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4월 6일 목요일[(자) 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백]]/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으니,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토록 받으소서. 아멘.
<대영광송>
본기도
성령의 도유로 성자를 주님이신 그리스도로 세우셨으니
저희도 함께 축성하시어 현세에서 구원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61,1-3ㄹ.6ㄱㄴ.8ㄷ-9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2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이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맥 풀린 넋 대신 축제의 옷을 주게 하셨다.
6 너희는 ‘주님의 사제들’이라 불리고 ‘우리 하느님의 시종들’이라 일컬어지리라.
8 나는 그들에게 성실히 보상해 주고 그들과 영원한 계약을 맺어 주리라.
9 그들의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그들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 나는 나의 종 다윗을 찾아내어,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노라. 내 손이 그를 붙잡아 주고, 내 팔도 그를 굳세게 하리라. ◎
○ 내 진실 내 자애가 그와 함께 있으니, 내 이름으로 그의 뿔이 높이 들리리라.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
제2독서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1,5-8
5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6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6-21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제들의 서약 갱신
<신부들의 응답이 끝나고, 주교가 교우들을 바라보고 말할 때>
╋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 기도합시다.
◎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또한 이 주교를 위해서도 …… 기도하여 주십시오.
◎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주님, …… 이끌어 주소서.
◎ 아멘.
<신경과 보편 지향 기도는 하지 않는다.>
성유와 봉헌 행렬 때
구세주께
◎ 구세주께 정성들여 찬미찬송 노래하세.
○ 옹골차게 익은열매 짜서얻은 기름이라.
우리모두 엎드려서 구세주께 봉헌하세. ◎
○ 하늘나라 임금님은 올리브기름 축성하여
악령들을 물리치는 창검되게 하옵소서. ◎
○ 성유발라 우리모두 다시나고 새로워져
상처받은 인간품위 영예롭게 되나이다. ◎
○ 세례수로 마음씻어 죄악일랑 물리치고
이마위에 성유발라 천상은사 받으리라. ◎
○ 동정녀께 나신예수 하느님의 아드님은
성유로써 비추시어 영원죽음 없애소서. ◎
○ 영원무궁 길이길이 이날축제 기념하세.
오랜세월 지나가도 항상다시 기억하세. ◎
<행렬이 제대에 이르면 주교는 빵과 포도주와 물을 받아 놓고, 성유들을 받아 부제 봉사자에게 주어 마련된 상에 놓게 한다.>
예물기도
이 제사의 힘으로 저희가 옛 악습을 끊어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외아드님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어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대사제로 세우시고
오묘한 섭리로 성직을 마련하시어
교회 안에 단일한 사제직이 보존되게 하셨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소유가 된 백성을 임금의 사제직으로 돌보시고
형제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뽑으시어
안수로 당신의 거룩한 직무에 참여하게 하셨나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류 구원의 제사를 새롭게 하며
주님의 자녀들과 파스카 잔치를 거행하고
거룩한 백성을 사랑으로 이끌며
말씀으로 기르고 성사로 거룩하게 하나이다.
또한 그들은 형제들의 구원과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놓으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애써 닮고
끊임없이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보여 주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나이다.
병자 성유 축복
╋ 모든 위로의 샘이신 하느님 아버지, ……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
영성체송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의 성사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비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예비 신자 성유 축복
╋ 하느님, 하느님의 백성에게 …… 비나이다.
◎ 아멘.
축성 성유의 축성
1. <올리브 기름을 사용할 때>
╋ 하느님, 영신의 모든 성장과 …… 비나이다.
◎ 아멘.
2. <올리브 기름이 아닌 다른 기름을 사용할 때>
╋ 성사를 세우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 되시리이다.
