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6일 화요일[(녹) 연중 제9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하느님, 비참한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의 죄악 낱낱이 없애 주소서.
본기도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모두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토빗기의 말씀입니다.2,9ㄴ-14
오순절 밤 나 토빗은 죽은 이를 묻어 준 다음,
9 내 집 마당에 들어가 담 옆에서 잠을 잤는데, 무더워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10 내 머리 위 담에 참새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하였다.
그때에 뜨거운 참새 똥이 내 두 눈에 떨어지더니 하얀 막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려고 여러 의사에게 가 보았지만,
그들이 약을 바르면 바를수록 그 하얀 막 때문에 눈이 더 멀어졌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아주 멀어 버렸다.
나는 네 해 동안 시력을 잃은 채 지냈다.
내 친척들이 모두 나 때문에 슬퍼하고,
아키카르는 엘리마이스로 갈 때까지 나를 두 해 동안 돌보아 주었다.
11 그때에 내 아내 안나는 여자들이 하는 일에 품을 팔았다.
12 아내가 물건을 만들어 주인들에게 보내면 주인들이 품삯을 주곤 하였다.
디스트로스 달 초이렛날에
아내는 자기가 짜던 옷감을 잘라서 주인들에게 보냈다.
그러자 그들은 품삯을 다 줄 뿐만 아니라
집에서 쓰라고 새끼 염소 한 마리도 주었다.
13 내가 있는 곳으로 아내가 들어올 때에 그 새끼 염소가 울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내가 아내를 불러 말하였다.
“그 새끼 염소는 어디서 난 거요? 혹시 훔친 것 아니오?
주인들한테 돌려주시오. 우리에게는 훔친 것을 먹을 권리가 없소.”
14 아내가 나에게 “이것은 품삯 외에 선물로 받은 것이에요.” 하고 말하였지만,
나는 아내를 믿지 못하여
그 새끼 염소를 주인들에게 돌려주라고 다시 말하면서,
그 일로 아내에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였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그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의로운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나쁜 소식에도 그는 겁내지 않고, 그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 그 마음 굳세어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침내 적들을 내려다보리라. ◎
○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거룩한 제대에 제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또는>
마르 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를 성자의 살과 피로 기르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다스리시어
저희가 말보다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마침내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606. 연중 제9주간 화요일.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이는 말 그대로 하면, 은화는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어 황재의 것이니 황제에게 돌려주고,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져 있어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께 돌려드리라는 뜻이 됩니다. 곧 돈은 황제에게 돌려주되, 자신은 하느님께 돌려드리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황제가 자신의 초상을 요구하니, 황제의 것을 황제에게 돌려주어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초상을 요구하시니,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사실, 동전에는 흐리멍텅한 육체적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동전은 자신이 누구의 초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인간에게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누구의 초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압니다. 곧 하느님의 초상을 지니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기에, 진정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며 하느님의 은화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의 황제에게 팔아넘겨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니 팔려 넘겨지지 않는 일입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소유,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우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황제에게는 돈을 돌려주고 하느님께는 여러분 자신을 돌려드려라. 그러면 우리 안에 진리가 다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진리’가 자라야 할 일입니다. 진리가 자라게 하는 일, 그것은 진리를 밝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밝히는 일, 그것은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리에 속한 이들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미 진리에 속해 있기에 진리를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는 까닭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세상이 진리에 속하도록 빛을 밝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그 어떤 힘이나 권력으로부터 결코 제한될 수 없는 사명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은 새겨진 이의 것이 아니라 가진 이에게 잠시 맡겨지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새겨진 그분의 것입니다. 돈에 인간이 새겨져 있어 인간에게 돌아가듯, 우리에게는 그분의 형상이 새겨져 있어 그분께 돌아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그분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그분의 생명이 흐르며, 그분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분의 빛이 빛나며, 그분의 진리가 새겨져 있고, 그 어떤 힘이나 권력으로도 제한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분의 모상이 새겨져 있고, 우리는 영원토록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당신의 생명이 흐릅니다.
돈은 자신에게 새겨진 초상을 알지 못하지만, 저는 제 안에 새겨진 형상을 압니다.
돈은 새겨진 이의 것이 아니라 가진 이에게 잠시 맡겨지지만,
저는 영원토록 제 안에 새겨진 당신의 것입니다.
