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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3월 16일 목요일[(자) 사순 제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3월 16일 목요일[(자) 사순 제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백성의 구원이다.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주고, 영원토록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리라.

본기도

주님,
존엄하신 주님께 간절히 비오니
구원의 축제가 다가올수록
저희가 더욱 큰 열정으로 파스카 신비를 준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7,23-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백성에게 23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24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25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26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5(94),1-2.6-7ㄱㄴㄷ.7ㄹ-9(◎ 7ㄹ과 8ㄴ)
◎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어서 와 주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환성 올리세. 감사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세. 노래하며 그분께 환성 올리세. ◎
○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

복음 환호송

요엘 2,12-13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사를 기꺼이 받으시어
저희가 온갖 죄악에 물들지 않고 헛된 욕망을 멀리하여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상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19(118),4-5 참조
주님은 규정을 내리시어 어김없이 지키라 하셨나이다. 당신 법령을 지키도록 저의 길을 굳건하게 하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를 인자로이 도와주시어
저희가 이 신비를 올바른 삶으로 드러내며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인자하신 주님을 믿고 자비를 청하오니
주님께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이 백성이
주님 은총으로 좋은 것을 바라고
바라는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착각과 왜곡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전혀 다릅니다. 착각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입니다. 그래서 착각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곡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희생시키는 범죄입니다. 그래서 왜곡은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법의 심판을 받기도 합니다. LA로 홍보를 갔을 때입니다. 점심 먹고 산보를 가면서 바다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습니다. 30분이면 간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한참을 가도 바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2시간이 넘게 걸었더니 멀리서 바다가 보였습니다. 나중에 전화를 받아보니 걸어서 30분이 아니라 차로 30분 걸리는 거리였다고 합니다. 제가 제대로 듣지 않았던 실수도 있었지만, 자매님은 당연히 차로 가는 거리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돌아오는 길에 차로 마중 나와서 편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왜곡 중에는 역사적인 사실도 있습니다. 독도는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땅인데 일본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지만 일본은 아직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도 주변의 지하자원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욕심입니다. 임진왜란, 일본의 식민통치를 통해서 대한민국을 침략했던 일본의 야욕입니다. 왜곡 중에는 정치적인 사실도 있습니다.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고문과 날조로 증거를 만들었고, 정권에 눈치를 보며 판결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언론과 검찰의 합작으로 무고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파탄에 이르게 했지만 재판 결과는 무죄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 놓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무도함이 있습니다. 왜곡은 주로 힘이 있는 권력과 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왜곡의 대상은 주로 약자이거나, 제거되어야 할 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성서에서도 왜곡의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충직한 부하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였습니다. 우리야는 아무 것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습니다. 헤로데는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2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였습니다. 가야파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위험에 빠지는 것보다는 예수 한 사람이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거짓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을 왜곡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베엘제불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선동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곡과 날조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왜곡과 날조는 악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권력의 편에 서서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했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사순시기는 거짓과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사순시기는 왜곡과 날조를 밝혀내고 진실과 자유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2.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셨는데 베엘제불의 힘을 빌리셨다고 했을까요?
예수님을 비하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예수님을 마귀 부류로 몰기위해서 이겠지요?
하기야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몰고 가는 그들이고 보면 말로 무슨 표현인들 못하겠어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낸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설명하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루카 11,12-19)

예수님의 논리는 참 단순하지요. 예수님께서 만일 마귀라면 그들과 한편이어야 하는데 당신은 마귀를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어서 더 센 마귀가 있다면 더 큰 힘이 있는자가 대항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제까지 싸워온 보람도 없이 자기가 가진 것마처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의 세력인 마귀가 크다해도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당할 수 있겠어요?

광야에서 사탄이 주님을 유혹하려고 세차례나 시도했지만 주님께서는 그 유혹을 물리치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신 것이지요.
어디에도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잘못은 모든 이들이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좋은 말씀을 해 주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23절)

바람이 불면 지나가게 되어 있지 않겠어요? 아무리 바람이 세차다고 해도, 나의 옷자락을 때로는 모자를 흩날리게 한다해도 결국 지나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을 있는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을 때로 속상해 하고 때로는 해명하려고 하지요. 예수님처펌 내 편에 있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말씀하셔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배타적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백성에게 23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예레 7,23)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이 잘 안 들을 것을 아시고 이어서 예언자에게 말씀하시지요.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27-28)

평소에 말을 함부로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형제가 있었는데 한번은 회합 중에 한 개인을 집중적으로 비난하며 할 소리 안 할 소리를 해서 주위의 사람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회합이 끝나고 어렵게 조용한 자리를 마련해서 그에게 말을 할 때는 남도 배려해야 되지 않느냐는 내용의 말을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형제가 대뜸 하는 말이 ‘내가 내 입을 가지고 말도 마음대로 못해요?’하는 거예요. 그 순간 떠오르는 지혜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누구에게도 청하지 않는 충고를 하지 말라.’

