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7월 12일 금요일[(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5개

[매묵]2024년 7월 12일 금요일[(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5개

입당송

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1(50),3-4.8-9.12-13.14와 17(◎ 17ㄴ)
◎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당신은 가슴속 진실을 기뻐하시고, 남몰래 저에게 지혜를 주시나이다. 우슬초로 정화수를 뿌리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 ◎
○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6,13; 14,26
◎ 알렐루야.
○ 진리의 영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끄시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마다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9 참조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또는>
마태 11,2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비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비슷한데 다른 것을 짝퉁이라고 부릅니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짝퉁은 사용하면 진짜와 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지방에서 서울로 가려면 박달재 고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한 선비가 주막에서 하루 지낸 뒤 서울로 올라가려는데 주모가 선비에게 보따리를 하나 주었습니다. 선비가 이것이 무엇이오?’하고 물으니, 주모는 보따리에 싼(Pack up) 것은 비지떡입니다. 가시다 출출하면 드세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참 좋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두부를 만들면 남게 되는 비지라는 의미가 생겼습니다. 식당에서 두부를 먹고 나면 덤으로 비지를 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싼 게(Cheap) 비지떡이라는 말로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검사는 법과 정의를 실천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과 검사가 권력의 하수인이 되면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정치경찰, 정치검사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종교도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공동선을 위해서 연대할 때는 험난한 세상의 파수꾼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권력의 맛을 들이면 회칠한 무덤처럼 됩니다. 심하면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도 듣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비슷한데 다른 말을 꼭 구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솔직한 것과 직설적인 것이 있습니다. 비슷한데 느낌은 아주 다릅니다. 솔직한 것에는 측은지심의 마음이 있습니다. 직설적인 것은 현상만 있습니다. 종교는 말씀이 있고, 말씀에 따른 현상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세상이 창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과학은 현상을 먼저 연구합니다. 그 현상을 정리하면 이론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며칠씩 잘 먹지도 못하고 따라다니던 군중을 측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물고기를 축복하신 후에 나누어 주셨습니다. 오천 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제자들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는 굶주린 사람들을 먹일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신부님이 신발을 벗으니, 냄새가 심했습니다. 직설적인 신부님은 어이구 이게 무슨 냄새야!’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한 신부님은 열심히 일했나 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과 진실은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직설적인 말은 때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울고 싶은데 뺌을 때리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당당한 것과 자만한 것이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당당합니다. 욕심이 없으면 권력의 유혹에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도 당당하게 순교의 화관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앞에서도, 헤로데 앞에서도 당당하셨습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젊은이가 승리의 그날까지 당당하게 전진하였습니다. 자만한 것은 마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빌라도와 대사제는 자만했습니다. 자만한 사람은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지 못합니다. 타인의 잘못과 허물을 쉽게 단죄합니다. 세리의 기도를 무시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비웃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바리사이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가 다르지 않습니다. 기도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진심이 중요합니다. 하느님 앞에는 부자의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헌금의 액수가 아니라 헌금의 정성이 중요합니다. 불의에 맞서 일어설 수 있다면 당당한 것입니다. 가난한 이를 무시하고, 타인의 잘못과 허물을 쉽게 단죄한다면 자만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2.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07월 12일 금요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박해가 있는 곳에 스스로 찾아가 순교하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현실적으로 분별하여 박해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순교는 철저하게 하느님께서 한 사람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일입니다.

이 놀라운 일은 우리의 의지나 신념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박해를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 주시는 일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뱀처럼 슬기롭다.’는 것은 현실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박해로 드러나는 악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와 반대로 비둘기처럼 순박하다.’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 신비를 드러내신다는 순수한 믿음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자세를 뜻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순교는 죽음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생명과 사랑’,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순교의 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피를 흘리는 박해나 순교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여전히 우리는 생명과 사랑’,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한 믿음이 더욱 요구되는 요즘입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 끌고 가는 것은 모두 다 피할 수 있는 신앙인다운 판단력을고통과 어려움 앞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할 줄 아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분께 향하는 판단력과가장 절망적일 때 그분께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키워 주는 힘을 분명히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아멘.


