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4월 9일 주일[(백) 주님 부활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이제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맙시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벅찬 기쁨을 노래합시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입당송
저는 다시 살아나, 여전히 당신 안에 있나이다. 알렐루야. 제 위에 당신 손을 얹어 주셨나이다. 알렐루야. 당신 지혜는 놀라운 일 이루셨나이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대영광송>
<또는>
루카 24,34; 묵시 1,6 참조
주님이 참으로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주님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토록 받으소서. 알렐루야,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오늘 외아드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저희가 주님의 부활 대축제를 지내며
성령의 힘으로 새로워지고 생명의 빛을 받아 부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0,34ㄱ.37ㄴ-43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37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5,6ㄴ-8
형제 여러분, 6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속가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 우리의 파스카 양으로 희생되셨으니 주님 안에서 축제를 지내세.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또는>
<예수님께서는 되살아나셨고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10
1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
3 그의 모습은 번개 같고 옷은 눈처럼 희었다.
4 무덤을 경비하던 자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
5 그때에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6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
7 그러니 서둘러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서 이렇게 일러라.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리는 말이다.”
8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의 주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교회가 온갖 죄와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알리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 이 나라 공직자들을 지켜 주시어, 권력과 재물의 유혹을 이겨 내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참된 봉사자로서 일할 수 있게 하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의 주님,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어, 그들이 수난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고통을 잘 견디어 내게 하시고,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샘이신 주님, 저희 지역 사회에 강복하시어, 저희가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소통하게 하시고, 일치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예물기도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그리스도 우리의 파스카 양으로 희생되셨으니, 순결과 진실의 누룩 없는 빵으로 축제를 지내세. 알렐루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의 자애로 교회를 인자로이 보호하시어
저희가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져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의 부활 축하드립니다. 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축하할까요?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주님께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일까요? 제자들에게는 주님의 부활은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용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살아서도 영원히 살고, 죽더라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좋은 추억과 기억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주님의 부활은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으로 치유된 사람들입니다. 중풍병자, 나병환자, 소경, 앉은뱅이, 귀머거리, 마귀 들렸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기쁨입니다. 세리, 창녀, 이방인들에게도 예수님의 부활은 기쁨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 죽더라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성모님에게도 기쁨입니다. 죽었던 아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던 막달라 마리아에게도 기쁨입니다. 다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주님의 부활은 놀라움이며, 기쁨입니다. 믿을 수 없는 꿈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023년 부활입니다. 부활은 축하해야 할 사건이고, 기뻐해야 할 사건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희랍어로 부활은 ‘일어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일어나야 할까요?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은 죽음을 넘어서 있을 미래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활은 2000년 전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은 지금 이곳에서 삶으로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일어났습니다. 불평과 원망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일어났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숨어 있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이야기를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셨던 곳입니다. 많은 이적과 표징을 보여주셨던 곳입니다. 참된 행복을 말씀하셨던 곳입니다. 가파르나움,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중풍병자, 나병환자, 절름발이, 소경, 세리, 죄를 지었던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도 갈릴래아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 근심, 걱정, 절망, 아쉬움, 불평, 불만을 던져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편안하십니까? 여러분에게 평화를 빕니다.’ 이제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다시금 삶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도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거짓과 탐욕은 남아 있었습니다. 위선과 폭력도 남아 있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하지만 변화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여인들입니다. 이제 그들은 거짓과 탐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위선과 폭력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부활은 나를 에워싸고 있는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이제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세상은 변해 있었습니다. 내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2. 송영진 모세 신부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2023. 4. 9.)(요한 20,1-9)
<부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순간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맨 처음에 무덤을 찾아간 여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무덤을 떠나셔서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당시에 안 믿는 자들은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갔기 때문에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마태 28,13).
그것은 그 자신들도 증명할 수 없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안 믿는 자들 가운데에는, “예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죽은 것이 아니니 부활한 것도 아니다.” 라고 주장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사도들과 신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게 된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하는 증거도 아니고, 표징도 아니고, 증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그곳에 없다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때,
‘빈 무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1-2)”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박해자들이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도 크게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분의 시신마저 빼앗겼다고 생각했으니 더욱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당시에 박해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라고 ‘선전’할까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마태 27,64).
마태오복음서에는 그들이 무덤을 봉인하고 경비병들을 세워서 지키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 27,66), 아예 처음부터 예수님의 시신을 빼돌려서 제자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좋은 방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신자들은 박해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옮길까봐 걱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자 우려가 현실이 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 20,6-9).”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가 무덤으로 달려간 것은, 사도들이 예수님이 시신을 옮기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두 사도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마리아 막달레나를
무덤에 버려둔 채 그냥 되돌아갔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8절의 “보고 믿었다.” 라는 말은, 표현만 보면, ‘빈 무덤’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뜻이라고 해도, 그 믿음은 자기 혼자서 속으로만 생각한 것이고,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면, 바로 옆에 있는 베드로 사도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말했어야 했는데,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또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다른 사도들이나 신자들에게도 말을 안 했습니다.