돈에는 인간이 새겨져 있어 인간에게 돌아가듯,
제게는 당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어 당신께 돌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빛이 되어 비추는 그 어떤 힘이나 권력으로도 제한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이 새겨진 저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
2. 2023년 06월 06일 화요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꽤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으십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는 그분을 옭아매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먼저 예수님을 찬양하는 온갖 좋은 말을 나열합니다.
특히 ‘사람을 그 신분(그리스 말로 ‘프로소폰’[얼굴, 외모])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표현으로,
어떤 이의 외모나 신분이나 위엄에 흔들리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공평을 치켜세웁니다.
그리고 곧이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하는 질문을 통하여 어느 한쪽을 답하도록 예수님을 유도합니다.
만일 황제라는 높은 신분에 겁을 먹거나 흔들리지 않는 이라면,
그에게 내는 세금이 합당하지 않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가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면 그러한 멍에에서 이스라엘을 자유롭게 하는 이로서,
적어도 이방 통치자에게 내는 세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로마 제국에 맞서는 것이 되기에,
그들은 곧바로 예수님을 대역죄로 고발할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라’ 또는 ‘바치지 마라’는 식의 답을 고르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에 새겨진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게 하신 뒤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사실 이 대답은 조금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호함 덕분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놓은 덫에서 영민하게 빠져나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황제의 것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것인가?’
마침내 사라져 버릴 것들과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게 될 것들을 잘 분별하라는 숙제가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것’이 무엇인지 잘 식별하고,
그것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려드리고 있습니까?
나라에 내는 세금도 있지만, 하느님께 바쳐야 할 ‘세금’도 있습니다.
꾸준한 기도와 신앙생활로 그 세금이 밀리는 일이 없게 합시다.
3.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하느님 중심의 삶
-주님의 전사, 분별의 지혜, 영적승리의 삶-
저는 강론을 묵상할 때는 언제나 염두에 두는 것이 제목입니다. 제목을 정한후 강론을 쓰며 후에 제목을 정정하기도 합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하느님 중심의 삶-주님의 전사, 분별의 지혜,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이 강론 제목 역시 참 많이 반복했던 주제입니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음을 새삼, 삶은 반복이란 진리를 깨닫습니다. 단조로운 반복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반복, 날로 내적으로 깊어지는 깨달음의 반복입니다.
바로 윗 제목에 그대로 해당되는 분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시고 성인들이고 살아 계신 성인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정말 88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동하시는 모습은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입니다. 정말 하루하루 사적인 삶은 전혀 없고 완전히 공개된 공인의 삶입니다. 쉴 시간이 거의 없이 끊임없이 사람을 만납니다.
교황님께서 강조하는 바, 목자로서의 하느님 스타일의 삶입니다. 바로 친밀함(closeness), 온유함(tenderness), 연민(compassion)이 하느님의 스타일이라 하시며 그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지난 5월27일 교황님은 이탈리아 공영방송 TV에서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 세상 상황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있었고, 교황님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세계 평화에 관한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전쟁 그것은 인간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다. 평화와 함께 여러분은 앞으로 나아간다. 조금씩일것이나 얻는 것이 있다. 반면 전쟁과 더불어 너는 모든 것을 잃는다. 모든 것을!(영어 ‘Everthing!’로 강조된 표현이 강력한 느낌이었습니다). 소위 얻는 것들은 잃은 것들뿐이다(gains are losses). 비오 12세 교황은 1939년 세계 2차 대전에 앞서 라디오 메시지에서 말씀하셨다. ‘어느 것도 평화와 함께 할 때는 잃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전쟁과 더불어 사라진다.’”
평범하나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이래서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백배 낫다합니다. 인간 역사만큼이나 깊은 전쟁의 역사입니다. 평화를 추구하나 늘 전쟁과 함께 살았던 역설적 인간존재입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입니다. 참으로 무지한 인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전쟁입니다.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이 그대로 압축 요약된 전쟁입니다.
