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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2월 26일 월요일[(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2월 26일 월요일[(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26(25),11-12 참조
주님, 저를 구하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제 발은 올바른 길에 서 있나이다. 거룩한 모임에서 주님 찬미하오리다.

본기도

하느님,
영혼의 건강을 위하여 육신의 극기를 명하셨으니
저희가 결코 죄를 짓지 않고
자애로우신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9,4ㄴ-10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9(78),8.9.11과 13(◎ 103〔102〕,10ㄱ 참조)
◎ 주님, 저희 죄대로 저희를 다루지 마소서.
○ 선조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소서. 어서 빨리 당신 자비를 저희에게 내리소서. 저희는 너무나 불쌍하게 되었나이다. ◎
○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
○ 포로들의 탄식이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죽을 운명에 놓인 이들을 당신의 힘센 팔로 보호하소서. 저희는 당신의 백성, 당신 목장의 양 떼. 끝없이 당신을 찬송하고, 대대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복음 환호송

요한 6,63.68 참조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 기도를 자비로이 들으시고
현세의 죄악에서 저희를 지켜 주시어
이 거룩한 신비를 올바로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루카 6,36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 아버지가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모시고 비오니
저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천상 기쁨을 나누어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주님 은총으로 힘을 북돋아 주시어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참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사순 제2주간 월요일

 

- 남을 되질할 되를 깨버린 이의 행복

 

오늘 복음은 남을 심판하지 않으면 나도 심판 받지 않는다는 주제입니다. 내가 자비로울 때 자비로운 기준으로 심판 받습니다. 주는 대로 받습니다. 반면 남을 단죄 하면 그것으로 나도 단죄 받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와 엘레우시스 사이의 성스러운 길에 살았던 불량 대장장이이자 산적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손님에게도 완벽하게 맞을 것이라고 주장한 침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잔인했습니다. 여행자가 침대에 비해 키가 너무 작으면 선반에 눕혀 잡아 늘여 펴곤 했습니다. 여행자의 키가 너무 크면 다리를 잘라서 몸에 맞도록 만들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처음으로 아테네를 여행하던 중 프로크루스테스를 만났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 가했던 것과 똑같은 잔인한 대우를 테세우스에게도 가할 생각으로 테세우스를 침대에 누워 쉬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제압하고 그를 자신의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런 다음 프로크루스테스를 같은 방식으로 대했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손님을 괴롭히던 바로 그 방법으로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며 나는 얼마나 부자유스럽습니까? 자기도 그렇게 못하면서 남에게 하도록 강요하면 다른 사람들 눈치가 있으므로 말도 실수할까 봐 제대로 못 하고 행동도 경직됩니다. 자기 판단의 감옥에 자신이 갇히는 것입니다. 자유로워하고 싶으면 자비를 원하면 남을 판단하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우리 속담에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 진리를 압니다. 내가 외로우면 다른 사람들을 외롭게 만들고 있고 내가 짜증 나면 분명 다른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영화 ‘셰임’(Shame)에서 주인공 브랜든은 평범한 직장인지만 성에 대한 강박적인 중독으로 비밀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당연히 그는 항상 고독하고 공허하고 외롭습니다. 여자를 자기 욕구의 충족 도구로 여기기 때문에 세상도 그를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브랜든의 여동생 시씨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브랜든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브랜든은 시씨의 삶을 응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상사 데이비드와 술집에 들렀을 때 시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데이비드는 그녀를 원하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유부남임에도 브랜든의 집에서 그의 동생과 잠자리를 가집니다. 데이비드는 구토가 날 정도로 직장 상사가 밉지만, 그 화풀이를 동생에게 합니다. 오빠에게 쫓겨난 동생은 오빠에게 계속 전화하다가 자살 시도를 합니다. 동생을 품어줄 수 없었던 이유는 유부녀를 막론하고 흑심을 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가 직장 상사와 동생에게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이유는 자기를 먼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이 갈등의 굴레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고 싶거든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영화 극한 직업에서는 형사들이 잠복근무하기 위해 치킨집을 차렸는데 의외로 장사가 잘된다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왜 장사가 잘됐을까요? 사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 벌려고 한 게 아니니 아무 생각 없이 퍼주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주방장이 주인이 미워서 양념을 팍팍 썼더니 장사가 더 잘되더라는 것입니다. 더 주려 하니까 더 받습니다. 이 진리를 알면 세상에서 인정받지 않을 수 없고 가난할 수도 없습니다. 

