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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7월 10일 수요일[(녹) 연중 제14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7월 10일 수요일[(녹) 연중 제14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0,1-3.7-8.12
1 이스라엘은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 열매를 잘 맺는다.
그러나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
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
2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분께서 그 제단들을 부수시고
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
3 이제 그들은 말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임금이 없지만
임금이 있다 한들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리오?”
7 사마리아는 망하리라. 그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같으리라.
8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들 위까지 올라가리라.
그때에 그들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쳐 다오!”,
언덕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 하고 말하리라.
12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5(104),2-3.4-5.6-7(◎ 4ㄴ 참조)
◎ 언제나 주님 얼굴을 찾아라.
○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
○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ㅇㅇ◎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복음 환호송

마르 1,15
◎ 알렐루야.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알렐루야.

복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마다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9 참조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또는>
마태 11,2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비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27대 사목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 어려운 시기에 함께하였던 26대 사목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곳 댈러스에 온 지도 5개월이 되었습니다. 27대 사목회 회장단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서 요셉, 박 에드워드, 김 다윗, 홍 고스마 본당에는 회장단과 더불어 여러 분과가 있습니다. 전례, 구역, 친교, 선교, 새 신자, 청소년, 교육, 홍보, 정보기술, 여성, 사회 사목 분과가 있습니다. 세대별 모임도 있고, 주일학교와 한국학교 담당자도 있습니다. 사목회와 함께 종신 부제, 수도자, 성직자가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27대 사목회가 해야 할 사명을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겁니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는 겁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더러운 영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욕망을 따르려는 마음입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근심 때문에 지금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나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이웃의 의견을 무시하는 마음입니다.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가보지도 않고 쉽게 포기하는 마음입니다. 이웃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하는 시기와 질투의 마음입니다. 나보다 못한 이를 도와주지 못하고,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입니다. 어떻게 해야 더러운 영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길도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의탁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겸손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첫째가 되려는 사람을 꼴찌가 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으면 낮은 자리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희생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가난한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기가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했던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지만, 부자는 지옥에 있다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재물과 하느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꺼이 나눌 수 있다면 하늘에 재물을 쌓은 것이고,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자라서 하느님의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못 들어가는 겁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아쉬운 것이 없다는 믿음의 마음입니다. 엘리사벳도 마리아에게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여인 중에 복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하혈하던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겨 바다로 넣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출발은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지닌다면, 희생의 마음을 지닌다면, 가난한 마음을 지닌다면, 굳건한 믿음의 마음을 지닌다면 우리는 능히 악한 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 병자와 허약한 이를 고쳐 줄 수 있습니다. 27대 사목회가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해결하려고 하면 분명 갈등과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27대 사목회가 성과와 결실을 먼저 얻으려고 하면 시련과 고통이라는 장애물을 만날 것입니다. 27대 사목회가 더러운 영을 먼저 물리칠 수 있다면 겸손과 희생 그리고 가난과 믿음의 마음으로 무장한다면 하느님께서는 함께하실 겁니다. 주님! 27대 사목회를 축복해 주시고,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 넘쳐나는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이 되게 하소서.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10,1-7

 

오늘도 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예! 하고 외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직접 이름을 한명 한명 호명하면서,

당신 가까이 부르시는 장면을 묵상해봅니다.

그분으로부터 선택받은 제자들 입장에서 얼마나 큰 기쁨이고 영예였겠습니까?

 

저희 사제나 수도자들도 비슷한 체험을 했습니다.

종신서원때, 사제수품식때, 신학교 학장 신부님이나 수도원 양성 책임자는 회중들 앞에서

저희의 이름을 크게 부릅니다.

잔뜩 긴장해있던 저희는 이름이 불려지면, 네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일어나 주교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토록 부족하고 나약하며, 허물과 죄 투성이인 저를 당신 가까이 불러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그분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이름을 직접 불러주신다는 것, 얼마나 놀랍고도 은혜로운 일인지요.

오늘도 아무것도 아닌 나,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나, 내세울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를 불러주신 그분께

백번 천번 감사드리면서, 또 다시 그분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실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이란 대 명제 앞에 때로 거추장스럽고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과분하게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구상하는 위대한 사업에 별 효용가치도 없는 우리를 끌어들이십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초대요 너무나 분에 넘치는 초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열두 제자들에게 있어 부르심 그 자체가 구원에로의 초대였습니다.

그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고 따라나서는 그 자체가 구원되는 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예수님을 통해 정점에 도달합니다.

용서하고 해방하며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참 모습이 예수님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그러우시고 겸손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사업 여정에 우리를 참여하라고 부르십니다.

우리 같은 소자본 주주들 당신이 구상하는 큰 사업에 별 도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파트너가 되어줄 것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인간 본성을 취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신성하게 만드셨습니다.

