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1월 15일 수요일[(녹) 연중 제32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본기도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6,1-11
1 임금들아, 들어라. 그리고 깨달아라. 세상 끝까지 통치하는 자들아, 배워라.
2 많은 백성을 다스리고 수많은 민족을 자랑하는 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3 너희의 권력은 주님께서 주셨고 통치권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주셨다.
그분께서 너희가 하는 일들을 점검하시고 너희의 계획들을 검열하신다.
4 너희가 그분 나라의 신하들이면서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5 그분께서는 지체 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6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7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8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9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10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11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일어나소서, 하느님, 세상을 심판하소서.
○ 힘없는 이와 고아의 권리를 찾아 주고, 가난한 이, 불쌍한 이에게 정의를 베풀어라. 힘없는 이와 불쌍한 이를 도와주고,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어라. ◎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사람들처럼 죽으리라.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쓰러지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모든 일에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그 신비를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또는>
루카 24,35 참조
빵을 나눌 때,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알아보았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저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뉴욕으로 돌아온 다음날 ‘꾸르실료’ 교육에 함께 했습니다. 꾸르실료는 3박 4일 동안 교육을 통해서 ‘순종, 이상, 사랑’의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봉사자들은 제게 ‘어제 한국에서 왔는데 시차 때문에 피곤하지 않으신지요?’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시차 때문에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그런 교육에 함께 하면서 오히려 시차를 쉽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브레이크는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꿀벌이 슬프다고, 아프다고, 힘들다고, 외롭다고 일을 멈추면 이미 꿀벌이 아니듯이, 신앙인은 슬플지라도, 아플지라도, 힘들지라도, 외로울지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노약자를 위해서, 장애인을 위해서, 바쁜 사람을 위해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바쁜 의사 선생님이 가능하면 늘 계단을 걷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환자들을 위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교육 중에 신부님들의 좋은 강의를 듣는 것은 제게도 영적으로 큰 위안이 됩니다. 그 또한 시차로 인해 피곤해진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생명의 은총을 이야기하면서 신부님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전해 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잠시 ‘멈춤’이라고 합니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면 더욱 깊이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려고 하면 더욱 상황은 어려워지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잠시 멈춰서 있으면 조금씩 보인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쉼 호흡’이라고 합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마음을 정리하면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숨고르기를 3번만 해도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숨고르기를 6번만 하면 나의 표정이 변한다고 합니다. 숨고르기만 잘 할 수 있어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생각하기’입니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가 있으면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을 수 있듯이 깊이 생각하면 몸도 마음도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네 번째는 ‘행동하기’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비로소 보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행동이 없는 생각은 헛된 꿈이 될 뿐입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도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멈춤, 쉼 호흡, 생각하기, 행동하기’ 이것을 배운 것만으로도 3박4일의 교육은 감사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도움의 은총을 이야기하면서 신부님은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성가를 들려주었습니다. 가사의 내용을 음미하니 더욱 좋았습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그러면서 사위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장인의 편지를 읽어 주었습니다. 장인은 사위가 처음 집으로 온 날부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신앙생활을 할 때도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사위가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할 때도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 기도는 장인이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될 것이라고 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저 역시도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는 적금, 보험, 연금에 가입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도움의 은총’을 나누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면 그 기도는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은사를 받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던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내가 받았던 생명의 은총을 이웃을 위한 도움의 은총으로 나눌 수 있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가해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루카 17,11-19
말씀 한마디로 이미 치유와 구원, 새로운 생명의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오랜 인류 역사 안에서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는 혹독하고 슬픈 현실을
여기저기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념이 없음을 넘어 시한폭탄 같은 통치자들로 인해 겪는 백성들의 고통입니다.
이런 연유로 오늘 주님께서는 첫 번째 독서인 지혜서 말씀을 통해 그릇된 권력자들을 향해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던지고 계십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권력을 손에 쥐었다고 해서 거들먹거리거나 오만불손하지 마십시오.
권력의 주인이요 최종적인 집행자는 오직 주님 한뿐 뿐임을 기억하십시오.
한시적으로 맡겨진 권력은 오직 백성들을 위한 섬김의 도구입니다.
권력자들은 겸손과 지혜와 거룩함으로 무장하여 백성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권력자들의 최후는 비참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지체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지혜 6,5)
우리의 주님은 참 묘한 분이십니다.
