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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0월 12일 목요일[(녹) 연중 제27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0월 12일 목요일[(녹) 연중 제27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에스 4,17②-③ 참조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3-20ㄴ
13 너희는 나에게 무엄한 말을 하였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런데도 너희는
“저희가 당신께 무슨 무례한 말을 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14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15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16 그때에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서로 말하였다.
주님이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존중하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비망록에 쓰였다.
17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나서는 날에 그들은 나의 소유가 되리라.
부모가 자기들을 섬기는 자식을 아끼듯 나도 그들을 아끼리라.
18 그러면 너희는 다시 의인과 악인을 가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이와 섬기지 않는 자를 가릴 수 있으리라.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사도 16,1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 알렐루야.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서 세우신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저희가 정성을 다하여 마땅히 거행하는 이 거룩한 신비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의 구원을 이루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애가 3,25
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당신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
<또는>
1코린 10,17 참조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이어도 한 몸이네. 우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함께 나누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자라나
마침내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는 이야기의 내용은 다르지만 이야기의 구성은 비슷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낙원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맡겨 주셨습니다. 다만 선악과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서는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았다고 전해 줍니다. 유혹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의 열매를 먹었고, 결국 낙원에서 쫓겨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이 주어지고, 아담에게는 거친 땅을 일구어야 먹을 수 있는 노동의 고통이 주어집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여성입니다. 불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의 나라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자 제우스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불러 아름다운 여자를 만들게 하고, 여러 신에게 자신의 가장 고귀한 것을 선물하게 하였습니다. 이로써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의 판도라가 탄생하였습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온갖 고통과 악이 들어 있는 상자,  '판도라의 상자'를 준 뒤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아우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한 판도라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만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 순간 상자 속에서 슬픔과 질병, 가난과 전쟁, 증오와 시기 등 온갖 악()이 쏟아져 나왔으며 놀란 판도라가 황급히 뚜껑을 닫았으므로 희망은 빠져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인간은 이전에는 겪지 않았던 고통을 영원히 떨쳐 버릴 수 없게 되었으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하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악과와 판도라의 상자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의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자유와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는 이제 우리의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헌법 37조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헌법에 의해서 우리는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유에 따른 책임입니다. 자유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자유의지가 이성과 오성을 만나면 종교가 되고,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됩니다. 자유의지가 교만과 욕망을 만나면 폭력과 전쟁이 되고, 증오와 원망이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 그리고 너희 조상이 강 건너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주님을 섬겨라.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이 땅에 사는 아모리족을 우리 앞에서 몰아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신앙의 여정도 그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처절한 실패이고 억울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일어났습니다. 원망에서 감사함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을 선택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을 선택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을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깃발을 선택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는 머물 곳이 많습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2.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 이웃을 향한 가장 무책임한 행위란?

 