이 세상에는 ‘말하는 자유’를 내세워 남의 입장이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드는, 농담, 험담, 중상모략 등을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펼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사순절을 지내며 모든 이가 나를 이해해야 한다는 착각, 나에 대해서 좋게 말해야 한다는 오만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편이 아닌 반대자를 인정하시며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고 하신 말씀을 새겨야 하겠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315.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마태 5,19)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이는 복음을 예표하고 있던 구약의 율법이, 이제 복음 안에서 완성(실행, 성취, 채워짐)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에 쓰인 당신에 관한 말씀들이 일어나도록 하심으로써,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셨습니다. 곧 온몸으로 율법과 예언을 실행하셨습니다. 진정,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한 19,30)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실행하는 이의 복됨을 말씀하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마태 5,19)
 
이는 ‘먼저’ 계명을 ‘지키는 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안 것을 말로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 지킴으로써 계명을 ‘실행’하는 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렇게 실행으로 가르치는 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 그레고리우스는 “설교자에게는 법이 하나 있는데, 설교하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는 법이다” 말한 바 있습니다.
 
유명한 설교가였던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도 말합니다.
 
“가르치는 바를 행동으로 파괴시킨다면, 사람이 법을 안다고 자랑하는 것이 쓸모없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지켜질 때라야, 비로소 그 행위 안에서 실현됩니다. 곧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 안에서 실현됩니다. 그러니 주님의 계명을 안 이는 먼저 계명을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행하는 이라야 진정 가르치는 이가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한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계명을 주신 분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사랑이 율법을 완성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편지에서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1요한 2,5)

그래서 그는 <복음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

하오니, 주님!
제가 말씀의 계명을 스스로 지킴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이가 되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행실로 사랑하게 하소서!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비록 작은 것 하나에라도 깊은 사랑을 담고 행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마태 5,19)
 
주님!
제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 제 행동의 뿌리가 되게 하소서!
제가 행동으로 가르치게 하시고,
가르친 바를 행동으로 파괴하지 않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행실로 사랑하게 하시고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게 하소서.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사랑은 율법의 완성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기상하여 카톡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방금 12:30분 따끈따끈한 소식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어제 하루 100% 순수한 사랑을 실천한 형제의 소식이었습니다. 참으로 언제나 한결같이 하루하루 구도자처럼 충실히 살아가는 언젠가 소개했던 치과의사 형제입니다. 

 

“오늘은 야간진료(매주 화요일) 날이라 좀 늦게까지 진료했네요. 멀리서 퇴근하고 와주시는 환자분들이 감사했고, 열심히 일해주는 직원들이 또 고마웠습니다. 오늘도 ‘자비의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 하루였네요.ㅎ”

 

각자의 일터가 자비의 배움터, 자비의 학교입니다. 참 아름다운 삶입니다. 사랑의 아름다움입니다. 마음의 순수, 사랑의 마음입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좋은 글귀입니다. 

 

“비밀스런 능력에 관심을 갖는 인간은 신의 임재속에 살 수 없게 된다. 그런 현상들이 생겨나더라도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마라. 비밀스런 능력을 획득하기는 쉽지만, 마음의 순수에 이르기는 몹시 힘들다. 순수함을 소유하는 자는 종교의 진정한 모습을 안다.”

 

