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1월 14일 화요일[(녹) 연중 제32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본기도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2,23―3,9
23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24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3,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
○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그 신비를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또는>
루카 24,35 참조
빵을 나눌 때,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알아보았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저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고향이 좋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술이 취해 하는 말이야/ 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님 생각 고향 생각 달래려고 하는 말이야/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고향이 좋아’라는 노래의 가사가 다 맞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4년이 넘게 뉴욕에 살면서 타향도 정이 들면 지낼 만 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욕에는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신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추모관에 가서 연도를 하였고, 가족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보고 싶었던 동창 신부님들도 만나고, 함께 했었던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동창 신부님의 배려로 좋은 숙소에서 편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깨끗하고, 편리하고, 모든 것이 익숙했습니다. 그럼에도 왠지 어색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제가 잠시 머물기 위해서 왔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뉴욕 공항에 내리면서 하늘을 보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 될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민 와서 정을 나누며 사는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때는 한국에 더 많은 정이 갈 것 같습니다.
생각하니 사제의 삶은 ‘유목민’의 삶과 비슷합니다.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기 보다는 교구의 인사이동에 따라서 계속 머무는 곳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32년 사제생활을 하면서 6곳의 본당에 있었습니다. 4곳에서는 보좌신부를 하였고, 2곳에서는 본당 신부를 하였습니다. 중견사제 연수와 제주도 엠마오 연수를 하였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였고, 용문 수련장에서도 지냈습니다. 지금은 이곳 뉴욕에서 신문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사제로 사목했던 중곡동에서의 생활은 먼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용산에서는 3분의 본당 신부님을 모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검정에서는 2년 동안 성전신축을 하면서 빌라에서 지냈습니다. 제기동에서는 말년 보좌신부로 지냈습니다. 적성에서는 드디어 본당신부가 되어서 지냈습니다. 그러니 제게는 타향이 곧 고향 같습니다. 우리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유목민’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정든 고향을 떠났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어디에 사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낼 수 있다면 바로 그곳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내 욕망과 내 욕심을 먼저 찾으려고 한다면 아무리 편하고, 풍요로운 곳일지라도 결코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은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유목민처럼 먼 타향에서 땀 흘린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 있습니다. 광부로 파견되고, 간호사로 파견되어 힘들게 살았던 분들이 있습니다. 열사의 사막에서 땀 흘린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고통 받는 것 같았지만 희망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한다면, 진리를 깨닫는다면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그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2.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왜 억지로라도 감사를 표현해야 할까?; 사람은 표현되는 자신을 믿는다
오늘 복음은 ‘감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종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와 주인의 음식 시중을 들고는 이렇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9-10)
그리고 이어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신 내용이 이어집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 중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전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명뿐입니다. 곧 나중에 용서의 삶을 살게 되는 이는 그 한 사람뿐일 것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감사가 곧 믿음입니다. 믿음의 궁극적 대상은 내가 누구냐입니다.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능력을 받았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능력을 발휘합니다. 믿는 대로 되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전에 제자들은 이렇게 청했습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믿음이 곧 능력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능력은 ‘용서’의 능력입니다. 용서할 수 있다고 믿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4)
감사는 내가 은혜를 받은 것을 아는 능력입니다. 다시 말해 용서도 사랑인데 사랑은 받은 사람만 줄 수 있습니다. 아니 ‘받았다고 믿는 사람’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족력 멀미 때문에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는 사연이 유튜브 ‘우와한 비디오’에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섬에 사시는데 멀미 때문에 내륙으로 가지 못합니다. 배는 물론이요, 버스도 타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륙에 사는 큰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동안 어머니를 보지 못했습니다. 버스 한 정거장도 가지 못하는 멀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의 도움으로 수없이 멀미하면서 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1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납니다. 둘은 너무 행복한 시간을 갖습니다. 불효자를 용서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아들은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어머니를 뵈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의료진이 동행하지 않아서 그 멀미를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묻히셨지만, 산소에도 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장례도 참석하지 못한 죄인이 된 것입니다.