3.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2024년 나해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마태오  10,16-23

 

사람에게 실망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송봉모 신부의 상처와 치유에 대한 강의 중에 많은 사람이 ‘용서’와 ‘화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며 이런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성당 단체에서 한 자매가

다른 자매님의 말에 상처를 입어 마음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정과 기도 끝에

어차피 성당을 다니기 위해서는 그 자매를 다시 보아야 하기에 고해성사를 보고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자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도리어 그러더랍니다. 

“이제야 네 잘못을 뉘우치는군!” 

 

결국 화해하려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실화는 더 충격적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 성추행당했던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은 오랜 노력으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해를 청하여 아버지와 화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딸이 결혼하여 또 딸을 낳았는데, 자유롭게 딸 집에 드나들던 아버지는

어느 날 손녀딸에게도 또 몹쓸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문제는 위 자매들에게 뱀처럼 슬기로운 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여지라고 하시며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사람들’이란 어떤 특정한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파견된 세상에서 만나게 될 보통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며 제자들에게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왜 사람을 믿으면 안 될까요? 영화 ‘불한당’에서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상황을.”

 

르완다 종족 대학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임마쿨레는 자신의 책에서 모든 인간이

상황이 바뀌면 다 배신하게 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자신의 절친들도 종족이 다르다고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고

목숨 걸고 자신을 숨겨주던 목사님도 상황이 어려워지자, 그리고 자기 목숨을 위해 살아남더라도

무인도에 가서 사람 만나지 말고 살라고 했습니다. 자기와 가족의 목숨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자기들을 이렇게 만든 벨기에는 군대를 가장 먼저 빼버렸고

미국과 유럽도 모른 채 눈을 돌렸습니다. 

 

이때 믿을 분은 하느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기도에 할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한 임마꿀레에게 절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평화를 주셨습니다.

한 사람 들어가기도 어려운 작은 화장실에서 여덟 명이 석 달 동안 숨어 살면서

그녀는 사람을 절대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께 의지하였습니다.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뱀처럼 슬기롭게 되지 않으면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육아법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차츰 자아의식을 형성해 가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들을 홱 던져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꼬마는 평생 처음 당하는 엄청난 쇼크에서 쉽게 헤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인간에게는 까닭 없는 배신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어린 아들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절망과 배신을 딛고 다시 아빠 품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아빠가 다시 한번 호되게 밀쳐내 버립니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에게 “아들아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이 아빠까지도 너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다정하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오직 믿을 대상은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새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당신의 제자들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시며

비둘기와 뱀의 두 모습을 동시에 지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두 상반되는 성격을 동시에 지니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뱀이 되면 하느님께는 비둘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4.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오늘 복음도 여전히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특히 그들이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게 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무장시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마태 10,16)

여기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것은 먼저 제자들을 파견하는 것이 마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보낸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이리 떼를 제거해주거나 쫓아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 가운데로 보낸다는 사실입니다.

 

곧 ‘세상’이라는 어장은 결코 환상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 질곡과 어려움 속에 던져진 것입니다. 

사실 교회도 수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환상적인 곳이 아닙니다.

때로는 서로가 이리가 되어 헐뜯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러한 이곳이 우리의 파견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대처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마태 10,16)

여기서 '슬기롭다'는 말의 성서에 따른 뜻은 '지혜롭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먼저 '하느님을 경외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10,19-20)

이는 '슬기로움'이 많이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슬기로움’은 ‘사랑 때문에’ 핍박과 박해를 받기도 하고, 끝내는 죽기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지혜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순박하다'는 말의 성경에 따른 뜻은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성품인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성품과 덕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2)

 

이는 '순박함'이 그저 화를 내지 않고 온유한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강한 것’을 말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순박함’은 끝까지 믿고 참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마지막까지 희망을 꺾지 않는 것입니다.