필멸의 운명을 지닌 우리를 당신 나라의 영원한 생명의 문으로 인도하셨으며,

썩을 몸인 우리를 불변의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참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지니고 온 고통과 죽음을 말끔히 가져가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고통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당신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통해 고통과 죽음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뚫고 나아가시면서 고통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의기소침해있던 제자들을 부르셔서 당당한 당신 사업의 파트너로 부르셨듯이

오늘 우리도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죽음을 대면하도록 부르시고, 죽음의 두려움 앞에 나를 세우기 위해 부르시고,

부활에 대한 신뢰로 두려움을 넘어서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할 일이 뭐가 뭔지, 돌아가는 분위기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무책임한 제자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분의 삶 전체, 십자가 죽음 앞에 자신의 온 삶으로 응답하는 제자를 원하십니다.

 

구원은 과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늘 새롭게 일어나야 하는 현실입니다.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에 시시각각으로 응답하는 일, 고통과 두려움을 딛고 일상적으로 일어서는 일이

오늘 내 하루를 구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 사랑의 힘이 우리 안에 자리 잡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내가 변화되고 성장해야 합니다.

분열과 방황, 죄와 타락의 세력 앞에 담대히 맞서 오늘 내가 구원되는 하루가 되길 빕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 모두 고쳐주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제까지 마태오복음 8장과 9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능을 드러내준 기적 이야기들을 들어왔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듣게 되는 말씀은 제10장의 '파견 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부르심 받은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또 다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도로 파견하기에 앞서, '먼저' 당신의 일을 하는 데 합당한 권위와 힘을 부여하십니다.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마태 10,1)

이는 제자들의 사도적 권위를 확증해 주시는 동시에, 그 권위와 능력이 그들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니 그들이 받은 신적 권위와 능력, 곧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은 메시아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징표가 됩니다. 

이처럼 '사도'란'“파견 받은 자'이기에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파견한 분의 뜻을 전파하는 것이 그 사명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파견하신 분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파견 받은 자의 재능이 아니라, 누구에게서 파견 받았는지가 중요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들은 예수님께로부터 파견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러 가야 할 곳을 말씀해주십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마태 10,5-6)

이러한 전도의 대상 지역을 이스라엘로 제한시키는 것은 민족적 편견이나 영원히 지켜져야 할 지침이 아니라, 복음의 선포가 하느님의 경륜에 따라, 먼저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됨을 말해줍니다. 

곧 아직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사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된 것은 스테파노가 순교한 후라 할 수 있습니다(사도 11,19-20).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두 가지의 우선순위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당신의 제자들을 사도로 뽑으시면서 '먼저' 사도에 합당한 당신의 권위와 힘을 주셨다는 사실로, 이는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미 이곳에 모여 살기에 합당한 은총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직무나 소임을 받았다면, 이미 그에 합당한 힘이 주어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를 수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힘이나 재능이 아니라 바로 그분의 능력임을 말해줍니다. 

또 하나는 사도로 파견하시면서 '먼저' 그 복음 전파의 대상을 정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부터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함을 깨우쳐줍니다.
‘먼저’ '우리 안에' 예수님이 선포되고, '우리 안에' 하늘나라가 흘러넘쳐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분의 나라, 그분의 지배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분의 제자요 사도임을 드러냅니다. 

이는 동시에 우선순위를 분별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우선순위를 결정하시는 분임을 말해줍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를 파견하신 예수님이요, 우리는 그분의 제자요, 사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김없는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마태 10,7)


주님!
어디를 가더라도 저의 길동무가 되어 주시고, 저의 길이 되어 주소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저의 파트너가 되어 주시고, 저의 언어가 되어 주소서!
무엇을 하더라도 저의 동료가 되어 주시고, 저의 일이 되어 주소서!
제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나라를 선포하며, 당신과 함께 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7.9.연중 제14주간 화요일                                                      호세8,4-7.11-13 마태9,32-38

                                                          삶은 영적 전쟁이다

                                              “우리는 주님의 전사, 복음의 전사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10,14)

 

오늘 복음 환호송이 착한 목자 예수님 중심의 삶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인터넷이나 유투브를 열면 온통 전쟁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삶은 영적 전쟁입니다.

모두가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상태를 살아갑니다.

 

정말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신원은 “주님의 전사”입니다.

사랑의 주님으로 무장하고 영적전쟁을 수행해 가는 믿는 우리들입니다. 

 

제대가 없는, 죽어야 제대인,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요 믿는 이들은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들입니다.

수도생활 만 42년, 초창기부터 참으로 선호했던 말마디가 주님의 전사입니다.

수도생활은 예로부터 영적전쟁이라 칭하는데 영적전쟁 42년채가 되지만 영원한 현역의 수도자입니다.

혼자가 아닌 형제들과 더불어의 전우애(戰友愛)가 동반한 영적전쟁입니다.

 

주님의 전사의 빛나는 모범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요 제1독서의 아모스 예언자입니다.

두 분 뿐 아니라 성서와 교회의 모든 성인들이 주님의 전사들입니다.