교황님의 6월 기도지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황님은 “고문의 공포를 멈추십시오,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고문은 과거의 역사가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오늘날에도 우리 역사의 일부입니다.” 말씀하시며 고문 폐지를 위해 기도할 것을 청하십니다. 유엔은 6월26일을 세계 고문 희생자 지원의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믿는 이들이 말하는 것은 영적전쟁입니다. 예로부터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은 자신의 삶을 영적전쟁의 삶이라 규정했고, 자신을 주님의 전사 즉, 평화의 전사, 사랑의 전사, 믿음의 전사라 했고 이것은 제가 즐겨 쓰는 표현입니다. 정말 죽어야 끝나는 하루하루가 영적전쟁의 순교적 삶이고, 우리는 주님의 영적전우에, 영적전우애를 지니게 됩니다. 영적전쟁 승리의 본보기가 바로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자 공통 찬미가는 늘 불러도 감동입니다.
“하느님 위해 싸워 승리한 용사. 그 몫의 월계관을 씌우신 주여.
순교자 우러르며 기리는 우리, 죄악의 사슬에서 풀어주소서.”
참으로 믿는 이들의 삶은 영적전쟁의 순교적 삶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을 보면서도, “아 예수님의 삶이 참 고달프구나. 끊임없이 계속되는 적대자들의 공격속에 살아가는 영적전쟁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죽어야 휴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인들은 놀랍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과 기쁨, 평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바로 어제 성무일도시 계응송이 그 비밀을 알려줍니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마음 바른 사람들아 춤추며 기뻐하라.”
바로 지옥같은 세상속에서도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예수님이요 그 후예들인 성인들입니다. 이어 더불어 생각나는 응송입니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기쁨이시도다.”
하느님을 나의 힘, 나의 기쁨으로 삼아 영적승리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이요 성인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내적평화와 기쁨, 찬미와 감사의 삶이요, 평화의 전사, 사랑의 전사로서의 삶이겠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전사에게 분별의 지혜는 필수입니다. 오늘 주님의 양자택일의 곤궁한 처지에서 그 분별의 천상적 지혜가 빛납니다. 적대자들은 주님을 한껏 부풀린후 양자택일의 답을 요구합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이어지는 대화가 참 통쾌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이런 침착하고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지혜로운 처신은 하느님 중심의 철저한 삶에서 기인함을 깨닫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황제의 것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이들의 무지를 깨우쳐주는 ‘신의 한 수’ 같은 답변에 이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합니다. 예수님께 크게 한 수, 지혜를 배우는 적대자들입니다. 혹자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말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우선적인 것이 하느님 중심의 삶이요 무엇이 황제의 것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것인지 스스로 분별하여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금을 바치고 안바치고는 너희들이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황제의 초상이 있는 데나리온에 앞서, 하느님의 모습이 각인된 존엄한 품위의 너희들이니 하느님의 자녀답게 지혜로이 스스로 판단하여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전사로서 예수님의 통쾌한 영적승리를, 서로가 사는 ‘상생相生의 승리(win-win)’를 상징하는 오늘 복음입니다.
오늘 제1독서 토빗기는 의인의 시련을 말해줍니다. 토빗의 하느님 중심의 삶이 시험대에 오릅니다. 이런 인내의 시련을 통해 단련되고 정화되어 참으로 주님의 전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 안나의 도전적 유혹의 말이 토빗에게는 아팠을 것이나 토빗은 이를 너끈히 통과했을 것입니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일면 타당한 듯 보이지만 악마의 간교한 질문입니다. 이와 유사한 물음도 우리에게는 끝이 없어 보입니다. 왜?, 왜?, 왜?, 이렇게 충실히 살아왔는데 하느님은 왜 이런 불행을, 고통의 병고를 주셨느냐는 등 끝없는 질문입니다. 무수한 미사예물의 다양한 지향들을 보면 기도는 간절해질수 뿐이 없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미사참례 하면서 예쁘게 살다가 갑작스런 병으로 꿈처럼 떠난, 도저히 실감이 가지 않는 스테파노-비비안나 부부를 생각하면 정말 하느님이 이해불가입니다. 이 또한 믿음의 시험이자 시련입니다. 암투병하던 비비안나 자매는 2월에, 요양원에 있던 스테파노는 3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두분의 연미사를 신심깊은 도미니카 자매님이 봉헌했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에, 주님의 전사로서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인 지혜와 믿음과 용기로, 온갖 유혹을 통과하여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4.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산보 길에 커다란 나무의 그루터기에 새순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의 기둥은 거센 바람에 부러졌지만 뿌리는 건재했기 때문입니다. 뿌리에서 양분을 받은 새순은 언젠가 커다란 나무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이렇게 예언 했습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 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 리라.” 이사야 예언자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메시 아를 꿈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셨고, 교회의 시대가 시 작되었습니다. 미 동북부에는 50년이 되는 본당들이 있습니다. 뉴저지의 메이 플 우드 성당은 작년에 5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퀸즈의 정하상 바오 로 성당은 올해 5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홀리 엔젤스 성당은 내년에 5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할 예정입니다. 이 세 성당은 동북부의 뿌리가 되어서 주변에 한인 성당을 분가하였습니다.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도 생각해야 하겠지만 어떻게 살았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나오 듯이 하느님께서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로도 모퉁이의 머릿돌을 만드시 기 때문입니다.
