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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2년 12월 31일 토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제7일]신부님 강론 3개

[매묵]2022년 12월 31일 토요일[(백) 성탄 팔일 축제 제7일]/신부님 강론 3개

 

입당송

이사 9,5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라 불리리라.<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탄생으로 참된 믿음을 일으키시고 완성하셨으니
저희를 인류 구원의 샘이신 성자의 지체가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18-21
18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에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6(95),1-2.11-12.13(◎ 11ㄱ)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소리쳐라. 들과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기뻐 뛰고, 숲속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
○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14.12 참조
◎ 알렐루야.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그분은 당신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저희에게 참된 믿음과 평화를 주셨으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온 마음으로 이 신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성탄 감사송 1 :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주님 성탄 감사송 2 : 강생으로 온 세상이 새로워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성탄을 경축하는 오늘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시고
영원하신 분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 들어오셨나이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만물을 당신 안에 일으키시어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버림받은 인류를 하늘 나라로 다시 불러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1요한 4,9
하느님은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을 온갖 은혜로 다스리시니
오늘도 내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덧없는 현세에서도 위안을 받고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더욱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2022 12 31일입니다. 2022년을 돌아보면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들이 많았습니다. 제게 건강을 주셨고, 무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선거를 통해서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고 참혹한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습니다. 이태원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사망하는 슬픈 사고도 있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022년을 보내면서 새로운 한 해를 기다립니다. 오늘이 지나면 2023년입니다. 내년은 계묘년(癸卯年)’입니다. 토끼띠의 해입니다. 저는 토끼띠입니다. 내년에 저는 환갑입니다. 예전에는 환갑잔치를 했는데, 요즘은 환갑이라고 해도 젊은 나이에 속한다고 합니다. 육체의 나이는 한 바퀴 돌았는데 마음의 나이는 아직 반 바퀴도 안 돌은 것 같습니다. 공자는 60이라는 나이를 이순(耳順)’이라고 했습니다. 이순은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思慮)와 판단(判斷)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나이.’라고 하는데 저는 아직도 사려와 판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2023년에도 감사할 일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아쉬움과 부족함은 모두 털어버리고 감사와 찬미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헐벗고,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 지금 힘들고 지친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십시오. 나의 멍에는 가볍고, 나의 짐은 편합니다. 모두들 나에게 와서 쉬십시오. 하느님나라는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해 주셨고, 아픈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주셨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고난을 이겨냈고, 순교의 영광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배는 초대 교회의 신앙 공동체에 의해서 거친 세상을 힘차게 넘어 갈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하나인 것처럼,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표징으로 십자가와 부활로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에로 나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2023년에는 이제 우리가 제2의 그리스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행동에서 위로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서 희망을 보면 좋겠습니다.

 

신앙 안에서 다가오는 2023년을 드러내는 사자성어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동상동몽(同床同夢)’으로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체성사로 자라나며, 교회의 가르침으로 어른이 되고, 우리가 꿈꾸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보는 것이고, 하느님과 함께 지복직관(至福直觀)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꿈을 함께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길을 같이 가야 합니다. 나의 신앙이 나의 삶과 같아야 합니다. 이제 곧 2023년이 시작됩니다. 주님과 함께 동상동몽(同床同夢)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가득한 2023년을 기다리며, 지난 1년 동안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2. 이영근 신부 강론

 

221230.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그는 나자렛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마태 2,23)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 축일입니다.
 
그런데 성가정이란 대체 어떤 가정을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오늘 <복음>에서 찾는다면, ‘성가정’이란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가정이요, ‘말씀’에 순명하는 가정이요, ‘말씀’이 성취되는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이 주인 되게 하는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두 가지 말씀의 성취를 전해줍니다.
 
<하나>는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마태 2,25)라는 말씀의 성취요, <또 하나>는 “그는 나자렛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마태 2,23)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의 성취 안에는 모진 고통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곧 이 가정은 이집트에서 불려나오기까지, 또 나자렛 사람으로 불리기까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쫓겨다녀야했고, 변방의 거류민으로 살아야 했고, 숨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고통이 없는 가정이 ‘성가정’이라는 말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아니 어쩌면, ‘성가정’에는 고통이 필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성취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가정’이란 고통이 없고 편안하고 안정된 단란한 가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나누고 고통 속에서도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요 자리가 되는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이루는 사람이기에 앞서,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는 장소요 공간’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활동하고 성취되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무엇보다도 신비로운 것은 ‘말씀이신 분’께서 말을 하지도 못하는 아기 모습으로 우리 가정과 우리 공동체 안에 들어와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아기는 말을 할 줄 모르면서도 우리를 이끄십니다.
 
참으로 묘한 신비입니다. ‘말씀이시면서 말을 못하는’ 이 아기는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때로는 보이지도 않은 빈자리가 되어 우리네 가정, 우리네 공동체를 이끄십니다.
 
