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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8월 15일 화요일[(백) 성모 승천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8월 15일 화요일[(백) 성모 승천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라가셨다는 믿을 교리에 따라 성모님의 승천을 기리는 의무 축일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른 것이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승천의 신비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다.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올리셨습니다.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신 하느님 안에서 우리도 기뻐하며,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승천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입당송

묵시 12,1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났네.
<대영광송>

<또는>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여 축제를 지내며 다 함께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자. 천사들도 그분의 승천을 기뻐하며 하느님의 아드님을 찬양하네.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부르시어
그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둔 여인>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19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났습니다.
12,1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2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4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5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6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10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5(44),10.11.12.16(◎ 10ㄷㄹ)
◎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
○ 당신 사랑을 받는 여인들 가운데, 제왕의 딸들이 있고,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 ◎
○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네 백성,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 ◎
○ 임금님이 너의 미모에 사로잡히시리라. 임금님은 너의 주인이시니, 그분 앞에 엎드려라. ◎
○ 기쁨과 즐거움에 이끌려, 임금님 궁전으로 들어가는구나. ◎

제2독서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5,20-27ㄱ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성모 마리아 하늘로 오르시니 천사들의 무리가 기뻐하네.
◎ 알렐루야.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9-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자이신 주님,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교회를 성령으로 채우시어, 교회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헌신과 믿음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도록 도와주소서.

2.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샘이신 주님, 성모 승천 대축일에 광복의 기쁨도 함께 기리는 저희 민족을 살펴 주시어, 언제나 주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며, 주님의 진리를 찾고 평화를 이루어 나가게 하소서.

3. 애국선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 선열들의 희생을 굽어보시어, 그들의 뜻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그 후손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자랑스럽게 살아가게 하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주님의 작은 교회인 저희 가정들을 보살피시어, 주님 말씀을 따르며 실천하는 기쁨을 누리고, 이웃들 안에 그리스도인의 참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정성을 다하여 바치는 저희의 제물을 받으시고
하늘에 오르신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 마음이 사랑으로 불타올라 언제나 주님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4 : 영광스러운 마리아의 승천>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의 아드님께서
동정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에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이 무덤에서 썩지 않도록 섭리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루카 1,49.48 참조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영성체 후 묵상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여인, 마리아를 두고 모든 세대가 행복하다고 합니다. 당신 종에게 큰일을 해 주신 주님의 자비는 대대로,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우리도 주님께 찬가를 부릅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사에 참여하고 비오니
하늘에 오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성모 승천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성모 승천 대축일

 

- 성모님은 당신께서 승천하실 것을 아셨을까?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이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께 당연히 승천하시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 덕분으로 하늘로 오르신 최초의 인간이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이유는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런데 무엇을 믿으셨을까요? 성모님은 승천하신 것을 믿으셨을까요? 이것이 궁금해집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도 승천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승천할 것을 믿어야 승천할 수 있을까요? 
 
    요즘 디즈니 플러스에서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합니다. 초능력을 지녔던 전직 국정원 부모들이 자신들의 초능력을 물려받은 자녀들을 낳아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었습니다. 
여기서 고3 김봉석은 하늘을 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나지 않는 재생능력을 지닌 장희수를 좋아하게 됩니다. 김봉석은 기분이 좋아지면 하늘로 뜨게 되는데 엄마는 그런 능력이 발각되면 위험해질 것을 알아서 봉석이 날지 못하게 합니다. 무거운 것들을 차고 들고 넣고 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체육관에서 농구대가 빠져 희수가 다치게 되었을 때 무거운 것을 차고 있는 봉석은 날아서 그녀를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대신 다른 능력을 지닌 반장 이강훈이 그녀를 도와줍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반장을 좋아하게 될까 봐 겁이 난 봉석은 자신도 나는 법을 제어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면 아빠처럼 아이가 다치게 될까 걱정하고 야단칩니다. 
 
