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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6월 21일 금요일[(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6월 21일 금요일[(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은 1568년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본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되려고 하였지만, 귀족 사회의 폭력과 방종에 실망하고 선교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열일곱 살에 재산 상속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성인은 로마 전역에 흑사병이 번지자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다가 감염되어 1591년 스물세 살에 신학생 신분으로 선종하였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며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입당송

시편 24(23),4.3 참조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주님의 산에 오르고, 그 거룩한 곳에 서리라.

본기도

천상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
복된 알로이시오가 놀라운 정결과 참회의 정신으로 살아가게 하셨으니
그의 공덕과 전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그 정결과 참회의 정신을 충실히 본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사람들은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은 다음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1,1-4.9-18.20
그 무렵 아하즈야 임금의 1 어머니 아탈야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서는,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다.
2 그러자 요람 임금의 딸이며 아하즈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살해될 왕자들 가운데에서, 아하즈야의 아들 요아스를 아탈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겨 두었으므로, 요아스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3 아탈야가 나라를 다스리는 여섯 해 동안,
요아스는 유모와 함께 주님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4 칠 년째 되던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어
카리 사람 백인대장들과 호위병 백인대장들을 데려다가,
자기가 있는 주님의 집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는 그들과 계약을 맺고 주님의 집에서 맹세하게 한 다음,
왕자를 보여 주었다.
9 백인대장들은 여호야다 사제가 명령한 대로 다 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안식일 당번인 부하들뿐만 아니라
안식일 비번인 부하들까지 데리고 여호야다 사제에게 갔다.
10 사제는 주님의 집에 보관된 다윗 임금의 창과 방패들을
백인대장들에게 내주었다.
11 호위병들은 모두 무기를 손에 들고
주님의 집 남쪽에서 북쪽까지 제단과 주님의 집에 서서 임금을 에워쌌다.
12 그때에 여호야다가 왕자를 데리고 나와,
왕관을 씌우고 증언서를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은 다음,
손뼉을 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13 아탈야가 호위병들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이 모인 주님의 집으로 가서 14 보니,
임금이 관례에 따라 기둥 곁에 서 있고
대신들과 나팔수들이 임금을 모시고 서 있었다.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는 가운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아탈야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 하고 외쳤다.
15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가 군대를 거느린 백인대장들에게 명령하였다.
“저 여자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시오.
그를 따르는 자가 있거든 칼로 쳐 죽이시오.”
여호야다 사제는 이미
“주님의 집에서 그 여자를 죽이지 마라.” 하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16 그들은 그 여자를 체포하였다.
그러고 나서 아탈야가 왕궁의 ‘말 문’으로 난 길에 들어서자,
거기에서 그 여자를 죽였다.
17 여호야다는 주님과 임금과 백성 사이에,
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을 맺게 하였다.
또한 임금과 백성 사이에도 계약을 맺게 하였다.
18 그 땅의 모든 백성이 바알 신전에 몰려가 그것을 허물고,
바알의 제단들과 그 상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었다.
그들은 또 바알의 사제 마탄을 제단 앞에서 죽였다.
여호야다 사제는 주님의 집에 감독을 세웠다.
20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였다.
아탈야가 왕궁에서 칼에 맞아 죽은 뒤로 도성은 평온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2(131),11.12.13-14.17-18(◎ 13)
◎ 주님은 시온을 택하시고 당신 처소로 삼으셨네.
○ 주님이 다윗에게 맹세하셨으니, 돌이키지 않으실 약속이로다. “나는 네가 낳은 아들을, 너의 왕좌에 앉히리라.” ◎
○ 너의 아들들이 내 계약을, 내가 가르치는 법을 지킨다면, 그들의 아들들도 길이길이, 너의 왕좌에 앉으리라. ◎
○ 주님은 시온을 택하시고, 당신 처소로 삼으셨네. “이곳은 길이 쉴 나의 안식처, 내가 원하였으니 나 여기 머물리라.” ◎
○ 거기서 다윗 집안에 뿔이 돋게 하고, 나의 메시아에게 등불을 들려 주리라. 그의 원수들은 수치의 옷을 입지만, 그의 머리 위에는 왕관이 빛나리라. ◎

복음 환호송

마태 5,3
◎ 알렐루야.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알렐루야.

