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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5월 31일 금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5월 31일 금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친척이며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루카 1,39-56 참조)을 기념하는 날이다. 5월 31일을 축일로 정한 것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사이에 기념하기 위해서다.

입당송

시편 66(65),16 참조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모두 와서 들어라. 주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들려주리라.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를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도록 이끄셨으니
저희도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 살며
마리아와 함께 언제나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신다.>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4-18
14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16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하리라.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17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18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나는 너에게서 불행을 치워 버려 네가 모욕을 짊어지지 않게 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2,9-16ㄴ
형제 여러분, 9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10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11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12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13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14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15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16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이사 12,2-3.4ㄴㄷㄹ.5-6(◎ 6ㄴㄷ)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 “보라, 내 구원의 하느님. 나는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해 주셨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을 민족들에게 알리고, 높으신 그 이름을 선포하여라. ◎
○ 위업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이 하신 일 온 세상에 알려라. 시온 사람들아, 기뻐하며 외쳐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

복음 환호송

루카 1,45 참조
◎ 알렐루야.
○ 동정 마리아님,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복되시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9-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독생 성자의 어머니 복되신 마리아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저희가 주님께 올리는 구원의 제사도 기쁘게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2 : 마리아의 노래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
거룩하신 아버지,
모든 성인을 훌륭히 이끌어 주신 주님을 찬미하고
특히 저희가 기념하고 공경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노래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주님께서는 땅끝에 이르기까지 큰일을 하시고
대대로 자비를 너그러이 베푸셨나이다.
비천한 종 마리아를 돌보시어
마리아를 통하여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로 보내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루카 1,48-49 참조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그분 이름은 거룩하시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이들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하느님의 교회가 드리는 찬양을 받으시고
복된 요한이 태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기뻐하였듯이
저희도 이 성체 안에 언제나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방문 축일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싱그럽고, 그만큼 따듯하고,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5월을 성모님의 달로 지내고 있습니다. 계절의 여왕을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5월에 본당에서도 다채로운 행사가 있었습니다. 행사에 함께하려 하니 몸이 2개라도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4일에는 본당 성모의 밤 행사와 평화의 모후 프레시디움 2,000차 축하 행사가 있었습니다. 5일에는 청 영성체와 청소년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비자 연장 때문에 한국에 간 신부님을 대신해서 포트워스 미사가 있었습니다. 15일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면서 보현사를 방문했습니다. 18일에는 댈러스 교구 서품식과 본당 성령 기도회 찬양의 밤이 있었습니다. 23일부터 26일까지 중남부 남성 제17차 꾸르실료 교육이 있었고, 26일에는 본당 견진성사가 있었습니다. 30일부터 6 1일까지는 본당 학생들을 위한 여름 캠프가 있습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계절, 성모님의 달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생각해 보니 서울에 있을 때도 발품을 많이 팔았습니다. 하루에 3번 강의를 한 적도 있습니다. 오전에는 길음동 성가 소비녀회 피정의 집에서 강의하였습니다. 오후에는 해방촌 성당에서 강의하였습니다. 저녁에는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 강의하였습니다. 교우들과 함께 알콩달콩 정을 나누며 사는 것도 사제의 기쁨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교우들과 친교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좋은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동정 마리아가 친척 엘리사벳을 만난 걸 기억하는 날입니다. 분단된 한반도를 생각하면서 저는 2018년에 있었던 만남을 기억합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고위급 정치인들이 방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4월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북한의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쉬운 만남이 65년이나 걸렸습니다. 같은 해 9월에 남한의 대통령은 북한의 평양에서 북한 주민을 상대로 연설하였습니다. 이런 화해와 일치의 분위기는 북한의 위원장과 미국 대통령의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는 3번 만났습니다. 판문점, 싱가포르, 하노이에서 만났습니다. 내심 많은 사람은 만남의 결실을 기대했습니다. 북한에 미국의 대사관이 설치되고, 북한은 핵무장을 포기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릴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렇게 순풍이 불어오면 한반도의 허리를 이어주는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비무장 지대는 세계적인 생태공원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동상이몽이었는지 만남의 결과는 선언과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집니다. 동정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꿈은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동정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서로를 축복해 주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였던 것처럼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이 동상동몽의 꿈을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찾아온 마리아를 축복하여 주었고, 마리아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찬가를 부릅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그러나 우리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품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축복의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축복에 기도로서 화답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즐겨 부르셨다는 만남이란 노래를 함께 나누면서 5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어/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오늘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해서 마리아의 노래를 불렀듯이, 우리 또한 각자의 노래를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는 신앙의 노래를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복음: 루카 1,39-56