어제는 코이노니아 자매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10명 참석으로 출석률 100%였습니다. 대부분 할머니 연세쯤 나이지만 고운 외모에 배우려는 열정이 참 대단한 분들입니다. ‘자비의 학교’ 수도원에 매달 1회 하루 피정겸 공부하러 오는 이분들에게 강론중 드린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제 저는 그리움도, 외로움도, 기다림도 없습니다. 이런 주제의 시詩도 짓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오늘 지금 여기서 천국의 충만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도 그렇고 일단 이렇게 고백하고 나면 그대로 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잊지 못할 세 예화도 잠시 나누고 싶습니다. 매달 모임시 나눠드리는 강론집이 거의 18년만에 중단되었습니다. 매월 강론집을 편집 제본해 주셨던 분이 계속 병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시 해 준다는 고마운 분도 있었지만 당분간은 쉬고 싶습니다. 그동안 무려 25년 오랜동안 수시로 고백성사도 보며 수고해준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 싶었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런 경우가 생각났습니다. 오랜동안 충실히 내조해주던 부인이 세상을 떠났는데 즉시 재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는 결코 죽은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아마도 제 경우라면 끝까지 혼자 살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약적인 비교인지는 몰라도 저에겐 진실입니다. 당분간, 아니 더 이상 제본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오랜동안 수고해준 분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두고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채우지 않고 그냥 빈자리로 남겨 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순수한 사랑의 발로입니다. 이런면에서 저는 철저한 정통 보수주의자요 진국(거짓이 없이 참된 사람)이란 말을 듣기도 합니다. 지난밤에도 불암사 선재善哉라는 군자같은 개가 수도원에서 노숙했고 사진을 찍어 수도형제들과 나눴습니다. 불교 사찰의 개가 천주교 수도원이 좋아 자주 찾다가 어제는 절에 가는 것도 잊고 주님의 집 수도원 뜨락에서 밤새 노숙했습니다. 저와 같은 열정으로 주님의 집을 사랑하는 수도자라면 정말 순수한 사랑의 절정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재로부터 배우는 주님의 집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로마 유학중인 수도형제로부터 애로사항이 가득담긴 편지가 공동체에 도착했고 수도형제와 나눈 유머스런 대화가 생각납니다. 

 

“학위 하든 못하든 겸손 공부 하나 잘 하면됩니다. 박사중의 박사가 겸손 박사입니다.”

“그래요. 겸손을 배우러 로마에 간 것 같습니다.”

 

겸손한 사랑, 순수한 마음, 순수한 사랑, 다 통합니다. 참으로 사랑이 순수하고 깊어질수록 사랑의 표현인 어느 율법이나 계명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안에 숨어있다는 말도 있고, 훌륭한 지도자는 디테일이 강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좋은 지도자는 어느 작은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 말씀이 참 강렬한 느낌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율법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듯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율법을, 계명을 사랑한 예수님의 각오와 결의가 깊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결코 소홀히 취급할 율법이나 계명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작고 큰 것으로 나눌수 있는 율법이, 계명이 아니라 한결같이 소중히 여겨할 모든 율법이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하여 예수님이 결코 율법지상주의자는 아닙니다. 극진하고 순수한 사랑일 때는 저절로 어느 계명 하나 다치거나 소홀히 하지 않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이런 작은 계명에 충실한 사람이 천국의 큰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불가의 삼학(三學), 계정혜(戒定慧)의 순서도 적절하고 유익합니다. 철저한 계율 준수의 수련이, 훈련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계율을 사랑을 다해 훈련하고 준수할 때 큰사랑, 순수한 사랑에 도달하게 됩니다. 계율(戒律)준수의 바탕이 없으면 깊은 마음의 안정(安定)과 관상의 지혜(智慧)도 불가합니다. 우리의 수행생활에도 그대로 통하는 원리입니다. 

 

결론하여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참으로 순수하고 깊은 사랑일 때 모든 율법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애당초 모든 율법이나 계명이 우리 위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율법을, 계명을 사랑하고 지킵니다. 이때 살아계신 사랑의 주님도 만납니다. 신명기의 모세처럼 참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실로 모든 규정과 법규, 율법과 계명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마음을 다해 지킬 것입니다. 모세의 충고가 마음 깊이 와닿습니다.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위대한 민족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흡사 예수님 말씀처럼, 구구절절 심금을 울립니다. 모든 계명들을 충실히 준수하는 훈련과 실천에 진인사대천명의 노력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지칠줄 모르는 수련과 수행의 원천이 바로 한결같은 열렬한 주님 사랑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의 하늘 나라에서 참으로 큰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게 합니다. 아멘.

 

 


[3/16(목) 사순 제3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교회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권력의 편에 서서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했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사순시기는 거짓과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사순시기는 왜곡과 날조를 밝혀내고 진실과 자유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조재형 신부 강론)

 

2. 사순절을 지내며 모든 이가 나를 이해해야 한다는 착각, 나에 대해서 좋게 말해야 한다는 오만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정인준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마태 5,19)
 
주님!
제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 제 행동의 뿌리가 되게 하소서!
제가 행동으로 가르치게 하시고,
가르친 바를 행동으로 파괴하지 않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행실로 사랑하게 하시고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게 하소서.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수철 신부)

 

[3/16(목)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제 82일 기도]

 

하느님!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게 하소서.

매사 언제 어디서나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3월16일(목) 5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