권세 있는 자들에게는 그리도 엄중하신 분이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 기가 꺾이고 상처투성이인
당신 백성들, 특히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자비는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런 자비 가득한 주님의 모습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시는데, 나병 환자들이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열 사람이나 몰려왔습니다.
예수님 시대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고 단절된 나병 환자들의 고통과 외로움은 그야말로 사무쳤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살아있지만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일종의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일반인들의 구역에서 살지 못하고 성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토굴을 파거나 움막을 짓고 산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나마 동료 나병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로구나, 하면서 위로를 받았고,
동병상린의 정을 느꼈습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은 일반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면 율법에 저촉되는 행위였기에,
예수님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크게 외쳤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12)
다른 사제나 레위인들은 본체만체하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외침을
흘려버리지 않으시고 귀담아들으셨습니다.
그들의 절박한 처지, 오랜 고통의 세월을 눈여겨보셨습니다.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그들을 지긋지긋한 고질병을 말끔히 치유해주십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의 몸을 보여라.”
예수님의 그 말씀 한마디로 이미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되었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114.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의 종으로 비유하며, “종”으로서 해야 할 일과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종”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지니지 못하고 자유가 없이 매여 “종”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군주독제의 노예로 속박되어 살아가는 비천하고 뒤틀린 질곡의 삶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그렇다면 “종”이란 누구인가? “종”(δουλοσ, slave)은 주인에게 속하여, 그의 아래에서 섬기는 이입니다. 곧 고대 이집트나 로마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배 아래에 매여 있는 이들로, 북소리에 맞춰 노를 젓는 이들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의 종살이를 하였고 모세와 함께 해방되었지만, 또 다시 바빌론의 유배를 당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역사를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지만 그들은 하느님께 불충함으로써 또 다시 전락하였고, 아담의 죄로부터 시작된 고통과 죽음의 종살이는 율법으로 더 강화되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노예상태를 풀어주기 위해 스스로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오시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를 <이사야서>에서는 네 개의 “야훼의 종의 노래”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종’일뿐만 아니라 기꺼이 ‘인간의 종’도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죄와 죽음과 율법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자유인으로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의 “주님”이 되어 주셨고, 우리는 ‘해방된 종’, 곧 ‘자유인으로서 종’으로서,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라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을 소명으로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티토에게 보낸 편지>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하느님의 종”(티토 1,1)이라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유인’으로서, “주님의 종”이 된 이들입니다. 그 표시로 세례로 성령의 날인을 받고, 그리스도의 인장으로 날인된 이들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장을 받은 이들을 바오로 사도는 “의로움의 종”(로마 6, 19)이라 부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종”으로 산다는 것은 ‘자유로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며 하느님의 의로움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지체가 몸에 속해 있듯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섬김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도 바로 이 일, 주님을 섬기는 일을 다 하게 하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부하신 대로 다 하게 하소서!
다 하였다고 해서, 교만하지 않게 하소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다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언제나 감사하게 하소서!
분부를 해 주심에 감사하고, 섬길 수 있도록 하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그렇습니다. 주님!
분부 받은 일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섬기는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부하신 대로 섬기게 하소서!
혹 그대로 하였다고 해서 교만하지도 않게 하소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혹 다 하지 못하였다 해도, 언제나 감사하게 하소서!
분부를 해 주심에 감사하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삶-
어제 수도형제들과 함께 참 오랜만에 왜관 수도원 장례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독일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중 가장 친화력이 좋고 한국말을 잘하며 명랑하고 활달했던 거의 한국인과 같았던 주광남 보나벤투라 수사님 장례미사였습니다. 수사님의 약력도 각별한 느낌이었습니다.
1937년에 태어나 17살(1954년)에 수도원에 입회했고 22세(1959년)에 종신서원후 한국에 파견되어 86세(2023년)까지 선교사로 사셨으니 64년을 한국에서 사신 것입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파킨스병의 악화로 병상에서 참 힘든 삶을 사셨으나 끝까지 순종하는 자세로 사시다가 선종한 것입니다. 어제 날씨는 겨울 날씨처럼 추웠지만 참 아름다운 만추(晩秋)의 위령성월이라 뜻 깊게 생각되었습니다.
“아, 수사님은 삶의 온갖 병고에서 해방되어 죽음의 마지막 문을 통과해 아버지의 집에 귀가하셨구나! 아, 축제와 같은 죽음이다! 죽음은 해방이요, 귀환이요, 해후요, 화해요, 위로요, 구원이로구나!”