    오늘 성모님은 하늘을 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누구도 그분의 믿음을 잡아 끌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바탕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우리를 믿음으로 초대합니다. 믿음도 하나의 선택이고 결정입니다. 믿기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생각하면 쉽겠습니다. 믿으니까 선택하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선택을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만 가지고는 속기 십상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자꾸 만나보면서 내가 가진 지식으로 믿어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게 됩니다. 자녀에게 지식이 아닌 지혜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 믿으신 것은 무엇일까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3,28)라고 말해줍니다. 은총은 아담의 죄로 끊겼고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없다는 믿음이 팽배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3,30)라고 말해줍니다. 더 말이 안 됩니다. 다른 수많은 여인이 있는데 왜 자신만이 특별히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전해주는 말은 더 황당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1-32)
    만약 성모님께서 겸손하셨다면 “농담이 지나치십니다!”라고 말씀하셔야 하셨을까요? 성모님은 감히 인간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말에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더 겸손하여지려면 더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올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우리가 더 가졌다고 믿어야 진짜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지식이 아껴야 잘 산다고 말한다면, 지혜는 더 가졌다고 믿으면 결국엔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진리입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
 
   『더 해빙』의 홍주연 작가는 사업 실패로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던 아버지 밑에서 컸습니다. 아버지는 자린고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굴비였습니다.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여 홍주연 작가가 마지막에 굴비라도 실컷 드시고 가시라고 열 마리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도 아껴 드시다 다섯 마리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원도 굳이 6인실을 선택하여 죽을 때까지 돈을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홍주연 작가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도 왜 아버지는 평생 가난하셨을까?’를 궁금해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누군가에게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상처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난 행복하면 안 돼요.”
이것을 누가 정해줬을까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부활도 마찬가지고 승천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주연 작가는 왜 아버지가 아끼면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재벌들의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이서윤 선생을 만납니다. 그녀는 수십 만 명의 부자들을 연구하여 ‘해빙’(Hav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그녀는 홍주연 작가에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기쁘게 쓰라고 말해줍니다. 돈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기쁜 마음이 들 때만 쓰라는 것입니다. 꼭 필요했던 것,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돈을 쓸 때 마음이 기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원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원천으로 향할수록 더 많이 받게 됩니다. 원천은 그것이 솟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쓰는 것이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말은 주님의 뜻대로 돈을 쓰면 주님께서 다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너무 아낀다는 말은 행복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돈을 쓸 때 기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이에게 주님께서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삶 안에서 언제든 이런 부활과 승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성모님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으니 당연히 당신도 승천하실 것을 믿으셨다고 확신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니 자신도 걸을 수 있음을 믿었던 것과 같습니다. 성모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다 해주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처럼 할 수 있음을 믿으라고 인간이 되셔서 모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예수님의 승천을 보시며 당신도 승천하실 것도 믿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되었습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토마시 할리크의 그리스도교의 오후를 읽고 있습니다. 책은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신앙은 믿음의 대상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종교, 교리, 교의, 신학, 조직의 형태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신앙은 전승과 역사를 통하여 발전하지만 신앙의 이름으로 다른 신앙을 판단하고, 때로는 박해하기도 합니다. 신앙인이라고 하지만 삶이 불신앙인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셨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에도 신앙의 이름으로 이방인을 판단하고, 죄 없는 사람을 단죄하고, 죽음으로 몰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신앙은 믿음의 대상으로뿐만 아니라 신앙은 삶과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부른다고 하느님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말은 따르지만 그들의 삶은 배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위선과 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신앙인이지만 신앙인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이방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자캐오를 칭찬하시면서 오늘 이 집은 구원 받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위기가 있다면 신앙을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삶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 

 

 

끌림과 떨림은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이 있습니다. 처음 본 사람인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격이나 취미가 비슷하면 더 끌리기도 합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맛이 있는 음식도 있지만 입맛에 끌리는 음식도 있습니다. 술도 비싼 술이 좋지만 입맛에 끌리는 술이 있습니다. 저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예수님께 마음이 끌린 사람이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쳤던 소경, 깨끗해지기를 바랐던 나병환자, 부하의 병을 고쳐달라고 찾아왔던 백인대장, 딸의 병을 위해 찾아왔던 여인,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던 자캐오, 예수님께 시중들던 마르타,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가 있습니다. 세상의 욕망과 권력에 끌리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리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하는 연인은 마음이 떨릴 것입니다. 서품식에서 바닥에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듣는 서품자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둥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릴 것 같습니다. 드디어 새집을 마련해서 입주하는 아내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처음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저도 첫미사를 봉헌할 때 무척 떨렸습니다. 무서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벅차서 떨리는 것입니다. 하혈이 멈추었던 여인의 마음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들것을 들고 걸을 수 있었던 중풍병자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도 떨렸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도 떨렸다고 합니다. 익숙함으로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보다는 처음 성체를 모셨던 그 설렘과 순수함으로 신앙을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모님께서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로 가셨다고 믿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성모님께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셨기 때문에 원죄의 결과인 죽음을 맞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신학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이면서 하느님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이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성모님께 대한 이 모든 찬사와 공경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천사 가브리엘과 성모님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이끄심이며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성모님께 대한 찬사와 공경은 시작된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들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누군가 이야기 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영원한 것은 채워짐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지고, 믿음이 채워지는 것이 바로 영원함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채워 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이 가야할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성모님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자신보다는 이웃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이 세상에 더 많은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마태 17,27)
 