증언하지 못하거나 증언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결국 ‘부활의 첫 증인’이라는 영예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차지했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은 사람도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보고 믿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가 아니라,
“막달레나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로 해석됩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9절의 설명과 부합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로 해석하면, 9절과 모순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ㄴ-8).”
여기서 ‘맨 마지막으로는’이라는 말은, 바오로 사도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한 말이고,
예수님이 바오로 사도에게 나타나신 뒤로는 더 이상 나타나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예수님을 만났거나 체험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고, 그 체험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도 예수님을 만났다.”, 또는 “나도 예수님을 체험했다.”
라고 증언할 수 있는 신앙인이(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그 체험을 하게 되고, 증인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인생을 살게 되었다면, 그 삶 자체가 증언이 됩니다.>
뭔가 특별한 체험을 한 일이 없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야고 4,8).”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408. 성토요일.
“오늘 밤은 왜 다른 밤들과 다른가?”
마태 28, 1-10(부활성야)
“오늘 밤은 왜 다른 밤들과 다른가?”
이는 유대인들의 “세다 예식” 중에 있는 질문입니다. “세다 예식”이란 파스카 축제 첫날 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하는 가족 식사를 말합니다. 이 식사에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출애굽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이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밤은 왜 다른 밤들과 다른가?”
오늘, 우리도 이 질문을 던져 봅니다.
대체, 이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금 우리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톨스토이가 쓴 글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사나운 임금님이 사제들에게 명령했습니다. ‘하느님을 볼 수 있도록 해 달라.’ 그러나 사제들은 임금님에게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양치기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눈이 좋지 않아서,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볼 수 없다면, 하느님이 무엇을 하는 지만이라도 알고 싶구나.’ 그러자 양치기는 말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임금님과 제가 서로 옷을 바꾸어 입어야만 합니다.’ 임금은 서슴지 않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양치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곧 하느님은 이처럼, ‘거룩한 바꿈’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밤, 우리에게 ‘거룩한 바꿈’을 이루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가져가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이 얼마나 고귀한 교환입니까?
이제, 우리의 몸은 거룩한 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 ‘새 인간을 입었습니다.’(골로 3,10; 에페 4,24).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죽음을 취하시어, 인간이 당신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는 까닭입니다.”(콜로 3,1-3).
이 교환을 가리켜,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우리의 죽음은 그분의 것이 되었고, 그분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
이렇게,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으로 부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밤 우리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루신 사랑입니다. 그러니 부활한다는 것은 단지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 생명을 연장해 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변화된 생명, 곧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밤, 우리는 새로이 탄생되고, 변화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의미의 “생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참으로 거룩한 생일, 거룩한 변화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1코린 15,51)
이토록, 부활은 단지 우리를 새로운 삶에로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를 바꾸어 놓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이 밤은 참으로 기묘한, 참으로 거룩한 교환의 밤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만들어낸 참으로 기묘한, 하늘과 땅이 결합되고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된 밤입니다. 하느님의 끝 모르는 사랑이 이루신 파스카의 밤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이 밤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임이 바로 부활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신앙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부활을 믿고 그분을 받아드리는 것이 곧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바로 지금, 거룩한 교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탄생의 대전환의 삶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부활의 밤입니다. 바로 지금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밤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주님!
당신은 제가 가는 곳에 항상 먼저 와 계십니다.
항상 먼저 오시어 나를 기다리시는 분, 결코 저를 떠나지를 못하시는 분
제가 찾기도 전부터 저를 찾으시고, 제가 찾으면 ‘나 여기 있노라’ 하시고,
제가 숨으면 ‘너 어디 있느냐?’하고 찾으시고,
먼저 제 안에 들어와 ‘어서 가자’고 이끌어 가시는 분.
그 보고 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늘 성토요일은 부활성야 강론을 미리 올리오니 부활의 기쁨을 미리 하루 앞당겨 사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부활 대축일 낮미사 강론을 올리겠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절망으로부터 희망으로,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아드님을 살려내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좋으신 주님을 찬송합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십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빛으로 희망으로 생명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이제 예전의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참자유인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빛!”
우리의 빛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덕분에 우리도 주님의 빛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 성탄성야 미사중 성경독서 이사야서 11장1-10절 까지의 노래와 쌍벽을 이루는 “용약하라”로 시작하는 파스카 찬송이 주님 부활의 기쁨을 배가합니다. 시간되면 한번 힘차게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용약하라, 하늘나라 천사들무리, 환호하라, 하늘나라 신비.
구원의 우렁찬 나팔소리, 찬미하라, 임금의 승리.
땅도 기뻐하라, 찬란한 광채, 너를 비춘다.”