엠이 모임에서 사제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신부님은 마치 잘려나간 그 루터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 교회의 냉정한 현실을 보았습니다. 사제성 소가 줄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 다. 교회의 가르침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질과 자본의 힘이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가슴에 깊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교 회의 조직과 제도로는 식어버린 신앙을 뜨겁게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직은 젊은 신부님께서 비관적인 현실을 이야기하는데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 저는 그루터기가 아닌 한창 자라나는 교회에서 사제가 되었고, 성장하는 교회와 함께 사목하였습니다. 교리를 받는 사람은 늘어났고, 성당은 비좁아서 분가해야 했고, 교황님이 3번이나 방문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럼에도 신부님 한분은 희 망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줌으로 하는 미팅에 많은 젊은 부부가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팬데믹의 파도가 거셌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것처럼 영적 인 목마름을 채우려는 부부도 많았다고 합니다. 작년에 20부부가 엠이 주말을 체험했는데 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부부가 체험 할 것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의 눈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원 소작인의 이야기입니다. 실망과 좌절 속에서 주어진 책임 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책임을 묻는 소작인이 될 것입니다. 교만과 욕망 속에서 포도원을 돌보지 않고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주님께 서는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시련과 고통을 디딤돌로 삼는 다면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포도원을 잘 가꾼다면, 나눔과 희생으 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포도원을 풍성하게 열매 맺도록 한다면 주님께서는 더 큰 포도원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소중한 포 도원입니다. 자녀들이 하느님을 믿고 알아서 참된 구원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실한 포도원 지기의 역할입니다. 본당의 여러 단체 또한 주님께서 맡겨 주신 포도원입니다. 우리는 그 포도원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하 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실한 포도원 지기의 역할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게도 ‘미주가톨릭평화신문’이라는 포도원을 맡겨 주셨습니다. 좋은 지면으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성실한 포도원 지기의 역할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동북부 엠이와 부르클린 한인성당이라는 포도원도 맡겨 주셨습니다. 사랑 하는 마음으로 만나는 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이 성실한 포도원 지기 의 역할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포도원을 잘 돌볼 수 있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주님이 말씀하 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 라야 한다.”
[6/6(화)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당신의 생명이 흐릅니다.
돈은 자신에게 새겨진 초상을 알지 못하지만, 저는 제 안에 새겨진 형상을 압니다.
돈은 새겨진 이의 것이 아니라 가진 이에게 잠시 맡겨지지만,
저는 영원토록 제 안에 새겨진 당신의 것입니다.
돈에는 인간이 새겨져 있어 인간에게 돌아가듯,
제게는 당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어 당신께 돌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빛이 되어 비추는 그 어떤 힘이나 권력으로도 제한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이 새겨진 저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2.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사라져 버릴 것들과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게 될 것들을 잘 분별하라는 숙제가 주어진 것입니다.(정천 신부)
3. 교황님께서 강조하는 바, 목자로서의 하느님 스타일의 삶입니다. 바로 친밀함(closeness), 온유함(tenderness), 연민(compassion)이 하느님의 스타일이라 하시며 그 모범을 보여주십니다.(이수철 신부)
4.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주님이 말씀하 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 라야 한다.”(조배형 신부)
[6/6(화)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제 163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친밀함(closeness), 온유함(tenderness), 연민(compassion)...
하느님의 스타일 대로 살게 하소서.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 2023년 6월6일(화) 11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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