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2년 12월 30일 금요일[(백)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신부님 강론 3개
오늘 전례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해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운데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성탄 팔일 축제 주일
또는, 팔일 축제 안에 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
신경은 이 축일을 주일에 지낼 때 바친다.
입당송
목자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보았네.<대영광송>
본기도
성가정을 통하여 참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시니
저희가 성가정의 성덕과 사랑을 본받아
하느님의 집에서 끝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2-21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18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19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20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21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게 하여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15.19-23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화해의 이 제사를 드리며 간절히 청하오니
동정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 가정을 주님의 은총과 평화로 굳건하게 지켜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우리 하느님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사람들과 함께 사셨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를 천상 성사로 길러 주시니
저희가 언제나 성가정을 본받아
현세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마침내 영원한 천상 가정에 들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소경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소경은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는 또 다른 기적도 보여 주셨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볼 수 없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소경의 눈에 침을 발라 주셨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소경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죄를 지어서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소경의 죄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입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삶의 기쁨입니다. 꽃, 새, 구름, 바다, 나무, 아이,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기쁨입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모니터는 우리를 더 넓은 세상과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청년은 그런 것은 어려서부터 잘 지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흡족해 하시면서 그렇다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자청년은 슬퍼하면서 떠나갔습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부자청년이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처럼 행동했다면 우리는 부자청년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학자도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온 마음과 정성 그리고 힘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마음과 정성 그리고 힘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 율법학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문득 생각합니다. 보는 것은 주체가 ‘나’입니다. 내가 보는 것이고, 내가 즐거운 것이고, 내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듣는 것은 주체가 ‘남’입니다. 남이 말을 해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은 보는 것으로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은 ‘들어라 이스라엘아!’로 시작합니다. 구약 예언자들도 모두 말씀을 듣고 전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라고 선포했습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고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알아들어라.’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가 결혼하기도 전에 아이를 잉태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전에 읽었던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비가 오는데, 키 큰 사람하고, 키 작은 사람이 우산 하나만을 가지고 비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키 큰 사람에게 우산의 높이를 맞추면 키 작은 사람이 비를 맞게 되고, 키 작은 사람에게 우산의 높이를 맞추면 키 큰 사람이 비를 맞게 됩니다. 서로가 키가 다른 것에 대해 한탄하거나 탓하면 둘 다 불행해집니다. 또 서로를 탓하다 갈 곳을 못 가게 될 수도 있죠. 해결 방법의 하나는,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을 업고, 키 작은 사람은 우산을 들면, 비 맞지 않고 갈 곳을 가게 될 뿐만 아니라, 둘이서 서로의 믿음과 나눔의 경험을 창출해 낼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문제는 함께 해결할 수 있고 또 함께 해결하면서 성장의 기회를 얻게도 됩니다.”
기도와 마음을 열어주는 대화, 그리고 신뢰를 통해서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21229.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성탄 팔부 축제 제5일 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치르시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십니다. 사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죄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던 모세의 율법규정을 지키지 않으셔도 되셨지만, 굳이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려고 율법의 지배를 받으셨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게 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4-5)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루카 2,27-28).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여기서, 세 가지를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시메온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루카 2,27).
그런데 우리는 무엇에 부추김 받고 있는지요? 성령에 이끌려 다니는지요? 혹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쫓아다니지는 않는지요? 대체 나는 지금 무엇에 깨어있는지요? 영의 움직임인지요? 아니면 내 마음의 움직임인지요?
그러니 자신이 무엇에 기대어 있는지? 무엇이 자신의 삶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지?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 무엇인지? 잘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둘째, 시메온은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루카 2,27-28).
그런데 지금 내 팔에 무엇을 안고 있는지요? 아기예수님인가요? 아니면, 다 큰 자기 자신인가요? 혹 한 팔에는 아기예수님을, 다른 한 팔에는 자기 자신을 안고 있지는 않는지요? 혹 공동체와 형제들을 안고 있기는 하는지요? 그래서 누구를 찬미하고 있는가요? 아기예수님인가요? 아니면, 자기 자신인가요?
그러니 진정, 나는 지금 누구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셋째, 시메온은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라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나의 눈은 대체 무엇을 보고자 찾아 헤매는지요? 어디를 향하여 있고, 누구를 향하여 있는지요? 타인들인가요? 자기 자신인가요? 아니면, 진정 하느님인가요? 혹 겉의 화려함만 바라보고 탓만 하는 세속의 눈인가요? 속을 꿰뚫어보고 찬미와 영광을 노래하는 맑고 순수한 영의 눈인가요? 혹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희미해져가고 늙어가는 육체의 눈인가요? 아니면, 늙어갈수록 맑아져 가는 영의 눈인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눈(관점)을 내려놓으면 신비를 바라보는 하느님의 맑은 영의 눈이 열릴 것입니다. ‘어린 아기에게서 구원을 보는’ 시메온의 눈처럼 열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상의 눈이 열려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
주님!
구원을 보는 눈을 열어 주소서.
포대기에 싸인 아기에게서, 알몸으로 매달린 십자가에서,
구원을 보게 하소서.
양팔로 제 삶의 무력함을 쳐들고, 구원과 자비의 찬미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무력함에서 흘러내리는 당신의 구원을 따라 관상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3. 2022년 12월 29일 목요일
[백]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루카 복음 2장은 예수님의 탄생(1-20절)에 이어서 새로 태어난 아기의 할례와 작명(21절), 등장(22-40절)을 보도합니다.
이러한 이야기 순서는 1장에서 소개된 세례자 요한의 탄생, 할례와 작명, 등장(57-80절)과 평행을 이룹니다.
오늘 복음은 아기 예수님의 등장을 전하며, 성전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부모를 맞이하는 시메온이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시메온은 아기를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시메온의 노래’라고 불리는 이 찬미가는 2장 8-20절처럼 예수님의 탄생을 해석하면서 그 의미를 설명하고,
아기가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목적을 수행할 것이라는 예고(11-12절 참조)를 분명히 합니다.
시메온은 예수님을 통하여 완성된 하느님의 구원을 직접 보았고,
그 구원은 그의 예고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 모든 민족들에게 유효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시메온의 시선은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께 향합니다.
그는 마리아께 예언자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시메온은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예수님께서 반대자의 표적이 되리라고 예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메온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이
이스라엘 안에서 갈등을 불러오고 반대자들은 그분을 거부하며 위기로 몰아가리라고 미리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시메온의 예언은 앞선 찬송과 함께 앞으로 예수님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독자를 기다리게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시메온의 눈으로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묵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가 예고한 예수님의 여정에 참여하도록 초대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길 위에서 예수님의 뒤를 따를지,
아니면 예수님의 반대편에서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질지,
그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12/30(금)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되새김 구절]
1. 기도와 마음을 열어주는 대화, 그리고 신뢰를 통해서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제 삶의 무력함을 쳐들고, 구원과 자비의 찬미노래를 부르게 하소서.(이영근 신부)
3. 예수님의 뒤를 따를지,
아니면 예수님의 반대편에서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질지,
그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정진만 신부)
[12/30(금)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제 6일차 기도문]
하느님!
제 삶의 무력함을 쳐들고, 구원과 자비의 찬미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게 하소서. 아멘.
- 2022년 12월30일(금) 6시1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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