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30일 금요일[(녹)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은 당신 백성의 힘이시며, 당신 메시아에게는 구원의 요새이시다. 주님,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당신 재산에 강복하시며, 그들을 영원히 이끌어 주소서.
본기도
저희를 한결같이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보살피시니
저희가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7,1.9-10.15-22
1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10 너희가 지켜야 하는 계약, 곧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은 이것이다.
곧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다.”
15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아내 사라이를 더 이상 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사라가 그의 이름이다.
16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겠다. 그리고 네가 그에게서 아들을 얻게 해 주겠다.
나는 복을 내려 사라가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여러 나라의 임금들도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이 백 살 된 자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그리고 아흔 살이 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18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이스마엘이나 당신 앞에서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하고 아뢰자,
19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너는 그 이름을 이사악이라 하여라.
나는 그의 뒤에 오는 후손들을 위하여
그와 나의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우겠다.
20 이스마엘을 위한 너의 소원도 들어 주겠다.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고,
그가 자식을 많이 낳아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그는 열두 족장을 낳고, 나는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21 그러나 나의 이 계약은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너에게 낳아 줄 이사악과 세우겠다.”
2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 짊어지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화해와 찬미의 제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이 제사의 힘으로 깨끗해져
사랑과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
<또는>
요한 10,11.15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는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저희를 새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거행하는 이 성사로 완전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예전에 김구 선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외모가 반듯한 것보다는 몸이 건강한 것이 좋다. 몸이 건강한 것보다는 덕이 있는 것이 좋다.” 우리는 살면서 반듯한 외모와 건강한 몸에 더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런 것들은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기에 그런 것들이 성공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균형 잡힌 몸매를 보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강인한 체력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 온유한 사람, 덕이 있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한 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험난한 세상을 살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젊어 보이려고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기도 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여전히 하루 3시간 정도는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덕을 쌓는 데는 소홀한 면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먼저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찾아라.”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참된 자아를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삼국지에는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유비가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서 3번이나 제갈량의 집을 찾아간 것을 뜻합니다. 유비에게는 강건한 무장이 있었습니다. 관우, 장비, 조운은 당대 최고의 무장이었습니다. 무장과 함께 작은 싸움에서는 능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략과 전략이 필요한 큰 싸움에서는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싸움을 이끌 지략과 전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천하를 다스릴 큰 싸움을 논할 전략가가 없었습니다. 유비는 제갈량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와 함께라면 작은 싸움은 물론 큰 싸움도 이길 것 같았습니다. 그와 함께라면 능히 천하를 건 싸움에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기에 수모를 감수하고, 자존심을 버리고 3번이나 제갈량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늦은 가을에 찾아갔고, 추운 겨울에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따뜻한 봄에 찾아갔고, 제갈량은 유비를 받아들였습니다. 솥단지가 3개의 발이 있어서 균형을 잡듯이 유비가 제갈량을 얻으면서 드디어 삼국지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유비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체력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나병환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나병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나병환자는 자포자기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였습니다.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만 보았습니다. 나병 때문에 영혼까지 병들고 말았습니다. 어떤 나병환자는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이 나병환자가 된 것은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온 나병환자는 스스로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죄나 자신의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갈망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는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외모는 깨끗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외모와 건강만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허물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의 내면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부로 외면하는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100세가 되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사악을 주셨습니다. 많은 땅과 자손을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갈망을 이야기했던 나병환자처럼 우리들 또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혼을 치유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2.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8,1-4: 한센병 환자의 치유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2절) 한센인이 예수님께 드린 말씀이다. 그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 자신이 치유되든 안 되든, 모든 것은 예수께 달렸다. 치유의 권한은 주님께 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3절) 하시면서 치유를 해주신다. 이 말씀은 당신의 권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며 한센인의 추정을 확인해 주신다. 이 치유 사화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가지신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분은 우리 인간이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에 부딪힌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자녀로서 사랑하고 계시는 분이다.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라.”(4절) 환자가 깨끗이 나으면 그 사실을 개인적 판단에 맡기지 말고 사제에게 몸을 보여야 하는 것이 율법이었다. 사제가 그것을 확인하면 깨끗한 삶이 될 수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족들의 품으로 갈 수 있었다. 사제에게 그런 확인을 받는 것이 당신께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기적은 당신이 행하셨지만, 그에 대한 사실 확인을 사제에게 맡겨 당신이 행한 기적을 판단하도록 하셨다. 우리는 이 환자의 믿음을 볼 수 있다. 많은 소문을 통해 들었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간으로 받아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주님께 대한 이러한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겸손한 자세로 예수님께 말씀드린다. 강요도 하지 않고 요구도 하지 않았다. 다만,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하고 말씀드린다.