◎ 아멘.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교회는 오늘부터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합니다. 성삼일은 거룩한 삼일이라는 뜻입니다. 성 목요일은 ‘주님의 만찬미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이르자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성 목요일 주님의 만찬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는 성체성사의 의미를 깊이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듯이 우리들 또한 이웃의 아픔에 함께 하도록 다짐합니다. 이웃의 고통에 함께 하도록 다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도록 다짐합니다. 성 금요일에는 ‘십자가의 길과 십자가 경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배반으로 잡혀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의 길에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베로니카는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습니다. 성 금요일에는 우리의 잘못과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며, 우리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려야 합니다. 성 토요일에는 ‘부활 성야 미사’가 있습니다.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예수님,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예수님,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부활을 희망으로 기다립니다.
‘파스카’는 성삼일의 정점입니다. 파스카는 ‘대신한다, 대속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파스카는 ‘지나가다. 건너가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구약의 세 가지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이사악을 대신할 ‘양’을 제물로 주셨습니다. 그 양이 아들 이사악의 죽음을 대신한 속죄양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드러나는 파스카입니다. 둘째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가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에 있는 모든 맏배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집 앞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재앙은 양의 피를 바른 문설주는 지나갔습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드러나는 파스카입니다. 셋째는 홍해바다이야기입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의 앞에는 홍해바다가 있었습니다. 뒤에는 파라오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사면초가의 상황이었습니다. 앞으로 가면 바다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뒤로 가면 이집트의 군대에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홍해바다를 마른 땅으로 갈라 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안전하게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드러나는 파스카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파스카’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은 신약의 파스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로 나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파스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와 산 이들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파스카입니다. 오늘은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되는 성목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말과 행동이 이 시대의 ‘파스카’가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가해 주님 만찬 성목요일
루카 4,16-21
그 어떤 유언보다도 설득력 있고 값진 유언, 세족례(洗足禮)!
최후의 만찬! 그 광경이 화폭에 담겨 여기저기 볼 수 있기에 우리 눈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 생각만 해도 섬뜩하고 살 떨리는 표현입니다.
이제 이 식사가 끝나면 더 이상 지상에서는 식사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저녁 만찬이 끝나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끔찍한 고통과 참혹한 죽음뿐입니다.
과거 사형이 집행되던 시절, 최고수들에게 ‘그날’이 확정되면, 교도소장이며 간수들이며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바라보는 눈빛에 뭔가 안쓰러움이 느껴지고, 갑자기 친절해지고, 특식도 제공해 주고...일종의 특별 대우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최고수들은 직감합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는 것을.
어찌 보면 예수님을 위해 차려진 최후의 만찬도 일종의 특식이었습니다.
이 시간이 끝나면 이제 남아있는 것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골고타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들이셨지만, 동시에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지니셨던 분,
철저하게도 한 인간 존재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초조와 번민이 밀물처럼 밀려왔을 것입니다.
그 극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유혹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끝내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명합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혹독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스승님께서 그토록 엄청난 고통을 겪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모습을 한심 그 자체입니다.
아직도 돌아가는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정 책임자였던 유다 이스카리옷을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해 골몰하고 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지키지도 못할 헛맹세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예수님께서는 놀랄만한 광경을 연출하십니다. 이른바 세족례였습니다.
세족(洗足)은 무엇입니까?
발을 씻어주는 행위입니다.
통상 세족은 종이 주인에게, 신하가 임금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해드리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왕 중의 왕이요, 인류 만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신하요 제자, 종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행하신 세족례는 그 어떤 유언보다도 설득력 있고 값진 유언이었습니다.
“주님이요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복음 13장 14~15절)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405. 성주간 수요일.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요한 13,38)
우리는 <성삼일>을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절망과 어둠이 더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빛으로부터 떠나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간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밤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배반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의 밤이요, 또 하나는 베드로의 밤입니다. 유다의 밤은 캄캄한 어둠이 짙어져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닭이 울기 전, 새벽이 밝아져오는 밤입니다.
