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8월 13일 주일[(녹) 연중 제19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대영광송>
본기도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9,9ㄱ.11-13ㄱ
그 무렵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9 있는 동굴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11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12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저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9,1-5
형제 여러분,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2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5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나 주님께 바라네. 주님 말씀에 희망을 두네.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22-33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를 굽어살피시어, 교회가 세상의 온갖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믿으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충실한 도구가 되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문명의 발달 속에서도 어려움은 더 많아진 세상을 굽어보시어, 서로 이해하고 믿음을 키우며, 진정한 대화와 협력을 이루고 참평화로 나아가게 하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의 주님, 질병의 고통을 겪는 이들을 살펴 주시어, 그들의 아픔을 없애 주시고, 안정을 되찾아 몸과 마음의 온전한 쉼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영원한 목자이신 주님, 저희 본당 공동체를 보살펴 주시어, 주님께서 저희와 늘 함께하심을 믿고 모든 일에서 주님을 찾으며,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의 자비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교회가 드리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주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오니
이 세상에서 날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할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고 있나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니
성령의 첫 열매를 지닌 저희에게도
파스카 신비가 영원히 이어지리라 희망하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진리의 빛으로 저희를 굳세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 19 주일
1980년 고등학교 때입니다. 성당 친구들과 문산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문산가는 기차는 서울역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늦게 오는 친구들이 있어서 저는 남아 친구들에게 표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저와 친하게 지내던 여자 친구를 친구에게 부탁했습니다. 제 친구는 저의 여자 친구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서울역에서 문산으로 가는 길에 둘이 더 친해졌습니다. 저는 나중에 문산에 도착해서 어색해진 분위기를 알았습니다. 그렇게 저의 여자 친구는 친구의 여자 친구가 되었고, 저는 둘이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는 아니었지만 신학교에 들어갔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43년 전 딱 이맘때의 일입니다. 친구들을 위해서 표를 전해 주었던 저를 하느님께서는 어여삐 봐 주셔서 제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제가 되는 동기는 거룩할 수도 있지만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여름이면 ‘남량특집’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날이 더우니 무서운 내용의 드라마를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구미호’였습니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한 여름의 열기를 식힐 수 있었습니다. 저의 삶에도 남량특집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순간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군대에 있을 때입니다. 저는 신학생이어서 성당 군종병으로 선발 되었습니다. 처음 3달은 잘 지냈는데 저의 부족함 때문에 성당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본부중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잔디밭에 거름을 주라고 했는데 귀찮아서 몇 군데만 주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니 거름을 지나치게 많이 뿌린 곳의 잔디는 노랗게 변하였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의 실수가 있었고, 신부님은 저를 다른 곳에서 근무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입니다. 신부님의 엄한 질책이 있었기에 저는 남은 군 생활을 정신 차리고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제가 되어서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사목국에서 교육담당 업무를 할 때였습니다. 저는 4시에 강의가 있었지만 1시에 미리 와서 분위기를 보았습니다. 봉사자들은 제가 미리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분위기를 대충 보았고, 성당 앞을 보니 ‘불가마’ 사우나가 있어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사우나에서 쉬고 있는데 방송으로 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저는 사우나에 방송 시설이 있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한편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사우나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사연을 들으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2시에 강의를 해야 할 신부님이 교통체증으로 늦을 것 같다고 연락했다고 합니다. 봉사자는 제가 있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와 시간을 바꾸면 된다고 했습니다. 봉사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봉사자는 제가 성체조배하는 줄 알고 성당에 갔는데 거기에 저는 없었습니다. 제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줄 알고 성모상 앞으로 갔는데 거기에도 저는 없었습니다. 사제관에서 신부님과 대화하는 줄 알고 사제관에 갔는데 거기에도 저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불가마에서 저를 찾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의 이름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저는 부랴부랴 사우나에서 나와 강의를 했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도 한편의 남량특집같습니다. 엘리야는 하느님을 체험하는데 하느님께서는 큰 바람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 속에 계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성공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재물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권력 속에서 찾으려고 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깊은 침묵 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으면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우리들 또한 신앙의 여정 속에 자주 흔들리곤 합니다. 유혹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시기와 질투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교만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두려움의 바다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빠지지 않고 주님께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인생과 역사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어떠한 시련에도 의연하게 맞서며,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연중 제19주일
마태오 14,22-33
악과 어둠과 죽음의 정복자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은 좁은 국토면적을 가진 소국이지만 아주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은 서쪽의 지중해라는 큰 바다와 동쪽의 거대한 사막 사이에 끼어있는데
그래서 ‘사이의 땅’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아열대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교차하는 독특한 기후 조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고산지대가 있는가 하면 바다 수면보다 수백 미터나 낮은 지역들이 있어
지역적으로 다양한 기후를 갖고 있지요.
고산지대인 예루살렘은 꽤 쌀쌀하지만, 저지대인 사해 부근은 혹독한 더위를 견뎌내야 합니다.
메마른 유다 광야에는 풀 한 포기 찾기 힘들지만, 해안가나 갈릴래아 호숫가는 푸르고 온난합니다.
