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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7월 11일 화요일[(백)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7월 11일 화요일[(백)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무렵 이탈리아 중부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동굴에서 3년 동안 고행과 기도의 은수 생활을 하였다. 그의 성덕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베네딕토는 마침내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재물의 사유화를 금지하고 공동생활과 정주의 의무를 명백히 규정한 수도 규칙서를 만들었다. 이 규칙서는 수도 생활의 표준 규범서로 삼을 정도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베네딕토 아빠스는 547년 무렵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하였다고 전해진다.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그를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입당송

베네딕토는 그 이름대로 복을 받아 거룩하게 살았네. 그는 가족과 유산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거룩한 수도 생활을 추구하였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베네딕토 아빠스를 뛰어난 스승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을 섬기라 가르치셨으니
저희도 오로지 하느님만을 사랑하며
열린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네가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32,23-33
그 무렵 야곱은 밤에 23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건널목을 건넜다.
24 야곱은 이렇게 그들을 이끌어 내를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25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26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30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31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32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33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짐승의 엉덩이뼈에 있는 허벅지 힘줄을 먹지 않는다.
그분께서 야곱의 허벅지 힘줄이 있는 엉덩이뼈를 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7(16),1.2-3.6-7.8과 15(◎ 15ㄱ 참조)
◎ 주님,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오리이다.
○ 주님, 의로운 사연을 들어 주소서. 제 부르짖음을 귀여겨들으소서. 거짓 없는 입술로 드리는, 제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
○ 당신 앞에서 저에게 승소 판결 내리소서. 당신 눈으로 올바름을 보아 주소서. 제 마음 떠보시고 밤중에도 캐 보시며, 저를 달구셔도 부정을 찾지 못하시리이다. ◎
○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놀라우신 당신 자애를 베푸소서. 당신 오른쪽으로 피신하는 이들을, 적에게서 구해 주소서. ◎
○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0,1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 알렐루야.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잠언 2,1-9)와 복음(마태 19,27-29)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베네딕토를 기리며 드리는 이 거룩한 제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그를 본받아 주님만을 찾고 섬기며
주님께서 주시는 일치와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보증을 받고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복된 베네딕토의 가르침에 따라 주님을 충실히 섬기며
진심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성 베네딕토 아빠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대한민국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특성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을 많이, 자주 사용한다고 합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동네, 우리 남편이라고 합니다. 나의 남편, 나의 아내가 맞는 말 같은데 우리라는 말을 자주하니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고 합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우리는 고려, 조선으로 왕조는 바뀌었지만 거의 1,500년가량 한 국가의 통치 체제에 있었습니다. 외세의 침입은 1,000번 이상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외세의 침입에는 똘똘 뭉쳐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라는 말에는 친밀함이 있고, 동질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사말에는 밥은 먹었는지요?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인사말입니다. ‘십시일반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주변에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이 있으면 나의 일처럼 도와주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아이가 울면 일본 사람은 아이 엄마를 째려보고 아이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다음 역에서 내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울면 사람들이 가서 아이를 달래 주려고 하고, 아이 엄마가 다음 역에서 내리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라는 친밀감이 있어서입니다. 식당에서도 일하는 분을 이모라고 부르고, 친구의 엄마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우리라는 친밀감이 가족을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야곱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특성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느님께 선택 받았다는 선민의식이 있습니다. 당대의 많은 나라는 여러 신을 섬겼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오직 야훼 하느님만을 섬겼습니다. ‘유일 신을 믿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구약성경이라고 부릅니다. 신약성경과 함께 성경은 21억 명 이상의 인구가 매일 접하고 있습니다. 한 민족의 이야기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삶의 이정표로 삼는 경우는 이스라엘이 유일합니다. 신약성서는 예수님의 족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었음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그리고 딸을 고쳐 달라는 이방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먼저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을 돌보아야 한다.” 그러자 이방인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강아지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은 먹습니다.” 이스라엘은 서양문화의 원류가 되었고, 이스라엘은 신약의 뿌리였으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와 교회는 이스라엘이라는 토양에서 잉태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한국교회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교회를 받아들였습니다. 한국교회는 100년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신앙 때문에 재산을 버렸고, 벼슬을 포기했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는 것은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용감하게 순교로서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7000킬로를 걸었습니다.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는 사제를 영입하기 위해서 얼어붙은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습니다. 복녀 강완숙 골롬바는 목숨을 걸고 사제를 보호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박해를 받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이 정말 작은 이유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같은 현실입니다. 우리는 선조들이 지켜온 신앙을 충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쉽지만 의미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2. 2023년 07월 11일 화요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의 구마나 기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경우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의미를 전달합니다.