복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5,1-5)와 복음(마태 22,34-40)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복된 알로이시오를 본받아
언제나 깨끗한 예복을 입고 천상 잔치에 참여하여

주님의 은총을 풍부히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78(77),24-25 참조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네. 천사들의 빵을 사람이 먹었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천사의 양식을 받아 먹었으니
깨끗한 삶으로 주님을 받들어 섬기며
오늘 공경하는 복된 알로이시오를 본받아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Aloysius Gonzaga " 온 세상의 왕이 되는 것보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더 낫다. " 1568년 이탈리 카스틸리오네의 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알로이시오는 7살에 영적 체험을 하여 신심과 신앙생활을 전념하며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13살에는 필립 2세 궁전에서 시동으로 지냈고, 마드리드 왕궁에서는 황태자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술과 검도를 배우면서도 늘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귀족이 되기를 거부하고 선교사가 되기를 원했고, 1585년 만토바에서 영신수련한 뒤 가문을 계승할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였습니다. 예수회 회원으로 성 로베르토 벨라미노를 영적 지도자로 삼았으며 여러 철학과 신학 연구를 하며 수덕생활에 전념하였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한 때에 병자들을 돌보다가 페스트로 선종하였습니다. 글씨 :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수원교구) 그림 : 홍승례 아스테리아 수녀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흥부 네는 자식도 많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아이들까지 많으니 흥부 네는 열심히 일해도 겨우 먹고 살기 바쁘기 마련입니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작은 가게를 시작했는데, 토네이도가 발생해서 건물이 부서졌습니다. 누구한테 하소연 할 수도 없고, 한숨만 나오기 마련입니다. 제게도 큰 행사가 겹쳐서 있었습니다. 본당 견진성사와 중남부 꾸르실료 교육이 겹쳤습니다. 둘 다 일정을 제가 잡지 않았습니다. 견진성사도 작년에 이미 날이 정해졌습니다. 꾸르실료 교육도 작년에 이미 날이 정해졌습니다. 제가 댈러스로 오면서 꾸르실료 지도신부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꾸르실료 교육을 맡아야 했기에 일정이 겹친 겁니다. 견진성사는 주교님이 오시고, 본당의 큰 행사이니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꾸르실료도 지도신부이기에 당연히 교육에 함께 해야 합니다. 주일 새벽에 꾸르실료 미사를 마치고, 본당으로 와서 견진성사 미사에 함께 했습니다. 주교님이 떠나시고, 다시 꾸르실료 마침예식을 위해 갔습니다. 견진성사도, 꾸르실료 교육도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견진성사 미사를 하면서 주교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겸손하고 검소하시고 소탈 하신 모습입니다. 작은 차를 손수 운전하고 오셨습니다. 장백의도 직접 입으셨고, 제의는 본당 것을 빌려 입었습니다. 공지사항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교님이 오시니, 제가 순위에서 밀리네요?” 교우들은 웃었습니다. 주교님은 한국말을 이해 못하시니 나중에 교우들이 왜 웃었는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주교님에게 본당 사제와 주교는 순위와 권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교와 본당 사제는 직책이 다를 뿐이지 권위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주교님은 점심 도시락을 드시고, 남은 건 가져갔습니다. 저녁에 드신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주교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부주임 신부님에게도 자상하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30개월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건 저와 부주임 신부님이 속한 서울대교구의 교구장께 먼저 청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국에서 파견된 사제들에게도 관심을 보여 주시니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아야 할 재물은 권위와 직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아야 할 재물은 겸손과 단순함입니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나눔입니다. 그것은 누가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꾸르실료는 교육 특성상 내용을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꾸르실료 교육을 마친 사람을 꾸르실리스타라고 합니다. 34일 교육을 마친 형제님이 소감을 발표하면서 꾸르실리스타와 바리스타가 비슷하다고 하였습니다. 바리스타는 일정정도 교육을 받은 후에, 커피의 맛과 풍미를 내서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 줍니다. 명동에 하랑이라는 커피 매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은 가톨릭 바리스타 협회를 통해서 교육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자원봉사로 커피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봉사와 노력은 하늘에 재물로 쌓일 것입니다. 그분들의 봉사와 노력도 누가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꾸르실리스타도 3 4일 교육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의 맛과 풍비를 이웃에게 전하는 거라고 합니다. 꾸리실리스타는 기도, 활동, 공부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어서 복음을 전하는 거라고 합니다. 형제님은 꾸르실료 교육의 목적을 잘 이해하였습니다. 그렇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하늘에 재물을 쌓은 것입니다. 저는 32년 꾸르실리스타로 지내고 있지만 그렇게 멋지게 설명하는 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스타는 별이라는 뜻도 있고, 전문가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번 34일의 교육에 15명의 봉사자가 함께 했습니다. 그분들 또한 하늘에 재물을 쌓았습니다. 그분들이 쌓은 재물은 누가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을 재산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재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 다이아몬드, 고가의 미술품, , 현금은 아닐 것입니다. 하늘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재물, 결코 남들이 가져갈 수 없는 재물, 사라지지 않은 재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결실인 희생, 봉사, 나눔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하늘나라에 우리의 재물을 쌓아 보시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마태오 6,19-23

 

하늘에 보물을 쌓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거짓말 같겠지만 매일 차곡차곡, 그리고 조용히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많은 분들이 은행 잔고 불리고, 부동산 가격 상승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재물의 탑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있지요.