 

성령의 궁전이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은총의 샘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소서!

 

복음서 안에 등장하시는 성모님은 참으로 말을 아끼십니다.

신비로운 베일에 싸인 아들 예수님의 때로 이해하지 못할 언행 앞에서, 그저 성모님은 마음에 간직하십니다.

성모님은 침묵과 기도가 일상이셨던 분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들 예수님으로 인해 성모님께서는 억울한 일들을 꽤 많이 당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수태고지 사건 때, 나자렛의 소녀 마리아는 요셉과 단란한 결혼생활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평범한 삶을 물건너 갔습니다.

인간적 시선으로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면서, 이러쿵 저러쿵 억울하다며

하소연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딱 한 사람, 연세가 들고 지혜로운 엘리사벳을 찾아가 그분의 영적 동반을 받습니다.

 

나자렛에서 아인카림으로 며칠이나 걸리는 여행길이었는데,

서둘러 걸어온 나자렛의 마리아를 엘리사벳은 극진히 환영하고 환대합니다.

혼전 잉태로 인해 혼란과 당혹 속에 힘겨웠던 마리아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집에 들어서는 것을 발견한 엘리사벳을 나이에 걸맞지 않게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삿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 42-45 )

 

아인카림에서 있었던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참으로 어색하고 당혹스런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가 묘사하고 있는 만남의 장면은 무척이나 흥겹고 기쁨에 찬 분위기입니다.

 

마리아를 맞이하는 엘리사벳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마리아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환대를 받고 있는 마리아 역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동시에 희극적인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이 기쁨과 환희, 축복과 감사로 가득 차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계시는 주님께서 현존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우리네 인생도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상황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만남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입니다.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주님의 현존 안에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궁전이신 동정 마리아님, 당신은 항상 부드러움과 신중함으로 아들 예수님의 곁을 지키셨으니,

시련을 당할 때 저희를 버리지 마시고, 믿음이 흔들리는 어둠의 순간에 저희 손을 잡아 이끌어 주소서.

저희를 은총의 샘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소서.”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루카 1,39-56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오늘 축일은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주님의 잉태 소식을 들은 마리아가 예루살렘 남쪽 유다 지방에 사는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엘리사벳은 노년에 이르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나이에도 아이를 가진지가 여섯 달이나 되었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나, 서둘러”(39절) 

엘리사벳의 집으로 바삐 가신다. 

 

마리아의 이 모습을 우리는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세상에 낳아주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서 나왔다고 한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잉태 소식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마리아는 거기에 그냥 머물지 않고 이웃에게로 향했다는 사실, 

그것도 걸음을 서둘러 이웃에게로 향했다는 사실이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이 모습은 바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모범을 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고, 신앙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오늘 마리아를 통하여 배워야 하며,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즉 신앙을 갖고 사는 우리는 이제 마리아와 같이 즉시 이웃에게로 걸음을 서둘러야 한다. 

 

이때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사랑이신 하느님을 이웃에게 낳아주는 또 하나의 마리아가 되는 것이다. 

즉 태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완숙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성장해야 한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 살아있어야 한다. 즉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은 자신의 태도가

사랑(1요한 4,7), 즉 형제들을 향한 사랑으로(참조: 3,1) 특징지어져야 하며, 

자신의 인격을 걸고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삶이 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1,45) 복되신 마리아는 주님을 찬미하는 마리아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 역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을 때,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언제나 감사드릴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56절) 

마리아의 봉사는 바로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의 봉사였다. 엘리사벳의 산후조리까지

도와주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사랑을 많이 가진 사람일 것이다. 