오늘 복음도 그 대표적 예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주인공은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그러자 그가 다시 말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갈래입니다.

군중은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놀라워합니다.

마귀를 쫓아낸 데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예수님께서 말을 못 하는 사람을 다시 말하게 하신 데 대한 반응으로 보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이와 반대되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서 마귀를 쫓아낸 것에 더 집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업적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말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셨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귀가 들린 것과 그 때문에 말을 못 하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군중은 말을 못 하던 이가 말을 하게 된 사실에 더 놀라고

바리사이들은 마귀를 쫓아낸 것을 확인하여 줍니다.

아마도 복음은 군중의 반응과 함께 바리사이들의 반응을 전하면서 

한편으로 말을 하게 만드신 예수님의 업적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마귀를 쫓아내신 능력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업적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든 

말을 못 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710. 연중 제14주일 월요일.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마태 9,18) 

오늘 <복음>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소생 이야기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치유 이야기입니다.
 
야이로는 회당 장으로서 명예와 존경을 받는 자였지만, 죽어가는 어린 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을 뿐입니다. 그 속수무책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 모든 희망이 무너져 버린 참담한 순간입니다.
 
또한,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었던 여인은 그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느라 고생하였지만, 가진 것마저 모두 탕진해 자포자기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바로 이 절망의 순간, 억울함과 원망이 밀어닥치는 이 순간, 하염없이 넘어지는 이 순간이 그들에게는 더 깊은 데서 물을 길어 올리게 하였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더 깊은 곳으로부터 믿음을 퍼 올리는 기회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믿음의 시련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기회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순간이 그를 더 깊은 믿음에로 이끄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도 혈루증 여인도 예수님께 희망을 두고 믿었지만, 사실 그들의 믿음은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믿음은 언뜻 보기에는 미신적이기까지 합니다, 어찌 보면 주술적이고 마술적이기 까지 합니다. ‘이미 죽은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면 다시 살아나리라.’는 회당 장의 믿음 역시 억지 부리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짓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났다고 여길 때,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실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절망적이라고 여길 때, 바로 그때가 구원의 때요, 은총의 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그분을 밀쳐대는 이는 많지만, 믿음으로 만지는 이는 적습니다.”
 
바로 이 순간 주님을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님의 옷깃을 만지는 일이 필요합니다. 만약,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약한 까닭일 것입니다. 베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단순한 마음이 아니라 의심과 이중성으로 주님께 다가가기 때문에 만져도 만져지지 못합니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거나, 예수님이 손을 얹어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바꾸실 수 있는 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요,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과 자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 곧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줍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에 빠지는 일이 없이, 끝까지 믿고, 오로지 예수님께만 희망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으로 이끄시는 그분의 전능한 손길에 우리의 손을 맡겨드려야 할 일입니다. 믿음의 손으로 그분의 옷을 부여잡고 그분의 권능과 자비가 우리들 안에 흘러들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마태 9,18)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지문을 새기셨습니다.
선악과를 붙잡았던 제 손을 대신하여, 당신 손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 손을 얹으시어, 저를 축복하소서!
제 안에 새긴 당신 얼을 새롭게 하소서!
제 온몸에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제 손을 잡는 이마다 사랑의 전등이 켜지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하느님을 찾으라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집, 하늘의 문이다”-

  

“항상 깨어 있으시오.”(마태25,13)

왜관 수도원에서 내일 7월11일 수도서원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는 김치삼 알렉산델 수사의 상본 성구입니다.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너는 걱정하지 마라.”(이사41,10)

역시 내일 7월11일 왜관 수도원에서 수도서원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는 고건상 멜키올 신부의 상본 성구입니다.

 

1973년 첫서원후 반세기 50년 동안 한결같이 평범한 일상에 충실하면서 수도원에서 정주해온 두 분 수도자의 삶이 참 위대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더불어 두분의 응답의 노력이 함께 이뤄온 놀라운 성취입니다. 저절로 나오는 제가 참 좋아하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구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시편118,1)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시편89,2ㄱ)

 

하루하루 하느님만을 찾으며 50년 동안 평범한 일상에 충실해온 두분 수도자입니다. 위 수도자는 저보다 두 살 위이지만 저는 1986년 첫서원을 했으니 수도연륜으로는 13년 선배입니다. 당시 저는 교대재학중 입대하여 군복무중이었고 저는 1974-1981년까지 8년동안 교편생활하다 1982년 입회했으니 하느님의 부르심은 이처럼 참 다양하고 신비롭습니다. 늦은 나이에 출발했기에 남보다 2배는 충실히 산다는 각오로 하루하루 절박하게 살아왔고 지금 이렇게 강론을 쓰고 있습니다.

