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8월 19일 월요일[(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본기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4,15-24
15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6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네 눈의 즐거움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너에게서 앗아 가겠다.
너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
17 조용히 탄식하며, 죽은 이를 두고 곡을 하지 마라.
머리에 쓰개를 쓰고 발에 신을 신어라.
콧수염을 가리지 말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도 먹지 마라.”
18 이튿날 아침에 내가 백성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나는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
19 그러자 백성이 나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일러 주지 않겠습니까?”
20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나에게 내리셨습니다.
21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의 자랑스러운 힘이고
너희 눈의 즐거움이며 너희 영의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너희가 두고 떠나온 너희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22 ─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한 것처럼 하게 될 것이다. ─
콧수염을 가리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을 먹지도 못할 것이다.
23 머리에는 쓰개를 그대로 쓰고 발에는 신을 그대로 신은 채,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죄 때문에 스러져 가면서 서로 바라보며 한탄할 것이다.
24 에제키엘이 이렇게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바위를 저버리고, 너희를 세상에 내신 하느님을 잊어버렸다. 주님은 보시고 분노하시어, 당신 아들딸들을 물리치셨다. ◎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감추고, 그들 끝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리라. 그들은 타락한 세대, 불충한 자식들이다.” ◎
○ 신도 아닌 것들로 나를 질투하게 하고, 헛것들로 나를 분노하게 하였다. 나도 내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을 질투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을 분노하게 하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16-22
그때에 16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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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인터넷에서 감동을 주는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2009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퍼져나갈 때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처럼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사스에 걸리면 사망률이 높았습니다. 딸이 사스에 감염되어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딸은 아이를 가진 산모였습니다. 산모의 남편은 딸과 함께 임신 중에 있는 아이도 하늘나라로 보내자고 했습니다. 엄마도 사위의 의견에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의료진은 산모가 2달만 버텨주면 아이는 태어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산모는 그렇게 2달을 버텨 주었고, 드디어 아이는 태어났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산모는 모든 힘을 바친 후에 하느님께 갔습니다. 의료진과 아이와 산모를 위해서 기도했던 사람들은 기뻐했지만, 산모의 남편과 산모의 부모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어느덧 중3이 되었다고 합니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닙니다. 생사불이(生死不二)입니다.
음악인 노영심씨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노영심씨는 2009년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후에 추모 음악회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처음 나온 기획안은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회를 개최하는 안이었다고 합니다. 비용은 5,000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노영심씨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음악회를 좀 더 의미 있게 하고 싶었고, 전국 교도소를 순회하면서 음악회를 개최하는 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한 번의 음악회도 좋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의 추모 음악회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준비 위원회도 그 안을 받아들여서 전국 교도소를 순회하면서 음악회를 하였고, 서울에 와서 사형제 폐지 음악회로 마무리 했다고 합니다. 노영심씨를 잘 모르지만, 노영심씨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와 세상도 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밀과 가라지가 밭에서 같이 자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악불이(善惡不二)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미래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과거도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의 차원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존재의 차원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은 바로 지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지금 감동이 없다면, 지금 기쁨이 없다면, 지금 감사가 없다면 영원한 생명은 허상(虛像)일 뿐입니다.
