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5월 28일 화요일[(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5월 28일 화요일[(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8(17),19-20
주님은 내 버팀목 되어 주셨네. 내가 그분 마음에 들었기에, 넓은 들로 이끄시어 나를 구하셨네.

본기도

주님,
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 주시고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여러분의 앞날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1,10-16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의 10 구원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받을 은총을 두고 예언한 예언자들이 탐구하고 연구하였습니다.
11 그들 안에서 작용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께 닥칠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증언하실 때에 가르쳐 주신
구원의 시간과 방법을 두고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12 예언자들은 그 일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일들이 하늘에서 파견된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이들을 통하여 이제 여러분에게 선포되었습니다.
그 일들은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14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15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8(97),1.2-3ㄱㄴ.3ㄷㄹ-4(◎ 2ㄱ)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하느님께 봉헌할 예물을 마련해 주시고
이 예물을 저희 정성으로 받아 주시니
자비를 베푸시어
이 제사를 저희 공로로 여기시고
더 많은 상급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3(12),6 참조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 이름 찬양하리이다.
<또는>
마태 28,2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자비를 간청하오니
현세에서 저희를 길러 주는 이 성사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8주간 화요일

 

학전(學田)에 대한 다큐를 보았습니다. 학전은 1991년 아침이슬의 주인공 김민기 선생님이 세운 소극장입니다.  1991년에 서품받았으니, 학전의 역사가 제 사제 생활의 역사와 같습니다. 전 학전에 한번 가보았습니다. 1992년 봄에 김광석의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그때 게스트로 나온 가수가 강산에입니다. 그 뒤로 학전을 잊고 있었는데 이번 다큐를 보면서 예전의 기억이 소환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열정은 가득했지만, 방향을 몰랐던 새 사제였습니다. 예비자 교리는 학원강사 부럽지 않게 강당에 가득 찼습니다. 주일학교는 아이들로 성당을 꽉 채웠습니다. 교사들과 청년들은 성당에서 봉사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열정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본당신부님은 자상하시고 용돈도 잘 챙겨 주셨습니다. 사제 생활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학전을 세운 김민기 선생님은 저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1994년부터 2024년까지 지하철 1호선 뮤지컬을 공연했습니다. 그는 많은 무명 배우를 스타로 키워냈습니다.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윤도현, 안내상, 김대명, 황현희 이름은 잘 모르지만, 얼굴은 아는 배우들이 학전 출신들이라고 합니다. 그는 무명의 배우를 발굴해서 11주 연습을 시킨 후에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렇게 다듬어진 배우들은 성공하였고 김민기 선생님은 주저 없이 그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날아가도록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전은 말 그대로 배움의 터전이었습니다. 학생이 졸업하면 학교를 떠나듯이 학전에서 이름을 알린 배우들은 더 큰 세상으로 날아갔습니다. 학전은 배우들의 '못자리'였습니다.

 

김민기 선생님은 당시에는 생소했던 일들을 추진했던 개척자였습니다. 배우들의 4대 보험을 학전의 이름으로 가입해 주었습니다. 배우들과 계약서를 만들어서 배우들이 월급을 받도록 했습니다. 학전이 성공하면 배우들의 수입도 늘어났습니다. 월급이 들어오자, 은행에서 전세자금을 대출 해 주었고 한 무명 배우는 전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김민기 선생님은 자신은 뒷것이라고 했습니다. 배우들은 앞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키운 것은, 학전이라는 극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키운 것은 대한민국의 문화와 예술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세계에 우뚝 선 K Pop K Culture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민기 선생님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세상의 부와 명예를 얻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땅 위에는 조용필 땅 아래에는 김민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나이인 둘은 언젠가 한 번 만났다고 합니다. ‘조용필은 김민기를 존경한다고 했고, 김민기는 조용필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생각해 봅니다. 난 내게 주어진 '학전'을 잘 돌보았는가? 난 뒷것이 아닌 앞것으로 나 자신을 내세운 것은 아닌가? 난 건물을 세우고 추억은 만들었지만, 나의 학전에서 만난 이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헌신과 열정을 다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이제 어쩌면 저에게 마지막 '학전'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뒷것이 되어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나로 인해 슬픔은 기쁨이 되고, 절망은 희망이 되고, 두려움은 용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은 바로 그런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김민기 선생님의 '친구'를 나누고 싶습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른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고/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족한 나를 친구라고 하십니다.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강론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마르 10,28-31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어제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청년은 재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슬픈 표정으로

