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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9월 14일 목요일[(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9월 14일 목요일[(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몸소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전승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의 노력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찾게 되었고, 황제는 이를 기념하고자 335년 무렵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 곁에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다. 그 뒤로 십자가 경배는 널리 전파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축일이 9월 14일로 고정되었다.

입당송

갈라 6,14 참조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외아드님의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저희가 지상에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깨닫고
천상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21,4ㄴ-9
4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6-11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6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8(77),1-2.34-35.36-37.38(◎ 7ㄴ)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 내 백성아,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 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입을 열어 격언을,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언을 말하리라. ◎
○ 죽이시던 그때서야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다시 돌아와, 하느님이 그들의 바위이심을 기억하였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 그들의 구원자이심을. ◎
○ 그 입으로 그분을 속이고, 혀로는 그분께 거짓말을 하였네. 그분께 마음을 굳건히 두지 않고, 그분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네. ◎
○ 그분은 자비로우시어,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멸망시키지 않으셨네. 당신 분노를 거듭 돌이키시고, 결코 진노를 터뜨리지 않으셨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성자께서 십자가 제대에서 온 세상의 죄를 없애 주셨으니
이 거룩한 제사로 저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5 :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승리(9월 14일)>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 나무에서 인류 구원을 이룩하시어
죽음이 시작된 거기에서 생명이 솟아나고
나무에서 패배한 인간을 나무에서 승리하게 하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들이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고
주품천사들이 흠숭하며
권품천사들이 두려워하고
하늘 위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복된 세라핌이
다 함께 예배하며 환호하오니
저희도 그들과 소리를 모아 삼가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또는>
<주님 수난 감사송 1 : 십자가의 힘>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성자의 수난으로
온 세상이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미하게 되었으니
십자가의 무궁한 힘으로
성자의 권능과 세상 심판이 드러났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2,3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님,
거룩하신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비오니
생명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저희가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거룩한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여행 중에 교우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운명처럼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저는 모태 신앙이기에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학문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것은 신학교에서 신학과 성서를 배울 때였습니다. 신앙 안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은 사제가 된 후 몇 번의 좌절과 시련을 겪은 다음입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도할 때, 길을 걸으며 묵주를 돌리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먹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있듯이 시련과 좌절이 지나가면 주님께서 그 시간에 함께 하셨음을 알았습니다. 배우자와 결혼 하면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무교였지만 배우자의 신앙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는 배우자를 보내 주셨고, 배우자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났으니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한 자매는 홀로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편하고, 어려움이 없을 때는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녔는데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있게 되면서 예수님을 더욱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혼자 있는 것도 외롭지 않고,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도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문병란 시인은 희망가라는 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한 고비 지나면 구름 위 태양은 다시 뜨고/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시련과 좌절의 표상인 십자가는 신앙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첨탑에는 십자가가 있고, 성당의 제단 뒤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시면서 하느님께 이렇게 청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괴로웠지만 행복했던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셔야 할 일을 잘 아셨고,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전에는 치욕과 모욕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고가심으로써 속죄와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외부에서 찾은 적이 많습니다. ‘성공, 명예, 업적, 능력이 내가 해야 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정말 해야 할 일은 나의 깊은 내면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눔, 헌신, 십자가, 사랑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을 알았고, 최선을 다했던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은 예배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렸습니다./ 첨탑이 저리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드러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2023년 가해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 3,13-17

 

이것이 빠진 희생은 오염된 피만 배출한다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구약에서 십자가의 상징은 물론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매달기 위해 만든 장대입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은 구리뱀을 보면 나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리뱀이 상징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만 보면 낫게 된다는 뜻일까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우리도 같은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누군가를 낫게 하려고 나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삶을 닮을 수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맙니다. 하늘로 들어가는 문은 십자가의 삶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누군가의 죄를 씻어주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십자가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십자가는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노고가 누군가의 죄를 씻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십자가가 되려면

하나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디디 블랜차드와 집시 로즈 블랜차드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엄마 디디는 딸 집시를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백혈병, 근이영양증, 정신 장애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

장애가 있다고 믿도록 속였습니다. 디디는 딸의 질병과 장애를 홍보하여 ​​기부, 여행 및

기타 혜택을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짓말에 버티다 못한 집시는 온라인에서 만난 남자친구 니콜라스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 살해를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상황은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렀습니다.

집시는 어머니의 속임수와 자신이 겪었던 학대의 정도를 깨닫게 되었고, 어머니를 죽이는 것만이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어쩌면 디디는 집시를 키우기 위해 자신은 최선을 다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집시를 자신의 십자가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피 흘림은 깨끗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기의 의지로 피를 흘렸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영국에서는 리사 헤이든과 존슨의 사례가 있습니다.

