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4월 26일 수요일[(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저의 입은 당신 찬양으로 가득 찼나이다. 온종일 당신 영광을 찬미하나이다. 당신께 노래할 때, 제 입술에 기쁨이 넘치리이다. 알렐루야.
본기도
주님의 이 가족들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믿음의 은총을 주셨으니
저희가 성자 그리스도의 부활로 영원한 유산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8,1ㄴ-8
1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온 세상아,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또는
◎ 알렐루야.
○ 온 세상아,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그 이름, 그 영광을 노래하여라. 영광과 찬양을 드려라. 하느님께 아뢰어라. “당신이 하신 일들 놀랍기도 하옵니다!” ◎
○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너희는 와서 보아라, 하느님의 업적을, 사람들에게 이루신 놀라운 그 위업을. ◎
○ 바다를 바꾸어 마른땅 만드시니, 사람들은 맨발로 건너갔네. 거기서 우리는 그분과 함께 기뻐하네. 그분은 영원히 권능으로 다스리신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리리라.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35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로 저희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감사하며 드리는 이 제사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거룩한 교환의 신비로 저희를 도우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충실히 살아
마침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4년 동안 신문사의 주방을 도와주시던 어르신이 ‘병가’를 얻었습니다. 다행히 팔순 잔치를 잘 마치셨고, 자녀들과 이웃들이 축하 해 주었습니다. 어르신은 참 부지런하였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기쁘게 하였습니다. 마당에 텃밭을 일구어서 깨, 방울토마토, 고추, 호박을 심었습니다. 신문사 직원이 먹기에 충분하였고, 이웃들에게도 기꺼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성모상 앞에는 코스모스를 심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꽃들이 성모님 앞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은 참 알뜰하고 검소하였습니다. 마트에서 준 비닐 봉투가 큰 박스로 있었습니다. 냉동실에는 언제나 물건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창고에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물건이 많았습니다. 어르신이 건강을 회복하여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지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르신의 병가를 계기로 창고와 냉장고 정리를 하였습니다. 이제 사람을 새로 구하기보다는 저도 홀로서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예전에 토론토에서 지낼 때도 혼자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해 먹고 지냈습니다. 직원들도 저의 홀로서기를 응원하였습니다.
문명이라는 옷을 입으면서 예전에는 당연히 하였던 일들이 잊혀지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지내면서 물질적인 풍요를 공유하지만 자연의 향기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늘 주방을 도와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청소를 해 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에 익숙해져서 인지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보니 많은 사제들이 주방을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제들이 한국처럼 바쁘지 않아서 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하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한국에서 교포사목으로 온 신부님들 중에도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고, 청소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재정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위해서 손수 불을 피우시고 음식을 마련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예전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는 스마트 폰의 검색 창을 보고, 유튜브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야 살아 있는 것 같고, 그래야 어딘가에 소속된 것 같습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의 바다에서 헤매는 것 같습니다. 문명의 옷이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해 줄 수는 있지만 우리의 이성과 영성을 깊게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이성과 영성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은 쉴 새 없이 깜빡이는 검색창의 커서에 있지 않습니다. 신선하고 새로울 것도 없는 가십거리 뉴스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현실에서 풍요로운 삶을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성공과 권력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들을 보고 믿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스테파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스테파노는 교회에서 첫 번째로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스테파노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았고, 천국 시민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에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늘었습니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교회는 예루살렘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박해의 풍랑을 넘어서 마귀를 쫓아냈고, 병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사도들에게 박해도, 고통도, 죽음도 두려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문명이라는 옷이 우리를 따뜻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이라는 옷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강론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회심, 심오한 삶의 이동이 필요합니다!
가끔 저 자신도 돌아보고, 주변 형제들도 살펴보면서 드는 한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부족하고 나약하며 죄인인 우리를 당신 구원 사업의 도구로 선택하시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 놀라운 일도 봅니다. 하나 하나 살펴보면 너무나도 부족한 당나라 군사들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우왕좌왕, 티격태격하면서도, 이런 형제들이 힘을 합쳐, 놀라운 기적을 창출해나간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를 선택하시고 활용하시는 주님의 선택은 놀라움에 앞서 충격적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회심 이전의 바오로 사도가 어떠한 삶을 살았었는지, 살짝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행전 8장 3절)
보십시오.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벌어진 낙마 사건 이전 사울은 정통 율법학자요 바리사이로서, 앞날이 창창한 청년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극단적 율법 중심 주의로 무장한 채, 율법을 거스르는 행태를 보이는 사람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구쳤습니다.
