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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3월 30일 목요일[(자) 사순 제5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3월 30일 목요일[(자) 사순 제5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히브 9,15 참조
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유산을 받도록 빌어 주시네.

본기도

주님,
주님의 자비를 바라는 저희를 자애로이 보호하시어
더러운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한결같이 거룩하게 살아 영원한 상속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7,3-9
그 무렵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4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5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6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7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8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5(104),4-5.6-7.8-9(◎ 8ㄱ)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 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복음 환호송

시편 95(94),7.8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51-59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52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53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57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5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59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굽어보시어
이 제사가 저희의 회개와 온 세상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수난 감사송 1 : 십자가의 힘>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성자의 수난으로
온 세상이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미하게 되었으니
십자가의 무궁한 힘으로
성자의 권능과 세상 심판이 드러났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나이다.

영성체송

로마 8,32 참조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당신 친아드님마저 아낌없이 내어 주셨으니,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자비를 간청하오니
현세에서 저희를 길러 주는 이 성사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이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물리치고
나날이 주님 계명을 지키며 더욱더 큰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예전에 한약을 달일 때 어른들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약을 달이는 것은 정성이 중요하다.” 약효가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약을 달이는 사람의 정성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한약을 먹을 때도 몸가짐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한약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 효과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한약을 먹으면서 먹지 않아야 할 음식도 정해 주었습니다. 한약과 궁합이 맞지 않으면 약효가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약은 분명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약을 대하는 사람의 정성이 함께하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향에서는 큰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혈하는 여인의 갈망을 칭찬하셨습니다. 여인의 믿음이 여인을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나병환자도, 중풍병자도 치유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말씀을 들으면서 성장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제가 되면서 말씀을 선포한 적은 많은데 정작 말씀을 듣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미국에온지 4년이 되었는데 피정은 3년 전에 한번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서 토론토 신문홍보를 하는 길에 꽃동네 피정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티에서 11년째 선교하는 신부님의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백번 묻는 것은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고 합니다. 백번 보는 것은 한번 행하는 것만 못하다고 합니다. 아이티에서 11년을 살고 있는 신부님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걸인을 데려오고, 먹여주고, 병자성사주고, 세상을 떠나면 장례를 치러주는 일이 일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갱단에게 납치를 당할 뻔도 하였고, 총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합니다. 선교에 대한 이상과 열정은 아이티에 도착하면서 식어버렸다고 합니다. 사회는 무질서하고, 아픈 사람은 너무 많고, 도와 줄 수 있는 힘은 없고, 매일 무력함을 느껴야 했다고 합니다.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하고, 대소변을 받아야 하고, 욕창에 벌래가 있는 몸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악취가 진동하는 시신을 염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라면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의 삶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신부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왔던 모세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약속의 땅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광야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청하니 매일 아침 만나가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드리면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같은 만나를 먹으니 그것이 지겨웠습니다.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가 생각났습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청하니 하느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드리면서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메추라기도 매일 먹으니 지겨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매일 은총을 내려주셨는데 그 은총에 취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총을 지겨워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구호물품으로 오는 쌀밥이 지겨웠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매일 걸인을 보내주시고, 아픈 사람을 보내 주셨습니다. 생각하면 그것이 은총이었습니다. 신부님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도 그 은총을 지겨워했다고 합니다. 이만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직도 신부님께 은총을 주신다고 합니다.

 

동창 신부님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동창 신부님들보다 영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동창 신부님들보다 언변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하느님께서는 신부님이 좋은 사제 되라고 은총을 매일 주신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어머니는 전화하시면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합니다. 아이티의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이제는 아시기 때문입니다. 신부님도 이제 피정이 끝나면 다시 아이티로 돌아가야 하는데 솔직히 두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에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곳에 300여명의 꽃동네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피정에 함께한 교우들 모두 신부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신부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신부님께 해당되는 말씀이었습니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요한 8,51-59

 

우리 역시 아브라함처럼 세례를 통해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엄마가 제일 싫어할 때는 언제인가? 라는 질문에 여러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애써 저녁상 차려놓았는데, 아무리 오라 오라 해도 식구들이 안 올 때, 속옷이나 양말 뒤집힌 채

세탁기에 넣을 때, 그리고 이런 대답도 있더군요.

애써 목돈 주고 개명(改名)했는데, 남편이 촌스러운 옛날 이름 떡 하니 부를 때...

 

이름을 바꾸는 전통은 교회 역사 안에 종종 있어 왔습니다.

회심을 기점으로 사울은 바오로로 개명했습니다.

아브람의 부인 사라이 역시 사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베르골료 추기경님 역시 266대 교황님으로 선출되면서 프란치스코라는 새 이름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세례 성사를 통해 또 다른 이름이 추가 되었습니다.

