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0월 31일 화요일[(녹) 연중 제30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본기도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8,18-25
형제 여러분,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네.
○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
○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
○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18-21
그때에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께 올리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바치는 제사가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당신의 구원에 우리가 환호하며, 하느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리이다.
<또는>
에페 5,2 참조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셨네.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놓으시어, 하느님께 향기로운 예물로 바치셨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체성사의 은혜를 풍부히 내려 주시어
저희가 거행하는 이 신비를 그대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60이 훌쩍 넘은 신부님은 아직도 청년과 같은 ‘꿈’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지난 팬데믹 때입니다. 3000곳이 넘는 성모성지 중에서 남양 성모 성지가 교황청에 의해서 선택되었다고 합니다. 남양 성모 성지는 교황님과 함께 팬데믹 종식을 기원하는 ‘묵주기도’ 성지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교황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하는 30곳의 성지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신부님께서 성모님과 함께하려는 좋은 몫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은 성모 대성전 아래에 ‘예술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예술원에는 공연장, 극장, 식당, 카페, 전시관이 들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성모 대성전으로 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더 깊은 곳’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했던 것처럼 신부님은 ‘예술원’이라는 그물을 던지려는 것 같았습니다. 신부님은 성모님의 전구로 우리 민족의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이번 성지순례 중에 4번의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였습니다. 밀양의 김범우 토마스 하느님의 종이 있는 묘소에서 하였습니다. 거제의 윤봉문 요셉 복자가 있는 순교 탑에서 하였습니다. 전주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복자의 가족이 있는 묘소에서 하였습니다. 베티의 무명 순교자가 있는 묘소에서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모두 산이나 언덕을 오르는 곳에 있었습니다. 남양 성모 성지의 신부님은 기존의 십자가의 길과는 다른 십자가의 길을 ‘꿈’ 꾸었습니다.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십자가의 길을 만들겠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지만 부활하셨던 것처럼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십자가의 길을 만들고 그 끝에는 순교자의 무덤이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상으로 나와 주님께서 부활하셨던 것처럼 부활을 희망하는 그런 십자가의 길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신부님과 이야기하면서 ‘겨자씨’를 보았습니다. ‘누룩’을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 좋은 몫을 ‘선택’했으니 겨자씨는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누룩은 부풀어서 맛있는 빵이 될 것입니다. 성모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이 넘쳐나는 신부님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성모님의 사랑으로 신부님이 늘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가해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루카 13,18-21
시계는 태엽만 감을 줄 알면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행복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영원히 삽니다. 하느님 나라를 거부하면
이 세상에서부터 지옥을 체험하고 결국 그곳으로 갑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 안에 겨자씨와 누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겨자씨와 누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2022)에서 한 중국 시골 노총각은 단돈 4만 원에 장애가 있는 여자를
아내로 사옵니다. 이런 관계가 잘 될 수 있을까요? 결국 잘 됩니다.
노총각은 사랑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사랑은 주는 것임을 압니다.
아내도 남편의 진심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내가 사고로 죽습니다.
남편은 더는 살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아내를 따라갑니다.
이 영화에서 남자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사랑을 몰랐을 것이고 그러면 더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을 알고 나서 사랑하지 않는 삶은 사는 게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우리 안에 받아들여야 하는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시계는 태엽을 감거나 건전지만 갈아주면 저절로 갑니다. 우리는 겨자씨가 어떻게 싹이 터서
어떻게 자라는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겨자씨가 심겨지면 자라서 새들을 쉬게 할 수 있음만
알면 됩니다. 새들은 힘든 사람들입니다. 나에게 사랑이 심겨지면 사람들을 쉬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도가에서는 이것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합니다.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떨어지면 나를 정화시킵니다. 밀가루 서 말은 곧 우리 안의 삼구,
곧 탐욕-성욕-교만을 꺾어 정화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덕이 생겨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기로 남습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가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는
나 자신이 정화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붙어있기만 하려니까 저절로 성령의 열매들이
맺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도만 하면 됩니다. 기도란 은총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성찬의 전례, 말씀의 전례와 같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은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은 후였습니다. 그것을 읽으니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성체에서 울려 나오는
다 주셨다는 그분의 목소리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사제로 살아갈 힘을 줄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저 사랑을 받아들이면 인간은 마치 다시 태엽기 감긴
시계처럼 째깍째깍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유튜브 동영상에서 한 아빠가 코로나로 식당이
잘되지 않자 새 메뉴 개발을 한다고 힘들어 식당 의자에 앉아 엎드려 자고 있었습니다.
작은 딸아이가 아빠를 찾다가 피곤해서 자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 조끼를 벗어 아빠를 덮어드립니다.
아빠는 자고 일어나 자기 등에 아이의 조끼가 있는 것을 알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것입니다.
삶에 힘이 빠진다면 사랑받지 못해서입니다. 그것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기 위해 열심히 진리를 받아들입시다.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고 저 같으면 하.사.시.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그분께서 성체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느끼기만 해도 그분께서
우리를 감싸주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살 힘을 얻습니다.
연료를 넣지 않고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자동차는 없듯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인간도 없습니다.