 

마리아의 방문이 이 같은 느낌이 들게 해 준다. 만왕의 왕이신 분을 가지신 분이 엘리사벳을 찾아가

봉사하다니! 

놀라운 겸손과 사랑의 신비를 보는 것 같다. 

마리아를 닮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5.30.목요일 요셉수도원 성전 봉헌 대축일

                                                                          에제47,1-2.8-9,12 1코린3,9ㄴ-11.16-17 요한2,13-22

 

                                                                성전 정화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만군의 주님이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

 그 안이 그리워,

 내 영혼 애태우다 지치나이다

 이 마음 이 살이 생명이신 하느님 앞에 뛰노나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저희는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시편84,2-3,5)

 

오늘 화답송 시편이 그대로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의 주님의 집, 성전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느님 사랑, 예수님 사랑, 성령님 사랑, 교회 사랑이 한곳으로 응결되어 미사로 표현되는 곳이 성전입니다. 

 

제집무실은 성전옆에 붙어있어 흡사 주님의 집 셋방을 연상케 하니 이보다 더 좋은 방도 없어

천장암, 지족암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역시 오늘도 집무실의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 만세칠창으로 시작되는 복된 하루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성 요셉수도원 만세!”

 

성 요셉수도원에 부임한지 올해로 만36년이요, 왜관수도원을 떠나기 전날 밤 1988년7월10일! 

저는 성전 제대앞에서 밤새 3000배 절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다짐하며 이곳에서 정주의 삶을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온돌방으로 시작된 요셉수도원 성전이 제대로 된 성전을 갖게 되어

마침내 2006년 5월30일 봉헌 미사를 드렸고, 오늘 2024년 5월30일 제18주년 성전 봉헌 대축일 미사를

드리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그동안의 감사와 감동과 감격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런지요!

 

참 고마운 인연은 19년전 2005년부터 다음해 까지 성전 및 본원건물과 수도자 숙소를 건축해줬던

이승용 아오스팅, 이현옥 헬레나 부부가 올해 지금도 수련자실과 2개의 개인 피정집을 건축중이니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거의 20년 동안 건재하셨다가 다시 수도원 건축을 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며칠전 5월28일 화창한 날 성전미사후 성전앞 정원에서 피정후 기념 사진을 찍은

예수성심자매회 자매들의 모습이 환경과 잘 어울려 참 아름다웠습니다.

사진과 메시지를 받고 드린 유쾌한 덕담의 말마디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신부님, 피정 마치고 모두 은혜롭고 행복한 모습들입니다.”

“너무 싱그럽고 아름다워 천상 선녀들인줄 착각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손주를 둔 60대 할머니들인데 20대 아가씨들과 같은 청순한 아름다움의 예수성심회 자매들이니

그대로 예수성심의 은총이요 성전 미사의 은총이다 싶었습니다.

 

제 주특기는 하느님 자랑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하느님 자랑으로 표현되기 마련이요, 오늘은 제18주년 요셉수도원 성전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전 자랑을 하고 싶습니다.

가톨릭교회의 모든 성전에 해당되겠습니다.

 

첫째, 주님의 집, 성전은 일치의 중심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이듯 이를 그대로 대변하는 곳이

가시적 성전입니다.

특히 수도원 성전은 수도원의 중심이자 세상의 중심입니다.

 

수도자들은 물론 참 많은 이들이 세상 광야의 오아시스, 세상의 중심인 수도원 성전을 찾습니다. 

삶의 중심을 잃어 방황이요 표류요 혼란입니다.

 

수도형제들의 일치의 중심이 되는 곳도 바로 성전입니다.

날마다 수도원 성전에서의 공동전례기도를 통해 주님 안에서 일치를 굳건히 하며 날로 정화되고

성화되는 삶입니다.

세상에 속화되지 않고 세상을 성화하는 마지막 영적 보루 역할을 하는 수도원 성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예수님 역시 늘 삶의 중심은 성전을 찾았음을 봅니다.