온갖 굴욕을 받기까지, 끝내는 배반 받고 죽기까지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어라'는 말씀은 설혹 이리 떼에게 생명을 노략질 당한다하더라도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요, '끝까지 믿고 희망하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박해를 두고 산상설교에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마태 5,11)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2)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시고,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5.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7.11.목요일 
                               유럽의 수호자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480-547) 대축일 
                                                                                                잠언2,1-9 콜로3,12-17 마태19,27-29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
                                           “성 베네딕도 아빠스에 대한 자랑”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오늘 미사중 화답송 후렴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오늘은 유럽인들은 물론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인물인 유럽의 수호자 성 베네딕도 아빠스 대축일입니다.


아무리 자랑해도 샘솟듯 마르지 않는 샘물같은 분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성인 자랑에 돌입하겠습니다.
자랑하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듯이 저도 성인을 닮고 싶습니다.


제 주특기가 자랑입니다.
특히 하느님 자랑, 예수님 자랑, 교회 자랑, 성모님 자랑, 성인 자랑, 형제들 자랑입니다.
이런 자랑보다 정신 건강에 좋은, 유쾌한 자랑은 없고 이런 자랑보다 큰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사제서품 35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했던, 이젠 바다가 된 강론들 모두가
이런 자랑들로 가득했음을 봅니다. 


오늘의 입당송이 성 베네딕도의 삶을 압축 요약합니다.
“베네딕도는 그 이름대로 복을 받아 거룩하게 살았네.
그는 가족과 유산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거룩한 수도생활을 추구하였네.”


오늘의 옛 어른들의 말씀도 그대로 성 베네딕도의 모습에 대한 묘사같습니다.
“어른스러움이란 곧 관대함이다.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은 자신에 대한 엄격함에서 나온다.”<다산>
“군자는 세 번 변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이 있고, 가까이 다가가면 온화하며, 말을 들어보면 엄정하다.”<논어>


저녁성무일도시 아름다운 독서와 계응송도 그대로 성인의 삶을 압축하는 듯 했습니다.
“그분은 위대한 증거자로다. 그는 구름들 사이에 있는 아침 별과 같고 보름의 둥근 달과 같도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전 위에 비치는 태양과 같고 영광의 구름에 걸린 무지개와 같도다.”<집회50,5-7>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는 슬기로운 절제와 명쾌한 표현으로 규칙서를 저술했도다.
이 거룩한 사람은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가르칠 수 없었도다.”<계응송>


성 베네딕도 자랑의 절정은 복음 낭독전 흥겹게 함께 노래한 부속가일 것입니다.
길다싶지만 은혜로운 내용이라 전부 인용합니다.


“새빛 선물 가져오는 위대하온 지도자를 기념하는 대축일,
 성총받은 그 영혼이 노래하는 찬미가는 마음속에 울리네.
 동쪽길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성조용모 감탄 울려 퍼지네.
 태양같은 생명으로 많은 후손 얻은 그는 아브라함같도다.
 작은굴에 있는 그를 까마귀의 복사로써 엘리야로 알리네.
 강물에서 도끼건진 성 분도를 엘리사 예언자로 알도다.
 무죄덕행 요셉같고 장래일도 알아내니 야곱처럼 알도다.
 그의 생각 지극하여 예수님의 영복소에 우리 인도하소서.”


후배 수도승들이 세세대대로 얼마나 흠모사랑한 성인인지 부속가 전부가 감동적입니다.
어제 저녁 아름다운 무지개 선물을 받았는데 흡사 성인 임종후 올라가신 하늘길을 상징하는 듯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제 좋아하는 성인이 베네딕도와 약 600년 후대의 프란치스코인데, 그대로 '성 베네딕도 수도회
프란치스코 수사'라는 제 신원에 긍지를 느낍니다.
이를 노래한 짧은 자작시 역시 제 복된 신원을 드러냅니다.


“밖으로는 산, 밖으로는 성 베네딕도,
 천년만년 임기다리는 정주의 산,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강, 안으로는 성 프란치스코,
 천년만년 임향해 흐르는 맑은 강, 성 프란치스코”


산과 강의 보완관계처럼 성 베네딕도와 성 프란치스코도 그러합니다.
밖으로는 산같은 성 베네딕도를, 안으로는 강같은 성 프란치스코를 닮고 싶은 것이 제 간절한 염원이요,
결국은 예수님을, 하느님을 닮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 배치도 성인 자랑에 잘 드러맞습니다.