 

이런 물질만능주의 세상 속에서, 틈만 나면 어려운 이웃들과 신음하는 세상과 공동선을 위해

수시로 몸과 마음과 금고를 비우는 분들은 존재 자체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에게 하나의 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마태오 복음 6장 19~20절)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는 예수님의 권고 말씀 앞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나는 쥐뿔도 없는 사람이라서 하늘에 보물을 쌓고 뭐고 할 능력이 없습니다.

뭐라도 있어야, 하늘에 보물을 쌓고 말고 할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물이

반드시 현세적 재물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보물은 여러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깊은 슬픔을 붙들고 있는 이웃들에게 다가가 그 슬픔 함께 붙들어주는 것은

아주 훌륭한 방법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세상 쓸쓸히 홀로 걷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함께 길을 걸어주는 것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은 좋은 방법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과 대자연, 생태계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는 마음으로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한다든지, 어떻게든 단순하고 소박하며 청빈하게 살아가는 것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길입니다.

 

사회 정의의 실천은 투사나 정치인들의 몫이려니 하는 생각을 떨치고 불의한 현실 앞에서 올바른 소리를 내며,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기꺼이 연대하고 참여하는 일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참된 노력입니다.


3. 이영근 신부님 강론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의 경건생활,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해 말씀하신 다음, 보물과 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보물’은 보석을 나타내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주님을 경외할 줄 아는 지혜’(이사 33,6)를 상징하기도 하며, 또한 ‘이스라엘’에 견주기도 합니다(탈출 19,5; 신명 7,6). 

한편 ‘보물’은 획득하여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으니 찾은 이에게 발견됩니다.

또한 발견하기만 하고 차지하지 못한 이도 있고, 그런가 하면 아예 찾아 나서지도 않은 이가 있고, 찾았으나 악용하는 이도 있습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마태 6,19)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마태 6,20)

그렇습니다. 

우리는 땅에 보물을 쌓아둘 수도 있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도 있습니다. 

땅에 쌓아둔 보물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위해 쌓아올린 보물이지만, 좀 먹고 녹슬고 도둑 받을 수 있는 보물입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하느님 앞에서 쌓아올린 보물이고, 영원히 남는 ‘의로움의 보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21)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을 보면,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곧 값진 보물이라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눈이 어디를 향하여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우리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 하느님을 보고 있는지,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보고 있는지, 하느님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보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마음은 어디에 있겠는가?

당연히 주님의 마음은 분명 여기 저희 안에 와 있습니다.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당신 마음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당신의 보물인지라 당신의 눈은 지금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당신 목숨을 내어주고 얻은 소중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제 마음에 와 있는 주님의 눈동자를 관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주님의 눈은 나를 향하여 있는데 내 마음의 눈은 어디를 향하여 있는지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몸의 등불'인 '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마태 6,23)

그렇습니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해질 것입니다.

곧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눈이면, 환하고 투명하게 볼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깨끗하면 볼 것'(마태 5,8)이라고 했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이 맑아져야 할 일입니다. 

만약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눈이 성하지 못하면'(πονηροσ)은 직역하면 ‘악하면’으로, 곧 ‘악한 눈’을 뜻합니다.

그러니 보물의 처신이나 사용이 악하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리 보물이라 할지라도 악하게 사용되면 오히려 자신을 어둠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눈은 몸의 등불이다.

(마태 6, 22)

 

주님!

제 눈이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있는 것을 쓸모없다고 보는 불평의 눈이 아니라, 있는 것을 소중하다고 보는 축복의 눈이 되게 하소서.

보아도 보지 못하는 눈이 아니라, 모든 것 안에서 경탄과 탄성, 경배와 경외를 바라보게 하소서.

상처를 보되 그 속에서 구원을 볼 줄을 알고, 죄를 보되 자책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았음을 보는 맑은 눈이 되게 하소서.