칼릴 지브란은 ‘옷’이라는 이야기를 남겨주었습니다. “그대의 옷은 그대의 아름다움은 많이 가리면서도 아름답지 못한 것은 가리지 못하는 것. 그대는 옷으로 개인의 자유를 얻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갑옷이 되고 사슬이 됨을 깨닫게 되리라. 그대가 옷을 좀 덜 입고 살을 좀 더 내놓아 태양과 바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생명의 숨결은 태양 속에 있고, 생명의 손길은 바람 속에 있으므로. 잊지 말라. 부끄러움은 순수하지 못한 이의 눈을 가리는 방패일 뿐. 순수하지 못한 것이 거기 더는 있지 않을 때, 부끄러움은 오히려 마음의 족쇄, 마음의 얼룩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잊지 말라. 대지는 그대 맨발의 감촉을 기뻐하고, 바람은 그대의 머리카락과 장난치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오늘 복음에서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젊은이에게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살인해서는 안 됩니다. 간음해서는 안 됩니다. 도둑질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젊은이는 규율과 율법이라는 옷을 잘 입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예수님께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옷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체면, 가식, 율법이라는 옷까지 벗으라고 하십니다. 욕심, 시기, 질투라는 옷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보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자아를 보면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19,16-22
재물과 관련해서 때로는 용기도 필요하고, 때로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재물과 관련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늘 고민해야 할 질문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과연 재물이 주님 나라 입국과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재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오늘 복음이 풍기는 뉘앙스는 재물이 천국과 영생으로 가는 길에 큰 장애물이 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것입니다.
재물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듯한 저희 수도자들에게도 이 부분은 참으로 큰 고민거리입니다.
적극적인 홍보 활동과 목숨을 건 후원 회원 확보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엄청난 규모의 수도원과 시설을 건립하고, 본인들도 모르게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럭셔리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한 사랑의 실천도 많이 하십니다.
그러나 규모가 확장되면 될수록 청빈과는 거리가 먼 생활로 전락하고 맙니다.
벌써 그 공동체는 천국이나 영생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탁발과 섭리에 의존하기에, 내일 먹을 양식도 확보되지 않고,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면, 거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청빈을 사는 데 있어서도 조화와 균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관건은 재물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 부자들을 미워하거나 경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정직하게 일해서 모은 재물은 주님이 주신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그 재물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관대하게 나눌 때,
그러한 재물은 축복이요 선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경계하시는 부는 부정한 방법으로 남을 짓누르고 축적한 천박한 부,
절대 나누지 않는 이기적인 부입니다.
그저 한도 끝도 없이 모으기만 모았지, 죽어도 나누지 않은 재물을 주님께서 슬퍼하실 부끄러운 부입니다.
가끔 형편에 맞지 않게 과도한 기부나 헌금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즉시 따로 모시고 가서 차근차근 설명해드립니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자식들, 절대 확실한 보험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건강과 노후를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 퍼주고 나중에 쫄쫄 굶다가 무료 급식소 신세 지면, 누구 책임입니까?
재물과 관련된 오늘 주님 말씀, 때로는 지혜가 필요하고 때로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재물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재물이 주님보다 상위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수도자들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재물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하루하루 우리네 남은 인생이 재물보다 더 중요한 자산입니다.
이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잘 계획해봐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주님께 속한 존재가 되는 길>
오늘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질문을 해 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오늘 복음에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하는 질문은 루카복음(10,25)에서는 율법학자가 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마태 19,16)
그는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렇게 여기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 어떤 공로를 쌓고 그 공로의 대가로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 여기지는 않는지요?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십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마태 19,17)
생명을 얻는 길이 ‘계명을 지키는’ 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곧 ‘주님께 속한 사람’이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길은 ‘행위’를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되는 데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러한 뜻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마태 19,20) 하고 다시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태 19,21)
이 말씀은 잘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칫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자신이 가진 재산을 팔라', '그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 그리고 '당신께로 오라', '그리고 당신을 따르라'는 네 가지 행동의 실행으로 알아듣기 쉽습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더 깊은 차원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네 가지를 통한 ‘행동의 전환’을 말씀하고 계신다기보다, 그렇게 행동하게 하는 ‘존재의 전환’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곧 이 문장의 핵심은 뒤 구절에 있습니다.
뒤 구절은 당신께로 와서 당신을 따르는 존재, 곧 ‘당신께 속한 사람’, ‘당신의 소유’가 되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 구절은 그러한 존재가 되는 전제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부자청년은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행위를 쥐락펴락하는 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자기의 재물에 속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고, 재물을 따랐던 것입니다.