갈릴래아 호수 역시 이런 독특한 지리와 기후의 영향을 받아 자주 특별한 모습을 보입니다.
평소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깜짝 놀랄 정도의 풍랑이 일기 시작합니다.
멀리 헤르몬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찬바람과 아라비아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갈릴래아 호수 상공에서 부딪치기라도 하면 심한 기류의 이동이 발생해 마치 바다처럼
높은 파도가 일렁거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릴래아 호수라고 하지 않고 바다라고까지 칭할 정도였습니다.
군중을 해산시킨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보내십니다.
그리고 자신은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육로로 가기는 너무나 먼 길이었기에 제자들은 갈릴래아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에 승선합니다.
하필 제자들이 배에 오르자마자 악천후가 시작되고 맙니다.
제자들의 고초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배에 태워 보낸 시간은 오후 4~5시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새벽녘까지 호수 한가운데서 헤매고 있었으니 적어도 10시간 가까이
탈진할 정도로 노를 저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했으면 새벽녘에 물 위를 걸어 자신들 가까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유령이다!”라며 소리까지 질러댔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의 단절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스승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정체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분이 바로 메시아라는 확신에 도달하지 못함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아직도 스승을 향한 제자들의 믿음이 확고하지 못함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우리 각자 역시 갖은 역풍과 맞서면서 인생이란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때로 그 역풍이 너무나 커서 삶 전체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때로 지레 겁을 먹기도 합니다.
파선될 것 같은 기분에 다 포기하고 바다속으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인생의 조각배 위로 올라오시면 아무리 큰 풍랑이라도 순식간에 잔잔해질 것이기에
무조건 참고 견디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두운 밤 갈릴래아 호수 위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현현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유다 문학 안에서 깊은 물은 악의 세력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악과 어둠과 죽음의 정복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생명의 부여자로 자리매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다의 물결을 당신 발아래 두십니다.
그분의 옥좌는 광란하는 파도보다 높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분은 거센 역풍을 다스리실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당신의 현존으로 인해 제자들의 근심과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고 보호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812.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예수님께서 산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신 후, 산을 내려오시어 군중에게 가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말하였습니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마태 17,15-1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를 개탄하시면서,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주어야 한다는 말이야?”(마태 17,17)라고 하십니다. “언제까지”라는 표현은 당신 수난의 시간에 대한 급박감을 드러내줍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비뚤어졌다’는 말과 ‘믿는다.’는 말이 대조를 이루는데, ‘비뚤어졌다’는 것은 <신명기> 32장 5절에서 모세가 말해주듯이, 주님을 향하지 않아 비뚤어졌기에 우상숭배에 빠짐을 말합니다. 곧 주님께 속하기보다 우상을 소유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함을 말해줍니다. 반면에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무능과 한계를 인정하기에 전능하신 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임을 뜻합니다. 곧 ‘비뚤어졌다’는 것은 주님을 믿으려 하지 않음이요, 그 결과 병을 치유하지 못하는 무능력임을 말해주는 반면, ‘믿는다.’는 것은 주님을 받아들임이요, 그 결과 병을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못할 일은 하나도 없는”(마태 17,20) 전능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마태 17,19) 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그렇습니다. 믿음이 약한 탓입니다. 믿음이 작아서가 아니라, 약해서입니다. 곧 믿음의 지향이 흐트러진 것입니다. 지향이 올바르면, 곧 자기 자신이가나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오롯이 주님을 향하여 있으면,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굳세어지고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마태 17,20).
그런데 우리는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어버리는 바람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약해져 버립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무능한 자신을 믿으면 무능해질 것이고, 전능하신 그분을 믿으면 전능해질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주님!
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보다, 당신 뜻에 합당하게 하소서.
당신을 통해 제 뜻을 이루기보다, 당신 뜻을 알아듣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과 함께 하고, 먼저 기도하게 하소서!
힘을 주시는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소서.
모든 것 안에서, 당신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19 주일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삶
-믿음의 답이다-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시옵니다.”(시편18,2-3ㄱ)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새벽 성무일도 시편 136장 26절까지 매 구절마다 계속된 후렴이 마음을 환히 밝힙니다. 이런 자비하신 주님을 선택함이 행복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부정적 비관적 삶이 아닌 긍정적 낙관적 믿음의 삶을 선택하여 훈련하고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한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보다 더 좋은 수행은, 처방은 없습니다.
밤에 일어나 휴게실에 들렸다 다음 주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 1면 기사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신문 다 태극기 휘날리는 바탕에 “2027년 세계청년대회 한국 서울 개최”글자가 선명했고 기쁨에 환호하는 한국 가톨릭 젊은이들의 모습도 신선했습니다.
“아, 전쟁은 없겠구나!”