예수님을 떠나갔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가지고 영생을 준비할 줄 모르고 재물에다

자신의 삶을 의지하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시면서 슬픈 얼굴로 돌아가는 청년을 안타깝게 바라보셨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재산의 번영, 부자가 되는 것이 하느님 축복의 표지라고 믿고 있었고

어떤 사람이 재물이 많고, 번영하면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그를 축복해 주신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던

제자들은 그 말씀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믿었는데 놀랐다.

 

여기서 성미가 급한 베드로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28절)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버린 사람은 백 배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무엇을 버리는 것일까? 그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의 능력, 나의 재물 이 모든 것을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 자신만의 안위와 쾌락을 위하여 사용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모습으로 살려고 하는 나의 인간적인 모습을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나를 버리는 것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다. 

이것을 견디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에 대한 보상은 세상에서도 갚아주시고 또한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초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현세의 보상을 많이 체험하였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박해도 많이 받았지만, 자신이 쉴 수 있는 집들과 교우 형제자매들과 어머니 같은 여교우들, 

자녀들을 대신하여 대자 대녀들,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들을 만나게 되었다. 

토지를 버린 사람은 교우들의 토지에서 필요한 것을 얻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재물이란 ‘사용하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지, ‘주인이 되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재물이란 자기의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 주어진 것으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보다는 그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 재산이 그를 불행하게 한다고 하셨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 살게 해 주시고, 나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며, 

나의 재능과 내가 지금 잠깐 관리하고 있는 것들 모두가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맡겨주신 것임을 알고 그것들을 맡겨주신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나의 관념이나 재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기도 한다. 

인간은 재물이나 사상이나 관념의 노예가 되면 자신의 주변을 올바로 보지도 못하고, 

이웃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게 된다. 

주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그래서 주님 안에 복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이영근 신부 강론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부자 청년 이야기’에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부자 청년은 재산 때문에 예수님 따르기를 포기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마르 10,29-30)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버린다는 것’의 의미가 버리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예수님 또는 복음 때문에’ 버리는가에 있음을 깨우쳐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예수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그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만 할까?

그 대답은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지’, ‘복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곧 ‘예수님과 복음’이 그 모든 것들을 버릴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끊임없이 복음과 예수님을 더 사랑하려고 애쓰면서, 그 의미와 가치를 깨달아 갑니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을 넘어’,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을 넘어’, ‘진정한 복음’인 복음을 알아가고 ‘진정한 예수님’이신 예수님을 알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차차 예수님과 복음을 깨달아가면서, 우리는 예수님 이외의 것들을 조금씩 버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리 값지고 좋은 것들도 그것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갑니다.

또한 나에게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내려놓아야 할 것들임도 알아갑니다.

 

사실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분에 대한 사랑이 작아서일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진정 소중한 것을 위해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버릴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진정 소중한 것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도 아빌라의 데레사처럼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고 아무 것도 너를 두렵게 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갈 뿐,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니 인내는 모든 것을 얻는다. 
하느님을 소유한 이는 부족함이 없으니(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 예수님과 복음을 사랑한다면,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대변혁이 생길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구하는 데는 첫째가 되고, 자기 자신을 위해 다른 것을 구하는 데서는 꼴찌가 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예수님’과 ‘복음’과 ‘사랑’이 늘 첫째가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마르 10,28)

 

주님!

모든 것을 버리되, 버리고 온 제 자신도 버리게 하소서.