우리에겐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030.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루카 13,1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려 허리가 굽은 여인’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루카 13,12)
그 여인이 치유를 간청하거나 믿음을 고백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의 ‘말씀’과 ‘안수’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대한 분노를 안식일에 몰려든 군중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율법위반으로 단죄합니다. <신명기>(5,12-15)와 <탈출기>(20,8-18)에 따라, 안식일에 노동할 수 없다는 구실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한 일은 치유를 받았을 뿐, 노동을 한 것은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활동도 ‘말씀’과 ‘안수’ 밖에 없었고. 치유자체는 하느님의 권능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회당장은 치유를 하느님이 이루신 해방으로 보지 않고, 인간적 노동으로 간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치유를 하셨지만, 회당장은 그것을 율법위반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정신은 <탈출기>(20,8-11)에 따르면, 선행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행을 멈추고 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곧 안식일은 장차 있을 휴식의 표상으로, 죄의 짐을 지지 말고 선행을 쌓아 미래의 안식을 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회당장은 병마에 묶여있던 여인처럼, 문자(율법)에 묶여있고 질투(어둠과 죽음)에 묶여 있었습니다. 사실, 그가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비난하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 그가 비난하는 진짜 이유는 예수님께서 찬양받는 것에 대한 질투였습니다. 그는 질투에 묶여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위선자라고 질책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루카 13,16)
이처럼, 유대인들이 안식일이더라도 가축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날인 ‘안식일’에 아브라함의 병든 딸을 고쳐주시는 것을 당연한 일, 아니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여기셨습니다. 생명을 바로 세우고 살리는 일,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의 정신이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통하여 안식일의 정신을 실현하시고,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를 본 군중처럼,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루카 13,17)하며, ‘허리 펴진 여인’처럼, 우리 주님 “하느님을 찬양”(루카 13,13)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루카 13,16)
주님!
꺾인 제 영혼에 당신 손을 얹으소서.
악행을 멈추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소서.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고, 하늘을 우러러 찬양하게 하시고,
당신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로운 삶-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시편42,1)
어제 강론시 인용했지만 저에게 가벼운 충격이자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무려 강론에 사랑이란 단어가 112회나 사용되었다는 것이 한편 부끄러웠고, 사랑이 빠진 인생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하는 깨달음이 깊이 각인된 날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판단의 잣대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대하니 저절로 참 많이 나눴던 사랑의 고백, 예닮기도를 바치고 싶습니다. 이런 사랑의 고백기도는 늘 반복하여 바쳐도 늘 새롭고 좋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2018.10.16.
벌써 5년째 참 많이 나눴던 예닮기도 전문입니다. 명칭도 감사기도에서 행복기도로 이어 예닮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이런 사랑의 예수님의 진면목은 오늘 복음에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등굽은 여자를 치유해주시는 장면에서 회당장의 첫눈에 들어온 것은 율법의 잣대 였지만, 예수님께는 사랑의 잣대였습니다.
열여덟해 병마에 시달리던 등굽은 여자가 상징하는 바, 온갖 세상 짐들 무게에 짓눌리며 살아가는 모든 불쌍하고 가련한, 참으로 해방과 자유가, 안식이 필요한 민초들이요 바로 이것이 안식일의 참된 취지이겠습니다. 이미 루카복음 앞부분에서 공생애가 시작될 때 선포된 주님의 사명이 실현되기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나 이제나 계속되는 부자유하고 무지한 인간의 내적 현실이요 예수님이 아니고는 누가 우리를 참으로 해방과 자유의 길로 이끌수 있겠는지요! 등굽은 병마에 시달리던 여자가 상징하는 바 우리 약한 인간 모두들입니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하시고 그 여자에 손을 얹으시자 그 여자는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하니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장면인지요! 그대로 부활의 기쁨에 주님을 찬양하는 치유받은 여인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온갖 근심과 걱정, 두려움과 불안으로 마음의 등 굽은 우리를 똑바로 일으켜 주십니다.
여전히 안식일법의 잣대에 사로잡힌, 안식일법의 참된 취지를 망각한 회당장에 대한 주님의 질책은 오늘날의 법지상주의자들에 대한 회개의 촉구이기도 합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풀어 물을 먹이는 실례를 예시하면서 회당장의 위선의 무지를 꾸짖습니다.
“위선자들아,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들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안식일법 너머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의 절박한 현실을 깊이 통찰한 연민 가득한 주님의 해방과 치유의 활동입니다. 안식일법의 근본취지도 이런 모두의 해방과 자유, 안식에 있는데 회당장은 이를 까맣게 잊었던 것입니다. 적대자들은 망신을 당했고 마음이 순수한 민초들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니 새삼 민심이 천심임을 입증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세 스타일- 친밀함, 연민, 부드러움-이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을 잘 보완하는 제1독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고맙습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으로 자유롭게 살게 하는 성령의 은총입니다. 성령은 사랑입니다. 파스카 예수님의 치유활동은 성령을 통해 오늘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의 공동상속자인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의 공동상속자’ 얼마나 영예스러운 우리의 신원인지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과 깊어가는 일치와 더불어 날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 바라는 너희가 모두,
굳세게 굳세게 마음들을 가져라."(시편31,25). 아멘.
10/31(화)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사랑의 겨자씨, 희망의 겨자씨, 믿음의 겨자씨’를 키우면 좋겠습니다. ‘청빈의 누룩, 순명의 누룩, 정결의 누룩’을 키우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조재형 신부)
2.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기 위해 열심히 진리를 받아들입시다.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고 저 같으면 하.사.시.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그분께서 성체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느끼기만 해도 그분께서
우리를 감싸주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살 힘을 얻습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루카 13,16)
주님!
꺾인 제 영혼에 당신 손을 얹으소서.
악행을 멈추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소서.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고, 하늘을 우러러 찬양하게 하시고,
당신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위선자들아,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들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이수철 신부)
10/31(화)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제311일 기도
복음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를 희망합니다.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로 되듯이
겨자씨인 나를 나무로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굳게 믿습니다.
- 2023년 10월31일(화) 6시1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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