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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8월 11일 금요일[(백)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8월 11일 금요일[(백)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클라라 성녀는 1194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복음적 생활에 감명을 받은 그는 수도 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클라라 수도회를 세웠다. 수도 생활에 대한 집안의 반대가 심하였으나, 오히려 동생 아녜스마저 언니 클라라의 뒤를 따라 수도자가 되었다. 클라라 성녀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철저하게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다. 성인은 1253년에 선종하였으며, 알렉산데르 4세 교황이 1255년에 시성하였다.

입당송

이 슬기롭고 지혜로운 동정녀는 등불을 밝혀 들고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갔네.

<또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님의 화관, 영원한 동정의 화관을 받았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클라라를 자비로이 이끄시어 가난을 사랑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가난의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다가
마침내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4,32-4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2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34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35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36 그분께서는 너희를 깨우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당신의 소리를 너희에게 들려주셨다.
또 땅 위에서는 당신의 큰 불을 너희에게 보여 주시고,
너희가 불 가운데에서 울려 나오는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해 주셨다.
37 그분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38 그리하여 너희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내쫓으시고,
너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오늘 이처럼 이 땅을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것이다.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40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7(76),12-13.14-15.16과 21(◎ 12ㄱ)
◎ 저는 주님 업적을 생각하나이다.
○ 저는 주님 업적을 생각하나이다. 그 옛날 당신이 이루신 기적을 생각하나이다. 당신의 모든 행적을 되새기고, 당신이 하신 일들을 묵상하나이다. ◎
○ 하느님, 당신의 길은 거룩하옵니다. 하느님처럼 위대한 신이 어디 또 있으리이까? 당신은 기적을 이루시는 하느님, 백성들에게 당신 권능을 드러내셨나이다. ◎
○ 당신 팔로 당신 백성을, 야곱과 요셉의 자손들을 구원하셨나이다. 당신은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끄셨나이다. ◎

복음 환호송

마태 5,10
◎ 알렐루야.
○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3,8-14)와 복음(마태 19,27-29)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동정녀 클라라를 기리는 저희가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앞에 엎드려 청하오니
그의 공로를 기꺼워하셨듯이
저희가 바치는 제사도 기쁘게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25,6 참조
보라, 신랑이 오신다. 주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가라.

<또는>

시편 27(26),4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천상 선물을 나누어 받고 비오니
저희가 복된 클라라를 본받아
예수님의 수난을 깊이 새기며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성녀 클라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제게는 묵주반지가 있습니다. 2016년 은경축에 선물로 받았던 십자가를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어머니께서 묵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묵주는 손가락에 끼고 다니니 늘 곁에 있어서 좋았습니다. 묵주를 보면서 어머니께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묵주는 신앙인임을 드러내는 표지이지만 그 묵주가 나의 신앙을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묵주를 이용해서 매일 기도할 때에 나의 신앙은 성장하고, 나의 신앙은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직원 중에 매일 혼인성사의 징표인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다니는 분이 있습니다. 혼인한지 40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반지를 끼고 다닙니다. 반지를 늘 끼는 그 정성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혼인과 가정을 지켜주는 것은 혼인반지가 아닙니다. 혼인반지를 아끼는 그 정성으로 배우자와 가족들 돌보는 헌신과 사랑이 있기에 그 가정은 성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가정에는 대부분 벽에 십자고상(十字苦像)’이 있습니다. 십자고상은 신자라는 표식은 되지만 그것이 그 가정을 지켜주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삶을 따를 때 그 가정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모세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쫓아오는 파라오의 군대를 피해서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굶주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모세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응답할 차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신앙도 주고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니 이스라엘 백성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응답해야 합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이 십계명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지킬 때 이스라엘 백성은 참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은 꼭 젖과 꿀이 흐르는 장소가 아닙니다. 약속의 땅은 시련과 고난이 있어도 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킬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도록 해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해 주셨습니다. 죽었던 라자로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표징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표징 때문에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랐고, 그 표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표징이 제자들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표징이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표징은 우리를 구원에로 안내하는 이정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가야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강론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영웅적인 겸손과 빛나는 가난의 성녀 클라라!


목숨이라고 다 같은 목숨이 아닌 것 같습니다. 참으로 구차스럽고 굴욕적인 목숨이 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견뎌내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목숨이 있습니다. 이게 과연 살아있는 건가? 하는 짙은 회의감이 들 정도로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목숨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기쁨과 의미로 충만한 목숨이 있습니다. 넘치는 생명력과 활기,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한 찬란한 목숨이 있습니다. 그런 목숨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고,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합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목숨입니다.