리사도 존슨이 음식 알레르기, 뇌성마비, 낭포성 섬유증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앓고 있으며

휠체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헤이든은 자기 아들이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부터 수년에 걸쳐 약 325번의 불필요한 치료와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의료 전문가들을 속여 아들이 중병에 걸렸다고 믿게 했고,

이에 따라 영양 공급 튜브 장착을 포함한 일련의 불필요한 개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아들을 대신하여 수많은 상과 선물, 재정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왕족과 다른 고위 인사들을 만났고, 기부금으로 휠체어 이용 가능 차량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어머니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초콜릿 바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보건 방문자가 알아차리면서

이러한 속임수가 드러났습니다.

 

이 관찰에 따라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리사는 다른 많은 형태의 의학적 학대와

속임수 중에서도 알레르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음식 공급 튜브를 통해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그녀는 집에서 의료기기를 조작해 결과를 위조하고 의사들에게 아들이 중병에 걸렸다고

설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은 사회와 의료인의 동정과 지원을 가장하여

아동에게 가할 수 있는 심각한 학대의 극명한 예입니다. 

 

디디나 리사 모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름대로 노력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피 흘림은 오히려 아이들을 안 좋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씻어줄 수 없는 더러운 피였습니다.

그 이유는 엄마들 자신이 아이들을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 지심의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아버지 때문에 흘리는 피가 아니면 자녀를 위해 흘리는 어머니의 피는 오염됩니다.

자아가 죽어서 흘리는 피가 아니라 자아가 커지기 위해 나를 고생시켜 흘리는 피입니다.

자아를 죽이는 창은 오로지 ‘순종’밖에 없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잘 키워낸 부모는 분명 소명을 가지고 키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피 만이 자녀를 깨끗이 씻어줄 수 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생각해 봅시다. 많은 군인이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라이언에게 가치 있게 살라며 죽어갑니다.

라이언은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평생 열심히 삽니다. 

 

만약 그들이 나라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라이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적진 깊숙이 뛰어들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나의 피가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면

나의 피는 그를 사랑하는 이에게 순종하여 내어주는 피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스스로

흘리는 피가 됩니다. 사실 그것은 자아의 피가 아닙니다. 

 

십자가에는 뱀이 매달려야 합니다. 자아가 매달려야 합니다.

자아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흘리는 피는 반드시

보상을 요구합니다.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 흘리는 피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피 흘림은 누군가의 죄를 사해줄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명령에 순종하여 흘리는 피만이 깨끗하여 그 사람의 죄를 씻어줄 수

있습니다. 남편 때문에 자녀를 사랑해야 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하며,

사제도 주님께서 파견하셨기 때문에 신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피조물의 한계상 온전한 사랑이 나올 수 없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913.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
 
 
오늘 <복음>은 ‘참 행복의 길’과 ‘불행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 길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모순처럼 보입니다.
 
<성경>에서 “행복”은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강령입니다. “행복”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은총이며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곧 행복으로 제시되고 있는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신 당신이 다스리는 나라이기에, ‘행복’은 곧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 자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태오의 ‘여덟 가지 복’을 네 가지로 함축시켜 말하면서, 동시에 네 가지의 불행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선언은 제자들에게 직접 2인칭(너희)으로 선포되고 있습니다. 곧 제자들이 부유한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고, 배부른 사람들과는 반대로 굶주리는 사람들이며, 웃는 삶들과는 반대로 우는 사람들이고, 좋은 대우를 받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온갖 잔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런 사람일까요?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우는 사람, 잔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일까요?
 
특히 마지막 네 번째 불행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
 
사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누군가가 칭찬하고 좋게 말해주면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반면에 꾸중하고 질책하며 나쁘게 말해주면 우울해하고 불행해 합니다. 그토록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고, 또한 눈치보고 비위맞추며 타인의 말 한마디에 우지좌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듣는 것이나 인간적인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일, 곧 하느님의 뜻 안에서 관계 맺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단지 좋은 인간관계나 단순히 아름다운 세상이나 복지사회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며, 그저 오손도손 미워하지 않고 재미나고 즐겁게 사랑하며 살고자 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미움을 벗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 속에서도 사랑하는 일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벗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고통과 슬픔 안에서 사랑하고, 바로 그 고통과 슬픔을 통하여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1요한 3,18)하는 일이요, ‘먼저 하늘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마태 6,33) 일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곧고 좁은 길을 걷는 이들이 모든 사람에게 칭송과 존경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어둠의 유혹과 은총에 대한 저항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는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러한 말이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루카 6,22)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20)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다 내려놓고, 당신만을 차지할 것입니다.
굶주릴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 외에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도 마음을 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울 줄을 알게 하소서!
죄를 슬퍼하되, 자비 안에서 위로받고 기쁠 것입니다.
진정, 저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오로지 당신의 것이오니,
배척받고 모욕 받으면서도 기뻐할 줄 알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누가 참 행복한 사람인가?