 

    남을 건강하게 하는 트레이너가 몸이 안 좋아지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돈을 떼먹으려 하고 남의 명예를 도둑질하며 남을 아프게 합니다.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몇 배로 돌아올 줄 모르면서 말입니다. 행복해지고 싶거든 우리 안에 사랑을 방해하는 남을 심판하는 되를 깨버립시다. 저절로 심판하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죄와 싸웁시다. 이웃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할 지만 생각합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 받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나무를 옮겨 심으면 몇 달은 몸살을 앓는다고 합니다.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적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뉴욕에서 댈러스로 오면서 저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지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성당까지는 걸어서 40분이면 가기에 걸어 다니려고 합니다. 꼭 가야할 곳을 알아야 합니다. 마트, 은행, 주유소, 식당, 미장원, 병원, 차량 정비소, 산책로 등을 알아 두면 좋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입니다. 본당의 봉사자들을 파악해야 합니다.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전처럼 기억력이 좋지 않으니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직원들을 알아야 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플 때 함께 마음 아파해 줄 사람을 아는 것은 복입니다. 셋째는 업무를 숙지해야 합니다. 12년 만에 본당 사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기에 미국 교회와도 소통을 해야 합니다. 33년을 사제로 지내고 있지만 본당 사목은 늘 새롭고, 긴장이 됩니다. 본당 사목은 장기계획과 단기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댈러스 성당은 3년 후면 설립 50주년이 되기에 그에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하고, 매년 본당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내년쯤에는 저도 이곳 댈러스에 뿌리를 내리고,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국에서 오지 않고, 뉴욕에서 왔기에 좀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민등록과 비슷한 쇼셜넘버를 이미 받았기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운전면허증도 뉴욕에서 이미 받았기에 텍사스 면허로 바꾸기만 하면 됩니다. 은행 계좌도 이미 개설했기에 이용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린카드를 받았기에 비자 때문에 한국에 다녀오지 않아도 됩니다. 5년 전에 동창 신부님의 초대로 2달을 지냈습니다. 그때 만났던 분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니 마치 집에 온 것처럼 낯설지 않았습니다. 뉴욕에서 자동차로 여행을 하면서 왔기 때문에 시차도 느끼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바로 옆 본당에 서울 교구에서 파견된 신부님이 있어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순특강을 서로 바꾸어서 하기로 했습니다. 작년부터 서울 교구에서 보좌신부님을 파견해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영어도 잘 하시고, 겸손하십니다. 부모님이 미국에서 살기 때문에 부모님을 만나기도 좋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함께 온 신부님들이 사제관의 불편함을 모두 해결해 주었습니다. 인터넷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문도 열쇠 키에서 번호 키로 바꾸었습니다. 컴퓨터의 선도 모두 정리해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악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하느님께로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난 나의 허물과 잘못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베드로 사도는 천국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사순시기는 회개의 시간입니다.

둘째는 청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셋째는 선행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이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어두운 밤하늘의 별과 같습니다. 세상은 선한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탁하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간다면 어떤 악의 세력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이는 단지 우리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인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왜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지를 깨우쳐줍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자비로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먼저’ 자비를 베푸셨다는 사실, 곧 우리는 아버지의 ‘먼저 베푸신 자비’를 입었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나아가서, 우리 안에 당신의 거룩한 형상인 ‘자비의 얼굴’을 심어놓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바로 그 ‘자비의 얼굴’을 드러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비를 베풀 것인가?
이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동사로 표현하십니다. 
“심판하지 마라.”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 “주어라.”

그러니 ‘자비의 실천’은 우선 심판과 단죄를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악을 피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허물을 심판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허물을 들여다보며, 타인들 앞에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자신을 다소곳이 내려놓고, 겸손하게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먼저’ 용서와 자비를 베푸셨듯이, ‘먼저’ 용서를 베푸는 것입니다. 

묘한 것은 ‘먼저’ 용서하면, 저절로 단죄와 심판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곧 ‘단죄,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용서하면 단죄, 심판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악을 피하되 선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비록 자신이 죄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사랑으로 나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결국 악이 스스로 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선을 베풀면 악이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선을 행하는 것이 악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됩니다.