이 땅에 육화 강생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목숨을 살아가셨습니다. 물론 적대자들의 미움과 분노로 인해 하루하루 목숨이 위태로운 생애를 사셨지만, 놀랍게도 매일 죽음과 맞닿은 삶을 사시면서도, 넘치는 생명력과 활기로 가득 찬 충만한 목숨을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오늘 우리에게 참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아버지 마음에 들며,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인간으로서의 목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인지를 명쾌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런 목숨을 만끽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 24-25)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시는 클라라 성녀 역시 그토록 놀랍고 충만한 목숨을 만끽하며 살다 가신 좋은 본보기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클라라는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다미아노 성당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당시 아시시의 교구장이셨던 귀도 주교님께서는 극구 사양하는 그녀를 수녀원장에 임명하였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 직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수녀원장인 그녀였지만 수녀원의 허드렛일은 당연히 자신의 일이려니 생각하고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해나갔습니다. 그녀가 유독 좋아하던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동료 수녀들이 식사할 때 ‘서빙’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밭일을 끝내고 흙먼지투성이의 발로 들어오는 동료 수녀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는 일이었습니다. 발을 다 씻긴 그녀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재빨리 수녀들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클라라의 잠자리는 아무것도 깔지 않은 맨바닥이었습니다. 냇가에서 주워온 돌이 베개였습니다. 작디작은 빵 한조각과 물 한잔이 매끼니 식사였습니다. 실내장식이나 난방은 고사하고 아무런 설비도 안 갖춰진 누추한 거처에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가난이 무엇인지, 추위에 떤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고픔이 무엇인지, 피로에 지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제로, 온몸과 마음으로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그녀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정원에 핀 첫 꽃송이로서 마치 빛나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희고도 순수한 봄꽃과도 같이 향기로웠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 프란치스코의 딸이었으며 가난한 클라라회의 창설자였습니다.”


클라라는 한평생 봉쇄구역 안에서의 관상 생활에 전념하였지만, 자신의 삶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의 서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하늘 아래에서 내가 바랐던 아무도 훔쳐 갈 수 없는 그 기쁨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에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도 주님 안에서 늘 즐거워하며, 슬픔이나 우울감이 그대를 덮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영원의 거울 앞에 놓으십시오. 그대의 영원을 영광의 광채 속에 두십시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810.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요한 12,26)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헬라인들이 예수님 뵙기를 청합니다. 그러자 이를 알리는 필립보와 안드레아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왔음을, 곧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습니다.”(요한 12,23)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대체 어떤 힘이 이 밀알을 죽음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묘하게도 밀알을 죽게 하는 힘은 생명력입니다. 그러니 (살리기 위해)‘죽을 수 있는 힘’이 생명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밀알은 먼저 땅에 떨어져야 하고, 죽어 묻혀야 하고, 묻혀 사라져 자신이 없어지고서야 비로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 생명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죽음의 고통이 꼭 필요합니다. 곧 죽음의 고통은 ‘새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요, 자기를 벗게 하는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당위성을 말해줍니다. 곧 땅에서의 ‘죽음’이 생명의 끝이 아니라, ‘참된 생명’(“영원한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곧 ‘죽음’이 실재를 보존하는 길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개방이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요한 12,26)
 
이는 ‘섬긴다는 것’과 ‘따른다는 것’의 긴밀한 연관성을 말해줍니다. 누군가가 따른다고 말하면서 따르는 그를 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따름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섬긴다고 말하면서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도 진정한 섬김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따라 나서서 그분을 섬길 때라야 진정 따르는 것이 됩니다. 곧 우리가 그분을 따라 나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분을 섬기기보다 ‘따라 나선 자신’을 섬기고 있거나, 수도자가 집과 가족을 떠나 왔지만 ‘떠나온 자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 진정한 따름에도 진정한 섬김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사람은 당신을 영광스럽게 할 그 죽음의 길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분의 죽음의 길에 함께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당신을 따르고 섬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 속에서 죽는 장엄한 순교의 길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함께 있는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곁에 있는 형제를 종중하고,
함께 계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영원한 삶

-주님을 섬기고 나누고 따르는 삶-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낙으로 삼는 이!”(시편112,1)“

 

오래전 애독했던 ‘니코스 카찬스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읽다가 흥미있는 예화가 있어 나눕니다. 

 

-옛날 후궁에 많은 아내를 거느린 위대한 왕이 살았는데 그는 무척 잘 생겼고, 잘 먹고, 잘 지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수도원에 가서 고행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불쌍하다는 듯 고행자를 쳐다보았습니다.

“정말 굉장한 희생을 치르시는군요.”

그가 말하자, 

“당신의 희생이 더 커요.”

고행자는 대답했습니다.

“어째서요?”

“나는 덧없는 삶을 버렸는데, 당신은 영원한 삶을 버렸으니까요.”-

 

-어느 날 젊은 여자가 사막의 안토니오를 찾았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계명을 모두 지켰고, 정성껏 주님을 섬겼습니다. 주님은 저를 위해 천국문을 열어 주시겠죠?”

이어지는 안토니오와 여자와의 대화입니다.

“당신에게는 가난이 부유함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아바”

“불명예는 명예가 되고요?”

“아닙니다. 아바”

“적들은 친구가 되고요?”

“아닙니다. 아바”

“그렇다면 아가씨, 지금 당신은 아무 것도 갖지 못했으니 어서 가서 정진하세요.”