일치의 중심인 거룩한 성전의 타락에 열화와 같이 분노하시는 주님입니다.

 

둘째, 주님의 집, 성전은 생명과 사랑의 집입니다.

하느님 생명이 그리운 이들은, 하느님 사랑이 그리운 이들은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아 성전에 옵니다.

주님을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는 사람들입니다.

배는 밥으로 채울수 있어도 무한한 가슴은, 마음의 허기는 하느님 생명으로,

하느님 사랑으로만 채울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자 우리의 사랑입니다.

바로 주님의 생명, 주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궁극의 목마름을,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주님을, 사랑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성전 전례기도에 참석합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살아 있는 만남의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소개하는 강은 성전에서 세상 곳곳으로 흘러가는 은총의 강, 생명의 강,

사랑의 강을 상징합니다.

우리 역시 은총의 강, 생명의 강, 사랑의 강으로 세상에 파견됩니다. 

은총의 강 주님을 만날 때 살아나는 온갖 중생들입니다.

세상을 살리고 치유하는 주님의 구원은총은 성전을 통해 그대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강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그대로 세상을 살리는 성전은총,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집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은총의 강, 생명의 강, 사랑의 강 덕분에 충만한 생명,

충만한 사랑을 누리는 5월의 초목처럼 시드는 일 없이 늘 푸르른 생명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입니다.

 

셋째, 주님의 집, 성전 정화입니다. 

건물성전, 공동체 성전, 개인 성전등 세차원에 걸친 성전정화요 성전성화는 하루하루 날마다

성전이 다하는 날까지 이뤄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성전타락에 열화와 같이 분노하시며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분의 하느님 사랑, 성전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됩니다.

비둘기를 파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조용히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이르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가 새로 세워진 성전임을 압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주님의 몸인 공동체 성전은 치유되고 살아나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정화되고 성화됨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성 요셉 수도원의 자랑은 “1.천혜의 자연환경, 2.편리한 교통, 3.형제애의 전례 공동체”일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큰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을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하느님의 파멸에 앞서 스스로 자초하는 자기 성전 파괴입니다.

자기를 소홀히 함부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성전모독의 죄임지 깨닫습니다.

거룩한 성전의 성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세상 것들에 중독되어 괴물이 되고 폐인이 되는 것보다

하느님 모독의 큰 죄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인 형제들의 공동체와 자신의 전존재를 참으로 잘 돌보고 가꿔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삼중신원을 깊이 깨닫게 하며

우리 존재를 아름답고 거룩한 성전으로 만들어줍니다.

내 몸담고 살아가는 집 역시 주님의 집입니다.

 

다음 고백시를 읽으며 주님의 집에서 주님의 전사, 주님의 학인, 주님의 형제로서

우리의 삼중신원을 새로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에서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주님의 집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5/31(금)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우리는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찾아온 마리아를 축복하여 주었고, 마리아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찬가를 부릅니다. 

 

오늘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해서 마리아의 노래를 불렀듯이, 우리 또한 각자의 노래를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는 신앙의 노래를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참으로 비극적인 동시에 희극적인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이 기쁨과 환희, 축복과 감사로 가득 차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계시는 주님께서 현존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우리네 인생도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상황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만남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입니다.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주님의 현존 안에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56절) 

마리아의 봉사는 바로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의 봉사였다. 엘리사벳의 산후조리까지

도와주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사랑을 많이 가진 사람일 것이다. 

 

마리아의 방문이 이 같은 느낌이 들게 해 준다. 만왕의 왕이신 분을 가지신 분이 엘리사벳을 찾아가

봉사하다니!  놀라운 겸손과 사랑의 신비를 보는 것 같다. 

마리아를 닮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조욱현 신부)

 

4.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에서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주님의 집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이수철 신부)

 

5/31(금)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524(154)일 기도

 

복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비극적인 동시에 희극적인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이 기쁨과 환희, 축복과 감사로 가득 차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계시는 주님께서 현존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우리네 인생도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상황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만남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입니다.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주님의 현존 안에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멘.

 

- 2024년 5월31일(금) 5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