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월 11일 수요일[(녹) 연중 제1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본기도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
○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 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또는>
요한 10,1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체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3년 01월 11일 수요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회당에서 악령을 쫓아내신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그곳에서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치시는 기적이 오늘 복음이 전하는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앞선 구마와 치유 기적에 이어 예수님의 업적을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세 번째 이야기는 예수님의 또 다른 모습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내용은 6장 46절과 14장 32-42절(겟세마니에서 기도)에서도 언급됩니다.
예수님의 활동을 요약해서 전하는 가운데 표현된다는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주 기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소는 ‘외딴곳’으로 표현되는데 이 또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복음서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낱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복음 선포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예수님의 활동을 정리한 모음집과도 같습니다.
그분의 활동은 치유, 구마, 기도와 복음 선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모든 활동 가운데 중심이 됩니다.
치유나 구마도 하느님의 힘이 드러나는 업적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말씀을 통해서만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활동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영화 아바타(물의 길)에서는 인간이면서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한명은 나비족과 함께 살면서 나비족의 철학과 가치를 배운 제이크입니다. 다른 한명은 나비족이 되었지만 인간의 가치와 철학을 간직한 마일즈입니다. 제이크는 나비족의 여인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고, 자연을 사랑하며 가족들 돌보는 나비족이 되었습니다. 마일즈는 몸은 나비족이 되었습니다. 큰 키와 강한 힘을 지녔지만 그 힘으로 나비족을 탄압하고, 나비족의 마을을 불살랐습니다. 마일즈가 나비족이 된 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빼앗고,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제이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겉모습이 닮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겉모습과 함께 내면의 모습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질책하시면서 무엇이 깨끗한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정하게 하는 것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들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부정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탐욕, 분노, 질투, 음탕, 시기, 교만, 게으름, 원망’이 우리의 마음에서 나와 우리의 몸을 부정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상석에 앉으려하는 사람, 자신의 십자가를 남에게 전가하는 사람, 단식한다는 표시를 드러내는 사람, 율법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부정하셨기 때문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죄에 물들었기 때문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의 품격이 높아진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는 하느님의 아들이 무슨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셨습니다.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이 세상의 품격을 높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세례도 품격이 높아졌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면서 우리들 또한 영원한 생명에로 초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우리의 썩을 몸도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이고, 그것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은 그런 예수님의 치유가 여러 마을에 전해지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들 또한 겉모습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보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을 우리의 삶으로 온전히 전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3. 이영근 신부 강론
230110.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습니다.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마르 1,22)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 사고친 내용입니다.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행적은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일’이었고, 그것은 일해서는 안 되는 ‘안식일’에 벌이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첫 번째 행적은 ‘안식일 법’을 어기는 사고를 친 사건이었습니다.
<복음>은 먼저,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시고 네 제자들을 부르신 다음, 가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음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습니다.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마르 1,22). 그런데 회당에 있던 ‘더러운 영에 들린 이’가 소리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 1,25)
그러자 악마는 그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가 왔음을 구체적으로 증거하는 첫 번째 행적은 두 가지의 일이었습니다. 첫째는 ‘악마의 혀 놀림을 중지시키는 일’요, 둘째는 ‘악마에 사로잡힌 이에게서 악마를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사실, 인간은 악마의 혀에 속아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악의 지배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첫 번째 행적’은 하와를 속였던 악마의 그 혀 놀림을 중지시키고 본래로 돌려 놓는 일에 해당합니다. 곧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구원의 표징이요, 구원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더러운 영’을 쫓아낼 뿐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과 같이 영원불멸의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암시해줍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라고 밝히지만,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 신원에 대한 아는 정보를 드러낼 뿐 신앙고백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앎은 예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하는 결정적인 때가 오기까지는 제지당하게 되고, ‘메시아 비밀사상’에 가두어지게 됩니다.