-행복하여라, 하느님께 희망을 둔 사람!-

  

‘하느님, 저를 지켜주소서, 당신께 피신합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의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1-2)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여러분은 행복합니까? 과연 참으로 행복하다고 말 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 경우도 지금까지 삶을 다시 처음부터 살라하면 도저히 못 살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가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미화하여 때로 그리워하지만 잘 들여다 보면 쉬웠던 날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 다시 살라해도 이런 삶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은총 덕분에 이렇게 살아 왔음을 깨닫게 되니 감사할뿐입니다. 

 

성인들은 참으로 행복했었을까요? 객관적 인간적 눈으로보면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행했습니다. 성인들이라하여 결코 행복한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평생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된 삶이 대부분입니다.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았던 성인들이요 결코 휴식도 없었고 죽어서야 비로소 휴식할 수 있었던 성인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하느님께 희망을 두었기에, 예수님만을 사랑하여 그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았기에 감사와 기쁨이 있었고 참으로 행복한 성인들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기념하는 안티오키아 출신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가 그러합니다. 참으로 고난으로 점철된 삶이요 평생 참으로 치열하게 살다가 순교적 죽음을 맞이한 위대한 성인입니다. 대 바실리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아타나시오와 더불어 동방교회의 4대 교회학자로 인정된 성인입니다. 서방의 아우구스티누스 정도의 비중을 지니는 교회학자입니다.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뛰어난 설교가로 황금의 입을 지녔다하여 “크리소스토모”입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제37대 총대주교였던 성인은 설교가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성인은 에페수스에서 교회회의를 열어 성직을 사고팔며 돈벌이이하던 주교 6명을 면직시키고, 세속적인 욕심에 가득 차 안락하고 화려한 삶을 누리던 성직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냈으며, 부잣집만 골라 다니며 호사를 누리던 수도자들을 소속 수도원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병원과 학교를 늘리고, 교구청의 장식품과 가구들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데 썼습니다. 

 

평신도들은 복음에 따라 살아갈 것을 권유했고 성서 읽기에 몰두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삶이 한결같이 정의로웠고 올곧았기에 주위에는 온통 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는 열렬한 환영과 전폭적 신뢰와 사랑을 받았던 주교학자였습니다. 성인의 열화熱火같은 설교 일부를 나눕니다.

 

“가난한 이는 강합니다. 아무도 그에게 손해나 손상을 입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온갖 어려움을 겪습니다. 종들, 황금, 재산, 일, 끝없는 욕심, 사회적 야심, 끝없는 필요등 모든 것이 그를 억누르고 사로잡습니다. 여러분을 종으로 삼고 있는 맘몬을 언제까지 재갈을 물리지 않은 채 방치할 작정입니까? 

만일 사람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자유를 얻으려고 온갖 수를 다 쓰겠지만, 돈의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여러분은 이 무서운 종노릇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하지를 않습니다. 돈이라는 폭군에 잡힌 삶은 사람의 종 노릇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을 공경하고 싶습니까? 그분이 헐벗은 것을 볼 때 못 본체하지 마십시오. 바깥거리에서 추위와 헐벗음으로 고통당하시는 그분을 돌보지 않는 동안에는 이곳 성당에서 비단옷으로 그분께 경의를 표하지 마십시오.”

 

정말 예언자적인 설교가 심금을 울립니다. 대부분의 설교가 이처럼 직설적입니다. 다음 찬미가도 성인의 이런 면모를 잘 드러냅니다.

 

"마음이 사랑으로 활활타올라, 그 열정 뜨겁게도 솟아오르고,

 황금의 입이뿜는 열정의말씀, 듣는이 가슴마다 깊이찌르네."

 

마침내 권력자들의 미움을 사서 유배중 흑해 동쪽 해안에 있는 최종 유배지로 가는 도중 향년 60세로 “순교자 바실리쿠스(+311) 경당”에서 사망합니다. 전설같은 일화를 소개합니다.

