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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0월 13일 금요일[(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0월 13일 금요일[(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에스 4,17②-③ 참조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의 날, 어둠과 암흑의 날>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13-15; 2,1-2
13 사제들아, 자루옷을 두르고 슬피 울어라.
제단의 봉사자들아, 울부짖어라.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아, 와서 자루옷을 두르고 밤을 새워라.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
14 너희는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원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을
주 너희 하느님의 집에 모아 주님께 부르짖어라.
15 아, 그날! 정녕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전능하신 분께서 보내신 파멸이 들이닥치듯 다가온다.
2,1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고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땅의 모든 주민이 떨게 하여라.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
정녕 그날이 가까웠다.
2 어둠과 암흑의 날, 구름과 먹구름의 날이다.
여명이 산등성이를 넘어 퍼지듯 수가 많고 힘센 민족이 다가온다.
이런 일은 옛날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세세 대대에 이르도록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2-3.6과 16.8-9(◎ 9ㄱ 참조)
◎ 주님은 온 누리를 의롭게 심판하시네.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찬송하며,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
○ 당신은 민족들을 꾸짖으시고 악인을 없애셨으며, 그 이름을 영영 지워 버리셨나이다. 민족들은 자기네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고, 자기네가 쳐 놓은 그물에 제 발이 걸리네. ◎
○ 주님은 영원히 좌정하여 계시고, 심판하시려 어좌를 든든히 하셨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심판하시고, 겨레들을 올바로 다스리시네. ◎

복음 환호송

요한 12,31-32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나리라.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이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서 세우신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저희가 정성을 다하여 마땅히 거행하는 이 거룩한 신비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의 구원을 이루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애가 3,25
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당신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
<또는>
1코린 10,17 참조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이어도 한 몸이네. 우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함께 나누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자라나
마침내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어릴 때 놀이 중에 팽이가 생각납니다. 팽이는 힘차게 돌아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돌지 않고 쓰러집니다. 그래서 팽이는 채찍으로 계속 돌려주어야 합니다. 채찍으로 돌리는 것을 게을리 하거나, 소홀히 하면 팽이는 이내 쓰러지고 맙니다. 집에서 키우는 화초도 그렇습니다. 가끔씩 잎을 닦아주고, 볕이 좋은 날 햇빛에 놓아두고, 적당히 물을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주 화초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화초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예민한 화초는 금세 시들어 버립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안전과 보안의 이유로 비밀번호를 정하는 것입니다. 비밀번호를 정할 때도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생일은 안 되고, 연속된 숫자도 안 되고, 8자리 이상은 정해야 되고, 특수문자도 있어야 되고, 어떤 것은 대문자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비밀번호를 정하는 것도 힘든데, 그렇게 정한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밀번호를 기록해 놓기도 하고, 자주 사용해야 합니다. 어쩌다 사용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 매일 피아노 연습을 했습니다. 엠이 피정 때 깜짝 발표를 하기로 했기에 더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하니 굳이 악보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손이 움직였습니다. 팬데믹도 끝나고 2년 가까이 피아노 곁을 떠나 있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손을 움직이려하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손이 무디어 진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가수 김수철 씨는 매일 1시간씩 기타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지 벌써 5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문가 수준의 기타 실력이지만 그렇게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실력이 녹슬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종기도는 삼종기도와 부활 삼종기도가 있습니다. 보통 삼종기도는 매일 하니까 입에서 쉽게 나오는데 부활 삼종기도는 부활시기에만 하기에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하지만 매일 하면 그것도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밀림이 숲으로 우거지는 것은 비가 자주 오기 때문입니다. 사막이 삭막한 것은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기도의 비, 나눔의 비, 희생의 비가 내리지 않으면 우리들 마음도 삭막해 질 것입니다. 꾸준히 기도하고, 기쁘게 나누고, 기꺼이 희생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사랑의 꽃이, 믿음의 꽃이 희망의 꽃이 필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심장은 당신 가운데 쉼을 얻을 때까지 편하지 않습니다. 주여! 저에게 앎과 헤아림을 주소서!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인지요! 당신을 부르는 것인지, 당신을 찬양하는 것인지요? 비슷하게 당신을 앎이 먼저인지, 당신을 부른 것이 먼저인지요? 허나 당신을 모른다면, 누가 당신을 부르겠습니까? 당신을 알지 못하는 이는 당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부를 것입니다.(고백록 1 1)” 위대한 영성가이자,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 앞에 쉴 때까지 이 마음은 늘 불안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우리가 마침표를 찍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께서도 늘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날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잘 지은 집도 3년만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엉망이 되곤 합니다. 집 앞의 텃밭도 한해만 돌보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양들은 목자와 함께 있어야 안전하다고 하셨습니다. 악한 세력은 힘들고 어려운 일 속에서도 우리를 넘어트리지만, 즐겁고 기쁜 일을 통해서도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일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입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 착한 뜻만 있다면 모든 질서 안에서 창조자의 선하심을 볼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자 어떤 사람들은 “저 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모함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귀들이 서로 싸운다면 그들의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라고 하며 당신의 힘은 성령님 덕분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모든 죄와 질병은 무질서입니다. 본래 창조된 질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병이고 그렇게 만드는 것들이 마귀들입니다. 열역학 제2 법칙은 더 큰 질서의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세상 어떤 것도 더 높은 수준의 질서로 갈 수 없다는 법칙입니다. 모래가 시계가 될 수 없고 저절로 건물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건물을 보고 스마트폰을 본다면 그 질서 속에서 어떤 누군가가 그 질서의 힘을 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이 고쳐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은 무질서인데, 병이 고쳐지고 마귀가 쫓겨나면 분명 질서를 잡아준 누군가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질서와 문명이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고 믿어 그 기원을 파헤쳐 보려 했던 영화가 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입니다. 

