럼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라는 규칙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면 그것 자체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믿음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이었고 이 믿음이 수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스터디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이것을 생각하세요’란 동영상이 있습니다. 일본의 한 초등학교에서 뜀틀 대회가 열렸습니다. 교사들은 엄청난 높이까지 뛰어오른 한 아이에게 가장 높은 10단 높이까지 시도해보라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자기 키보다 훨씬 높은 뜀틀은 마치 높은 담장과도 같았습니다. 몇 번을 실패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교사들은 믿어주었습니다. 결국 포기하려 할 때 반 아이들이 나와서 그를 둘러싸고 응원을 해 주니 가뿐하게 뛰어넘습니다.
우리는 종종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공통점은 자신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댈 언덕을 제공한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그 사람의 인생은 180도 바뀔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미 그것을 할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 한계를 뛰어넘을 때 사람들은 우리만이 아닌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준 대상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표징이 없다면 아무리 주님을 믿으라고 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우리 한계를 뛰어넘도록 믿고 계십니다. 제발 믿음이 있다면 제발 “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하느님을 부정하는 말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성모 마리아의 믿음을 공경한다면 우리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습성을 버리고 다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말하면 믿게 됩니다. 믿어지면 결국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을 증명하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신의 지문’으로 잘 알려진 그레이엄 헨콕은 넷플렉스를 통하여 ‘고대의 아포칼립스’를 제작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원전 12,800년경에 지구에는 대재앙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구 곳곳에 ‘대홍수’에 대한 신화와 설화가 있는 것은 당시 대재앙에 대한 인류의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때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문명이 있었는데 대홍수와 해수면의 상승으로 그 문명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거나, 없어졌다고 합니다. 다만 대재앙의 혼란 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문명을 당시 신석기인들에게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레이엄 헨콕은 고대의 아포칼립스를 통하여 당시 문명인들이 남긴 유적을 찾아서 보여 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유적들은 “멕시코 촐룰라, 인도네시아 구눙 파당, 마이애미 대홍수 흔적, 고대의 거석문화, 튀르키예 지하 도시 데린쿠유, 괴베클레 테페’ 등이 있습니다. 그레이엄 헨콕은 고대 문명인들이 하늘을 관측하기 위해서 높은 사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인류의 문명이 직선으로만 발전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35억년 지구의 역사에 최소 5번의 멸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인류의 문명 또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선형으로 발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 천문학, 유전공학은 고대의 문명을 찾는 학문이 되고 있습니다. 신화, 설화는 고대 문명이 우리에게 남겨준 표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또 다른 표징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여러 가지 이정표를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사는 지구는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정표입니다. 온 우주에 우리가 머무는 지구처럼 아름다운 별은 없습니다. 불, 땅, 공기, 물은 아름다운 자연에 생기를 넣어줍니다. 구름, 꽃, 새, 나무, 강, 바다, 산은 하느님의 엄위하심과 사랑을 느끼게 해 줍니다. 예술가들은 노래, 미술, 건축, 연극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였습니다. 흐르는 강물에 빛이 여울지는 걸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산들바람에 단풍이 흔들리는 걸 보면 아이가 노래에 맞추어 춤추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은 도와주려고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는 매주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라는 지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신문의 내용을 보시고 많은 분이 후원해 주십니다. 지금 힘들고, 아프고, 외로운 이들의 이웃이 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업적과 능력을 드러내기보다는 숨어서 향기를 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날의 허물과 잘못을 뉘우치고 겸손하게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청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도 좋지만, 넓은 바다처럼 모든 것을 품어주고 받아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양심이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정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언자는 철학, 사상, 문학, 예술, 종교를 통해서 정의와 공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앞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언자는 우리가 지구별에 왔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찰하게 해 줍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줍니다. 처음부터 길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들의 뒤를 따라가니 길이 되었습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조금씩 동이 트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스름하지만 칠흑 같은 밤은 지나가고, 여명이 시작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새벽을 밝히는 여명이었다면,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이정표를 약속하십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이젠 이정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명은 사라지고, 붉은 태양이 떠오르면 천지 만물이 환하게 보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느 시간과 장소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는 지금 이곳이 하느님 나라가 되는 겁니다. 드디어 복음(福音)의 시대가 열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참된 자유,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이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은 마리아의 응답으로 현실이 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능력, 업적, 재능, 권력, 재물, 명예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마리아처럼 우리가 응답하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됩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천사의 아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성령의 빛으로 주님의 성전이 되셨으니 저희도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3. 2022년 12월 20일 화요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전하는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에 이어지는 루카 복음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이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보다 뒤에 자리한 까닭은 예수님의 우월성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관계는 특별히 1-2장의 이야기 구성을 위한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어제 복음이 태어날 아기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오늘 복음은 태어날 아기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다윗 집안 출신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를 찾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천사가 알려 준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을 가진 ‘예(호)수아’에서 나왔습니다(마태 1,21 참조).