사울의 머릿속은 온통 세속적인 영예와 헛된 기대로 가득했습니다. 혈기왕성하다 보니 야심도 크게 품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울은 유다최고회의에 허락을 구해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았던가 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에 반하는 삶을 사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체포하고 박해하는데 최선봉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참으로 묘하십니다. 당시 유다 최고 지도자들 가운데는, 예수님과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었던 니코데모나 가말리엘도 있었는데, 그들은 제쳐주고, 그리스도교 박해와 관련해서 넘버원이었던 사울을 당신 일꾼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잘 나가던 사울을 깊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치십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바닥 체험 이후, 그를 환골탈태시키십니다. 그리스도교 박해에 가장 열렬하던 적대자에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도로 변모시키십니다.
하느님은 묘하신 분, 오늘도 한없이 부족한 우리를 도구로 삼아 당신의 인류 구원 사업을 펼쳐나가십니다. 그분의 충실한 협조자가 되고자 한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바오로 사도에게 벌어졌던 그런 깊은 회심, 심오한 삶의 이동이 필요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425.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오늘은 성 마르코 복음사가의 축일입니다.
<마르코복음>의 저자이기도 한 마르코(‘큰 망치’, ‘큰 철퇴’라는 뜻)의 원래 이름은 요한이었습니다(사도 12,12-15). 그는 예루살렘 출신의 레위 사람으로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였고, 그의 집은 사도들이 자주 모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성서학자들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이 잡히실 때에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던 젊은이(마르 14,51-52)가 바로 마르코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제1차 선교여행을 했고, 사촌 형인 바르나바와 함께 선교하였으며, 바오로가 로마에서 투옥되었을 때 옥바라지를 했고(골로 4,10), 베드로 사도의 통역자로서 선교활동에 참여했는데, 특히 베드로는 그는 그를 “나의 아들”(1베드 5,13)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네로 황제의 박해 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순교한 뒤, 로마를 떠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서 활동했으며, 목에 줄을 매어 시내를 돌게 한 다음에 참수 당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성 마르코 대 성당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시고 승천하시는 장면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혹 “복음”이 아닌 다른 것, 자신의 가르침이나 자기 자신을 선포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먼저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일입니다. “복음”이 대체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공생활 시작 때 하신 말씀이고, 하나는 공생활을 마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곧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는 것이요,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5;루카 24,6)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하라 하십니다. 그러니 가고 싶은 곳만이 아니라 ‘가라’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하고, 내가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전해야 하고, 나아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전해야 할 일입니다. 곧 “온 세상” 어디든지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하는 장소이며, 누구나가 그리고 모든 자연과 피조물이 우리의 편리와 안락을 추구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응답해야 할 구원의 짝지이며 동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단지 우리에게 사명만 주시고, 이를 강요하시는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을 확증해주셨습니다.”(마르 16,20).
그렇습니다. 이 모두는 우리 안에서 ‘함께 일하시는 주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과 함께 사랑하며, 동시에 함께 하시는 바로 그분을 선포하고 증거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녕, 함께 하시는 그분과 함께 하는 일, 바로 그 일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가 말한 것처럼, 함께 하시는 ‘하느님만’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일은 더는 없을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주님께서는~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주셨다.”(마르 16,20)
주님!
당신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면서도 결코 홀로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너무도 겸손하신지라 저희의 도움을 받아 일하시기를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가 당신의 소중한 파트너가 되게 하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과 함께하게 하소서.
당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하시고,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복음 선포의 삶
-“주님의 복음 선포자,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시편89,2)
오늘은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그는 사도 베드로의 제자였으며 성 베드로는 오늘 제1독서 베드로 1서에서도 그를 애정 깊게 ‘나의 아들 마르코’(1베드5,13)라고 언급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사도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합니다.
성 마르코는 60-70년 사이에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주로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서를 쓴 것으로 전해집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나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는 성 마르코를 사도 성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성 베드로의 순교 이후 복음서를 썼다고 전합니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성 마르코는 성 베드로에 의해 이집트로 파견되어 그곳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우고 초대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신자들과 함께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도중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아 붙잡혀 밧줄에 목이 묶인채 거리를 끌려다니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상징으로 날개 달린 사자가 주로 등장하는데 그의 복음서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시작하자 예술적으로 그 소리를 포효하는 사자와 비교하면서 생겼다고 합니다. 바로 오늘 마르꼬 복음서의 저자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였습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 후반부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은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예외없이 우리 모두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의 골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요 복음 선포에 대한 반응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아 들이는 결단입니다. 복음 선포에 앞서 우리 자신의 믿음을 뒤돌아 보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늘 새로운 결단으로 선택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선택의 결단임과 동시에 은총임을 깨닫게 됩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기적입니다. 우연이 아닌 섭리의 삶이 펼쳐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친히 복음선포의 삶을 통해 믿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기적을 다섯가지 현상들로(구마이적, 언어이적, 독사이적, 치유이적, 음독이적) 소개합니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기적의 연속임을 깨닫습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이 기적의 정체를 밝혀 줍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면서 동시에 늘 우리와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이 뒤따르게 하시는 초월과 내재의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얼마나 위로와 격려가 되는 진리인지요!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초월과 내재의 주님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복음 선포의 양상은 다 다릅니다. 바로 믿는 이들은 누구나 그 삶의 자리가 세상의 중심이자 복음 선포의 현장입니다. 평생 늘 거기 그 자리의 수도원에서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요셉수도원은 환대를 통한 복음 선포의 선교라 말하기도 합니다. 저 또한 인터넷을 통해 날마다 강론을 나눔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캐나다에서 51년동안 살다가 잠시 수도원에 피정중인 노부부의 이야기도 감동스러웠습니다. 캐나다 해밀턴에서 수년 동안 굿뉴스를 통해 제 강론을 매일 읽었고 이번 12년만의 한국 방문때 수도원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어느 치과의사와 하루 일과가 끝나고 12:30분쯤 받은 카톡메시지에 대해 황매화꽃과 더불어 주고 받은 내용입니다.