영화는 처음에 선사 시대를 배경으로 원시인들의 생활을 그립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 무리와 경쟁하며 먹이를 찾아다닙니다. 어느 날, 원시인들은 모놀리스라는 검은 직사각형 물체를 발견합니다. 이 물체의 출현 후 원시인들은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후 시간은 흘러 21세기로 넘어갑니다. 인류는 달에 기지를 세우고 탐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달에서는 선사 시대 때와 동일한 모놀리스가 발견됩니다. 탐사대는 이를 조사하던 중, 모놀리스는 갑작스러운 신호를 우주 깊숙한 곳으로 보냅니다. 이 신호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디스커버리라는 우주선이 목적지인 유성계의 행성, 주피터로 출발합니다. 선내에는 인공지능 HAL 9000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HAL은 결함을 보이며, 인간 승무원들에게 위협이 되기 시작합니다. 목성 근처에서, 우주선의 남아있던 승무원, 데이브는 우주에 떠 있는 모놀리스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는 이상한 공간을 통과하며 다양한 시공간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데이브는 높은 수준의 존재로 진화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데이브가 거대한 아기로 변하며 지구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항상 ‘외부’의 존재, 여기서는 모놀리스가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고도의 문명이나 더 높은 수준의 존재가 인간의 진화에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HAL 9000과의 갈등에서는 인공지능과 기술의 위험성을,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와 기술의 한계를 탐구합니다. 많은 영화에서 인간의 근원을 찾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문명과 기술이 저절로 생겨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미지의 세계에서 모놀리스나 인간의 형상을 닮은 건축물을 만나게 되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렇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질서가 창조 되었다면 그 누군가는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질서를 잡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소용 됩니다. 누군가 질서를 주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였다면 사랑하였다는 뜻입니다. 어떤 물건이든 사랑 없이 만들어지는 물건이 없습니다. 누군가 비행기를 만든다면 그 노력으로 어떤 이들이 편안하기를 바라고 또 그것을 통하여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에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루마니아늬 요람이란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양식과 집이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쌍한 고아들은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음식은 주어졌지만, 사랑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이 질서 잡힌 인간으로 성장할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질서는 또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질서를 잡는 에너지입니다. 부모의 사랑 없이 자녀가 제대로 자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질서 잡힌 어른을 보면 누군가가 그에게 사랑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질서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을 주시는 분을 보이지 않더라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이러한 질서의 세상 안에서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거나 그것을 만든 대상에게 사랑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무질서를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마귀의 힘을 빌려서 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무언가 질서가 잡혀간다면 에너지가 있고 사랑이 있고 그것을 주는 분이 계신 것입니다. 죄와 병과 무질서는 오직 사랑의 힘으로 통해서 용서 받고 고쳐지고 바로 세워집니다. 그래서 주님의 손가락으로 병이 치유되거나 죄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다면 이미 아버지의 나라가 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당신이 사랑으로 만드신 것을 지키고 보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삽니다. 그분을 인정하기만 하면. 사랑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영원히 창조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012.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 11,10)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빠, 아버지”께 기도할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한밤중에 찾아온 벗에 대한 비유’와 ‘세상의 아버지에 대한 비유’를 통해 아버지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넉넉히 주시는 분이심을 가르쳐주십니다.
 