천사는 ‘예수’라는 이름을 알려 주면서 태어날 아기의 정체성과 특별한 역할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에게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는 ‘구원자’이시며(1,47.71.74.77; 2,11 참조),
구원자의 정체성은 십자가 죽음에서 정점을 이루는 예수님의 행적으로 드러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구원자 예수님의 신원과 사명을 예고하는데,
그에 따르면 태어날 아기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다윗에게 전달된 하느님의 약속(2사무 7,9-16 참조)을 완성하는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반면에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아하즈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두 인물의 대조적인 모습에서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찾아봅니다.
우리는 어떤 인물을 신앙의 모범으로 따라야 할까요?
4. 12/19(토), 이영근 신부님 복음 묵상
221219. 2022년 12월 19일.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우리는 어제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곧 어제는 “의로운 사람”(마태 1,19) 요셉의 이야기였고, 오늘도 역시 “하느님 앞에 의로운 이들”(루카 1,6)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이야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예고는 구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고 너무 늙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서 거룩한 인물이 태어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사실, 성경에는 여러 거룩한 여인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창세 11,30), 이사악의 아내 레베카(창세 25,21), 야곱의 아내 라헬(창세 29,31),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1사무 1,2), 그리고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삼손의 어머니인 마노아의 아내(판관 13,2), 그리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루카 1,7)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거룩한 인물들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장소와 시간은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곧 오늘 <복음>의 장소인 성전의 ‘두 제단’은 두 계약을, 그리고 옛 계약에 따라 ‘제사를 드리는 시간’에 벌어진 이 일은 구약 시대와 신약을 연결해줍니다. 따라서 요한의 출현은 옛 계약의 율법과 사제직이 끝났음을 알려줍니다. 이는 경계가 무너지는 일입니다. 벽이 무너지고 막힌 것이 없어집니다. 이는 우리를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사실, 요한은 불임인 늙은 여인에게서 태어나고, 그리스도는 동정인 젊은 여인에게서 태어납니다. 여기에는 어떤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막시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약의 인물인 요한은 늙은 여인의 식어버린 피에서 태어나야 했고, 장차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실 주님은 꽃처럼 피어나는 처녀의 몸에서 피어나셔야 했던 것입니다.~그리고 즈카르야는 의심했기 때문에 목소리를 잃었고, 마리아는 곧바로 믿었기에 세상을 구하는 ‘말씀’을 잉태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아기의 잉태를 알려주면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줍니다. 요한이란 이름은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이처럼, 요한의 사명은 그리스도와의 연관성을 드러냅니다. 곧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루카 1,17)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사명을 되새겨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 혹은 우리가 만나는 이 안에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탄생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미 자비를 입었으니, 기뻐하며 자비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 1,24)
주님!
당신께서는 저의 무능과 허약 안에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피하고 도망쳐도 보물을 찾듯 찾아오시고,
거부하고 배신해도 목숨처럼 아끼시며 끝까지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님, 지금 지체치 마시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소서.
제가 응답하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를 이루소서. 아멘.
5. 12/19(토),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복음 묵상
하느님 중심의 삶
-사랑의 ‘신비가神祕家’로 삽시다-
“내 입은 님의 찬미로 가득 차 있고,
진종일 당신께 영광을 드리나이다.”(시편71,8)
오늘은 대림2부, 셋째날인 12월19일입니다. 주님 오실날도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오! 옛세의 뿌리여(O Radix Jesse)”로 시작되는 간절한 M후렴도 반갑고 고맙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해야 겠다는, 하루하루 사랑의 신비가로 살아야 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오 옛세의 뿌리여, 만민의 표징이 되셨나이다. 주앞에 임금들이 잠잠하고 백성들은 간구하오리니, 더디 마옵시고 어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요즘 성탄에 임박하여 많은 분들이 고백성사차 수도원 제 집무실을 찾습니다. 보속으로 다음 똑같은 말씀 처방전을 써드리며 충고하는 내용을 소개합니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사랑하는 – 형제님(필립4,4)” 성구를 써드린후 꼭 당부하는 충고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꼭 일주일 남았습니다. 일주일만은 화내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큰소리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기쁘고, 평화롭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시다 주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비상한 신비가가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의 기쁨과 감사의 신비가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불행과 비극은 삶의 중심인 하느님을 잊은 데에 기인합니다. 하느님을 잃었는지, 잊었는지 구별이 애매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잃어, 잊어, 삶의 중심과 삶의 의미를 잃고, 삶의 길을 잃고 방황하며 표류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오소서, 주 예수님!”을 뜻하는 “마라나타”를 호흡에 맞춰 되뇌이며 바치기를 권하는 명상기도 제 강의록중 한부분을 소개합니다. 이 명상기도 또한 깨어 늘 주님의 신비가로, 관상가로 살기위한 영성 훈련입니다. 30년전에 쓴 내용인데 오늘날도 여전히 새롭게 읽힙니다. 신비가로 불림받은 우리 신자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명상기도는 수도승 영성이 보편화하는 시대에 깊은 영적 삶을 추구하는 자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하고 평범한 기도로서 결코 신비롭고 유별난 기도가 아니라 참사람眞人’으로 살아가기 위한 단순하고 평범한 수행의 한 방법이며 순간순간 소중히 지내며 하느님의 현존인 사랑 안에서 깨어 살기 위한 기도이다. ‘행함의 기쁨(the joy of doing)’을 누리는 시간이 아니라, 존재의 기쁨(the joy of being), 관상의 기쁨(the joy of contemplation)을 누리는 시간이며, 생각을 멈추고 사랑의 침묵안에 머무는 시간이다.
