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9일 금요일[(녹) 연중 제9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하느님, 비참한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의 죄악 낱낱이 없애 주소서.
본기도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모두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토빗기의 말씀입니다.11,5-17
그 무렵 5 안나는 자리를 잡고서 자기 아들이 돌아올 길을 살펴보고 있었다.
6 그러다가 토비야가 오는 것을 알아보고 토비야의 아버지에게,
“봐요. 당신 아들이 와요. 함께 갔던 사람도 오네요.” 하고 말하였다.
7 토비야가 아버지에게 가까이 이르기 전에 라파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잘 알고 있소. 저분은 꼭 눈을 뜨실 것이오.
8 물고기 쓸개를 저분 눈에 발라 드리시오.
그 약은 눈의 하얀 막이 오그라들다가 벗겨지게 할 것이오.
그러면 그대의 아버지께서 시력을 되찾아 빛을 보게 될 것이오.”
9 안나는 달려가서 아들의 목을 껴안고,
“얘야, 내가 너를 다시 보게 되다니! 이제는 죽어도 괜찮다.” 하면서 울었다.
10 토빗도 일어서서 다리를 비틀거리며 마당 문을 나섰다.
토비야가 그에게 마주 갔다.
11 물고기 쓸개를 손에 든 토비야는 아버지를 붙들고 그 눈에 입김을 불고 나서,
“아버지, 용기를 내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그 약을 아버지에게 바르고서는 잠시 그대로 두었다.
12·13 이윽고 토비야는 양손으로 아버지의 눈가에서부터 하얀 막을 벗겨 내었다.
그러자 토빗이 아들의 목을 껴안고 14 울면서
“얘야, 네가 보이는구나, 내 눈에 빛인 네가!”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의 위대한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 모두 찬미받으소서.
그분의 위대한 이름 언제나 우리 위에 머무르소서.
그분의 천사들 모두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15 그분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셨지만
내가 이제는 내 아들 토비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기쁨에 넘친 토비야는 소리 높여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여행을 잘 마치고 돈을 가져온 것과
라구엘의 딸 사라를 어떻게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또 그 사라도 오고 있는데 니네베 성문 가까이 왔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16 기쁨에 넘친 토빗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며느리를 맞으러 니네베 성문으로 갔다.
니네베 사람들은 토빗이 오는데
손을 붙잡고 인도해 주는 사람 없이 힘차게 걸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17 그때에 토빗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그들 앞에서 밝혔다.
이어서 자기 아들 토비야의 아내인 사라에게 다가가 그를 축복하며 말하였다.
“얘야, 잘 왔다. 얘야, 너를 우리에게 인도하여 주신
너의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빈다.
너의 아버지께서 복을 받으시고 내 아들 토비야도 복을 받고,
그리고 얘야, 너도 복을 받기를 빈다.
축복 속에 기뻐하며 네 집으로 어서 들어가거라. 얘야, 들어가거라.”
그날 니네베에 사는 유다인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내 한평생, 나는 주님을 찬양하리라. 사는 동안, 나의 하느님 찬송하리라. ◎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5-37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거룩한 제대에 제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또는>
마르 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를 성자의 살과 피로 기르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다스리시어
저희가 말보다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마침내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3년 06월 09일 금요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우리는 지난 월요일부터 제1독서에서 토빗기를 읽고 있습니다.
토빗기는 유배로 흩어진 유다인들이 이국땅에 살면서도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며
여전히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먼저 친족 관계에 있는 두 유다인 집안이 겪게 되는 불행을 차례대로 서술합니다.
니네베에 살던 토빗은 많은 자선과 선행을 베풀던 신실한 유다인이었지만,
살해된 동포를 몰래 묻어 준 일이 드러나서 결국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나중에는 뜨거운 참새 똥이 눈에 떨어져 시력까지 잃어버리는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엑바타나에 살던 라구엘의 딸 사라는 혼인만 하면
신랑과 한 몸이 되기도 전에 악령이 나타나 그 신랑을 죽이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데,
그런 일이 무려 일곱 차례나 되풀이되면서 여종에게까지 모욕을 당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토빗과 사라가 저마다 탄식하며 드린 기도는 하느님 앞에 다다르게 되고,
하느님께서는 두 사람을 낫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라파엘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이루어집니다.