곧 '자신이라는 우상', '재물이라는 우상'을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 속한 사람,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존재적 전환을 요청받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이 그 부자 청년을 벌거숭이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를 가리고 있는 껍데기의 옷이 발가벗겨지고, 자신의 실상이 드러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마태 19,22)
오늘 우리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처럼 머뭇거리고 주저하다가 슬퍼하고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무슨 위대한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소유, 주님께 속한 존재가 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마태 19,21)
주님!
주님께서는 저의 허울을 벗기십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위해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이기심의 옷을 벗기십니다.
이제는 이기심과 자애심을 버리고 가진 것을 다 나누게 하소서.
나아가, 낮은 이를 섬기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을 위하여 하고, 당신께 찬미와 영광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18.연중 제20주일 잠언9,1-6 에페5,15-20 요한6,51-58
행복은 선택이다
“주 예수님을 선택하십시오!”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참 행복한 분들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최고의 선택을 하셔서 이 거룩한 미사전례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과 시편들이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바로 주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최고의 선택을 한, 참행복이신 주님을 선택한 시편저자의 감격에 넘친 고백입니다.
이어지는 고백도 주님을 선택한 행복을 노래합니다.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의 성도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아쉬움이 없으리라.
부자들도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저절로 좋으신 주님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뿐만 아니라, 시편들 대부분이 주님을 선택한 기쁨을 찬미와 감사로 노래합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마지막 말씀도 악이나 거짓이 아닌 선을, 평화를 선택하라는 촉구입니다.
“네 혀는 악을 조심하고, 네 입술은 거짓을 삼가라.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찾아라.”
선을 행하며 평화를 선택한 자에게 참행복입니다.
바로 선이자 평화이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지혜를 선택한 이들의 기쁨을 엿보게 합니다.
“어른은 밖으로 벽을 세우지 않고,
속을 채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기른다.”<다산>
참으로 지혜로운 이들은 꾸준히 속을 채우는 방식으로 자신을 키웁니다.
“게으르고 교만하여 간사하고 편벽된 기운을 신체에 베풀지 않도록 하고,
이목구비와 마음과 온몸을 다해 올바른 길을 따라서 의로움을 행하라.”<예기>
역시 지혜로운 이들은 올바른 길을, 의로움을 선택하여 따르고 행합니다.
제가 즐겨바치는 행복기도중 다음 부분 역시 선택의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살 줄 몰라 불행을 자초한 이들은 선택을 잘못한 결과입니다.
살 줄 알면 행복한 이들은 지혜이신 주님을 선택한 이들입니다.
삶은, 행복은 선택이지만 동시에 선택은 은총입니다.
저절로 좋은, 올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참으로 가짜가 아닌 참행복을, 참희망을, 참평화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와 주님의 은총이,
그리고 부단한 공부와 노력이 필수입니다.
혹자는 제 수도사제의 성소를 선택한 것을 잘했다 하지만 속 사정은 단순치 않습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제 글에 나오는 일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직수사를 지망하고 신학교육을 받아 1989년 7월11일, 만40세에 수도사제가 되었다.
누가 내 성소를 물어보면 하는 대답이다.
‘하느님이 밀어붙이셨습니다.’ 결단력있게 들어온 것이 아니라, 주저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 중에 찬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보아도 맨땅에 머리를 박는 것처럼 무모해 보였을 것이다.”
성소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이에 앞서 주님의 부르심의 큰 은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 한 선택이고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이 선택뿐이 없을 것입니다.
무지의 눈먼 선택이 아니라, 참 좋은 선택을 위해서 은총이, 평상시 기도와 공부와 노력이
전제되어야 함을 통감합니다.
분명코 말하건데 언젠가 갑자기의 좋은 선택의 요행은 없습니다.
말그대로 진인사대천명 노력의 결과가 좋은 선택의 길로 이끕니다.