한편, 악마를 쫓아내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 구마자들도 그러한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구마와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이를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 1,27)
그렇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악마가 추방된 사건’이 아니라 그분의 “권위”였습니다. 다름 아닌 바로 ‘말씀이 이루어지는 권위’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놀라워했던 것은 그분의 ‘권위 있는 가르침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권위”(exusia)란 말의 원어의 뜻은 ‘힘’이란 뜻으로, 하느님께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합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느님의 힘이 실려 있어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이 구마치유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권위 있는 말씀’으로 실현됩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면서 직접 스스로 명령하실 뿐, 다른 누구의 이름에 의탁하여 행하지 않으심으로써, 당신이 바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당신의 “권위 있는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힘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교란시키고 분열시키는 온갖 거짓의 혀 놀림을 멈추고 어둠을 몰아내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마르 1,24)
주님!
진리를 알게 하소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는 자 되게 하소서.
진리를 따르며 받드는 당신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거룩함 안에서 제가 새로 나게 하소서.
제가 관계 맺는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이 빛나게 하소서!
주님이신 당신을 믿습니다.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사랑이신 하느님은 참 권위의 원천
-“사랑밖엔 길이 없네”-
지금도 묵직한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어제 하늘병원에 진료차 들렸다가 원장님께 고백성사를 드린후 붉게 젖었던 눈시울을 잊지 못합니다. 참 순수하고 성실한 분으로 성인이 되시라 격려해 드렸고 강론집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내어, 전번 성 김대건 안드레아 주인공의 영화 ‘탄생’에 이어 뮤지컬 영화 안중근 도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윤제균(마티아) 감독의 ‘영웅’을 봤습니다. 저는 주저없이 두분을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의 자랑스런 순교자로 꼽고 싶습니다.
특히 나문희가 열연한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역은 짧았지만 감동의 절정이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 오랜만의 감동의 눈물이었습니다. 길다 싶지만 조마리아 어머니의 사형을 앞둔 안중근 아들에 대한 편지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노래를 인용합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마땅히 죽어야 한다면 딴 맘 먹지 말고 죽어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마라.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天父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이어지는 조마리아 어머니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라 울며 기도하듯 노래한 내용도 감동이었습니다.
“내 아들 나의 사랑하는 도마야
떠나갈 시간이 왔구나
두려운 마음 달랠길 없지만
큰 용기 내 다오.
내 아들 나의 사랑하는 도마야
널 보낼 시간이 왔구나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큰뜻을 이루렴.
십자가 지고 홀로 가는 길
함께 할 수 없어도
너를 위해 기도하리니
힘을 내 다오.
천국에 니가 나를 앞서 가거든
못난 이 에밀 기다려 주렴
모자의 인연 짧고 가혹했으나
너는 영원한 내 아들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너를 안아 봤으면
너를 지금 이 두 팔로
안고 싶구나.”
흡사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아드님을 향한 마리아 성모님의 노래처럼 들렸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새삼 이런 어머니의 사랑의 권위는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참권위임을 깨닫습니다. 윤제균(마티아) 감독의 인터뷰중 다음 대목도 잊지 못합니다.
-‘국제시장’이 아버지를 위한 영화였다면, ‘영웅’은 어머니를 위한 영화라 한다. 이 작품을 통해 어머니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
“2015년 간암 판정을 받고 2017년 6월에 보내드렸다. 1년반 동안 살리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결국 돌아가셨다. 더 효도를 못한게 너무 후회된다. 나문희 선생님이 노래를 부를 때 정말 많이 울었다. 돌아가시고 나니 더더욱 애툿하고 애잔하다. 내가 감독이 된다고 했을 때 감독은 배고픈 직업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해 흔쾌히 응원해 줘서 고맙다. 엄마가 정말 그립다.”
저도 신마리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나이 들어 갈수록 더해 갑니다. 생각할수록 끝없이 이어지는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를 그리며’ 고백시중 다음 대목이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슬프고 아픕니다.
“따사로운 남편 사랑 없이도
흔들림 없이 꿋꿋이 가정을 지켜 오신 내 어머니 ‘신마리아’
내 수도원 들어올 때도 극구 만류하셨다
‘왜 이제 살만하게 되었는데 또 고생길에 접어드느냐?’고
그러다 하루 지나 내 방에 들어오셔서
‘얘, 수철아, 네가 좋아하면 수도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어머니는 은연중 막내인 나와 살고 싶어 하셨다.”