이렇게 아기 예수님은 우리 가정과 공동체의 주인이면서도 우리 모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빈자리’로 계십니다. 마치 ‘가나안의 혼인잔치’에서 주인공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빈자리’로 있는 신부처럼, 우리 가정 안에서도 ‘빈자리’로 계시면서 우리 모두를 품으시고 끌어안으십니다. 그러면서도 성취를 이루십니다. 그러니, ‘공동체의 빈자리’, 그곳이 바로 중심임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자기 자신이 중심이 아님’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공동체 안에 말씀이 살아있는지 들여다볼 일입니다. 곧 ‘말씀이신 분’이 우리 안에 작고 낮고 무력하게 말 못하는 아기의 모습으로 살아계심을 볼 일입니다. ‘말씀’은 사랑하는 이 앞에서 항상 작고 낮은 이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결코 자신을 높이거나 교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관상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보다 작고 나약한 예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보다 작고 무력한 예수님을 만났는가? 나를 사랑하기에 언제나 나보다 작은 모습으로 내 앞에 무력하게 낮아져 있는 그분을 말입니다. 심지어는 ‘없는 자’, ‘빈지리’가 되어 있는 그분을 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마태 2,20)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들은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말씀이 살아있고 존중되는 말씀과 함께 친교를 나누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말씀이 항상 중심이요 주인이 되는, 말씀에 순명하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말씀 안에서 서로의 고통을 끌어안고 십자가를 함께 지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아멘. 


3.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순례 항해航海 여정중의 성가정 공동체

-가장의 리더십-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시편128,1).

 

지난 12월28일 수요일 일반 알현 시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95세 베네딕도 16세 전임 교황을 위한 특별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을 위한 특별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분은 침묵중에 교회를 떠받쳐 준 분입니다. 그분은 지금 매우 아픕니다. 그분을 기억하며 주님께 그분을 위로해 주십사, 또 끝까지 교회를 위한 그분의 사랑의 증거가 지속되게 해 주십사 주님께 청해 주십시오.”

 

오늘 성가정 축일 미사중 화답송 후렴이 참 흥겹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자 얼마나 행복되리”

 

오늘 하루 내내 화살기도 노래로 바치며 행복한 성가정 축일을 지내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 참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성가정 요셉 수도 성가정 공동체에 몸담고 살고 있음이 참 감사합니다. 

 

아마 이렇게 하느님 중심의 성가정 공동체를 이뤄 사는 12명 대가족의 공동체도 드물 것입니다. 그대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를 모델로 삼아 살아가는 순례 항해 여정중의 우리 성가정 요셉 수도공동체입니다. 세상이 흡사 순례 항해 중인 바다 같다는 생각에 강론 제목을 “순례 항해 여정중의 성가정 공동체”라 정했습니다.

 

잠시 성가정 축일의 유래에 대해 살펴 보고자합니다. 교회는 참으로 시의적절하게도 나자렛 성가정을 특별히 기억하고 그 모범을 본받도록 성가정 축일을 제정했습니다. 성가정에 대한 신심이 교회내에서 확산된 것은 지난 17세기 무렵으로,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공경이 캐나다 퀘벡의 초대 주교 라발(1623-1708)에 의해 캐나다로 확산되면서 특별 미사가 봉헌되고 기도문이 제정됩니다.

 

이어 ‘성가회’, ‘성가정 선교 수도회’, ‘성가정 자매회’, ‘베르가모의 성가정 수녀회’등 성가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도공동체들이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1893년에는 교황 레오 13세가 모든 가정을 성가정에 봉헌했고, 1921년 10월 26일에는 교황 베네딕도 15세가 이 축일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모든 교회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도록 합니다. 마침내 1969년 전례력 개정으로 성가정 축일은 성탄 팔일 축제내의 주일, 즉 예수성탄 대축일 다음의 첫째 주일이지만, 이번처럼 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에 지냅니다.

 

보금자리 가정 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하고 어두워도 반듯한 부모들이 건재하는 한, 자녀들은 잘 양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가정생활의 체험은 평생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저도 초등학교 어렸을 때 귀가하면 우선 찾는 것이 어머니였습니다. 특히 가장의 리더십이 빈약할 때 어머니의 역할은 참으로 결정적입니다.

 

훌륭한 인물들의 배경에는 십중팔구 현모양처의 어머니들이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가끔 되뇌이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은 아무나 하나?”, “부모는 아무나 되나?” 때로는 부부자격시험. 부모자격시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임감은 물론 준비가 참으로 부족한 이들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됨으로 불행을 겪고 있는 자녀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따뜻한 보금자리 품의 가정 공동체 찾아 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대부분 결손 가정들입니다. 힘들고 거친 광야 세상에 성가정 공동체를 이뤄가는 가정의 부부들을 보면 저절로 감동하고 고마운 생각까지 듭니다. 문제가 없는 순탄대로의 성가정이 아니라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는 부모들이 있어 성가정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저는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며 가정을 이끌어가는 부모들을 보면, 저는 무조건 성인들이라고 격찬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 가정을 잘 이끌어 간다는 것은 거의 순교적 희생심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순례 항해 여정중 파선이나 조난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지요! 어제 읽은 기사가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성가정을 이뤄 살기 어려운지 잘 밝혀 줍니다.