유다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이 제자들을 덮치자,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놓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요한 13,21)
사실, 예수님께서는 배반하는 제자를 마지막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빵을 적셔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빵을 적셔서 주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었습니다. 당신을 배반할 제자에게 끝까지 베푸는 충실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랑을 등지고서 밤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면밀히 계획한 바를 어둠 속에서 행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요한 13,38)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할 의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순간에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닭이 울면, 어둠은 밝아질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넘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넘어질 때는 가장 약할 때가 아니라, 가장 강할 때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해질 것입니다(2고린12,10).
그렇습니다. 유다의 밤은 어둠과 악으로부터오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약함과 과신으로부터오는 밤입니다. 또한 유다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도 더 짙은 어둠으로 빠져들어 멸망으로 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는 어둠을 헤치고 빛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베드로같이, 유다같이 곧잘 넘어집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넘어지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일어서는 존재인 것은 아닙니다. 혹 넘어진 사실을 깨달아 알고 뉘우치고 성사를 본다고 해도, 일어선 사람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넘어진 채로 넘어진 자신을 본 것일 뿐, 비록 용서는 받았다할지라도 일어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일어서서 넘어졌던 자신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빛속으로 건너와서 어둠을 바라보아야 할 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일어선 자만이 빛나는 새벽을 만날 것이요, 일어선 자만이 빛 속에 들 것입니다. 먼저 베풀어진 그분의 사랑을 만난 자만이 그분의 빛 속을 걸을 것입니다.
하오니, 빛이신 주님! 저를 비추소서! 제가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오늘 제가 비록 넘어지더라도 일어나 빛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요한 13,38)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소서.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주소서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아 빛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배움의 여정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제자들이다-
한밤중 밤1시 기상하여 숙소문을 열고 나서니 반가운 봄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온갖 파스카의 봄꽃들이 만발한데 봄비가 내리면 이어 신록의 기쁨으로 빛나는 파스카의 계절, 부활시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봄비하면 즉시 떠오르는, 참 자주 인용했던 “내 딸아이 하나 있다면”이란 짧은 자작시입니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
하늘 은총
내 딸 아이 하나 있다면
이름은
무조건 봄비로 하겠다”-2005.4
무려 18년전 시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같은 심정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봄이다”라는 24년전에 쓴 시도 생각납니다.
“예수님은 봄이다
봄은 사랑이다
봄은 생명이다
봄이 입맞춘 자리마다
환한 꽃들
피어나고
봄의 숨결 닿은 자리마다
푸른 싹들
돋아난다
예수님은 봄이다
봄은 사랑이다
봄은 생명이다”-1999.4
주님께서 선물하신 파스카의 봄 역시 저에겐 스승입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하는 삶의 스승들입니다. 선물임과 동시에 스승입니다. 눈이 닫혀 스승이 없다 탄식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가장 큰 스승은 여기 수도공동체입니다” 고백이 지금도 여전히 저에겐 유효합니다.
나이 불문하고 배움에는 위아래가 없습니다. 배움의 자세에 침묵과 경청, 겸손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사실 겸손히 마음을 열어야 배웁니다. 평생 배움터의 인생학교에서 경청과 겸손은 필수입니다. 며칠전 컴퓨터 복구작업에 성공한 안토니오 후배 수사도 저에겐 스승이었고 공동대화란에 올린 격찬의 메시지와 답신이 생각납니다.
-“안토니오 수사님, 컴퓨터에 도사이자 천재입니다! 제 컴퓨터 복구에 성공했고 많이 감사했습니다.”