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이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승리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선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미리 알려주심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그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계획하신 섭리임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당신께서 하느님의 그 계획에 기꺼이 동의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한 준비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시는 제자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시는 장면입니다. 성전세는 모세가 “누구나 자기 영혼의 속죄를 위하여 주님께 반 세겔을 내야 한다.”(탈출 30,13)고 말한 대로, 영혼과 육신의 속죄를 위해 내는 세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금은 자신이 다스림을 받는 왕에게 내는 것임을 일깨워주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니 성전세를 면제받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곧 ‘어떻게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집을 위한 세금을 낼 수 있겠느냐?’는 반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께서 성전의 주인이심을,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도 성전세로부터 자유로움을 밝히십니다. 그렇게 하시면서도 성전세를 내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입니다. 자신이 옳긴 하지만, 무모한 분쟁을 가질 필요가 없기에 지혜로운 방법으로 세금을 내기로 하십니다. 곧 세금 낼 돈을 호수로 가서 낚시를 해서, 먼저 잡힌 물고기의 입을 벌려 거기에 들어있는 은전으로 세금을 내라고 하십니다. 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당신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당신께서는 땅에서도 동전을 취하실 수도 있었지만, 호수에서 그 기적을 이루십니다. ‘물고기’는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당신 생명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당신 사랑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물고기입니다. 당신 그물에 걸려든 한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그리고 제 입에는 당신 형상이 새겨진 고귀한 동전이 물려있습니다. 당신 말씀이 물려있습니다. 제가 당신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생명의 말씀이 저를 먹여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 영혼을 당신께 바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마태 17,27)
 
주님!
저는 당신 생명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이오니,
당신 형상이 새겨진 고귀한 동전을 입에 물고
당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분별력의 지혜

-사랑이 답이다-

 

 

내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앞둔 오늘은 만 47세에 순교한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20세기에 시성된 최근의 성인입니다. 폴란드인이자 꼰벤투알 프란치스코의 수도사제로 유난히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강했던 성인은 성모신심단체인 성모기사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성인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정복당한 폴란드에서 유대인을 숨겨주었다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 갔으며 그곳에서 탈옥한 수감자를 대신하여 스스로 죽음을 자원하며 순교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1982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에게 '자비의 순교자'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시성식을 거행합니다. 그는 수감자들의 주보성인이기도 합니다. 그가 죽음을 자원하든 장면은 늘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도망친 놈이 안 잡혔다. 너희중 10명이 저 아사감방에서 죽어야 한다”

수용소장은 10명을 .채워가고 있을 때, 그 대열에서 한 사람이 뛰어나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는 안돼. 나는 죽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나의 처자식은 어떻게 살란 말이냐?”

그 숨막히는 상황에서 포로들의 대열을 뚫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오는 사람이 수용소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합니다.

“저 사형수 대신 내가 죽겠소. 나는 처자식도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오.”

“도대체 너는 누구냐?”

“가톨릭 사제요.”

“좋다, 함께 가라!”

그리고 그는 아우슈비츠 아사 감방에서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으니 그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콜베이다.-

 

사랑의 절정이요 분별력의 지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새삼 사랑은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사랑의 선택이, 사랑의 희생이 없었다면 콜베 신부는 성인이 되지 않았음은 물론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콜베 신부가 목숨을 구해준 가요브니체크는 1995년 3월13일 94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할 때까지, 콜베 성인의 영웅적 사랑이 널리 알려지도록 세계 각지에서 강연했으며 시복식과 시성식에도 참여했습니다. 콜베 성인의 사랑의 선택과 죽음의 결단이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그의 평상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반영입니다. 다음 제1독서 신명기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마라. 