진부함을 넘어 경이로움을 보고, 행위를 넘어 존재를 보는,

거부할 수도 거부될 수도 없는, 그 무엇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의 사랑의 눈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6.20.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집회48,1-14 마태6,7-15

                                                                 주님의 기도

                                                   “한결같이, 끊임없이 기도하라”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사랑뿐 아니라 기도에도 우리는 영원히 초보자일뿐입니다.

 

기도는 기분이 감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위하여, 영혼이 살기위하여,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의지적으로,

의식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심신의 건강에, 영육의 건강에 우선적 수행이 기도입니다.

기도야말로 하느님 마련하신 최고의 명약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끊임없이, 숨쉬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사람만이 기도합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니라 기도해야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두발로 서서 기도하라고 직립인간이요, 눈들면 하늘입니다.

그래서 하늘보고 땅보고, 기도하고 일하고가 순서입니다. 

 

기도와 삶은 함께 갑니다.

기도하는대로 살고 사는대로 기도합니다.

심신의 건강에, 영육의 건강에 우선적 수행이 기도입니다.

 

나중에 남는 얼굴도 둘중 하나입니다.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주님은 천국입장시 우리의 얼굴을 검사할 것입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기도한 얼굴인지 주님을 닮은 얼굴인지 그 얼굴을 검사할 것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을 보니 결정적으로 취약함이 눈에 띕니다.

기도가 빠졌습니다.

 

“일을 하듯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듯 일을 하라.

이것이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가 되는 길이다.”<다산>

 

기도가 빠졌습니다.

일을 하듯 기도를 하고 기도를 하듯 일을 해야 합니다.

우선순위는 “기도하라, 일하라, 공부하라”입니다.

여기에 “운동하라, 걸어라”를 더하면 완벽합니다.

 

“장인은 작업장에 있음으로써 일을 이루고, 군자는 배움으로써 도를 이룬다.”<논어>.

 

여기에 하나를 더해야 완벽합니다.

“성인은 기도함으로써 하느님을 닮아 참사람이 된다”고 말입니다.

사람만이 기도합니다.

사람만의 특권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복된 운명의 복된 존재들인 사람들입니다.

기도하여 하느님을 닮아갈 때 참사람의 성인이요, 하느님 없이 막살면 광야인생여정중 악마도, 폐인도,

괴물도 될 수 있습니다.

 

어제 수요일 삼종기도후 바티칸 광장의 수많은 신자들 앞에서 교황님은 시편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였던 시편은 모든 계절에 할 수 있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교향곡(symphony of prayer)’ 같은 시편이요 시편을 노래할 때, 하느님은 성인들의 공동체인

웅대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가 우리와 동반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기도의 일상화, 기도의 생활화, 기도의 습관화에 기도의 교과서인 시편집에 따라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치는 기도보다 더 좋은 기도의 수행은 없습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밖에 답이, 길이 없습니다. 성서나 교회의 성인들은 모두가 기도의 대가였습니다.

믿는 이들이라면 기도에 있어선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되어야합니다.

 

기도에는 신비가, 일에는 전문가, 공부에는 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포부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와 일, 그리고 공부와 사랑의 봉사에도 턱없이 짧은 인생인데 도대체 죄를 지으며,

무절제하게 유투버나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지요!

 

오늘 제1독서 집회서의 주인공, 엘리야와 엘리사, 그 스승에 그 제자요 무엇보다 둘은 기도의 사람,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엘리야가 (하느님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기도를 통해 천하무적의 주님의 전사가된 엘리사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고맙게도 우리 역시 천하무적天下無敵의 주님의 전사로 살 수 있는 기도에 관한

참 좋은 가르침을 주시니 바로 주님의 기도요 그에 앞서 필수적 지침을 주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알고 계신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이 좋은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깨어 주님을 향해 살아가는 삶자체도 기도가 됩니다.

참으로 다양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이 다 아시는데 무슨 기도냐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기도하면서 환상이나 허영의 걷히면서, 무지의 너울이 걷히면서,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본질적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또렷이 드러나는 참나의 모습입니다.

 

성 베네딕도의 말씀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많은 말로써가 아니라, 마음의 순결함과 통회의 눈물로써 우리의 간청이 들어 허락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하느님의 은총에서 영감을 받은 열정으로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기도는 짧고 순수해야 한다.

모든 이가 모여있을 때 기도는 짧게 할 것이다.”(성규20,3-5ㄱ)

 

기도뿐 아니라, 우리의 말이나 글도 사제의 강론도 짧고 순수해야 좋습니다.