제작진은 다시 의료진을 대동해 아들을 도와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더는 멀미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하늘에서 도와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쨌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5년 만에 산소를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두 번째 갈 때는 멀미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어머니가 하늘에서 기도해 주셔서 그렇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한 번 다녀왔기 때문에 또 갈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미 표현된 자신을 보게 된 것이고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며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미 감사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감사가 표현되고 그것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니 더 감동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자신은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머니만큼 살 수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감사한 것들을 찾아서 표현해야 합니다. 사람은 타인이 나에게 하는 말보다 내가 타인에게 표현하는 것을 더 믿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 일기’를 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 일기를 쓰며 우리 자신은 우리가 감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제야 진정한 믿음이 솟구칩니다. 내가 진정으로 감사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왜 억지로라도 감사를 표현해야 할까요? 아담과 하와는 본인이 감사하는 존재임을 믿지 못해 뱀에게 당했습니다. 우리는 표현되는 우리의 모습을 믿습니다. 감사하는 자체가 아니라 내가 감사하는 존재라고 믿게 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감사하는 대상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113.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루가 17,3)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대전환’을 촉구하십니다. 곧 자신을 향하여 있는 시선을 타인에게로 향하게 하는 ‘대전환’ 입니다.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자!”(루가 17,1)
이는 단지 자신의 구원만을 바라보지 말고, 타인의 구원도 바라보라는 요청입니다. 자신의 구원만이 아니라 타인의 구원도 우리의 사명임을 말해줍니다. 나아가 타인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일하는 자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루가 17,3)
형제의 잘못에 대해서는 단죄가 아닌 ‘교정’을, 형제의 뉘우침에 대해서는 채벌이 아닌 ‘용서’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무턱대고 질책하거나 무작정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꾸짖더라도 용서하더라도 사랑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마음으로 꾸짖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아픔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프더라도 구원의 길을 함께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는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는 이 말씀을 바꾸어,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짓거든 꾸짖음을 듣고 회개하여 용서를 빌어라.”
다시 말하면, 나는 용서를 해야 할 사람이기에 앞서,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는 먼저 용서를 청해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타인의 잘못으로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고 여기고, 자신을 용서해야 할 사람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용서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지 못함은 자신이 ‘먼저 용서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용서받은 자가 용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용서를 청한 적이 없으면 용서받을 줄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용서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용서하거나 용서받는 일에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청합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제자들은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짐짓 자신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면서 믿음을 늘려달라고 청하지만, 사실 그들은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거나 믿음이 없는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물질적 차원에서 질적 차원으로의 ‘전환’을 촉구하십니다. 믿음을 늘려달라는 그들에게 양적인 믿음이 아닌, 질적인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곧 ‘진정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비록 작은 믿음일지라도 “겨자 씨”같은 ‘생명이 있는 진정한 믿음’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구원보다 남의 구원을 먼저 찾고’, ‘용서하기에 앞서 먼저 용서를 청하며’, ‘꾸짖더라도 용서하더라도 사랑으로 하고’, ‘많은 믿음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을 가져라’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라 하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주님!
왜곡된 믿음을 없애시고, 순수하고 진실 된 믿음을 주소서.
오늘도 쉬이 실망과 절망에 빠지는 것은
당신께 신뢰를 두지 않고 의탁하지 못함이오니, 믿게 하소서!
오늘도 자신도 모르게 슬픔에 빠지는 것은
당신을 향하여 있지 못함이오니, 믿음을 강하게 하소서!
오늘도 제 능력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당신이 전능하신 주님이심을 놓치는 흔들림이오니, 믿음을 굳세게 하소서!
이제는 더 이상은 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신 당신께 믿음을 두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31113.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지혜의 사랑, 지혜의 훈련, 지혜의 습관-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걸을 제도 누울 제도 환희 아시고
내 모든 행위를 아시나이다.”(시편139,1-3)
오늘 화답송 시편 139장은 제가 좋아하는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24절까지이며 우리는 매4주간 수요일 저녁성무일도 시간에 노래합니다. 이런 사랑의 하느님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지혜문학에 속하는 시편입니다. 하느님은 지혜의 원천이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예수님을 사랑하여 알아 닮아가는 것이 지혜의 첩경이요, 이런 지혜야 말로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의 책인 성서를 사랑합니다. 새삼 우리가 하루하루 평생 날마다 바치는 시편전례공동기도와 미사공동전례 시간은 지혜를 사랑하는 시간, 지혜를 훈련하는 시간, 지혜를 습관화하는 시간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공동전례기도 수행에 온힘을 다할 때 지혜로워질 수 뿐이 없겠습니다. 더불어 한결같은 성서 렉시오 디비나 수행이 지혜의 첩경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 지혜서의 시작도 지혜를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좋은 깨우침을 줍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이 귀를 기울여 경청해야할 말씀입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의를 사랑하여라.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르침을 주는 거룩한 영은 거짓을 피해 가고, 미련한 생각을 꺼려 떠나가 버리며, 불의가 다가옴을 수치스러워한다.”