지인에게 맡겨 둔 아버지의 돈을 찾으러 메디아로 떠나는 아들 토비야와
그 여행길의 안내자로 나서게 된 라파엘이 우연히 큰 물고기를 잡고 그 간과 염통과 쓸개를 얻게 된 사건,
메디아의 엑바타나에 사는 친족의 집에 머물며 그곳에서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 사건 등이 벌어집니다.
물고기에서 얻은 간과 염통은 사라의 악령을 쫓아내는 도구가 되고,
쓸개는 나중에 아버지 토빗의 시력을 되찾는 약으로 사용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토빗과 사라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어우러져 실현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겪는 곤경과 어려움을 못 본 척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자녀들이 바치는 탄식의 기도는 하느님 앞에 반드시 다다릅니다.
그러나 그분의 도움과 보살핌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대로 전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얽히고 설켜
뜻밖의 위로와 치유로 작용하는 체험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지난 2월에 LA에 왔을 때 신부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 유학 중에 공부하면서 한인성당의 미사를 도와주었습니다. 신부님은 무척 바쁘셨습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미국성당에서 주일과 평일 미사를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작년 12월부터 한인성당의 미사를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LA 교구에서는 신부님께 한인성당의 사목을 정식으로 제안하였고, 신부님은 미국성당을 나와서 한인성당의 사제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학교 공부도 다 마쳤고, 이제 한인성당의 사목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을 두 번 만났지만 말씀과 행동이 참 겸손하였습니다. 오랜 수도생활 속에서 얻어진 영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겸손과 영성으로 신부님께서 뿌리는 말씀의 씨앗이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교우들도 하느님 품으로 가신 전임 신부님께서 영성이 깊은 사제를 선물로 보내 주셨다고 기뻐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진리의 협조자 성령을 보내 주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신부님을 보면서 3년 전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2020년 8월은 코로나 팬데믹이 정점에 이를 때였습니다. 신문홍보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때 부르클린 한인성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한국에 가셨는데 11월까지만 미사를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도와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가신 신부님은 건강이 악화되어서 다시 본당으로 복귀할 수 없었습니다. 부르클린 교구는 제게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부르클린 한인성당 미사를 도와주도록 제안을 하였고, 저와 서울대교구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부르클린 한인성당을 정식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일미사만 도와드렸는데 지금은 사목회도 함께하고, 야유회도 같이 갑니다. 장례미사와 연도도 같이합니다. 팬데믹이 풀리면서 신문홍보를 갈 때면 주일미사를 손님신부님께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신부님처럼 겸손하거나 영성이 깊지 않아서 많이 부족하지만 3년 동안 교우들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본당신부와 손님신부는 분명 다릅니다. 본당신부는 책임과 권한이 있습니다. 본당신부는 성사를 거룩하게 집전해야 합니다. 본당의 재정을 충실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신자들의 고민과 아픔을 경청해야 합니다. 함께 사는 수도자와 동료사제들과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본당신부가 권한만 내세우고 책임에 소홀하다면 나쁜 소작인이 될 것입니다. 손님신부는 권한은 없지만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과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일에는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지금 본당신부가 없는 공동체에게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본당신부와 손님신부는 직책에는 차이가 있지만 하느님께서 맡겨 주시는 사명은 같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모든 사제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다투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툼의 원인과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제 귀에 들렸던 말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너 몇 살이냐?’ 그러자 조금 젊은 분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이가 벼슬입니까?’ 어른을 잘 섬기고,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시비를 가리는 기준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가끔 그런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구교우 집안이라는 말, 세례를 받은 연도가 빠르다는 말, 교육을 받은 기수가 빠르다는 말, 성직자 집안 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은 길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얼마나 충실한가를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 다윗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 다니엘을 선택하셔서 수산나의 무죄함을 밝혀 주셨습니다.