 오늘 복음은 주님의 기도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이는 마치 문을 두드리며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빵 세 개는 성령으로 구워지고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의 목적은 성령을 청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마치 문을 두드리듯 끊임없이 바치면 성령을 얻게 되고 그러면 친구에게 줄 빵 세 개를 얻게 됩니다. 결국 기도하는 목적은 성령으로 빵 세 개를 얻어서 이웃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만약 빵 세 개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분명 그 사람은 칼 세 자루를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100% 피해를 보게 됩니다. 
    영화 ‘나이트크롤러’(2014)의 줄거리입니다. 나이트크롤러는 직업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고나 범죄 현장을 찍어 방송사에 파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주인공 루 블룸은 도둑이자 사기꾼이며 폭행도 일삼습니다. 그는 고철을 훔쳐 팔고 그를 저지하는 경비원을 폭행한 다음 시계도 빼앗아 찹니다. 그러다 나이트크롤러가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 일에 뛰어듭니다. 경찰 무전을 도청하여 사건 현장에 도착해 자극적인 장면을 촬영하여 그런 영상을 원하는 방송국에 비싸게 팝니다. 돈도 많이 벌게 되어 차도 바꿉니다. 그러며 점점 더 위험하고 자극적인 영상을 얻기 위해 그는 조수를 채용합니다. 
    루는 절망에 빠진 젊은이 릭을 고용합니다. 그리고 위험한 총격전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에게 촬영을 맡깁니다. 루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가택 침입이 진행 중인 곳에 도착하여 당국에 즉시 전화하는 대신, 살인자들이 떠나는 것을 촬영한 후 집에 들어가 내부의 시체를 촬영합니다. 그는 나중에 스스로 추적할 수 있도록 살인자들을 보여주는 부분을 보류하고 영상을 판매합니다. 루는 숨겨둔 영상을 사용하여 용의자를 찾아내고 경찰에게 그들의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계속되는 추격전과 총격전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추격 도중 루의 전술에 점점 불편해진 릭은 루가 살인범의 영상을 경찰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합니다. 용의자의 자동차가 추락하자 루는 릭을 내보냅니다. 범인들이 다 사망하였다는 거짓말과 함께. 그러나 범인 중 한 명이 아직 살아있어 릭을 쏩니다. 경찰은 총잡이를 사살하고 릭은 부상으로 사망합니다. 루가 일부러 자신의 범죄에 돈을 요구하는 릭을 죽게 한 것입니다. 루는 차에서 이 모든 장면을 찍어 매우 비싼 값에 팝니다. 경찰은 그날 밤의 사건에 대해 그에게 심문하지만, 그는 무죄한 척하고 석방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는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 비디오 저널리스트 팀을 훈련하는 모습을 보이며 헌신과 노력이 성공의 열쇠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지 않을만한 일은 절대로 여러분에게도 시키지 않습니다.” 
    릭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을 하려고 하는 릭의 운명은 처음부터 어두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기 옆에 있어 봐야 피를 빨리는 일밖에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고 쾌락을 좋아하고 교만한 사람과 있으며 이익을 보려는 생각은 어리석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웃에게 그러한 칼을 세 자루 가지고 다니며 만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칼 세 자루를 버리고 빵 세 개를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친구가 생깁니다. 루카가 말하는 빵 세 개는 성령으로 얻어지는 복음삼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루카 복음은 명확히는 밝히지 않지만, 항상 ‘삼구’(三仇) 때문에 말씀의 열매, 곧 사랑이 맺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시고 광야에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육체의 유혹,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 권세와 영예를 주겠다는 유혹, 그다음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교만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곧 육체와 세속, 그리고 교만의 유혹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루카의 행복과 불행 선언에서는 이것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태오 복음의 여덟 가지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닌 행복을 빼앗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부유한 사람과 배부른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들어 높임을 받아 지금 웃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합니다. 세속과 육신, 그리고 교만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리는 사람, 복음 때문에 박해 받고 모욕과 중상을 당하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복음삼덕, 곧 청빈-정결-순명이 행복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루카 복음만의 고유한 전승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도 삼구가 두드러집니다. 씨는 말씀이고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길과 돌밭, 그리고 가시밭입니다. 길은 말씀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 악마와 같은 교만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바위에 떨어진 것은 쉽게 뜨거워졌다 식었다 하며 시련을 견디지 못하는 육적인 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시밭은 세상의 재물과 쾌락, 걱정으로 말씀의 씨를 죽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역시 마귀-육신-세속을 말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령이 필요한데, 그 성령은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그 해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삼구와 싸우셔서 복음삼덕의 열매를 맺어 그 빵 세 개를 지니고 복음 전파를 시작하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기쁘게 하려고 성령으로 삼구를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날카로운 가시를 들고 이웃에게 다가갈 것인가, 아니면 빵 세 개를 들고 다가갈 것인가는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또 얼마나 끈기 있게 바치느냐에 달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행위는 빵 세 개를 준비하지 않는 채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는 것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011.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루카 11,2) 

‘기도’는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도를 “욕망의 해석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십계명’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며,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님의 기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바랄 수 있는 것을 모두 청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청해야 할 것을 순서대로 청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도는 청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정서까지도 형성시켜준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고, 욕망을 훈련시켜 하느님의 목적과 조화를 향하도록 변화한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기도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도 안에는 그 사람이 담겨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예수님이 담겨 있습니다.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담기기를 바라시는 것들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문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것들이 수정처럼 농축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문은 비록 짧지만,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근본과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참으로 복음 전체를 요약한 것이다.”
 
사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준 기도’로서, ‘예수님의 기도’라는 사실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도를 드릴 때,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께 기도드리게 됩니다. 그러니 이 기도의 배후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함께 동행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드님을 통하여, 비로소 ‘아버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처럼, 이 기도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선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합니다. 곧 성자의 반열에 들게 하고 하느님이 되게 합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고귀한 기도인지요?
 
사실, 올바르게 사는 것은 올바른 기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 4)
 
주님!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볼 수 있게 하소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구원자이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제 마음을 드리게 하시고 당신께 속한 자로 살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온 인류에게 주신 참 좋은 선물-

  

어제 구입한 신간 서적, 세계적 신학자 스위스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가 지은 “발타사르, 예수를 읽다”를 자기 전 반 읽었습니다. 결론은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다 알고 계신다.”는 내용이요 크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저는 하나 더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다 사랑하신다”를 첨부합니다. 우리 모두를 다 알고 계시는, 우리 모두를 다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오늘 당신의 노하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믿는 이들은 물론 모든 인류를 위한 기본적이요 보편적인 가르침의 기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표지엔 제목과 더불어 한마디가 더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알려거든 먼저 사랑하십시오.” 기도에 우선적 조건이 하느님 사랑, 예수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할 때 기도하게 되고, 기도할 때 알게 되고, 알게 될 때 살게되니, 사랑-기도-앎-삶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끊임없이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날로 주님을 알게 되고, 날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의 깊이는 하느님의 깊이입니다. 늘 바쳐도 늘 새로운 깨달음을 줍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아무리 사람이 누군지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아버지 하느님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아버지일뿐 아니라 온 인류의 아버지임을 깨닫습니다. 