 

고대인들에게 이름은 한 인간 존재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그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운명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이제 그를 당신 구원 계획안에 큰 역할을 부여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과거의 삶과 결별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굳은 결심이요, 종래와는 철저하게도 차별화된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강력한 표시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친히 선택하시고, 큰 민족의 아버지로 세우겠다는 약속의 징표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십니다.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창세기 17장 5절)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은 힘차고 장엄합니다.

그러나 좀 웃기고 신뢰가 안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였으며, 아내 사라 역시 이미 가임이 불가능한 연세였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주시려면 진작 주시지, 이 늙은 나이에 자식을 약속하시는 하느님이 야속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어이없기도 한 나머지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라 역시 한참 웃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된 하느님의 약속에 마침내 아브라함은 믿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지만, 하느님이 거듭 말씀하시니 마음을 새롭게 하여 힘차게 응답합니다. “네! 믿습니다. 주님!”

 

기이하게도 인생을 정리할 나이 100세에 아들 이사악을 얻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인간적 시각으로 볼 때, 가혹함, 기이함은 계속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다시 아브라함을 당혹함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정든 땅을 떠나라고 요청하십니다. 자신의 미래이자 전부인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앞뒤 따지지 않는 즉각적이고 절대적인 순명으로 하느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습니다.

그의 자손은 대대로 이어집니다.

그는 전 세계 모든 신앙인들의 모델로 자리매김합니다.

 

우리 역시 아브라함처럼 세례를 통해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베드로, 요한, 마리아, 루치아...

 

우리들의 새로운 이름은 과거의 낡은 삶과 결별하고 주님 안에 새 삶을 시작하겠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들의 세례명은 주님의 제자요 자녀로서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명하겠다는 표현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329.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이는 이미 믿는 이들에게, 당신의 제자가 되는 길을 알려주시며, 당신의 제자로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가 되면, 진리를 깨달을 것이고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지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을 넘어서, 나아가 그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에로의 초대임가 동시에 진리에로 그리고 자유에로의 초대입니다. 그리고 이에 응답의 첫걸음은 당신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지탄하여 말씀하십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요한 8,37)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당신 말씀이 있을 자리를 마련할 수 이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 당신 말씀이 머무르는 보금자리를 마련해 드려야 할 일입니다.
 
‘머무른다.’는 것은 <요한복음> 15장에서 말한 대로,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듯이 말씀이신 그분께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그분 영의 수액을 받아먹듯이 그분의 생명을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단지 상대 안에 머무르는 단순한 머무름이 아니라 역동적인 상호교환, 곧 서로에게 건너가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성령의 역동적인 활동(extasis와 kenosis)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이는 본질적으로 서로 향하여 있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향하여 있으면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머무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머무르는 자리요, 궁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 말씀이 우리의 삶 안에서 지켜지고 실현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당신의 참된 제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같은 복음서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요한 16,13)

그렇습니다. 말씀과 우리가 이렇게 상호내주하면 진리를 깨달을 것입니다. 진리이신 말씀이 우리의 삶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곧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말씀이신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의 노예이고”(요한 8,34), 진리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다 진리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저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한 8,36).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한 8,36)
 
주님!
제 안에, 당신 말씀이 있을 자리를 마련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말씀이 머무르는 보금자리가 되게 하소서!
당신 말씀이, 제 삶 안에서 지켜지고 실현되게 하소서!

당신은 진리이오니, 저를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자유의 여정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로, 그리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정치인, 여행가로 널리 알려진 ‘니코스 카찬차키스(1883-1957)’의 묘비명입니다. 그의 ‘영혼의 자서전’은 제가 평생 애독하는 책입니다.

 

“자유를 향한 머나 먼 여정”

 

최초 흑인으로 남아프리카 대통령을 역임했던 위대한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으로 고 김대중 대통령이 번역했고, 역시 얼마전 감동깊게 읽었던 책입니다. 자유입니다. 인간은 자유입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며 자유로워야 비로서 인간입니다. 참으로 자유로울 때 행복합니다. 과연 참으로 자유롭습니까? 역시 우리 삶은 ‘자유의 여정’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오늘 강론 제목이 “자유의 여정-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마디가 가슴 떨리게 합니다.

 

불암산 기슭 수도원에서 만35년 정주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자유롭고 행복한가?” 자문한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지녔어도 자유가 없다면 행복하다 할 수 없습니다. 예전 신자분과 주고 받은 대화가 생각납니다.

 

“여기 수도원이 천국입니다. 행복하시겠습니다.”

“자연환경이 좋아 천국이 아니라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주님과의 관계가, 형제들과의 관계가 전혀 무관한 남남의 불편한 관계라면 거기가 지옥일 것입니다. 날로 주님과의 우정, 형제들과의 우정이 깊어져 자유로울 때 거기가 천국입니다.”