첫째, 성인은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사랑의 선물입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오늘 제2독서 바오로의 말씀이
흡사 사랑의 찬가를 연상케 합니다.
그대로 성 베네딕도가 살았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성인이 베네딕도입니다.
이어 계속되는 평화의 사랑, 감사의 사랑, 말씀의 사랑 또한 베네딕도에게 해당됨을 깨닫습니다.
 
둘째, 성인은 “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지혜의 선물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권고합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사랑이 지혜이고 지혜가 사랑입니다.
참사랑에서 샘솟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분별의 잣대는 사랑이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에서 분별력의 지혜가 나옵니다.
참으로 평생 지혜를 추구했고 지혜를 사랑한 성인이었습니다.
역시 단숨에 읽혀지는 잠언의 말씀도 그대로 성인의 모습같습니다.


“지혜에 네 귀를 기울이고 슬기에 네 마음을 모은다면, 그래, 네가 예지를 부르고 슬기를 향해
네 목소리를 높인다면, 네가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물을 찾듯 그것을 찾는다면
그때에 너는 주님 경외함을 깨닫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찾아 얻으리라.
주님께서는 지혜를 주시고 그분 입에서는 지식과 슬기가 나온다.”


주님은 이런 지혜의 사람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이들의 앞길을 보살피십니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이들은 정의와 공정과 정직을, 모든 선한 일을 깨닫고 그대로 이를 실천하니
지혜는 바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성인은 “따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따름입니다.
사랑의 버림, 사랑의 떠남, 사랑의 따름입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때 저절로 점차 버리게 되고, 떠나게 되고, 주님만을 따르게 됩니다.
베네딕도의 삶의 여정도 그대로 복음의 사도 베드로와 일치됨을 봅니다.
성인의 평생 여정도 자발적 사랑에서 기인된 버림의 여정, 떠남의 여정, 따름의 여정으로 요약됩니다.
참으로 성인은 주님을 향해 끊임없이, 한결같이, 묵묵히 버리고 떠나 따랐던 평생 삶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주님은 베드로에게 현세의 풍성한 축복은 물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 확약하셨는데,
베네딕도가 받은 축복도 베드로 못지 않습니다.
성인의 무수한 후예들인 수도승들의 활약은 얼마나 주님을 기쁘게 했고 교회를 풍요롭게 했는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교회 하늘을 환히 밝히는 태양같은 성 베네딕도 아빠스입니다.
아주 예전 저녁 불암산에 감동하며 써놨던 시도 생각납니다.


“아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저녁 침묵의 불암산이 상징하는바, 평생 큰 사랑, 깊은 지혜로 고요히 묵묵히 주님을 따랐던,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성 베네딕도 아빠스입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겸손한 사랑과 지혜로 항구히 주님을 따랐던 성인을 닮게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이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사편34,10-11).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7/12(금)  [(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조재형 신부)

 

2.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뱀처럼 슬기롭다.’는 것은 현실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박해로 드러나는 악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와 반대로 비둘기처럼 순박하다.’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 신비를 드러내신다는 순수한 믿음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자세를 뜻합니다.(김재덕 신부)

 

3. 그녀는 사람을 절대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께 의지하였습니다.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뱀처럼 슬기롭게 되지 않으면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될 수 없습니다. (전삼용 신부)

 

4.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2)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시고,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5. 저녁 침묵의 불암산이 상징하는바, 평생 큰 사랑, 깊은 지혜로 고요히 묵묵히 주님을 따랐던,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성 베네딕도 아빠스입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겸손한 사랑과 지혜로 항구히 주님을 따랐던 성인을 닮게 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이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사편34,10-11). 아멘.(이수철 신부)

 

7/12(금)  [(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제21일차 기도

 

복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2)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시고,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7월12일(금) 4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