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15일(화) 오늘의 글/시]
믿는 대로 세상이 바뀐다
(2%의 비논리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손용환 신부
요즘은 사람이 사람을 잘 믿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할까요?
첫째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수없이 속았기 때문입니다.
많이 속은 사람일수록 더 믿지 못합니다.
둘째는 내가 다른 사람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많이 속인 사람일수록 더 믿지 못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니 이 세상은 어찌 되겠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는 하바쿡 예언자의 기도와 흡사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당신께서 구해 주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폭력이다!’ 하고 소리쳐야 합니까?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재난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뿐, 이느니 시비요, 생기느니 싸움뿐입니다.” (하바쿡 1,2-3)
그렇다면 불신의 세상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내가 먼저 믿어 주면 됩니다.
내가 먼저 믿어 줄 때 이 세상은
믿음의 세계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돌무화과 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그렇다면 나무가 바다에 심겨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믿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오 8,13)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우리의 믿음이 우리와 세상을 구원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무는 어디에 심습니까?
산에 심습니다.
나무를 바다에 심는다면 미친 짓입니다.
그러나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나무를 바다에 심을 수 있습니다.
배고플 때 밥이 있다면 나와 남중에 누가 먼저 먹습니까?
내가 먼저 먹습니다.
배고픈데 밥을 남에게 먼저 준다면 멍청이입니다.
그러나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밥을 남에게 먼저 먹일 수도 있습니다.
의사는 왜 됩니까?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됩니다.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자원 봉사를 한다면 정신 나간 짓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의 환우들을 무상으로 치료할 수도 있습니다.
유산은 누구에게 줍니까?
자식들에게 줍니다.
유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미친 짓입니다.
그러나 자식들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유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비논리입니다.
만일 나무가 바다에 뿌리 째 심어졌다면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사기라고 합니다.
만일 자기가 배고픈데도 밥을 남에게 먼저 먹였다면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어리석다고 합니다.
만일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면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신앙의 귀감이라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바보짓이라고 합니다.
만일 세계에서 제일 큰 부자가 재산의 85%를 사회에 환원한다면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다운 기부라고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비논리입니다.
그러나 2%의 비논리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대로 세상은 바뀝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우리는 비논리를 어떤 시선으로 봅니까?
똑같은 것을 보아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시선은 달라야 합니다.
자기를 버리는 비논리를 사랑으로 보는 사람들이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희생이라는 고귀한 정신이 믿는 사람들사이에서도 사라져가고 있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소유욕도 지나치면 병 / 따뜻한 하루[170]
대개 사람들은 더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이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옷장에는 입지 않는 옷들이 가득하고
책장에는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로 빼곡하지만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지식을 위해 읽는 책도 수많은 장서를 소유했다며 자랑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무엇이든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렇지만 나의 것 중에서 버릴 것을 과감히 정리해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단순한 것이 차라리 좋을 때가 있습니다.
살면서 꼭 필요한 것만 갖고 단순하게 살아갈 때
오히려 지난날 잃어버린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풍족해지길 바라고 원합니다.
하지만, 사실 지금 것으로도 충분할지 모릅니다.
이는 단지 더 ‘소유’하고 싶은 마음뿐이겠지요.
‘여자의 일생’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모파상은 말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소유욕’ 땜에 영원한 나라를 잃어버린 부자를 이야기합니다(마르 10,17-22).
‘어떤 부자가 와서, “스승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계명들을 지키지 않느냐?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그가 예수님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면서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하고 이르셨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렇습니다.
소유는 원하는 것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더,
갖지 못함에 대해 괴로움으로 결국 자신의 모든 것마저 망가뜨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와 부자‘ 이야기에서 그 부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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