 

주 너희 하느님은 신들의 신이고 주님들의 주님이시며,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얼마나 많은 이방인들,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지요.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고 이방인들로 떠돌 때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었던 조상들의 모습을 상기한다면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도 많이 약화될 것입니다. 얼마전 지중해를 바라보며 난민들의 공동묘지가 됐다며 슬퍼하던 교황님 사진을 잊지 못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온 난민이 지난해 9만명이며 9만명은 지중해에서 난파되어 수장됐다는 것이니 말그대로 지중해는 이들의 공동묘지가 된 것입니다. 참 부끄럽고 슬픈 현실이자 오늘날 전인류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두 번째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고, 제자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합니다. 늘 당신의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이어 부활에 궁극의 희망을 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경천애인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셨던 주님이심을 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하느님의 시야를 지니고 살게 합니다. 오늘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 문제를 주님은 이런 사랑에서 나오는 분별력의 지혜로 지체없이 해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성전의 주인이기에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바친다 하시며 다음 같이 명쾌한 답변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숫가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모두가 주님의 것이며 전능하신 주님께는 기적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초점은 자연이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성전세를 바친다는 것입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크게 잃는다는 사자성어가 생각납니다. 모든 덕이 어머니가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분별력의 지혜를 발휘하라는 말씀입니다. 

 

일의 성취를 위한 세 필수적 전제 조건이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이라 하는데 균형감각이 바로 분별력의 지혜에 해당되겠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분별력의 지혜는 은총의 선물이자 사랑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가기 때문에 분별력의 잣대는 사랑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삶은 영적전쟁입니다. 주님의 전사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바둑은 인생사의 축소판이라 합니다. 바둑의 십계명이라 할 수 있는 위기십결, 역시 삶의 지혜, 분별력의 지혜에 좋은 도움이 된다 싶어, 영적승리의 삶을 위해 필요하다 싶어 나눕니다.

 

1.부득탐승(不得貪勝) : 승리를 탐하지 마라

2.입계의완(入界宜緩) : 상대의 세력권에 깊이 들어 갈 때는 여유를 가져라

3.공피고아(攻彼顧我) :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라

4.기자쟁선(棄子爭先) : 희생하더라도 선수를 쟁취하라

5.사소취대(捨小就大) :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6.봉위수기(逢危須棄) : 위기에 봉착하면 불필요한 것은 버려라

7.신물경속(愼勿輕速) : 서두르지 말고 신중 하여라

8.동수상응(動須相應) : 흐름을 타라

9.피강자보(彼强自保) :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자중하라

10.세고취하(勢孤取和) : 고립되었을 때는 화친하라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분별력의 지혜와 사랑을 주시어 우리 모두 삶의 현장에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8/15(화) 성모승천대축일, 되새김 구절]

 

1.  저는 성모님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으니 당연히 당신도 승천하실 것을 믿으셨다고 확신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니 자신도 걸을 수 있음을 믿었던 것과 같습니다. 성모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다 해주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처럼 할 수 있음을 믿으라고 인간이 되셔서 모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예수님의 승천을 보시며 당신도 승천하실 것도 믿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되었습니다.(전삼용 신부)

 

2. 교회의 역사에도 신앙의 이름으로 이방인을 판단하고, 죄 없는 사람을 단죄하고, 죽음으로 몰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신앙은 믿음의 대상으로뿐만 아니라 신앙은 삶과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욕망과 권력에 끌리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리면 좋겠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들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이 가야할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성모님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자신보다는 이웃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이 세상에 더 많은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마태 17,27)
 
주님!
저는 당신 생명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이오니,
당신 형상이 새겨진 고귀한 동전을 입에 물고
당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콜베 신부가 목숨을 구해준 가요브니체크는 1995년 3월13일 94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할 때까지, 콜베 성인의 영웅적 사랑이 널리 알려지도록 세계 각지에서 강연했으며 시복식과 시성식에도 참여했습니다. 콜베 성인의 사랑의 선택과 죽음의 결단이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그의 평상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반영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숫가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모두가 주님의 것이며 전능하신 주님께는 기적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초점은 자연이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성전세를 바친다는 것입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크게 잃는다는 사자성어가 생각납니다. 

(이수철 신부)

 

 

[8/15(화) 성모승천대축일, 제234일 기도]

 

성모님이 승천하셨듯이...나도 승천함을 믿나이다.

성모님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나도 성모님처럼...

나보다는 이웃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게 하소서.

평화의 세상을 이루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8월15일(화) 4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