 

-성인이 이 경당에 도착하기전 그날 밤 바실리쿠스는 요한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시게. 요한 형제, 아침이면 우리가 함께 있을 것이오.” 그날 밤 바실리쿠스가 순교자 경당의 사제에게도 나타나 “요한 형제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게. 그가 오고 있네.” 말했다 합니다.

 

이어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순교자 성당에 도착했고 임종을 맞이합니다. 요한은 흰 수의를 입혀줄 것을 요청했고 자기가 입었던 옷은 둘러서 있는 사람들에게 선사합니다. 다음 사제로부터 성체를 받아 모신후 그의 삶을 특징짓는 마지막 “하느님은 모든 일에 찬미받으소서” 임종기도를 바칩니다.-

 

참으로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되었던 성인의 참 치열한 생애를 살았던 참 가난한 순교적 선종의 죽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때문에 행복했던 성인이요, 모든 성인들이 그러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어제 어느 자매와의 면담성사후 마지막 떠날 때 드린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오지 않았고 모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을 선택하여 사십시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행복을 못살면 내일도 못삽니다. 행복을 살아야 할 가장 좋은 자리는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님의 행복선언이 참행복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역설적으로 가난한 이들, 굶주리는 이들, 우는 이들이 행복하다 하십니다. 루카의 예수님은 가난을 영성화하지 않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바로 하늘이신 하느님께 절대적 신뢰와 사랑을, 희망을 두었기에, 하느님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하기에 이런 참행복입니다. 다음 불행선언도 의미심장합니다. 그대로 부자들, 배부른 이들, 자족하여 웃는 이들이 앞서의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이들과 사랑으로 연대하여 나누며 함께 살라는 회개의 촉구 말씀처럼 들립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과연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행복한 사람입니까? 혹은 불행한 사람입니까? 행복은 선택입니다.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을 선택하여 회개하며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참행복을 사는 것입니다. 참행복은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렸습니다. 주님께서 고맙게도 바오로 사도를 통해 참행복의 구체적 지침을 주십니다.

 

1.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2.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분노, 격분, 악의, 중상, 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수치스러운 말 따위는 모두 버리십시오.

4.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5.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인간을 입으십시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부단히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참나의 새 인간이 될 때 비로소 참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닮은 참나의 새 인간이 되어 참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9/14(목) 성 십자가 현양 축일...되새김 구절]

 

1. . ‘나눔, 헌신, 십자가, 사랑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을 알았고, 최선을 다했던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은 예배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렸습니다./ 첨탑이 저리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드러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십자가는 누군가의 죄를 씻어주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 <복음>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태오의 ‘여덟 가지 복’을 네 가지로 함축시켜 말하면서, 동시에 네 가지의 불행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네 번째 불행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루카 6,22)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20)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다 내려놓고, 당신만을 차지할 것입니다.
굶주릴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 외에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도 마음을 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울 줄을 알게 하소서!
죄를 슬퍼하되, 자비 안에서 위로받고 기쁠 것입니다.
진정, 저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오로지 당신의 것이오니,
배척받고 모욕 받으면서도 기뻐할 줄 알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열화熱火같은 설교 일부를 나눕니다.

 

“가난한 이는 강합니다. 아무도 그에게 손해나 손상을 입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온갖 어려움을 겪습니다. 종들, 황금, 재산, 일, 끝없는 욕심, 사회적 야심, 끝없는 필요등 모든 것이 그를 억누르고 사로잡습니다. 여러분을 종으로 삼고 있는 맘몬을 언제까지 재갈을 물리지 않은 채 방치할 작정입니까? 

 

만일 사람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자유를 얻으려고 온갖 수를 다 쓰겠지만, 돈의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여러분은 이 무서운 종노릇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하지를 않습니다. 돈이라는 폭군에 잡힌 삶은 사람의 종 노릇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을 공경하고 싶습니까? 그분이 헐벗은 것을 볼 때 못 본체하지 마십시오. 바깥거리에서 추위와 헐벗음으로 고통당하시는 그분을 돌보지 않는 동안에는 이곳 성당에서 비단옷으로 그분께 경의를 표하지 마십시오.”

(이수철 신부) 

 

[9/14(목) 성 십자가 현양 축일...제264일 기도]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십자가는 누군가의 죄를 씻어주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의 네 가지의 행복 선언 중 네 번째를 명심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루카 6,22)

루카 복음사가의 네 가지의 불행 선언 중 네 번째를 명심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

 

미움받고, 버림받고 모욕과 중상 당할지라도 행복하게 하소서.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말하면, 그것이 불행인 줄을 알게 하소서.

전지전능 무한사랑의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에 감사합니다.

 

- 2023년 9월14일(목) 4시1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