말그대로 사랑의 지혜입니다. 마치 의인화된 지혜로 그대로 주님의 현존처럼 생각되는 지혜입니다. 참으로 지혜를 모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영혼과 육신이 깨끗해야 함을 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지혜로 오시는 주님을 모시는 시간이요, 이 미사은총이 우리를 날로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지혜는 다정한 영, 하느님께서 그의 속생각을 다 아시고, 그의 마음을 샅샅이 들여다 보시며, 그의 말을 다 듣고 계신다.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로서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안다.”
참으로 이런 지혜로서 충만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공동생활에 참 필요한 지혜 셋을 가르쳐 주십니다. 추상적인 애매한 지혜가 아니라 구체적 공동체 삶의 현장에서의 실천적 지혜입니다.
첫째, 남을 죄짓게 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 지는 편이 낫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충격요법적 표현입니다. 본의 아니게 이런저런 걸림돌로 알게모르게 이웃을 죄짓게 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겠는지요! 스스로 조심하고 깨어 있어,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 하시니 이 또한 지혜의 훈련입니다.
둘째, 형제들을 끝없이 용서하는 것이 사랑이요 지혜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어찌 일곱 번 뿐이겠습니까? 비록 용기 부족이나 무지로 ‘회개한다’는 말은 못하더라도 관대한 마음으로 내심 그를 용서한다면 언젠가 때가 되면 깨달아 회개할 것입니다. 베네딕도 규칙 72장5절, “형제들의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셋째, 믿음의 힘을 키우는 것이 지혜입니다.
믿음의 힘은 기도의 힘이고 하느님의 힘입니다. 인내의 믿음, 경청의 믿음, 겸손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 비로소 존엄한 인간의 품위입니다. 믿음의 빛, 믿음의 지혜요 이런 믿음은 은총의 선물입니다. 참으로 부족한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믿음의 초보자입니다. 날마다의 미사은총이 우리의 믿음을 날로 튼튼히 합니다. 그러니 부단히 청해야 할 믿음의 은총, 믿음의 힘입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새삼 참 권위는 이런 믿음의 권위임을, 더불어 우리 삶의 여정은 날로 성장, 성숙해져할 믿음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진인사대천명, 최선을 다하고 주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믿음의 자세입니다. 지혜와 믿음의 훈련과 습관과 함께 가는 주님의 참 좋은 은총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지혜로운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시편 화답송 139장 나머지도 너무 은혜로워 나눕니다. 이런 하느님을 순수하고 열린 마음으로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여 아는 것이 그대로 참 지혜입니다.
“주님 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 갈 곳 어디리이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새벽의 날개를 이 몸이 친다하여도,
저 바다의 먼 끝에 산다 하여도
거기에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 이몸을 잡아주시리다.”(시편139,7-10). 아멘..
11/14(화)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가 주님을 신뢰한다면, 진리를 깨닫는다면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그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조재형 신부)
2. 감사가 곧 믿음입니다. 믿음의 궁극적 대상은 내가 누구냐입니다.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능력을 받았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능력을 발휘합니다. 믿는 대로 되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주님!
왜곡된 믿음을 없애시고, 순수하고 진실 된 믿음을 주소서.
오늘도 쉬이 실망과 절망에 빠지는 것은
당신께 신뢰를 두지 않고 의탁하지 못함이오니, 믿게 하소서!
오늘도 자신도 모르게 슬픔에 빠지는 것은
당신을 향하여 있지 못함이오니, 믿음을 강하게 하소서!
오늘도 제 능력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당신이 전능하신 주님이심을 놓치는 흔들림이오니, 믿음을 굳세게 하소서!
이제는 더 이상은 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신 당신께 믿음을 두게 하소서.(이영근 신부)
4.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걸을 제도 누울 제도 환희 아시고
내 모든 행위를 아시나이다.”(시편139,1-3)
오늘 화답송 시편 139장은 제가 좋아하는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24절까지이며 우리는 매4주간 수요일 저녁성무일도 시간에 노래합니다. 이런 사랑의 하느님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지혜문학에 속하는 시편입니다. 하느님은 지혜의 원천이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예수님을 사랑하여 알아 닮아가는 것이 지혜의 첩경이요, 이런 지혜야 말로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임을 깨닫습니다.(이수철 신부)
11/14(화)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제325일 기도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걸을 제도 누울 제도 환희 아시고
내 모든 행위를 아시나이다.”(시편139,1-3)
늘상 하느님께 감사하며 순명하게 하소서.
- 2023년 11월14일(화) 7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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