-“오늘 참 수고많으셨습니다. 형제님의 일터인 치과병원이야말로 생업의 현장이자 복음선포의 현장이요 영적전투의 현장이네요. 늘 거기 그 자리의 느티나무처럼 한결같은 정주 삶의 현장이기도 하구요. 황매화꽃 위로의 축복인사 받으시고 이밤도 주님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세요.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 취침시간에 저는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네요. 주님의 전사로서!”
“예, 감사합니다. 편히 푹 잘 듯 하네요.”-
오늘 복음이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향한 복음 선포의 명령이라면, 제1독서에서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복음 선포의 구체적 지침을 주십니다. 흡사 생생한 영적전쟁의 상황임을 연상케 합니다. 예나 이제나 믿는 이들의 삶은 영적전쟁의 삶임을 통절히 깨닫습니다.
복음 선포의 책임과 사명을 부여 받은 우리 믿는 이들은 죽어야 끝나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들, 믿음의 전사들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가르쳐 주는 바,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로서 주님의 은총 안에서 굳건히 서 있으면서 복음 선포의 삶을 위한 필수적 요소 둘이 바로 겸손과 깨어 있음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십니다.”(1베드5,5ㄴ-7)
참 좋은 겸손입니다. 참된 복음 선포의 일꾼에게, 전사에게 우선적 자질이 겸손임을 깨닫습니다. 겸손의 선택과 은총, 훈련, 습관화로 주님의 겸손의 전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어지는 깨어 있음에 대한 강조입니다. 매주간 화요일 끝기도 때마다 나오는 성구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 하십시오.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각자 삶의 자리가 복음 선포의 현장이자 치열한 영적전투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초월과 내재의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며 도와 주십니다.
오늘은 34년째 요셉수도원에 정주중인, 농장 책임과 순대방 책임을 맡은, 주님의 믿음의 용사 마르코 수사님의 영명축일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초에는 이때 목련꽃이 만발했는데 지금은 한달 가량 빨리 폈다 지니 봄이 그처럼 짧아진 것입니다. 또 오늘 11년전쯤 왜관수도원에서 부임하여 살던 안토니오 수사가 잠시 자리를 바꿔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뉴튼수도원에 파견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복음 선포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또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축제중 주님의 자비를 청합시다.
“행복하여라, 축제의 기쁨을 아는 백성!
주님, 그들은 당신 얼굴 빛 속을 걷나이다.”(시편89,16). 아멘.
[4/26(수)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스테파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스테파노는 교회에서 첫 번째로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스테파노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았고, 천국 시민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주님께서는 잘 나가던 사울을 깊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치십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바닥 체험 이후, 그를 환골탈태시키십니다. 그리스도교 박해에 가장 열렬하던 적대자에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도로 변모시키십니다.
하느님은 묘하신 분, 오늘도 한없이 부족한 우리를 도구로 삼아 당신의 인류 구원 사업을 펼쳐나가십니다. 그분의 충실한 협조자가 되고자 한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바오로 사도에게 벌어졌던 그런 깊은 회심, 심오한 삶의 이동이 필요합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주님께서는~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주셨다.”(마르 16,20)
주님!
당신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면서도 결코 홀로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너무도 겸손하신지라 저희의 도움을 받아 일하시기를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가 당신의 소중한 파트너가 되게 하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과 함께하게 하소서.
당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하시고,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 하십시오.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각자 삶의 자리가 복음 선포의 현장이자 치열한 영적전투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초월과 내재의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며 도와 주십니다.(이수철 신부)
[4/26(수)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제123일 기도]
하느님!
주님! 제가 당신의 소중한 파트너가 되게 하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과 함께하게 하소서.
당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하시고,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4월26일(수) 20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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