<첫 번째> 비유는 잠을 자던 사람도 벗의 끈질긴 간청에는 마지못해 들어주거늘, 하물며 주무시지도 않으며 오히려 잠든 우리를 깨워 간청하게 하시는 아버지께서야 얼마나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는지를 들려줍니다.
 
<두 번째> 비유는 세상의 아버지들도 제 자식들에게는 세상의 좋은 것을 주거늘, 하물며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야 어련히 하늘의 좋은 것들을 주시지 않겠는지를 들려줍니다. 그러니, 이토록 넉넉히 주시는 아버지께 청하라 하십니다.
 
“청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10)
 
여기에서는,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을 통해 하느님을 향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이를 우리는 대신덕 혹은 향주덕이라 부릅니다. 곧 ‘청하라’는 것은 희망하고 열망한 바를 입으로, 곧 말로 간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희망을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께 두고 겸손하게 청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먼저 아시고, 우리가 그것을 청하기를 바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기와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청할 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진정 원해야 할 것을 원하고, 청해야 할 것을 청해야 할 일입니다.
 
‘찾아라’는 것은 믿음을 아버지께 두고, 믿는 바를 몸으로 수고로움을 바쳐 찾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사실, 아버지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아 나서시며, 우리가 찾아 나서기만 하면 “네가 나를 찾아 부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나 여기 있노라’ 하고 말씀하시는 분”(이사 65,24;베네딕도 규칙서 머리말 18)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불신과 의혹에 빠져도 결코 우리에게서 믿음을 거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충실하시고 신실하시고 항구하게 우리를 찾으시니, 우리 또한 그렇게 찾아나서야 할 일입니다.
 
“두르려라”는 것은 사랑의 가슴으로 “두드려라”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께서 사랑으로 마음을 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이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라고 먼저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희망과 믿음과 사랑으로, 말과 몸(행동)과 가슴으로 곧 전인격으로 아버지께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곧 희망하는 바를 말로 청하고, 믿는 바를 행동으로 찾으며, 사랑하는 바를 마음으로 두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불신과 분리를 조장하는 교활한 뱀이 아니라, 거센 파도에도 상하지 않고 온 몸을 맡기는 일치와 믿음의 생선을 주실 것입니다. 뒤꼬리에 독침을 품고 있어 뒤를 경계하게 하는 전갈이 아니라, 병아리를 탄생시킬 앞을 바라보게 하는 희망의 달걀을 주실 것입니다. 단단하여 도저히 삼킬 수 없는 돌이 아니라, 생명을 살찌울 사랑의 부드러운 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청한 것보다도 “좋은 것”(마태 7,11), 곧 “성령”(루카 11,13)을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청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 11,9)

주님!
희망할 줄을 알게 하소서! 그 희망을 당신께 두게 하소서!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이 희망하는 바를 청하게 하시고,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제가 응답하게 하소서!
말로만 청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당신을 몸으로 찾게 하시고,
진리 안에서 행동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진리의 문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두드리게 하소서!
우리를 가로막은 장막을 찢으시고, 서로가 열리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한결같은, 끊임없는 기도와 믿음의 삶-

  

일기쓰듯 하는 강론입니다. 오늘 역시 만세육창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 민주당이 압도적 승리로 끝났습니다. 선거혁명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역동적 사회인지 희망을 읽습니다. 새벽 읽은 어느 열심한 자매가 보내준 카톡 메시지도 신선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헛된 것에 목숨 걸고 집착을 하는지요. 주님의 기도 열심히 바치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강물같이 흐르는 시간입니다. 모두가 다 지나갑니다. 하느님 빼놓고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엊그제 10월10일 ‘아흔여섯 최장수 현역 문인 김남조 마리아 막달레나(1927-2023)’ 시인이 별세했습니다. 모든 일간 신문에서 큰 지면을 할애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높은 가톨릭 대표적 여류시인입니다. 10년전 인터뷰 기사와 만93세 때 낸 시집 “사람아, 사람아”란 시인의 끝시집에 나오는 “사랑, 된다” 시 전문을 인용합니다.