“컴맹입니다. 강론때 이야기하시는 거는 아니죠? 제 이야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 강론을 쓰시는 프란치스코 신부님을 향한 하느님의 배려이십니다.”-
주고 받은 덕담에 행복했고, 수도공동체 스승에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부 성 베네딕도도 배움에 대해 역설하십니다. 사실 배움의 여정에 우리는 언제나 초보자일뿐입니다. 평생 훈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만 평생 배움도 얼마나 중요한지요! 기도도 사랑도 겸손도 섬김도...도대체 모든 수행이 훈련이자 배움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11,29)
친히 제자들인 우리에게 주시는 스승 예수님 말씀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설립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설립하는데 거칠고 힘든 것은 아무것도 제정하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성규,머리45-46)
우리가 주님의 학원에서 섬김을 배워야 할 평생 스승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다음 복음 말씀이 이를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마태23,8.10)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다? 평생 보고 배울 스승이자 선생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기에다 스승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면 당신의 제자이자 친구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스승이자 친구인 예수님! 얼마나 멋집니까? 얼마나 행복한 우리들입니까? 제 좌우명 기도중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대목도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의 전사로,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그러니 주님의 집 공동체는 전우애, 학우애, 형제애가 조화된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제대가 없는 평생 현역의 영적 전우들이요, 졸업이 없는 평생 학우들이요 평생 함께 살아가는 형제들입니다. 이 중 오늘 강조되는 부분이 주님의 학인이, 제자가 되어 배우는 신분입니다.
평생 배움의 여정중인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도대체 보고 배울 것은 끝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사랑도 믿음도 희망도 평화도 기쁨도 감사도 섬김도 겸손도 침묵도 경청도 기도도 모두가 배워야 하는 수행들입니다. 아무리 배워도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새삼 평생학인의 배움의 자세에 경청과 겸손, 샘솟는 열정과 순수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회개하는 마음이 됩니다. 이런 이들이 참 매력적인 아름다운 참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대하면 그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이사야서 주님의 종이 그 모범이요 우리는 그에게서 예수님을 봅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다.”
이런 경청과 겸손의 주님의 종이, 주님의 제자가 되어 살 때 저절로 내적 확신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그대로 예수님의 모습이요 우리가 소망하는 주님 제자로서의 참으로 자존감 높은 당당함이요 겸손함입니다. 이래야 열등감이나 우월감에서 벗어나 자유롭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종으로서 한결같이 충실하셨기에 만인의 스승이 되신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종으로서 빛나는 예수님의 의연함과 당당함이 이를 입증합니다.
-예수님은 파스카 식탁에서 제자됨의 신원을 다시 확인시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며 전전긍긍 저마다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예수님의 결정적 말씀에 이어 예수님과 당신을 팔아넘길 배반자 유다와의 대화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배반자 유다는 불안에 가득한 마음으로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묻자 예수님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화두같은 대답을 주십니다.-
이때라도 회개했어야 하는데 유다는 그 기회를 놓쳤고 결코 자기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평소 제자로서 경청과 겸손, 순종의 훈련과 배움이 참으로 부족했기에 이런 불행을 자초한 유다가 주님을 추종하는 우리 제자들에게는 시공을 초월하여 반면교사가 됩니다. 누구나의 가능성이 배반자 유다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제자직에 한결같이 충실할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도움을 청합시다. 아멘.
[4/6(목) 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되새김 구절]
1. 성 목요일 주님의 만찬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는 성체성사의 의미를 깊이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듯이 우리들 또한 이웃의 아픔에 함께 하도록 다짐합니다. 이웃의 고통에 함께 하도록 다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도록 다짐합니다. (조재형 신부)
2. 죽음을 목전에 두고 행하신 세족례는 그 어떤 유언보다도 설득력 있고 값진 유언이었습니다.
“주님이요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복음 13장 14~15절)(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요한 13,38)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소서.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주소서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아 빛을 밝히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그대로 예수님의 모습이요 우리가 소망하는 주님 제자로서의 참으로 자존감 높은 당당함이요 겸손함입니다. 이래야 열등감이나 우월감에서 벗어나 자유롭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종으로서 한결같이 충실하셨기에 만인의 스승이 되신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이수철 신부)
[4/6(목) 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제 103일 기도]
하느님!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의롭다 하시며...
함께 동행하시니...감사합니다.
늘상 기쁘게 즐겁게 행복하게...
이웃과 어우러져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하느님 모습과 향기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4월6일(목) 6시2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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