저절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정말 장례미사는 물론 장지에서의 느낌 역시 축제같은 느낌이었고, 수도원 묘지에는 정다운 추억을 지닌 세상을 떠난 무수한 수도형제들이 살아서 수사님을 반가이 맞이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떠오른 18년전 2005년 위령성월 단풍잎들 찬란히 덮인 땅을 보며 쓴, “마침내 별들이 되어” 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별들이
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단풍 나뭇잎들
하늘 향한
사모(思慕)의 정(情) 깊어져
빨갛게 타오르다가
마침내
별들이 되어
온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오!
땅의 영광
황홀한 기쁨
죽음도 축제일수 있겠다”-2005.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고해인생이 아니라 축제인생이요, 죽음도 축제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은 ‘무에로의 환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라는 것입니다. 미사경문 제3양식중 장례미사시 제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성자께서 죽은 이들의 육신을 다시 일으키실 때에
저희의 비천한 몸도 성자의 빛나는 몸을 닮게 하소서.
또한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
모두 주님 나라에 너그러이 받아들이시며
저희도 거기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저희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그때에
하느님을 바로 뵈오며
주님을 닮고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리이다.”
바로 우리의 궁극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런 좋으신 사랑의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둘 때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지혜서 역시 의인들의 죽음에 대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며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선택받은 우리들에게 주신 은총은 헤아릴 수 없이 무궁무진합니다. 우리가 드릴 응답은 찬미와 감사, 겸손과 순종, 사랑과 믿음뿐일 것입니다. 모두가 은총인데 새삼 무엇을 청하겠는지요! 참으로 이런 주님께 희망을 두고 믿고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다만 ‘종과 섬김의 삶’에 충실하며 ‘귀가의 여정’을 살 것입니다.
특히 강조할 것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쉬운 것은 우리이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쉬워서 기도하고 미사드리는 것이지 하느님이 아쉬워 기도하고 미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쉬워, 구원받기 위해, 찬미와 감사요, 섬김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 ‘연중 평일 감사송 4’ 양식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쉬워, 필요해, 살기위해, 구원받기 위해, 주님을 열렬히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찬미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차고 넘치는 은혜와 감사인데 새삼 무엇을 요구하겠는지요! 이렇게 이해하면 오늘 복음에서 종의 반응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지혜로운 것입니다.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는 주님의 다정한 충고 말씀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평생 화두로 삼아 깊이 늘 새기고 지내야 할 복음 말씀입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이런 종들 정말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지혜롭고 겸손한, 충실하고 의로운, 멋지고 매력적인 종들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이런 영성으로 종과 섬김의 삶을 살면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자체가 구원이요,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역시 순탄대로를 밟을 것입니다. 저절로 이어지는 감사와 놀라움의 고백일 것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 사랑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주님의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시고, 하루하루 한결같이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11/15(수)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숨고르기를 3번만 해도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숨고르기를 6번만 하면 나의 표정이 변한다고 합니다. 숨고르기만 잘 할 수 있어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멈춤, 쉼 호흡, 생각하기, 행동하기’ 이것을 배운 것만으로도 3박4일의 교육은 감사의 시간이 되었습니다.(조재형 신부)
2.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그들을 지긋지긋한 고질병을 말끔히 치유해주십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의 몸을 보여라.”
예수님의 그 말씀 한마디로 이미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되었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그렇습니다. 주님!
분부 받은 일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섬기는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부하신 대로 섬기게 하소서!
혹 그대로 하였다고 해서 교만하지도 않게 하소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혹 다 하지 못하였다 해도, 언제나 감사하게 하소서!
분부를 해 주심에 감사하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이런 종들 정말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지혜롭고 겸손한, 충실하고 의로운, 멋지고 매력적인 종들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이런 영성으로 종과 섬김의 삶을 살면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자체가 구원이요,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역시 순탄대로를 밟을 것입니다. 저절로 이어지는 감사와 놀라움의 고백일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11/15(수)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제326일 기도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전지전능 무소불위 사랑의 하느님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부하신 대로 섬기게 하소서!
혹 그대로 하였다고 해서 교만하지도 않게 하소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혹 다 하지 못하였다 해도, 언제나 감사하게 하소서!
분부를 해 주심에 감사하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 2023년 11월15일 4시4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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