사랑의 권위, 어머니의 권위요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권위입니다. 어제 주님 세례 축일에 이어 오늘부터 시작되는 연중시기 첫날 복음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일화입니다. 문득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 세례 받을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아, 바로 여기 하느님 아버지에서 기원하는 예수님의 사랑의 권위, 섬김의 권위임을 깨닫습니다. 이뿐 아니라 사랑은 모두라 할 만큼 앞에 사랑이 붙습니다. 사랑의 기적, 사랑의 침묵, 사랑의 치유, 사랑의 신비, 사랑의 성사, 사랑의 순종, 사랑의 수행, 사랑의 관상, 도대체 사랑이 붙지 않은 참덕목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어제 주님 세례 축일 저녁기도시 마리아의 노래 후렴은 얼마나 은혜롭고 아름답고 깊었는지요!
“묵은 사람을 세례의 물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불멸의 옷을 입혀주신 우리 구원자께서 오늘 요르단강에 오시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도다.”
아, 이런 겸손한 사랑이 예수님의 참 권위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권위부재의 시대, 참권위가 목마르게 그리운 시절, 바로 참권위의 원천은 사랑의 하느님 아버지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권위있는 가르침에 사람들은 몹시 놀랐고, 더러운 영은 소리 지르며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권위 있는 명령에 더러운 영은 혼비백산 달아났고 사람들은 모두 놀라 고백합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 구나.”
심지어 더러운 영들인 마귀까지 하느님 사랑의 힘에 복종합니다. 새삼 사랑밖엔 길이 없음을, 무지와 허무뿐 아니라 마귀에 대한 답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힘’뿐임을 깨닫습니다.
더구나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이야 말로 영원한 천하무적의 구원의 영도자임을 히브리저자는 장엄하게 시편을 인용하여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권위의 힘은 파스카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실현됩니다. 이런 주님과 날로 깊어가는 사랑의 일치야 말로 참권위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 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존엄한 품위의 권위를 회복하는 길은 날로 깊어가는 파스카 예수님과 사랑의 일치의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시편8장의 오늘 화답송과 이를 바탕한 히브리서의 고백이 파스카의 예수님은 물론 우리의 참 신원을 밝혀 줍니다. 바로 우리 인간의 소명이 파스카의 신비안에서 충만히, 완전히 실현됨을 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사랑에 뿌리 내린 참권위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시편 8장의 화답송 시편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이 거룩한 주님의 파스카 미사은총이 이 고백대로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권위있는 존엄한 품위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천사들 보다는 조금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셨나이다.”(시편8,2-7참조). 아멘.
[1/11(수)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의 활동은 치유, 구마, 기도와 복음 선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허규 신부)
2.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을 우리의 삶으로 온전히 전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조재형 신부)
3.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행적은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일’이었고, 그것은 일해서는 안 되는 ‘안식일’에 벌이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첫 번째 행적은 ‘안식일 법’을 어기는 사고를 친 사건이었습니다. (이영근 신부)
4. 권위부재의 시대, 참권위가 목마르게 그리운 시절, 바로 참권위의 원천은 사랑의 하느님 아버지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권위있는 가르침에 사람들은 몹시 놀랐고, 더러운 영은 소리 지르며 예수님을 고백합니다.(이수철 신부)
[1/11(수)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제18일 기도 ]
하느님!
참권위의 원천은 사랑의 하느님 아버지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1월11일(수) 6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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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묵]2023년 1월 12일 목요일[(녹) 연중 제1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2) | 2023.01.12 |
[매묵]2023년 1월 10일 화요일[(녹) 연중 제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5개 (1) | 2023.01.10 |
[매묵]2023년 1월 9일 월요일[(백) 주님 세례 축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3.01.09 |
[매묵]2023년 1월 8일 주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2) | 2023.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