 

“80년을 살고 나니까 생명이라는 것의 갸륵함을 느낀다. 사람은 물론이고,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곤충일지라도 몸이라는 작은 우주 안에 신기한 맥동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주어진 시기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사랑 안 되고

 사랑의 고백 더욱 안 된다면서

 긴 세월 살고 나서

 사랑 된다 사랑의 고백 무한정 된다는

 이즈음에 이르렀다 

 사막의 밤의 행군처럼

 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그 이슬같은 희망이

 내 가슴 에이는구나

 사랑 된다

 많이 사랑하고 자주 고백하는 일

 된다 다 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의 다음 말을 통한 고백도 심금을 울립니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를 구걸하는 사람이다. 시여 한평생 나를 이기기만 하는 시여”, 저는 ‘시’대신 ‘하느님’으로 바꿔 읽습니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하느님을 구걸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이여 한평생 나를 이기기만 하는 하느님이여” 분명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저절로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김남조 시인의 시는 거의가 기도시처럼 느껴집니다. 그의 뒤엉킨 생을 읽는 키워드는 단연코 ‘사랑’ 그리고 ‘사랑’입니다. 기도는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는 저절로 기도하고 시를 씁니다. 사실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요 누구나 시인이 되는 계절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은 기도로 끝났고 지금 10월은 묵주기도 성월,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비단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사람이,  사랑이 됩니다. 사랑하라 사람입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사랑이요 사람이 됩니다. 어제 복음은 주님의 기도였고, 오늘은 기도와 믿음의 삶에 대한 자세입니다. 끊임없이 간청하라는 비유 마지막 예수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줄 것이다.” 

 

좌절하지 말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집요하게 청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뻔뻔함은 얼마든 좋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그대로 예수님의 심중을 반영합니다. 역시 한결같이, 끊임없이 청하라는, 끊임없이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이것은 기도의 자세이자 믿음의 자세이고 삶의 자세입니다. 끝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이렇게 살아야 참 좋은 영적탄력에 영적건강입니다. 그러니 탓할 것은 하느님도 그 누구도 아닌 나입니다. 쉽게 포기하고 쉽게 좌절하는 나입니다. 제 좋아하는 단골 용어도 생각납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참 신자의 삶이요 이래야 영적 탄력이 살아난다.”

 

육신의 탄력이 떨어져도 열정이 식어 영적 탄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영적탄력의 척도는 백절불굴의 믿음이요 희망이요 사랑의 열정입니다. 이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끊임없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도 멋지고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다 더 주시겠느냐?”

 

최고의 참 좋은 선물이 성령이요, 이 성령이 지칠줄 모르는 열정의 원동력이 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이런 성령의 사람들, 영적탄력 좋은 기도와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말라키 예언서에 나오는 불신자들처럼 무엄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하느님을 떠나 희망을 잃업 버렸을 때, 영적탄력을 잃어 버렸을 때, 완전히 부정적 비관적 인생관이요 회복불능의 좌절 절망 상태로의 전락입니다. 참으로 말라키 예언서 마지막 부분, 심판과 구원이 확연히 드러나는 상황이 더욱 우리를 분발케 하여 한결같은, 끊임없는 기도와 믿음의 삶을 살도록 부추깁니다.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라.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두지 않으리라.”

 

오늘이 그날입니다. 언젠가 그날이 아니라 오늘 여기부터 시작된 심판이자 구원입니다. 오늘 여기서부터 천국을 사는 이도 있고 연옥을 또 위 상황같이 지옥을 사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묘사는 얼마나 고무적인지요! 바로 주님을 경외하여 한결같이, 끊임없이 사랑의 기도와 믿음의 삶에 충실한, 영적탄력 좋은 이들에게 오늘부터 주어지는 축복의 현실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리라.”(말라키3,20ㄴ). 아멘.


10/13(금)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입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조재형 신부)

 

2. 주님의 손가락으로 병이 치유되거나 죄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다면 이미 아버지의 나라가 와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당신이 사랑으로 만드신 것을 지키고 보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삽니다. 그분을 인정하기만 하면. 사랑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영원히 창조합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청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 11,9)

주님!
희망할 줄을 알게 하소서! 그 희망을 당신께 두게 하소서!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이 희망하는 바를 청하게 하시고,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제가 응답하게 하소서!
말로만 청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당신을 몸으로 찾게 하시고,
진리 안에서 행동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진리의 문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두드리게 하소서!
우리를 가로막은 장막을 찢으시고, 서로가 열리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이것은 기도의 자세이자 믿음의 자세이고 삶의 자세입니다. 끝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이렇게 살아야 참 좋은 영적탄력에 영적건강입니다. (이수철 신부)

 

10/13(금)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제293일 기도   

 

복음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일들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게 하소서.

하느님의 영광이 나의 일들 속에서 드러나게 하소서.

나의 믿음이 나를 구원에로 이끄소서. 아멘.

 

- 2023년 10월13일(금) 5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