 

그대로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게하는 일화들입니다. 덧없는 삶중에 어떻게 하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어떻게 살아야 덧없는 삶중에도 모두를 지닌 내적 부요의 삶, 영원한 삶을, 희망과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을 섬기고 나누고 따라 살면 됩니다. 어제 써놓은 짧은 깨달음의 글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휴가나온 인생인데

남은 휴가 얼마 안남았는데

날마다 휴가처럼 사는데

새삼 무슨 휴가?”-

 

덧없이 흐르는 세월, 하루하루가 소중한 인생 휴가의 선물입니다. 하루하루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래야 하루하루가 영원한 삶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할 자리, 오늘 지금 여기의 꽃자리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이런 진리를 말해줍니다. 주님께서 친히 영원한 삶의 비결을 말씀해 줍니다. 무지의 눈을 활짝 열어 영원한 삶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바로 예수님을 비롯한 순교성인과 순교적 삶을 살았던 모든 이들을 그러했습니다. 이미 살아서 끊임없이 사랑으로 버리고 비워 죽어감으로 무수한 열매를 맺기 시작한 삶이 영원한 삶입니다. 죽어서가 아닌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된 순교적 삶을 사는 이들이 그러합니다. ‘악귀는 욕망을 먹고 자란다’ 며칠전 신문에서 읽은 대목입니다. 누구나 세상 욕심중에 살면 악귀가 될 수 있습니다. 참사람이 되는 길은 다음뿐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자기 목숨을 지고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 이들이 정말 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목숨에 초연한 사람들로 자기를 비워가는 무욕의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늘 사랑으로 섬기고 따르는 주님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닮의 여정에 항구함이 답입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예수님을 사랑하여 섬기고 나누고 따를 때 끊임없는 자기초월의 비움의 삶, 겸손한 삶, 영원한 삶, 천국의 삶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구원의 삶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새삼 우리의 단 하나의 영성은 “섬김servive과 종servant의 영성”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나눔이 주님을 따름입니다. 섬김과 나눔과 따름중에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의 일치요 아버지의 존중과 사랑이 뒤따릅니다. 저절로 나오는 주님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 고백대로 살 때, 영원한 삶입니다. 자발적 사랑으로 이런 주님을 선택하여 사랑을 훈련하며 살 때 사랑의 습관화와 더불어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 일치의 관계입니다. 주님과 일치가 깊어지면서 자발적 나눔의 기쁨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섬김의 표현이 나눔이요 따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의 섬김과 나눔의 삶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갈 때 하느님의 은총은 차고 넘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성인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스페인 출신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역시 예수님과 같은 나이 33세, 발레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기 까지, 덧없는 삶중에도 영원한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성인은 순교직전 교회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눠준후 이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리고 나타나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준 성인입니다. 영원한 삶에 활짝 눈이 열렸기에 참보물이 가난한 사람들임을 알아챘던 성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 늘 현존하시는 참보물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성인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는 주님의 식탁에서 주님을 받았기에 그 보답으로 자기 자신을 주님께 제물로 바쳐드렸습니다.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죽음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았습니다.”

 

시인 프루텐타우스는 “그의 죽음과 표양이 로마의 회개를 가져왔고, 로마에서 이교의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며 그를 칭송합니다. 성인의 축일은 4세기부터 교회전례에 도입되고 그에 대한 공경은 널리 빠르게 확산되어 로마와 여러 도시의 수호성인이면서 빈민과 요리사, 소방관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모든 성인이 그러하지만 성 라우렌시오 부제 역시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고 따름으로 덧없는 삶중에도 주님과 일치되어 영원한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덧없는 삶중에도 온갖 유혹에서 벗어나 초연한,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시편112,5-6). 아멘.


[8/11(금)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가야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클라라는 한평생 봉쇄구역 안에서의 관상 생활에 전념하였지만, 자신의 삶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의 서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하늘 아래에서 내가 바랐던 아무도 훔쳐 갈 수 없는 그 기쁨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에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도 주님 안에서 늘 즐거워하며, 슬픔이나 우울감이 그대를 덮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영원의 거울 앞에 놓으십시오. 그대의 영원을 영광의 광채 속에 두십시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함께 있는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곁에 있는 형제를 종중하고,
함께 계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오늘 축일을 지내는 스페인 출신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역시 예수님과 같은 나이 33세, 발레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기 까지, 덧없는 삶중에도 영원한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성인은 순교직전 교회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눠준후 이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리고 나타나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준 성인입니다. 영원한 삶에 활짝 눈이 열렸기에 참보물이 가난한 사람들임을 알아챘던 성인입니다. (이수철 신부)

 

8/11(금)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제230일 기도]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복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한평생 봉쇄구역 안에서의 관상 생활에 전념한 클라라 수녀!

자신의 삶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으로 확신한 클라라 수녀를 묵상합니다. 

나도 클라라 수녀처럼...

하느님 안에서 늘 즐거워하며,

슬픔이나 우울감이 나를 덮치지 못하게 기도합니다.

아멘.

 

- 2023년 8월11일(금) 6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