끝까지 이어지는 내용이 구구절절 기쁨 충만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께서 늘 함께 계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맛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빛과 생명으로, 희망과 사랑으로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면 이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어둠으로 가득한 광야세상을 어찌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빛과 생명으로, 희망으로 부활하신 주님 계시기에 비로소 살맛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례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모두가 주님 파스카의 생명과 빛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 그대로입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위에 군림하지 못하고 그분께서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과 함께 죄에서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세례성사의 깨달음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덕분에 우리 역시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끊임없이 새롭게 폈다지는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의 은총입니다. 제 주특기가 하느님 자랑입니다. 좋으신 하느님입니다. 예나 이제나 살아계신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을 살려내신 하느님의 자랑을 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바로 오늘 미사중 제2부 말씀전례에서 소개되는 하느님은 얼마나 좋으신지요! 매번 독서를 요약하는 후렴 시편의 고백이 신선한 감동입니다. 차례대로 소개합니다.
1.“주님,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제1독서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새롭게 창조해달라는 청원입니다.
2.“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제2독서에서 죽을뻔한 이삭을 살려내신 하느님께 우리를 지켜 달라는 고백의 기도입니다.
2.“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분”
탈출기에서 모세의 영도하에 이집트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신 하느님을 찬양하듯 우리 역시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3.“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이사야서에서 보다시피 영원한 자애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구하시니 주님을 높이 기려야 할 것입니다.
4.“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이사야서 말씀후 후렴처럼, 주님의 구원의 샘에서 기뻐하며 생명의 물을 길으라는 고마운 충고말씀입니다. 바로 미사가 거행되는 성전이 주님 구원의 샘터입니다.
5.“주님,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바룩서 독서후 후렴은 지혜의 샘이신 주님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라는 고마운 권고입니다.
6.“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에제키엘 독서후 시편 후렴은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넣어주시는, 돌로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된 마음을 넣어주는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고 찾으라는 권고입니다.
구약의 여섯 독서 말씀과 후렴시편이 얼마나 다채롭고 은혜롭고 풍요한지요! 생명의 말씀, 빛의 말씀, 희망의 말씀, 사랑의 말씀, 진리의 말씀, 구원의 말씀입니다. 새삼 하느님 말씀을 들어야 하는 말씀의 종교요 우리 인간의 본질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아, 이 모든 하느님 말씀의 종합이자 완성이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 그리스도님이십니다. 말씀의 신비, 말씀자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단히 찾고 만나야 할 사랑하올 분은 파스카 예수님뿐이십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파스카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참으로 주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 여인들은 크게 기뻐하며 무덤을 떠나 제자들을 향해 달릴 때 다시 나타난 주님은 ‘평안하냐?’말씀하신후 당신 발을 붙잡고 절하는 여인들에게 자상히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을 찾지 말고, 각자 삶의 현장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사시는 우리의 형님이신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신 파스카 예수님을 찾아 만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과의 우정友情을, 우애友愛를 날로 깊이하며 우리 모두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살게 하시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다시 한 번 나누고 싶은 자작 고백시,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사람은 꽃이다
주님 파스카의 꽃이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끊임없이
새롭게 폈다지는
사람은 꽃이다
아름다운 꽃이다
주님 파스카의 꽃이다” 아멘.
[4/9(일) 부활대축일, 되새김 구절]
1.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 근심, 걱정, 절망, 아쉬움, 불평, 불만을 던져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편안하십니까? 여러분에게 평화를 빕니다.’ 이제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다시금 삶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예수님이 바오로 사도에게 나타나신 뒤로는 더 이상 나타나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예수님을 만났거나 체험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고, 그 체험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도 예수님을 만났다.”, 또는 “나도 예수님을 체험했다.”
라고 증언할 수 있는 신앙인이(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그 체험을 하게 되고, 증인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인생을 살게 되었다면, 그 삶 자체가 증언이 됩니다.>
뭔가 특별한 체험을 한 일이 없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야고 4,8).”(송영진 모세 신부)
3. 하느님께서는 오늘 밤, 우리에게 ‘거룩한 바꿈’을 이루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가져가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이 얼마나 고귀한 교환입니까?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주님!
당신은 제가 가는 곳에 항상 먼저 와 계십니다.
항상 먼저 오시어 나를 기다리시는 분, 결코 저를 떠나지를 못하시는 분
제가 찾기도 전부터 저를 찾으시고, 제가 찾으면 ‘나 여기 있노라’ 하시고,
제가 숨으면 ‘너 어디 있느냐?’하고 찾으시고,
먼저 제 안에 들어와 ‘어서 가자’고 이끌어 가시는 분.
그 보고 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각자 삶의 현장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사시는 우리의 형님이신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신 파스카 예수님을 찾아 만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과의 우정友情을, 우애友愛를 날로 깊이하며 우리 모두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살게 하시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이수철 신부)
[4/9(일) 부활대축일, 제 106일 기도]
하느님! 부활대축일입니다!
나의 삶의 현장에서 부활하소서.
부활하신 주님과 늘상 동행하게 하소서.
늘상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4월9일(일) 10시4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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