당신을 따르되, 당신을 따르고 있는 제 자신도 버리게 하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온전히 당신의 것이오니, 오로지 당신만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5.27.연중 제8주간 월요일                                                           1베드1,3-9 마르10,17-27

                                                                나를 따라라

                                                      “부자의 구원도 가능하다”

 

“그지없이 사랑하나이다

 하느님 내 힘이시여.“(시편18,2)

 

몇가지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옛 어른의 말씀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말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사람들 사이를 해친다.”<다산>

더불어 성 베네딕도의 ‘침묵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비록 좋고, 거룩하고, 건설적인 담화일지라도

침묵의 중대성 때문에 완전한 제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드물게 허락할 것이다”라는 충고도 생각납니다.

 

또 논어의 공자 말씀입니다.

“임금에게 자주 간언하면 치욕을 당하고, 친구에게 자주 충고하면 사이가 멀어진다.”

모두 삶의 지혜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어제는 삼위일체 대축일이자 첫 ‘세계 어린이들의 날’이었습니다.

교황님은 베드로 광장에서 어린이들과의 미사중 삼위일체 교리를 단순하게 압축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created),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고(saved),

성령님은 우리를 평생 동반하신다(accompanies).”

 

오늘 말씀 묵상중 떠오른 말마디는 ‘가난’이었고, 아주 예전 수도원 정문 옆 담벼락 넘어,

지금도 건재한 수녀원의 커다란 참나무를 보며 쓴 ‘욕심없으면 어디나 천국’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언젠가 인용했던 시이고 지금은 고인이 된 엘리야 수사의 모친 레나타 자매가 무척 좋아했던 시입니다.

 

“울타리 부근 쓸모없는 땅이라 관심도 없다

 욕심없으면 어디나 천국 

 참 넉넉한 자리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음이 행복이구나

 볼품이 뭐 대수랴

 너와 나 편안하면 그만 아닌가

 내 맘껏 가지들 뻗어 하늘 자유 맛보니 대 만족이다

 열매들 탐내는 나무아님이 천만다행이구나

 하늘 나는 새들의 쉼터가 내 기쁨이다

 흐르는 구름 은은한 별빛 부드러운 미풍 

 은자(隱者)의 가슴 떨리는 감동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나를 끌어낼 수 없다

 내 이름은 정주의 참나무”-2001.3.23.

 

23년전 시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공감하며 아끼는 시입니다.

자발적 가난의 기쁨, 가난의 자유, 가난의 행복을 노래한 시입니다.

생리적으로 가난과 고독, 침묵을 사랑했던 사막 수도승의 후예인 우리 정주의 수도승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부자의 결정적 문제점은 이 가난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주님이 아닌 재물이 우상처럼 또아리 틀고 있으니 영혼은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플 수 뿐이 없습니다.

참 부자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것이 적은 사람이요 주님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아 물으니 사막교부들을 찾았던 구도자들의 공통적 물음입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말마디를 바꾸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아주 절박한 물음입니다.

참 역설적인 것이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앞에 놔두고 영원한 생명에 대해 묻습니다.

 

이어 젊은 부자의 내면을 꿰뚫어 보신 천하의 영적 명의(名醫)이신 예수님은 부자가 계명을 준수했는가를

확인시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긍정적 말마디 외는 모두가 부정적인 ‘안된다’ 라는 계명입니다.

 

“살인해서는 안된다. 간음해서는 안된다. 도둑질해서는 안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된다.”

 

젊은 부자는 이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 말합니다.

아주 좋은 양심적인 신자입니다만 ‘안된다’는 계명뿐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주 소극적인 삶입니다.

외적인 최소한의 계명준수에 힘썼을 뿐 사랑의 나눔이나 삶의 중심인 주님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던 사람입니다.

 

이러니 내면의 허기(虛氣)는 여전할뿐입니다.

예수님의 진단이 정확했습니다.

극단적 처방같지만 부자 청년에게는 이것뿐이 없었던 것입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과연 이 시험을 통과할 부자들은 몇이나 될까요?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줌으로 땅에 있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권고입니다.