언뜻 스치는 안도감과 더불어 하느님이 보우하사 한반도의 평화도 정착될 것이라는 희망도 들었습니다. 요즘 제 기도 1순위는 한반도의 평화입니다. 반갑고 기쁜 소식은 엊그제부터 사드 배치이후 끊겼던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또한 한반도 평화에 희망의 징표가 됩니다. 압니까? 언제 교황님이 북한을 방문할지, 하느님 하시는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문득 떠오른 성가처럼 느껴지는 애국가 1절 첫연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가사 그대로 될 것입니다. 저의 믿음이자 우리 신자들의 믿음입니다. 믿어야 삽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살기위하여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야말로 인간 품위의 기초입니다. 믿음이 빠지면 남는 것은 천박한 삶에 무지와 허무뿐일 것입니다.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믿음의 빛입니다. 도대체 믿음이 없다면 이 삭막한 광야 여정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런지요?
살아갈수록 우리 삶의 여정에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과연 믿음의 여정과 더불어 날로 성장 성숙되어가는 믿음인지요? 기도와 회개와 더불어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은총이자 믿음의 선택이요, 믿음의 훈련이자 믿음의 습관화입니다. 절대로 값싼 믿음은 없습니다.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가 되어 평생 믿음의 훈련에 항구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 긍정적이고 낙관적 삶입니다. 병의 치유에 약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긍정적 낙관적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기쁨, 찬미와 감사의 삶입니다. 어제 신문에서 읽은 3년간의 투병을 마치고 드디어 암세포 완치 판정을 받은 51세 장로교회 신자인 가수 윤도현의 고백입니다.
“지난 2021년 건강검진후 암이란 말을 듣게 되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시간이었다. 이제와서 굳이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겪어보니 암세포보다 부정적인 마음이 더 위험한 것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긍정의 마음으로 부정적인 모든 것들로부터 이겨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긍정의 힘은 바로 믿음의 힘이자 하느님의 힘입니다. 긍정의 마음보다, 희망과 기쁨, 찬미와 감사, 평화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백 낫습니다. 건강할 때부터 이런 긍정적 낙관적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와 회개와 함께 가는 믿음이요, 믿음의 훈련, 믿음의 고백과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오늘 신명기의 “셔마(들어라)” 믿음의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도 그대로 바치는 믿음의 고백이요 기도문입니다. 우리는 토요일 끝기도시 독서때 읽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날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 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신명6,4-9)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모세를 통한 주님의 간곡한 당부 말씀 입니다. “들어라!” 경청과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잘 듣기 위한 침묵이요 잘 들어야 겸손에 순종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갈림없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듯 매 수행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일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랑의 수행, 진인사대천명의 삶입니다.
평생 사랑의 훈련이요 사랑의 습관화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참삶입니다. 이런 사랑과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더불어 믿음도 깊어집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도 믿음입니다. 주님의 탄식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 세대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대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호통치시자 마귀가 나갔고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낫습니다. 제자들과 주님의 대화가 오늘 우리에게는 참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그대로 우리와 주님이 주고 받는 대화처럼 느껴집니다.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리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
환상이나 거품이 걷힐 때 알짜 믿음은 얼마나 될까요? 탓할 것은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약한 믿음입니다. 믿음의 도약이나 비약, 첩경의 지름길은 없습니다. 결코 값싼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의 여정, 믿음의 훈련, 믿음의 전사라 했습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입니다. 그러니 우보천리(牛步千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우직하게, 한결같이 믿음으로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죽을 때까지 온 마음, 온 목숨,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듯 매 수행을 사랑하는 것이요 믿음의 훈련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영원히 믿음의 초보자일뿐입니다. 그러니 죽는 그날까지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로 초발심(初發心)의 자세로 늘 새롭게 시작할 뿐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다!
나의 반석 찬미받으시리니,
내 구원의 하느님 드높으시다.”(시편18,47). 아멘.
[8/13(일) 연중 제19주일, 되새김 구절]
1. 제1독서에서 엘리야는 하느님을 체험하는데 하느님께서는 큰 바람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 속에 계셨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으면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우리들 또한 신앙의 여정 속에 자주 흔들리곤 합니다. 유혹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시기와 질투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교만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두려움의 바다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빠지지 않고 주님께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인생과 역사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어떠한 시련에도 의연하게 맞서며,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조재형 신부)
2. 우리 각자 역시 갖은 역풍과 맞서면서 인생이란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때로 그 역풍이 너무나 커서 삶 전체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때로 지레 겁을 먹기도 합니다.
파선될 것 같은 기분에 다 포기하고 바다속으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인생의 조각배 위로 올라오시면 아무리 큰 풍랑이라도 순식간에 잔잔해질 것이기에
무조건 참고 견디는 일이 중요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가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주님!
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보다, 당신 뜻에 합당하게 하소서.
당신을 통해 제 뜻을 이루기보다, 당신 뜻을 알아듣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과 함께 하고, 먼저 기도하게 하소서!
힘을 주시는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소서.
모든 것 안에서, 당신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리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이수철 신부)
[8/13(일) 연중 제19주일, 제232일 기도]
제1독서에서 엘리야는 하느님을 체험하는데...
하느님께서는 큰 바람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 속에 계셨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으면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우리들 또한 신앙의 여정 속에 자주 흔들리곤 합니다.
유혹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시기와 질투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교만의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두려움의 바다에 빠지기도 합니다.
주님께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인생과 역사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어떠한 시련에도 의연하게 맞서며,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으로 평화와 사랑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8월13일(일) 8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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