그러니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한 개의 촛불을 켜야 하고, 평화를 보존하려하기보다 평화를 창조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로마 10,21)

그러니 우리는 ‘용서할 수가 없다’고, 혹은 ‘용서가 안 된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나아가서 이미 용서받은 죄인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용서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아직도 용서하지 않고 있는 자신마저도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죄를 주님께 용서 청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니 우리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주님!

당신께서 자비하신 것같이 자비로운 자 되게 하소서!

제 안에 심어진 자비가 저를 다스리게 하소서.

제 안에서 자비가 흘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자비 안에 심어 둔 당신의 거룩한 형상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사순 제2주일

-날마다 거룩한 주님을 닮아가는-

 

2005년 봄, 그러니까 19년전 써놨던 시 두 편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세월 흘러도 오랜만에 읽어보니 새롭습니다. 하나는 ‘한강을 건널 때 마다’입니다. 이 때는 수도원 매각 문제로 참 어지러웠던 때이고, 힘들 때 좋은 시들은 구원의 빛처럼 저를 밝혔고 위로했고 자유롭게 했습니다.

 

“물 흐르듯 살 수는 없나?

 한강을 건널 때 마다 생각한다

 ‘가슴에 강(江) 하나 지녔으면 좋겠다.’

 시작도 끝도 없이

 하나로 흐르는 세월의 강(江)인데

 부질없이 나눈 

 세월의 방(房)안에서

 나는 참 많이도 삭막하게 살았다

 아!

 서두르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강처럼 살 수는 없나?

 한강을 건널 때 마다

 가슴 안에 흐르는 영원의 강(江)을

 강같은 당신을 

 생각한다.”-2005.3

 

밖으로는 임 기다리는 산처럼, 안으로는 임향해 흐르는 강처럼, “산처럼, 강처럼”, 그대로 산같은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베네딕도 수도자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꼬박 일년 기다렸다 찾아온, 맨 먼저 피어난 영춘화(迎春化), 파스카의 봄꽃이 너무 반갑고 고마워 여러 지인들에게 전송했습니다. 또 하나는 “봄이 되었다”라는 시입니다.

 

“마음 들뜨게 하는 봄꽃들이라

 막 꽃피기 전 햇빛 부드러운 초봄이 제일 좋다

 어느 새 찾아 온 이름 모를 새들

 맑은 소리로 봄소식을 알린다

 부드러운 봄비

 따사로운 봄빛

 맑은 봄소리

 향기로운 봄공기, 봄거름, 봄흙

 봄에는 향기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봄의 맑음과 부드러움, 향기에 빠지다보니

 나는 사라져 봄이 되었다”-2005.3.

 

사순시기 전례시기와 너무 잘 들어맞는 요즘의 계절 봄입니다. 강같은, 봄같은 파스카의 주님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사순 제2주일입니다. 전번 사순 제1주일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신 주님에 이어, 오늘 사순 제2주일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입니다. 그래서 강론 제목은 “변모의 여정-날마다 거룩한 주님을 닮아가는-”이라 정했습니다. 그대로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성화의 여정과도 통합니다. 저는 여기서 잠시 다산과 맹자의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삶의 여정에 귀한 깨우침을 줍니다.

 

“살아온 세월을 맹신하면 축적한 내공이 편견이 된다. 일가견을 이룬 사람은 아이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다산

“어른이란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아이가 상징하는 바, ‘겸손하고 지혜로운, 그리고 순수한 열린 마음’입니다.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에 앞선 복음 내용이 중요합니다. 바로 주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로,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라는 내용으로 제자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많이 위축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시 반발하던 베드로는 주님께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호된 질책을 받았던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선물이 주님의 변모사건이요 제자들의 주님의 변모 체험입니다. 

 

저는 어제 성가연습을 하면서도 흡사 오늘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주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축일이요, 날마다 주님을 닮아 거룩히 변모되어 가는 우리들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세가지 주님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첫째, “사랑하라!”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했던 제자들이 결정적 순간, 때가 되었을 때 주님을 만나는 신비체험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의 아브라함이 그렇고,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그렇습니다. 주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보면 두분간의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다음 문답에서 선명히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두 번째,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사악을 죽이려 했을 때 주님은 다급한 마음에 아브라함을 두 번씩이나 부르시고 그를 만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변모를 체험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세제자들 역시 참으로 주님께 신뢰와 사랑을 바쳤던 분들임이 분명합니다. 복음 서두의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이건 차별이나 편애가 아니라 자연스런 것으로 다른 제자들도 받아들였을 것이니, 세 제자들의 주님 사랑이 참으로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확신에 넘친 고백도 그의 주님 사랑을 입증합니다.