진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배움의 깊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직책을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어느 곳에 있어도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교만함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기 때문입니다. 본당신부와 손님신부라는 직책이 본질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다윗도, 구약의 권위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하느님과 직접 소통하시기 때문입니다.
3. 전삼용 요셉 신부 강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제들, 바리사이, 사두가이, 율법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한 다음, 내친김에 이스라엘 전체의 믿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바로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일 수 없다는 논리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 맞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다윗의 후손께 호산나를 외쳐도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육체적으로는 구약의 예언대로 다윗의 후손일지라도 내적으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란 것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너희들에게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을 거야!”란 뜻이 들어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자신들이 조종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놔야 합니다. 며칠 전에 축구 선수 박주호 선수가 은퇴하였습니다. 그는 축구 선수이기도 하지만 세 아이를 둔 가장입니다. 일정에 따라 한두 달 집을 비우는 일도 있어서 가족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기자가 장녀 나은이와 남동생 건우의 반응을 물었습니다. 나은이는 아빠가 은퇴한다고 하였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는 돈을 어떻게 벌거야?”
저도 아버지가 일을 가지 않으면 불안해져서 아버지에게 일 가라고 종용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아버지를 가스라이팅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아이들 아버지의 정체성만 가지고 있다면 분명 가스라이팅 당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건우는 남자 답게 요즘 축구에 많이 빠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은퇴한다고 말했을 때 “왜 축구를 그만둬?” 하며 울려고 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앞으로 너와 축구를 더 많이 할게”라며 건우를 달랬고, 나은이에게는 “앞으로는 다른 일 해볼게”라고 말했더니 안심하더랍니다.
요즘 식당에 가보면 아이들이 상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옆 식탁에 어른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고 난리를 피웁니다. 하지만 부모는 제재 할 줄 모르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애걸하며 부탁합니다. 그런 식으로 교육이 될까요? 부모는 부모이기도 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누군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육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테너이고 얼굴도 잘생겼습니다. 1958년 9월 22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작은 마을 라자티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시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선천성 녹내장을 가지고 태어났고, 12살 때 축구 사고로 조금이나마 볼 수 있던 시력도 잃습니다.
그의 부모는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아이를 지우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에디 보첼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아이라며 아이를 낳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믿음과 사랑에 따른 이러한 결정은 다양한 인터뷰에서 보첼리에 의해 인정되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음성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음성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심각한 선천성 녹내장을 안고 태어났던 보첼리. 다행히 한쪽 눈에는 약간의 시력이 살아 있었습니다. 부모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청각이 예민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음악을 시키기로 합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피아노와 플루트, 색소폰을 배우게 했습니다. 목소리가 아름다웠던 보첼리는 ‘노래 잘하는 소년’이 되어 학교와 성당에서 인정받으며 성가대 독창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하던 도중 골키퍼를 맡고 있던 보첼리에게 날아온 공이 그만 눈에 맞는 바람에 그나마 남아 있던 한쪽 시력마저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오래전부터 갈망하고 꿈꿔왔던 오페라 가수의 꿈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눈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움직임이 있는 공연은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부모는 그의 재능을 더 키워주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12세에 시력을 잃었음에도 전혀 그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고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활동에 참여하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평범한 삶을 살고 꿈을 향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격려는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너가 되는 길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보첼리의 부모, 알레산드로와 에디는 모두 이탈리아 문화와 전통에 깊숙이 박힌 로마 가톨릭의 강한 신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시력이 보이지 않는 아들에게 심한 죄책감을 느껴 그에게 가스라이팅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첼리의 부모는 반은 자녀에게 속해있고 반은 하느님께 속해있었습니다. 하느님께 속해있는 사람은 그래서 심리적으로 자녀들에게 조종 당하지 않으며 당당한 교육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반신이 없는 아이, 제니퍼 브리커를 입양한 샤론과 제랄드 브리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제니퍼에게 지나친 연민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딸로 여기고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제니퍼는 자서전에서 “모든 것은 가능합니다: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믿음과 용기를 찾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장애를 지는 아이에게 잔인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을 믿는 부모는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자녀를 교육합니다. 자녀가 울고 원망하더라도 휘둘리지 않습니다. 연민에 빠지지 않고 빠지게 허락하지도 않습니다. 훌륭한 교육자는 반은 학생에게 반은 자신의 스승에게 속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당연히 다윗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또한 하느님께도 속해있음을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4. 이영근 신부님 복음 묵상