 

또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여기 수도원의 늘 단조로운 일상에서 무슨 맛으로, 무슨 재미로, 무슨 기쁨으로 삽니까?”

“하느님 맛, 기도 맛, 말씀 맛으로 삽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한 진리를 깨달아 주님을 아는 맛으로 삽니다.”

 

지금 물어도 똑같은 대답일 것입니다. 참으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때 늘 새 하늘과 새 땅, 새날의 자유로운 삶입니다. 끊임없이 바꿔야 할 것은 외적환경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마음이 늘 새로우면 늘 새롭고 놀랍고 좋고 자유로운 만남일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유의 내적 여정의 삶일 때 행복한 정주의 삶입니다. 

 

진리가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과의 관계가 날로 깊어지는 예닮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일 때 내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삶입니다. 이런 자유는 다음 고백에서 처럼 순전히 주님의 선물입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주님을 만나니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이런 참된 자유가 선물임은 오늘 복음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 두 대목이 참 은혜롭습니다 참자유의 소재를 밝힙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말씀이자 진리이신 예수님과의 깊은 친교와 더불어 날로 자유로워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자유의 여정은 진리 탐구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 진리이신 예수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예닮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자유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날마다의 제 강론 쓰기입니다. 참으로 깨달음을 통해 자유롭기위해, 살기위해,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날마다 쓰는 강론이요, 살아 있는 그날까지 "미사드리는 것", “걷는 것”, “강론 쓰는 것” 셋만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이신 영원한 도반 예수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우정관계가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이런 주님과의 끊임없는 만남을 통해 참으로 서로를 알아감이 없이는 참자유는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평생을 살아도 이런 진리이신 아드님을 만나지 못해 무지와 허무, 세상의 종이 되어 참자유의 맛도 누리지 못하고 산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망하겠는지요? 주님의 진리 맛, 말씀 맛이 아니곤 영혼의 목마름, 배고픔은 결코 해결되지 못할 것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주님을 만날 때, 주님과 함께 할 때 참으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다니엘서의 불가마 속에서 열렬히 하느님께 찬미를 바치는 세 청년이 이의 모범입니다. 불타는 화덕속에서도 열렬히 하느님을 찬미하는 모습이 그대로 진리로 자유로워진 공동체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다니엘서는 세 청년의 아름다운 찬미가가 많이 생략되었습니다만 우리 수도자들은 주일이나 축일 때는 이 세 청년이 바친 찬미가를 아침성무일도시 바칩니다. 이 세 청년처럼 모두를 찬미로 바꿀 때 운명도 바뀌고 참으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내 아픔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병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절망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불행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시련과 고통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찬미로 바칠 대상은 끝이 없습니다. 찬미에 기겁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하면 사탄은 멀리 달아납니다. 하느님 찬미가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바꿉니다. 새삼 우리가 평생 날마다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 은총이 공동체 형제들을 자유롭게 하는데 얼마나 결정적 도움을 주는지 깨닫습니다. 말그대로 찬미의 훈련, 자유의 훈련 시간이 공동전례기도 시간입니다.

 

제1독서 다니엘서의 불가마 속에는 세 청년만 있었던게 아니라 주님의 천사도 있었듯이, 주님께서도 늘 우리의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함께 하시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하십니다. 

 

바로 끊임없이 바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 기도 은총이 불가마 연옥같은 세상에서, 공동체에서 크게 다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게 합니다. 마침내 네부카드네르 임금도 세 청년을 불가마 속에서 살려내신 하느님께 찬미의 고백을 바칩니다. 불가마 속의 이스라엘 세 청년이야 말로 찬미공동체의 모범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시어, 자기들의 하느님을 신뢰하여 몸을 바치면서까지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의 하느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구해내셨다.”

 

찬미와 감사의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주님의 종들입니다. 날마다의 주님의 이 거룩한 찬미와 감사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곤경에서 구해 내시어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아멘.


[3/30(목) 사순 제5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조재형 신부)

 

2. 우리들의 새로운 이름은 과거의 낡은 삶과 결별하고 주님 안에 새 삶을 시작하겠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들의 세례명은 주님의 제자요 자녀로서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명하겠다는 표현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한 8,36)
 
주님!
제 안에, 당신 말씀이 있을 자리를 마련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말씀이 머무르는 보금자리가 되게 하소서!
당신 말씀이, 제 삶 안에서 지켜지고 실현되게 하소서!

당신은 진리이오니, 저를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로, 그리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정치인, 여행가로 널리 알려진 ‘니코스 카찬차키스(1883-1957)’의 묘비명입니다. 그의 ‘영혼의 자서전’은 제가 평생 애독하는 책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주님의 종들입니다.(이수철 신부)

 

[3/30(목)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제 96일 기도]

 

하느님!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아멘.

 

- 2023년 3월30일(목) 4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