이 한센병 환자와 같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인정하는 가운데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이러한 은총을 체험할 것이다. 몸이 썩어가는 한센병이 아니라, 우리 전 인간을 모두 썩게 하는 무서운 죄 중에 있을 때에도, 우리는 오늘 복음의 한센병 환자처럼 주님께 나아가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분 앞에 나아가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은 내가 생각하듯이 어렵고 무서운 분이 아니라, 우리를 언제나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생각하며,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정립하고 그분 안에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629.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이 두 분은 예수님께서 특별한 직무를 맡기신 으뜸 사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베드로는 교회의 ‘주춧돌’로 삼으셨고,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주님께서 베드로를 감옥에 갇혀있는 베드로를 빼내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제2독서>에서는 바오로를 주님께서 바오로를 사자의 굴에서 구출해주시고 굳세게 해 주십니다.
<복음>에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베드로에게 부여되는 권한을 통해서는 교회의 신비를 드러내줍니다.
먼저,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이렇습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으로 ‘그리스도의 신비’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예언자들이 보증해 왔던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인 것만이 아니라, 성부와 절대적이고 유일한 관계를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이 신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것을 베드로에게 알려주셨습니다.”(마태 16,17). 바로 이 신앙의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곧 교회는 “하느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이는 그리스도께서 “반석 위에” 직접 세우신 이 교회가 이 세상 끝 날까지 지탱해 나갈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여기에 또 하나의 놀라운 신비가 있으니, 그것은 베드로에게 부여된 권한을 통해 드러난 ‘교회의 신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특별한 권한이 그에게 부여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행한 것을 “하늘에서” 그대로 인정해 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곧 “매고 푸는” 권한을 하늘에서 보증하고 인정해 준다는 이 어마어마한 사실에 있습니다. 이토록, 베드로 안에서 사람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하늘’이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 모두가 용서를 하면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하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우리 안에서 ‘하늘’이 열리게 됩니다. 곧 내 안에 하느님 나라가 열리는 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늘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곧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주님!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늘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하오니, 묶인 것, 막힌 것을 풀고 사랑하게 하시어
이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열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
-기도, 고백, 유언
어제는 몸살 감기에 심한 열로 꼼짝 못하고 수도원을 찾은 여러 수녀님들의 고백성사만 드리고 많이 누워서 지낸 날입니다. 마침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았고 마침 외출하는 수녀님의 친절한 도움으로 수녀님의 차로 병원앞까지 잘 도착할 수 있었고 잘 처방받아 다시 회복되어 강론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참 감사합니다.
이런 사건 역시 우연이 아니라 은총의 섭리라 믿습니다. 몰라서 우연이지 믿는 이들의 눈에는 모두가 은총의 섭리요 하루하루가 은총의 선물입니다. 날마다 제 나름대론 온힘을 다해 쓰는 강론입니다. 어제 강론에 대한 어느 자매의 답글이 참 반가웠습니다.
“시들고 사라지는 자연의 변화 안에서 저는 삶의 허무와 슬픔을 느끼는데, 신부님은 주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것인가를 생각하시며 정진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으세요. 글 감사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 졸저의 제목입니다. 오늘처럼 두 사도의 축일을 지내다 보면 절실한 물음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입니다. 오늘은 교회의 양대 기둥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저절로 떠오르는 성가 291장 일부를 나눕니다.
“교회의 반석 성 베드로와 선교의 주보 성 바오로는
신앙을 위해 순교하시고 승리의 관을 받으셨도다.
착하신 목자 성 베드로여 천국문 여는 으뜸 사도로
주님께 소명받으셨으니 우리의 도움되어 주소서.