230608.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모든 계명 가운데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마르 12,28)
어제 <복음>의 사두가이와의 논쟁에서, 예수님께서 부활과 부활체의 특성,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 곧 생명의 하느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교사는 그 생명을 길인 계명에 대해서 묻게 됩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마르 12,28)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동의 원리로서의 계명을 말씀하기 전에, 그 계명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왜 중히 여겨야 하는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먼저 밝히십니다. 곧 행위규범으로 사랑을 말씀하시기에 앞서, 왜 사랑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명분과 정당성을 밝혀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이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하느님께서 ‘한 분 이신 하느님’이시라는 사실과 ‘우리 주님’이시라는 의미만을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의 존재와 의미도 밝혀줍니다. 곧 우리가 ‘그분의 것, 그분의 소유’로 그분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나아가서, 그분이 우리를 당신의 차지, 소유로 삼기 위해 ‘먼저’ 우리를 당신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학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
그러니 그는 아직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그가 계명을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이를 몸소 실행할 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아직 선포되지 않은 “새 계명”에 따라 실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뒤에 선포하게 될 “새 계명”은 구약의 이중계명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과 15장에서 선포된 “새 계명”은 이중계명이 한 계명으로 통합되며, 이웃 사랑의 시금석이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15,12)로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곧 당신이 먼저 베푼 사랑을 서로 베푸는 하느님 사랑의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차지하고라도, 오늘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삶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가?” 혹 ‘이익을 얻는 법’, ‘손해보지 않는 법’을 배워가고 있지는 않는가? 더구나 ‘미워하는 법’을 배워가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또 “오롯한 마음으로 사랑을 맨 먼저 앞세우고 있는지?” 물어야 할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 ‘사랑’과 ‘하느님’을 앞세우고 있다면, 하느님과 사랑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의 머리가 가득 차 있어 늘 하느님과 사랑에 대한 말을 할 것이고, 사랑하기 위해 고민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대체 무엇에 제일 관심이 많고, 무슨 생각을 제일 많이 하고, 무슨 말을 제일 많이 하고 살고 있는가?” “하느님인가? 나 자신인가?세상인가?”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주님!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가 되게 하소서.
사랑이 남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한 몸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
내 자신의 몸인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 사랑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내 자신을 통째로 바꾸어 새로워지게 하소서!
이웃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이웃 안에서, 주님이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
[6/9(금)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께서 토빗과 사라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어우러져 실현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겪는 곤경과 어려움을 못 본 척하지 않으십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얽히고 설켜
뜻밖의 위로와 치유로 작용하는 체험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정천 신부)
2.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교만함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다윗도, 구약의 권위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하느님과 직접 소통하시기 때문입니다.(조재형 신부)
3. 하반신이 없는 아이, 제니퍼 브리커를 입양한 샤론과 제랄드 브리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제니퍼에게 지나친 연민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딸로 여기고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제니퍼는 자서전에서 “모든 것은 가능합니다: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믿음과 용기를 찾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장애를 지는 아이에게 잔인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을 믿는 부모는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자녀를 교육합니다. 자녀가 울고 원망하더라도 휘둘리지 않습니다. 연민에 빠지지 않고 빠지게 허락하지도 않습니다. 훌륭한 교육자는 반은 학생에게 반은 자신의 스승에게 속해있어야 합니다. (전삼용 신부)
4.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주님!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가 되게 하소서.
사랑이 남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한 몸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
내 자신의 몸인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 사랑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내 자신을 통째로 바꾸어 새로워지게 하소서!
이웃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이웃 안에서, 주님이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6/9(금) 연중 제9주간 금요일, 제167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소서.
모든 것은 가능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믿음과 용기를 갖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6월9일(금) 6시1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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