 

둘째, “체험하라!”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사되는 주님의 체험, 신비체험입니다. 이런 체험은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님을 만났던, 체험했던 복음의 세 제자는 물론이고 창세기의 아브라함, 로마서의 사도 바오로 진짜 신비가입니다. 진정 내적 힘도 이런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체험에서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새하얗게 빛나는 옷에, 엘리야와 모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신비로운 장면을 목격한 제자들의 충격은 너무나 컸을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예수님은 두 승천한 인물과 영적 교류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런 신비체험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의 순수한 마음은 이해가 되나 큰 착각입니다. 결코 독점하거나 집착할 수 없는 선물같은 신비체험임을 몰랐던 것입니다. 어쨌든 주님 부활의 영광을 앞당겨 체험한 이런 내적신비체험은 세 제자들의 십자가의 여정에 샘솟는 힘의 원천이 됐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 감사송이 제자들의 주님 변모 신비 체험의 진실을 환히 밝혀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 그 거룩한 산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시어,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을 밝혀 주셨나이다.”

 

제1독서 창세기 후반부에서 보다시피 아브라함의 주님과의 은밀한 내적체험은, 그의 평생 여정에 큰 힘이 됐을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들으니 출산율 저하로 장차 나라의 명운까지 위협받는 우리의 박복(薄福)한 현실이 안타깝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바오로의 주님과 만남의 절정을 보여주는 사도의 확신에 넘치는 살아 있는 고백은, 그대로 우리의 고백으로 삼아도 너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백절불굴의 파스카의 믿음의 비밀이 환히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누가 우리를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셋째, “들어라!”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들음의 경청입니다. 경청하는 이가 겸손한 이요 경청하는 이가 순종하는 이요, 경청하는 이가 추종하는 이입니다. 제자직의 필수 조건이 경청입니다. “아브라함아!” 부르심에 즉시 “예 여기 있습니다.” 대답하는 아브라함은 깨어 있는 사람이자 잘 듣는 경청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청은 그대로 순종에 직결됨을 봅니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순종은 우리 당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도, 후손에도 축복의 통로가 됨을 봅니다. 신비체험에 집착하는 제자들은 물론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 대한 주님의 당부 말씀도 들어라, 경청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제 산상에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체험은 끝났지만 제자들은 물론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십자가의 여정은, 주님을 닮아가는 변모의 여정은 살아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한 주님의 거룩한 변모체험 은총은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의 변모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2/26(월) 사순제2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은 남을 심판하지 않으면 나도 심판 받지 않는다는 주제입니다. 내가 자비로울 때 자비로운 기준으로 심판 받습니다. 주는 대로 받습니다. 반면 남을 단죄 하면 그것으로 나도 단죄 받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는 어떤 손님에게도 완벽하게 맞을 것이라고 주장한 침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잔인했습니다. 여행자가 침대에 비해 키가 너무 작으면 선반에 눕혀 잡아 늘여 펴곤 했습니다. 여행자의 키가 너무 크면 다리를 잘라서 몸에 맞도록 만들었습니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제압하고 그를 자신의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런 다음 프로크루스테스를 같은 방식으로 대했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손님을 괴롭히던 바로 그 방법으로 죽었습니다. (전삼용 신부)

 

2.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탁하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간다면 어떤 악의 세력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조명연 신부)

 

3.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로마 10,21)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주님!

당신께서 자비하신 것같이 자비로운 자 되게 하소서!

제 안에 심어진 자비가 저를 다스리게 하소서.

제 안에서 자비가 흘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자비 안에 심어 둔 당신의 거룩한 형상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제 산상에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체험은 끝났지만 제자들은 물론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십자가의 여정은, 주님을 닮아가는 변모의 여정은 살아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2/26(월) 사순제2주간 월요, 429(제59)일 기도

 

복음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주님!

당신께서 자비하신 것같이 자비로운 자 되게 하소서!

제 안에 심어진 자비가 저를 다스리게 하소서.

제 안에서 자비가 흘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자비 안에 심어 둔 당신의 거룩한 형상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2월26일(월) 6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