바로 오늘 주님은 당신의 기도, 주님의 기도를 통해 기도의 전범을 보여주십니다.

당신의 기도의 노하우를 공개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난하고 단순한, 본질적 삶이 압축되어 있는 보물같은 기도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인간의 본질적 필요 모두를 담고 있는 기도요,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주님의 기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모든 인류의 아버지인 하느님이요 인류는 하느님의 한가족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인류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서로간은 형제자매가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는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에 관한

세 청원이 앞에 나옵니다.

 

늘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 중심의 삶을 새로이 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아버지 아닌 어떤 세상 돈이나 우상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를 향한 세 청원에 이어 지상천국을 살 수 있는 네가지 본질적 필수 사항의 청원입니다.

“일용할 양식, 잘못을 용서받음, 유혹에 빠지지 않음, 악에서의 구출” 등 네가지입니다.

주님은 이어 용서 받기에 앞서 이웃을 먼저 용서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일방적 청원만으로는 무책임합니다.

청원에 따른 주님의 은총과 우리의 협력이 함께 가야 합니다.

즉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용서하기 위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악에서 구함 받기 위해

우리의 최선의 노력 또한 필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하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의 삶”을 살라는 것이요,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삶입니다.

 

그러니 날마다의 미사전례기도중 일용할 양식인 성체를 모시기전 온마음으로 정성껏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새삼 주님의 기도가 온전히 실현되기를 바라며 거행되는 공동미사전례기도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예수님, 성경,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주님의 기도가 실현되어 우리 모두 지상천국을,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멘.


6/21(금)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을 재산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재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 다이아몬드, 고가의 미술품, , 현금은 아닐 것입니다. 하늘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재물, 결코 남들이 가져갈 수 없는 재물, 사라지지 않은 재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결실인 희생, 봉사, 나눔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하늘나라에 우리의 재물을 쌓아 보시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조재형 신부)

 

2.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깊은 슬픔을 붙들고 있는 이웃들에게 다가가 그 슬픔 함께 붙들어주는 것은

아주 훌륭한 방법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세상 쓸쓸히 홀로 걷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함께 길을 걸어주는 것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은 좋은 방법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과 대자연, 생태계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는 마음으로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한다든지, 어떻게든 단순하고 소박하며 청빈하게 살아가는 것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길입니다.

 

사회 정의의 실천은 투사나 정치인들의 몫이려니 하는 생각을 떨치고 불의한 현실 앞에서 올바른 소리를 내며,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기꺼이 연대하고 참여하는 일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참된 노력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눈은 몸의 등불이다.

(마태 6, 22)

 

주님!

제 눈이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있는 것을 쓸모없다고 보는 불평의 눈이 아니라, 있는 것을 소중하다고 보는 축복의 눈이 되게 하소서.

보아도 보지 못하는 눈이 아니라, 모든 것 안에서 경탄과 탄성, 경배와 경외를 바라보게 하소서.

상처를 보되 그 속에서 구원을 볼 줄을 알고, 죄를 보되 자책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았음을 보는 맑은 눈이 되게 하소서.

진부함을 넘어 경이로움을 보고, 행위를 넘어 존재를 보는,

거부할 수도 거부될 수도 없는, 그 무엇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의 사랑의 눈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엘리야가 (하느님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기도를 통해 천하무적의 주님의 전사가된 엘리사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고맙게도 우리 역시 천하무적天下無敵의 주님의 전사로 살 수 있는 기도에 관한

참 좋은 가르침을 주시니 바로 주님의 기도요 그에 앞서 필수적 지침을 주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알고 계신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이 좋은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깨어 주님을 향해 살아가는 삶자체도 기도가 됩니다.(이수철 신부)

 

6/21(금)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545(175)일 기도

 

복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오늘의 말·샘 기도>

 

“눈은 몸의 등불이다.

(마태 6, 22)

 

주님!

제 눈이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있는 것을 쓸모없다고 보는 불평의 눈이 아니라, 

있는 것을 소중하다고 보는 축복의 눈이 되게 하소서.

보아도 보지 못하는 눈이 아니라, 

모든 것 안에서 경탄과 탄성, 경배와 경외를 바라보게 하소서.

상처를 보되 그 속에서 구원을 볼 줄을 알고, 

죄를 보되 자책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았음을 보는 맑은 눈이 되게 하소서.

진부함을 넘어 경이로움을 보고,

행위를 넘어 존재를 보는,

거부할 수도 거부될 수도 없는,

그 무엇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의 사랑의 눈이 되게 하소서.

아멘.

 

-2024년 6월21일(금) 7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