간택된 사도 성바오로는 주님의 사랑 사로잡히어
온세상 두루 다니시면서 부활한 주님 전하셨도다.”
위 가사에서 보다시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사도로 전혀 다릅니다. 서로 같아서 일치가 아니라 주님을 중심으로 서로 보완하면서 일치임을 우리 역시 공동체 생활을 통해 체험합니다. 참으로 서로 같아서가 일치가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한결같이, 끊임없이 바라보며 살아갈 때 다양성의 조화요 일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입니다. 죽어서만 순교가 아니라 하루하루 힘든 일상을 주님과 함께 힘껏 책임을 다하며 사는 이들이 살아 있는 순교자들입니다. 제 주변에는 이렇게 믿음으로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전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같이 힘든 세상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이니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격려하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저는 기도, 고백, 유언 셋으로 나눠 묵상했습니다.
첫째, 기도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의 기도입니다. 성인들은 교회의 사람이요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개인의 믿음은 약해도 공동체의 믿음은 강하니 교회 공동체에 깊이 뿌리 내린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점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일치합니다. 언제나 강론 끝부분에서는 자기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꼭 당부합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교회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두분 사도의 품이자 뿌리내린 기름진 밭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감옥에 갇혀있던 베드로의 생환과정에서 교회공동체의 기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봅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즉시 기도는 응답되어 주님의 천사의 개입으로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의 감격에 벅찬 고백입니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둘째, 고백입니다.
성서의 언어는 대부분 고백의 언어입니다. 참된 언어가 고백의 언어입니다.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주님을 닮아 진실한 사람, 겸손한 참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말을 하고 말이 사람을 만듭니다. 우리 삶의 꼴을 형성하는데 매일 평생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고백은 얼마나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요!
“주님, 당신을 믿습니다!”
“주님, 당신을 희망합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소화 데레사처럼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임종어도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시험문제를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을 통해 자기의 신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며 제자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우리 모두가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 화두같은 물음이 “예수님은 누구인가?”입니다. 구구한 답들이 많습니다만 이에 만족치 못한 주님은 제자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베드로의 신앙 고백의 답이 정확했습니다. 이 또한 우리가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 신앙고백입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감격한 주님은 이런 고백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려 주셨기 때문이라며 고백 역시 은총임을, 은총의 고백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은총의 고백이요 고백의 축복입니다. 이어서 축복과 더불어 하늘 나라의 열쇠라는 엄청난 책임을 베드로에게 부여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셋째, 유언입니다.
임종어가 유언이요 평생 좌우명이 또 묘비명이 될 수 있습니다. 미리 임종어를 예상하여 평소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 보는 것입니다. 이런 임종어가 좌우명이 나의 모습을 주님을 닮은 참나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모해 갈 것입니다. 제2독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저에겐 사도의 유언처럼 들립니다. 복음 선포의 삶에 전력투구, 최선을 다해 살아온 주님의 전사, 복음의 전사 바오로 사도의 장엄한 고백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인지요! 평생 지침으로 삼고 하루하루 이렇게 살 때 그대로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일 것입니다. 성 베드로의 평생 좌우명이자 묘비명은 다음 두 말마디일 것이라 제 나름대로 추측합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에 항구할 수 있을까요? 늘 기도하는 것이며, 늘 고백하는 것이며, 늘 유언을 좌우명으로 삼아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이렇게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저의 유언이자 좌우명이요 묘비명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동안 많이 인용했지만 저에겐 늘 새롭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6/30(금)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주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갈망을 이야기했던 나병환자처럼 우리들 또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혼을 치유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조재형 신부)
2.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하고 말씀드린다.
이 한센병 환자와 같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인정하는 가운데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이러한 은총을 체험할 것이다. (조욱현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주님!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늘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하오니, 묶인 것, 막힌 것을 풀고 사랑하게 하시어
이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에 항구할 수 있을까요? 늘 기도하는 것이며, 늘 고백하는 것이며, 늘 유언을 좌우명으로 삼아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6/30(금)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제 188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나병 환자를 고쳐주신 하느님!
전지전능, 무소불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저에게 역사하소서. 아멘.
- 2023년 6월30일(금) 5시4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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