신비가는 소수의 영적 엘리트에게 해당된 명칭이 아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도달해야 할 본래 모습이요 모두가 그리로 불리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저명한 신학자 칼 라너는 '21세기의 문턱에 선 현대는 새 문명이 잉태되기 위한 다 전환기로서, 머지 않아 영성을 요구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며 그때가 오면 신자들은 신비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말한다.
물질주의, 금전만능주의 시대인 오늘날, 많은 이들은 외적 풍요와 편리함에 비례하여 극심한 영적 갈증을 겪고 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이 영혼의 갈증을 해갈시켜 주지 못한다. 명상기도는 생명의 샘이신 주님 안에 머물러(요한15,4) 생명수를 흡수하여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는 기도이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현실입니다. 오히려 영적 갈증은 날로 심각해집니다. 얼마전 친애하는 도반인 신부가 본당 신자들이 너무 좋아한다 하여 판공시 보속으로 나눠주겠다며 수백장의 행복기도문을 가져갔습니다. 누구나의 마음 깊이에는 주님의 사랑의 신비가가 되고 싶은 깊은 갈망이 잠재해 있음을 봅니다. ‘행복기도’ 혹은 ‘예닮기도’로 일컫는, 신비가의 고백처럼 생각되는 기도문 전문을 다시 소개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2018.10.16.
참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는 기도문입니다. 대림 2부, 주님 오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매일 바치며 주님을 닮은 사랑의 신비가로 사시기 바랍니다. 성서의 인물들 평범한 듯 하나 실상은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했던 비범한 신비가들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 어제 복음의 주인공인 성 요셉이 주님을 만난 신비가였고,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의 출생에 관계된 즈카르야, 엘리사벳 부부 역시 주님을 만난 신비가들입니다. 또 제1독서 판관기의 참 소박한 마노아와 그 아내 역시 주님을 만난 신비가들이었습니다.
제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중심의 수덕생활에 한결같이 지극히 충실할 때, 때가 되면 주님은 이들을 찾습니다. 수덕신비생활입니다. 수덕의 기반위에 비로소 꽃처럼 피어나는 신비생활입니다. 복음의 노부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 대한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바로 때가 되자 이들 신비가인 노부부를 방문한 주님의 가브리엘 천사였고 세례자 요한 아기의 출생이 예고되고 마침내 엘리사벳은 아기를 잉태하고 감격에 벅차 고백합니다. 요한은 ‘주님은 자비로우시다’를 뜻합니다. 자비로우신 주님의 선물이 바로 요한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일을 해주셨구나.”
그러니 태교는 물론 세례자 요한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다했을 신비가 즈카르야, 엘리사벳 부부입니다. 판관기에서 마노아 부부를 통해 삼손의 출생도 신비스럽습니다. 이들 부부의 충실한 삶을 눈여겨 보신 주님의 개입임이 분명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많은 부분이 생략됐는데 이를 읽어보면 두 부부가 얼마나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기도의 사람이자 신비가였던지 잘 알아챌수 있습니다. 성서의 인물들에게 하느님 체험은 아주 일상적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얼마나 하느님을 잊고, 잃고 사는 지, 경종이 되는 성서의 가난한 신비가들입니다. 마노아의 아내 역시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했는데 마침내 주님의 천사가 아들의 출생을 예고합니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마침내 마노아의 아내는 아들을 낳고 삼손이라 하였고,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삼손은 태양을 뜻하는 히브리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느님은 이 부부에게 태양같은 아들 삼손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삼손의 출생,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통해 새삼 우연한 존재는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과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의 신비가로 잘 살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자비를 청합시다.
“주여, 내 믿는 데 당신이시고
어려서부터 나의 희망 주님이외다
어미의 품안에서부터 님은 나의 힘,
모태에서부터 님은 내 의지시오니
나는 언제나 당신을 믿었나이다.”(시편71,5-6). 아멘.
[12/20(화), 되새김 구절]
1.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라는 규칙입니다.(전삼용 신부)
2.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조재형 신부)
3.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을 가진 ‘예(호)수아’에서 나왔습니다(마태 1,21 참조).
(정진만 신부)
4.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아기의 잉태를 알려주면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줍니다.
요한이란 이름은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이영근 신부)
5. 저명한 신학자 칼 라너는 '21세기의 문턱에 선 현대는 새 문명이 잉태되기 위한 대 전환기로서,
머지 않아 영성을 요구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며 그때가 오면 신자들은 신비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말한다.
(이수철 신부)
[100일 기도후 제6일차 기도]
마라나타, 오소서 하느님!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으로 늘상 행복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행복하게 하소서.
행복으로 저를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 2022년 12월20일(화) 6시2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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