 

“세계화-신자유주의는 다른 어느 곳보다 한국에서 훨씬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추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한국처럼 비정규직이 많고(전체 노동자의 37.5%), 66살 이상 노인이 빈곤에 시달리는(노인 상대적 빈곤 40.4%) 나라는 없다. 하도급 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들의 상대적 값싼 노동을 이용하는 한국형 이원적 수출경제 구조는 일면으로 대기업들의 세계적 도약을 가능하게 했지만, 다른 일면으로는 최악의 양극화를 낳았다.

 

구미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학습경쟁과 경제적 압력 속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세계화 시대 말기의 젊은 한국인들은, 아예 ‘가족’ 형태로 결합해 재생산할 여력 자체를 잃고 말았다. 주민등록 세대중 1인 가구 비율이 40%를 넘고,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79명으로 떨어진 대한민국은, 가면 갈수록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경쟁 속에서 스스로의 생존만 도모하느라 여념없는 원자화된 개인들의 나라가 됐다. 선진국 반열에 들었섰다지만, 행복지수가 선진권의 ‘꼴찌’에 가깝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2022.12.29. 한겨레, 박노자)

 

너무나 적나라한 비판이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와중에 성가정을 이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지 정말 눈물겹습니다. 혼기를 놓친 30대에서 50대까지 남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설상 결혼했다 해도 이혼은 날로 늘어나고 위태한 가정들 역시 얼마나 많은지요. 

 

제 70년대 교사시절 6학년때 지금은 50대 후반의 제자들, 이때만해도 결혼 못한 이들은 몇 명의 소수였지만 지금의 30-40대는 결혼 못한 이들이 대다수입니다. 결혼한다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같습니다. 새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아 내 몸담고 있는 가정의 성가정 공동체 건설을 위해 주님의 형제이자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 전의와 각오를 새로이 해야 절박한 시대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순례 항해 여정중인 성가정 공동체를 묵상했습니다. 헤로데 임금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갔다가 다시 귀환하게 되는 참 파란만장한 순례 여정중 가장인 요셉의 리더십이 빛납니다. 참으로 주님의 인도따라 순례 여정에 충실했던 기도와 믿음, 지혜와 순종의 사람, 참으로 가장으로서 끝까지 인내하며 책임을 다했던 성가정의 가장 요셉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흡사 요셉의 수호천사처럼 생각됩니다. 세상에 아무리 어려운 가정이라 해도 오늘 복음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상황보다 힘든 가정은 없을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습니다. 또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참으로 가장이 리더십이 부족해도 어머니들이 그 책임을 다할 때 하느님은 기꺼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십니다. 참으로 파선 직전의 가정들이 성녀같은 어머니들 덕분에 성공적 순례 항해 여정중인 성가정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제1독서 집회서는 성가정 생활중 구체적 지침을 줍니다. 사실 노부모들 잘 모시는 가정 치고 잘못되는 가정 본 적이 없습니다. 자녀들은 어김없이 부모들을 보고 배웁니다. 믿음, 사랑, 희망, 기도, 효도등 보고 배우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야, 네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분들이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날로 늘어나는 노인들에 또 치매환자들도, 본의 아니게 가정을 떠나 요양원 신세를 지는 노인들도 많습니다. 성가정의 개념이 확대되야 함을 봅니다. 혈연血緣 가정을 넘어 명실공히 예수, 마리아, 요셉의 신연神緣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빛나는 모범이 우리 교회공동체, 요셉 수도공동체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참으로 진짜 성가정 공동체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맏형으로 모신 말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요 여기에 속한 세상의 성가정들입니다. 

 

우리 성가정 요셉 수도공동체에 잠시 손님으로 머무는 이들, 또 수도원 가까이 살면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는 분들 역시 넓은 의미로 성가정 요셉 수도공동체의 일원이란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넓고 깊고 따뜻한 정주定住 수도 가정 공동체에 걸맞는 환대歡待의 영성입니다.

 

1인 가구가 날로 늘어나는 외롭고 쓸쓸한 시절에, 교회의 성가정 공동체 역할은 날로 커질 수 뿐이 없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가정 교회 공동체에 속한 한 식구 형제자매들로 만들어 줍니다. 

 

“주님, 당신 성가정의 모범으로 우리를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12/31(토)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되새김 구절]

 

1. 2023년에는 이제 우리가 제2의 그리스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행동에서 위로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서 희망을 보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는 우리보다 작고 무력한 예수님을 만났는가? 나를 사랑하기에 언제나 나보다 작은 모습으로 내 앞에 무력하게 낮아져 있는 그분을 말입니다. 심지어는 ‘없는 자’, ‘빈지리’가 되어 있는 그분을 말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3. 성가정 공동체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맏형으로 모신 말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요 여기에 속한 세상의 성가정들입니다. (이수철 신부)

 

 

[12/31(토)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기도문]

 

하느님!

작고 무력한 예수님을 언제나 어디서나 늘상 보게 하소서.

세상 사람들이 저의 행동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고...

언제나 어디서나 늘상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 2022년 12월31일(토) 6시 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