작금의 87세 노령의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입니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영적전쟁을 수행할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주님의 전사들이 영적전쟁에 항구할 수 있음은, 또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은

하느님 중심의 삶에 있음을 봅니다.

사랑하는 하느님을 궁극의 희망이자 꿈, 비전으로 모신 삶이기에 가능한 평생

영적전투에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아모스 예언자가 우상들과 치열한 전투에 얼마나 통쾌한 승리를 거뒀는지 오늘의 우리에게도

귀한 가르침이 됩니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게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리 없다. 

 

그들이 제단들을 많이도 만들었지만,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요, 그 제단들은 죄짓는 제단일 뿐이다.

그들은 희생제물을 좋아하여 그들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투철할 때 우상들의 정체는 폭로되고 그들이 얼마나 헛된 존재들이요

우리를 노예화한 것들인 지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중심을 잃은 무지의 삶으로 인해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유형무형의 우상들에 빠져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지요!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투철할 때 예수님처럼, 아모스 예언자처럼 하루하루 날마다

삶의 제자리 주님 안에서 깨어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의 삶은 없을 것이니 주님의 전사는 그대로 복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

치유의 전사, 구원의 전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마귀들려 말못하는 사람에게서 마귀를 축출하자 말못하는 이는 말을 합니다.

마귀에 대한 통쾌한 영적승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늘나라의 전사 예수님이요 이에 놀란 군중들의 반응입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반영하는 고백과는 달리 똑같은 현실을 두고도 어떻게 다음과 같은

반대의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 바리사이들의 왜곡된 견해가 충격적입니다.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무지에 눈멀면 이토록 완고해집니다.

흡사 극우나 극좌 이념에 매몰된 극단의 맹신이나 광신의 무지한 사람들을 연상케 합니다.

 

이어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모습을 통해 복음의 전사로서, 평화와 치유의 전사로서,

또 착한 목자로서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얼마나 예수님이 하느님의 마음과 사랑에 정통한 하느님 중심의 삶이었는지 확연히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를 모두 고쳐주셨다.’

 

예수님의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위해 온전히 봉헌된 하루의 삶이 참 아름답습니다.

다음 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연민의 사랑은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현실과 이리도 흡사한지요!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죄와 병으로 얼룩진 인간 현실같습니다.

첨단 문명을 구가하는 시대에도 인간불행은 지속됩니다.

 

궁극의 원인은 단하나! 하느님을, 하느님 중심의 삶을 잃었기에 무지와 탐욕으로 자초한 화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영적 난민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예수님의 다음 당신 제자들에 대한 말씀은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정말 주님의 참 일꾼들인 주님의 전사가, 주님의 목자가 절실한 시절입니다.

아니 우리 각자 솔선수범 분발하여 복음선포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참 좋은 일꾼이 되어 살도록 합시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좋은 도움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님은 도움이며 방패이시다.”(시편115,9). 아멘.


7/10(수)  [(녹)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지닌다면, 희생의 마음을 지닌다면, 가난한 마음을 지닌다면, 굳건한 믿음의 마음을 지닌다면 우리는 능히 악한 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 병자와 허약한 이를 고쳐 줄 수 있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참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지니고 온 고통과 죽음을 말끔히 가져가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고통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당신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통해 고통과 죽음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뚫고 나아가시면서 고통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구원은 과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늘 새롭게 일어나야 하는 현실입니다.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에 시시각각으로 응답하는 일, 고통과 두려움을 딛고 일상적으로 일어서는 일이

오늘 내 하루를 구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 사랑의 힘이 우리 안에 자리 잡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내가 변화되고 성장해야 합니다.

분열과 방황, 죄와 타락의 세력 앞에 담대히 맞서 오늘 내가 구원되는 하루가 되길 빕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마태 10,7)

주님!
어디를 가더라도 저의 길동무가 되어 주시고, 저의 길이 되어 주소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저의 파트너가 되어 주시고, 저의 언어가 되어 주소서!
무엇을 하더라도 저의 동료가 되어 주시고, 저의 일이 되어 주소서!
제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나라를 선포하며, 당신과 함께 있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모습을 통해 복음의 전사로서, 평화와 치유의 전사로서,

또 착한 목자로서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얼마나 예수님이 하느님의 마음과 사랑에 정통한 하느님 중심의 삶이었는지 확연히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를 모두 고쳐주셨다.’

 

예수님의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위해 온전히 봉헌된 하루의 삶이 참 아름답습니다.

다음 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연민의 사랑은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수철 신부)

 

7/10(수)  [(녹)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제19일차 기도

 

복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오늘의 말·샘 기도>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마태 10,7)

주님!
어디를 가더라도 저의 길동무가 되어 주시고, 저의 길이 되어 주소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저의 파트너가 되어 주시고, 저의 언어가 되어 주소서!
무엇을 하더라도 저의 동료가 되어 주시고, 저의 일이 되어 주소서!
제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나라를 선포하며, 당신과 함께 있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7월10일(수) 9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