  

이는 오늘 제1독서 요나서를 봐도 담박 알 수 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로서 요나서는 끝나지만 하느님의 유머스럽고 익살스러운 모습에 단순 담백한 요나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짓게 됩니다. 요나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이 절묘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니느베의 구원을 위해 회개를 선포했지만 내심 심판을 기대했다가 구원되는 모습에 기뻐해야 할 텐데 반대로 매우 화가나서 그 실망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참 옹졸하고 편협한 그러나 솔직하고 담백한 요나에게 하느님의 참 교육이 시작됩니다. 이방인들을 포함 모두가 자비하신 하느님의 관심 대상임을 가르치십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확장되어야할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시야요 이해지평임을 깨닫습니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느님은 요나에게 물으신 다음 아주 재미있는 아주까리 일화를 통해 요나에게 산 교육을 시키십니다. 시종일관 미소짓게 하는 아주까리 일화입니다. 아주까리는 순식간에 자라나 요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뙤약볕을 가려주자 좋아하던 요나는, 하느님이 아주까리에 벌레를 보내어 아주까리를 쏠게 하자 말라버리고 뙤약볕에 노출되자 열화같이 분노합니다. 참으로 그 옛날부터 하느님은 온 인류의 하느님이심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요나의 감정적 대응에 전혀 동요함이 없이 차분히 타이르시고 깨우치시며 지혜로이 대응하십니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느냐?”

 

이렇게 요나서는 끝납니다. 요나는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얼마나 동정과 연민의 하느님이신지 우리를 교육하는 요나서입니다. 참사람이 되는 공부중의 평생공부가, 가장 중요한 공부가 하느님을 아는 공부입니다. 하느님을 알아야 비로소 나를 알 수 있고 겸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 공부에 참 좋은 자료가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오늘 주님의 기도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기도의 전반부는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 그리고 후반부는 일상의 삶에서 필수적 요소의 청원들입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그대로 예수님의 단순하고 본질적 가난한 삶이 그대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기도를 날로 깊이 바쳐가면서 우리의 삶은 더욱 주님을 닮아 단순하고 본질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위치를 깨달아 앎으로 날로 우리를 겸손하고 단순하게 하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부단한 회개를 통해 내 중심의 삶에서 아버지 중심의 삶으로 부단히 전환해야 함을 배웁니다. 온 인류의 아버지이시니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자녀들이며 서로는 형제자매들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온인류가 아버지의 한가족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에 따른 우리의 의무와 책임이 마땅히 주어집니다. “아버지의 자녀답게”, 존엄한 인간 품위의 삶을 살아야 할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거룩하고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거룩하고 자비로운 자녀로서 살아야 할 책무요 이렇게 참 자녀답게, 참 사람답게 살라고 우리 삶의 좌표로 주어진 성인들입니다. 이어 기도의 후반부는 인간 품위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 필수적 세가지 청원입니다.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하루하루 날마다 일용할 양식의 간절한 청원과 더불어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한 우리의 노력도 함께 해야 함을 봅니다. 이어 주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 우리의 이웃의 용서를 위한, 또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한 우리의 자발적 노력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일방적으로 하느님 은총에 맡겨버리는 무책임한 자세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하느님 은총에 협조해 드리는 우리의 책임적 자세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하느님의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하라는 진인사대천명의 믿음의 자세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온몸과 온맘으로, 온힘으로 간절히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실천해 갈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꼴로 변모되어 주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주님의 기도” 청원대로 우리를 변모시켜 주시어, 우리 모두 하늘 나라를 실현하며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게 하십니다. 아멘.


10/12(목)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깃발을 선택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는 머물 곳이 많습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조재형 신부)

 

2.  루카의 행복과 불행 선언에서는 이것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태오 복음의 여덟 가지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닌 행복을 빼앗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부유한 사람과 배부른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들어 높임을 받아 지금 웃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합니다. 세속과 육신, 그리고 교만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리는 사람, 복음 때문에 박해 받고 모욕과 중상을 당하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복음삼덕, 곧 청빈-정결-순명이 행복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루카 복음만의 고유한 전승입니다. (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 4)
 
주님!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볼 수 있게 하소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구원자이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제 마음을 드리게 하시고 당신께 속한 자로 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부단한 회개를 통해 내 중심의 삶에서 아버지 중심의 삶으로 부단히 전환해야 함을 배웁니다. 온 인류의 아버지이시니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자녀들이며 서로는 형제자매들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온인류가 아버지의 한가족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수철 신부)

 

10/12(목)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제292일 기도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루카의 행복과 불행 선언!

부유한 사람과 배부른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들어 높임을 받아 지금 웃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합니다.

세속과 육신, 그리고 교만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리는 사람, 복음 때문에 박해 받고 모욕과 중상을 당하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복음삼덕, 곧 청빈-정결-순명이 행복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2023년 10월12일(목) 9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