우리가 삶은, 행복은 선택임을 말하지만 타고난 것들에 절망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유혹이고 지옥입니다. 잘 깊이 들여다보면 타고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건강도, 재능도 소질도 인성도 성격도 외모도 지병도 끝이 없습니다.
가정도 부모도 환경도 선택할 수 없이 타고나는 것들입니다.
사실 세상에 좋은 것들을 지니고 태어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으며 불행한 이들도 많습니다.
이래서 운명을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머물면 좌절과 절망, 원망과 실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래서 삶은 선택이라 하는 것입니다.
운명도 선택이요, 행복도 선택인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습니다.
주님은 은총으로 이렇게 참 좋은 선택을 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타고난 것들에 좌절하기로 하면 끝이 없고 바로 이것이 악마의 유혹이고 이 상태가 지옥입니다.
반대로 좋은 것을 선택하기로 하면 이 또한 하루하루 무궁무진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용감하게 적극적으로 희망을, 사랑을, 진리를, 지혜를, 평화를, 행복을, 기쁨을, 감사를, 겸손을,
순종을, 생명을, 배움을, 봉사를 사랑하여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선택도 끝이 없습니다.
부정적 비관적 인생관이 아닌 긍정적 낙관적 인생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선택의 자유입니다.
잘 선택하면 행복이고 잘못 선택하면 불행입니다.
물론 기도하면 주님은 은총으로 잘 선택하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무엇보다 행복의 결정체인 주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두 개의 독서와 복음의 가르침 또한 선택에 관한 것입니다.
제1독서 잠언의 의인화된 지혜는 바로 하느님의 지혜인 주님을 뜻합니다.
그대로 미사 전례에 참석한 우리들을 향한 주님의 초대 말씀처럼 들립니다.
지혜로운 듯 하지만 대부분 무지의 어리석은 사람들인 우리들입니다.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모두 어리석음을 버리고 예지의 길을 걷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제2독서 에페소서에서 ‘지혜로운 삶’을 선택할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라 하십시다.
“1.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2.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3.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이런 이들이 참 좋은 선택을 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참 좋은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최고의 선택을 오늘 복음이 가르쳐 줍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 주 예수님을 선택하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다음 주님 의 말씀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선택과 은총이 얼마나 놀랍고 탁월한지 잘 보여줍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고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세상에 이 거룩한 성체성사 은총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생명의 밥으로 오시는 주 예수님입니다.
나이 70이 넘으면 밥심으로 산다 하는데 주님과 일치의 거룩한 밥심으로, 은총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신 성체성사, 생명의 빵 예수님을 선택한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참 좋은 선택으로 참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6,58). 아멘.
8/19(월) [(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옷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체면, 가식, 율법이라는 옷까지 벗으라고 하십니다. 욕심, 시기, 질투라는 옷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보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자아를 보면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재물과 관련된 오늘 주님 말씀, 때로는 지혜가 필요하고 때로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재물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재물이 주님보다 상위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수도자들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재물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하루하루 우리네 남은 인생이 재물보다 더 중요한 자산입니다.
이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잘 계획해봐야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마태 19,21)
주님!
주님께서는 저의 허울을 벗기십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위해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이기심의 옷을 벗기십니다.
이제는 이기심과 자애심을 버리고 가진 것을 다 나누게 하소서.
나아가, 낮은 이를 섬기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을 위하여 하고, 당신께 찬미와 영광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신 성체성사, 생명의 빵 예수님을 선택한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참 좋은 선택으로 참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6,58). 아멘.(이수철 신부)
8/19(월) [(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59일차 기도
복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마태 19,21)
주님!
주님께서는 저의 허울을 벗기십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위해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이기심의 옷을 벗기십니다.
이제는 이기심과 자애심을 버리고 가진 것을 다 나누게 하소서.
나아가, 낮은 이를 섬기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을 위하여 하고, 당신께 찬미와 영광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8월19일(월) 8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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