 

참 중요하고 힘든 것이 평범한 일상에 한결같이 충실한 삶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 옛 사막교부의 금언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간절한, 절박한, 절실한 갈망이, 열정이 있을 때, 때가 되면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하느님입니다. 

 

어제의 각별했던 만남에 감사했습니다. 이 또한 하느님을 찾는 간절한 열망이 있기에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일입니다. 1998년부터 그러니까 25년동안 한결같이 제 시집과 강론을 정리하여 복사 제본해다 준 자매인데 대학 강의중 3월초 과로로 인한 뇌졸증으로 쓰러진후 재활병원에 입원중 만4개월만에 처음 외출하여 수도원 오전 10시 주일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하느님을 찾아 수도원 미사에 참석했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특별한 반가움에 외출하여 점심식사를 함께 나눴고 다시 재활병원에 귀원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 했습니다. 간절한 열망, 절박한 마음에 눈만 열리면 언제 어디서 제 때에 찾아와 만나 주시는 주님입니다. 다음 고백 그대로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 꽃자리 천국이옵니다.”

 

아, 문득 의술醫術이 인술仁術임을 보여준 치과의사 형제의 감동적 일화가 생각납니다. 연초록 풀잎에 맺힌 투명한 빗방울이 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진과 함께 보내준 카톡메시지입니다.

 

“주일이지만 보호자분의 간절한 요청으로 아는 수녀님과 함께 뇌졸중으로 와상중인 35세 청년의 치아 검진을 위해 봉천동에 갑니다...빗속을 뚫고 가서 만난 봉천동 청년은 참 해맑았습니다. 헌신적인 어머님의 사랑이 느껴져서 그 짧은 검진과 간단한 잇몸 처치의 시간이 제겐 더 큰 은총이었습니다...투명한 빗방울처럼 제 영혼이 맑아지는 밤이길 기도합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의 만남에 치유의 구원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찾는 간절한 열망이 있을 때 바로 거기가 주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the sacred place)’가 됩니다. 오늘 형 에사우의 보복을 피해 도주중인 야곱의 심정은 참으로 막막하고 답답했을 것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중에 간절히 하느님을 찾았을 것이며 꿈중에 주님을 만나 확약을 받습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고, 너를 다시 이땅으로 데려 오겠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자 소스라치게 놀라 고백합니다.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베개를 가져다 기념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붓고,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작명합니다. 이 아름답고 은혜로운 주님과 만남의 추억은 늘 평생 야곱의 뇌리에 생생했을 것입니다. 

 

절박하게 하느님을 찾을 때, 바로 거기에 하느님은 찾아 오시고 바로 거기가 하느님의 집, 하늘의 문이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회당장과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창세기의 야곱처럼 양상은 달라도 주님을 찾는 갈망은 하늘에 닿았기에 마침내 주님을 만납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느님과 만나는 거룩한 장소가 된 것입니다. 당시 곤경중에 있던 분이 둘 뿐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갈망과 열망의 사람 회당장과 혈루증을 앓던 둘뿐이었습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쫓아내신 뒤에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자 소녀가 일어납니다. 

 

그 사이 예수님은 자기 옷자락에 손을 댄 여자의 간절한 열망의 믿음을 알아채린후 즉시 치유의 구원을 선언합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 주님과 만남의 일화인지요!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주님을 찾으십시오. 간절한 열망의 믿음이 있을 때 바로 거기가 하느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이 됩니다. 주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전례가 거행되는 여기가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입니다. 주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을 받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주셨네.”(2티모1,10). 아멘.


[7/11(화)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쉽지만 의미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조재형 신부)

 

2.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비난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업적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말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셨다는 것은 명확합니다.(허규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마태 9,18)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지문을 새기셨습니다.
선악과를 붙잡았던 제 손을 대신하여, 당신 손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 손을 얹으시어, 저를 축복하소서!
제 안에 새긴 당신 얼을 새롭게 하소서!
제 온몸에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제 손을 잡는 이마다 사랑의 전등이 켜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쫓아내신 뒤에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자 소녀가 일어납니다. (이수철 신부)

 

[7/11(화)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제 199일 기도]

 

하느님! 야훼이레, 임마누엘 하느님!

죽은이를 살리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권능에 감사합니다.

저를 살려주소서. 

저를 한시도 놓지 마소서.

나태해지는 저를 일으켜주소서.

아멘.

 

- 2023년 7월11일(화) 6시1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