그리고 와서 정말 참보물인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재물을 삶의 중심에 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구체적 나눔과 따름이 없는 외적 계명들 준수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은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 포기를 거부함으로 구원의 시험에 불합격한 부자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합니다.

후에 예수님을 다시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부자의 삶에 큰 긍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어 넋두리처럼 제자들이 들으라고 말합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은 물론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참 적절한 말씀입니다.

이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물음이 나올수 뿐이 없습니다.

또 천하의 영적 명의이신 예수님의 기막힌 답변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느님께는 부자의 구원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구원의 보증 수표는 아닐 것입니다.

부자에 대한 증오나 질투, 탐욕이 내면에 존재하는 한 역시 무지의 가난한 자들에게 구원은 없을 것입니다. 

 

정말 부자라도 회개의 은총으로 재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어려운 이들과 자유자재 나눌수 있는

무욕의 지혜롭고 자유로운, 참으로 청빈한 부자라면 재물을 소유하면서도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니

이야말로 하느님의 은총이자 기적입니다.

과연 이런 청빈한 부자들 가득한 세상이라면 참 좋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일 것입니다. 

 

복음의 부자는 재물 포기와 예수님 추종에 실패했지만, 제1독서의 베드로 사도는 성공하여

“희망에 대한 감사가”를 신바람나게 부릅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감사찬미가입니다.

재물을 소유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모시고 따름과 나눔의 삶에 충실할 때

함께 부를 수 있는, 참으로 우리를 아름답고 자유롭게 하는 희망과 기쁨의 감사 찬미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도 않는

상속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우리를 더욱 고무합니다.

주님을 따르고 나누는 삶에 최선을 다할 의욕을 심어줍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더욱 그분을 믿고 사랑하며 따르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합니다.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주님, 나는 좋으니

 하신 일들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시편73,28). 아멘.


5/28(화) [(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김민기 선생님은 자신은 뒷것이라고 했습니다. 배우들은 앞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키운 것은, 학전이라는 극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키운 것은 대한민국의 문화와 예술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세계에 우뚝 선 K Pop K Culture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민기 선생님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세상의 부와 명예를 얻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땅 위에는 조용필 땅 아래에는 김민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나이인 둘은 언젠가 한 번 만났다고 합니다. ‘조용필은 김민기를 존경한다고 했고, 김민기는 조용필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생각해 봅니다. 난 내게 주어진 '학전'을 잘 돌보았는가? 난 뒷것이 아닌 앞것으로 나 자신을 내세운 것은 아닌가? 난 건물을 세우고 추억은 만들었지만, 나의 학전에서 만난 이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헌신과 열정을 다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이제 어쩌면 저에게 마지막 '학전'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뒷것이 되어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나로 인해 슬픔은 기쁨이 되고, 절망은 희망이 되고, 두려움은 용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재형 신부)

 

2.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 살게 해 주시고, 나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며, 

나의 재능과 내가 지금 잠깐 관리하고 있는 것들 모두가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맡겨주신 것임을 알고 그것들을 맡겨주신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조욱현 신부 강론)

 

3. <오늘의 말·샘 기도>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마르 10,28)

 

주님!

모든 것을 버리되, 버리고 온 제 자신도 버리게 하소서.

당신을 따르되, 당신을 따르고 있는 제 자신도 버리게 하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온전히 당신의 것이오니, 오로지 당신만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교황님은 베드로 광장에서 어린이들과의 미사중 삼위일체 교리를 단순하게 압축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created),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고(saved),

성령님은 우리를 평생 동반하신다(accompanies).”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줌으로 땅에 있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권고입니다.

그리고 와서 정말 참보물인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5/28(화) [(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 521(151)일 기도

 

복음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마르 10,28)

 

주님!

모든 것을 버리되, 버리고 온 제 자신도 버리게 하소서.

당신을 따르되, 당신을 따르고 있는 제 자신도 버리게 하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온전히 당신의 것이오니, 오로지 당신만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5월28일(화) 5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