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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8월 20일 화요일[(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8월 20일 화요일[(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회에 입회하였다. 나중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어,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유럽 각지를 두루 다니며 평화와 일치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1153년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고, 1830년 비오 8세 교황이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입당송

주님은 복된 베르나르도를 지식의 영으로 가득 채우시어, 하느님 백성에게 풍성한 가르침을 전하게 하셨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베르나르도 아빠스가 하느님 집을 향한 열정으로 타올라
교회에 빛을 비추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불타는 열정으로 언제나 빛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8,1-10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티로의 군주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3 과연 너는 다니엘보다 더 지혜로워
어떤 비밀도 너에게는 심오하지 않다.
4 너는 지혜와 슬기로 재산을 모으고 금과 은을 창고에 쌓았다.
5 너는 그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
6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7 그러므로 나 이제 이방인들을, 가장 잔혹한 민족들을 너에게 끌어들이리니
그들이 칼을 빼 들어 네 지혜로 이룬 아름다운 것들을 치고
너의 영화를 더럽히며 8 너를 구덩이로 내던지리라.
그러면 너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참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9 너를 학살하는 자 앞에서도 네가 감히 ′나는 신이다.′ 할 수 있겠느냐?
너는 너를 살해하는 자들의 손에 달린 사람일 뿐이지 신이 아니다.
10 너는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죽음을 맞이하리라.
정녕 내가 말하였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신명 32,26-27.28과 30.35ㄷㄹ과 36ㄷㄹ(◎ 39ㄷ)
◎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 나는 생각하였다. “그들을 산산조각 내고,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기억을 지워 버리리라.” 그러나 원수가 뽐낼까 보아, “우리 손이 더 강하였다. 이 모든 것을 한 이는 주님이 아니다.” 이렇게 적들이 착각할까 보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 정녕 이 백성은 생각이 없고, 슬기가 없는 자들이다. 바위이신 분이 그들을 팔아 버리지 않으신다면, 주님이 그들을 넘겨주지 않으신다면, 어찌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을 수 있으며, 두 사람이 만 명을 몰아낼 수 있으랴? ◎
○ 그들에게 멸망의 날이 다가오고, 재난이 삽시간에 닥친다. 주님은 당신 백성의 권리를 감싸 주시며, 당신 종들을 가엾이 여기시리라. ◎

복음 환호송

2코린 8,9 참조
◎ 알렐루야.
○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23-30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집회 15,1-6)와 복음(요한 17,20-26)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말과 행동으로 교회의 화목을 위하여 헌신한
거룩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기념하며
주님께 일치와 평화의 예물을 드리오니
이 제사를 인자로이 받아들이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요한 15,9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복된 베르나르도를 기리며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이 성사의 힘으로 그의 모범과 가르침을 따라
강생하신 말씀을 열렬히 사랑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며칠 전입니다. 한 어르신이 면담을 원했습니다. 86세인 어르신은 신앙 체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성체 체험입니다. 어르신은 미국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였다고 합니다. 마음도 불편하고, 다툼이 있었기에 그날은 성체를 모시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영성체 시간에 마지막으로 성체를 영하는 할아버지가 그만 성체를 땅에 떨어트렸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도 성체를 찾고, 신부님도 성체를 찾았는데 도저히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르신의 눈에는 성체가 땅에서 조금 떠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고 합니다. 모두가 포기하고, 미사를 마치려고 할 때입니다. 어르신은 성체가 있는 곳에 엎드려 혀로 성체를 모셨다고 합니다. 교우들이 박수 치면서 기뻐하였고, 신부님도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어르신은 그렇게 성체를 모신 후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정한 여인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셨던 것처럼 하느님께서 어르신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몸과 마음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불경이 왜곡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와 스님들에 의해서 왜곡됩니다. 부처님은 자비와 보시를 이야기하는데 불자들과 스님들은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코란이 왜곡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코란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슬람의 신자들과 이맘들에 의해서 왜곡됩니다. 마호메트는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이슬람의 신자들과 이맘들이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왜곡되는 것도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우들과 성직자들에 의해서 왜곡됩니다. 모세가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을 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론은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금을 모아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서 왜곡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희생을 말씀하셨습니다. 겸손과 가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교우들과 성직자들은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드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다면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모두 부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물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부유함이 주는 편리함이 많기 때문입니다. 부유하면 좋은 집을 가질 수 있고, 부유하면 좋은 차를 가질 수 있고, 부유하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했을까요? 재물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에 남을 속이기도 하고,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하고, 하느님과 멀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였던 세리 자캐오를 만났습니다. 부자였지만 세리였던 자캐오는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 자캐오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표징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동네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제가 빚진 것이 있다면 4갑절로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은 구원받았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부자라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부자일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자신의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이웃에게 나눌 수 있다면 하늘나라의 문은 언제든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 19,23-30

 

베르나르도야? 너 여기 무엇 하러 왔느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은 12세기를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그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12세기를 자신의 두 어깨에 짊어졌다.”라는 말까지 돌 정도였습니다.

 

베르나르도의 지혜와 경륜은 하늘을 찔렀는데 당대 교황님들을 비롯해 많은 왕들이

그에게 조언과 상담을 청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라며 우러러 보았습니

 

동시에 베르나르도는 가톨릭 신앙의 옹호자, 수도생활 쇄신의 선구자, 교회 분열을 저지하는 든든한 보루,

탁월한 성서학자, 위대한 명 설교자, 그러면서도 겸손한 수도자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갔습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마지막 교부’ 또는 ‘꿀과 같은 혀를 가진 박사’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1090년 프랑스 귀족 가문의 촉망받는 자녀로 태어난 베르나르도는 다정다감하고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22살의 나이에 시토회에 입회해서 수도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인품과 지도력, 그리고 놀라운 언변과 감수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입회하기 전 그는 여러 형제들과 친구들을 영적으로 잘 지도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0명이나 되는 동료들을 하나로 모았고 의기투합한 그들은 당시 개혁파 수도원으로

‘뜨고 있던’ 시토회에 동반 입회를 하게 됩니다.

 

초기 양성 기간을 마친 베르나르도는 장상의 지시에 따라 동료 수도자 12명과 함께

그 유명한 클레르보 계곡으로 내려갑니다.

척박한 황무지였던 클레르보에 작고 소박한 수도원을 건립한 베르나르도는 오랜 기간 동안

철저한 고행과 단식, 집필과 일에 전념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았고, 숨을 쉬었으며, 또 그 결실을 형제들과 나누었습니다.

점차 클레르보는 수도생활 개혁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메마른 골짜기였던 클레르보는 점차 빛과 생명의 계곡, 기쁨과 구원의 골짜기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르나르도의 성덕에 감화를 받고 클레르보로 몰려왔습니다.

 

베르나르도는 가톨릭교회 쇄신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병약한 몸을 이끌고 교회의 개혁을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교황청의 폐단과 고위성직자들의 세속화를 신랄하게 경고했습니다.

 

교회 당국으로 부터 공인받은 순회 설교자로서 수많은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했습니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베르나르도는 스스로에게 그 유명한 질문 한 가지를 던졌습니다.

 

“베르나르도야? 너 여기 무엇 하러 왔느냐?”

 

그가 남겨준 수도자로서의 모범을 바라보며 같은 수도자로서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는 교도권으로부터 부탁받은 중요한 임무를 완수하는 즉시 고향 집으로 달려가듯이

부지런히 클레르보로 돌아와 평범한 수도자로서의 삶을 계속했습니다.

 

그가 수도원으로 돌아올 때는 절대 혼자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누군가를 데리고 왔는데

그의 삶에 매료된 나머지 수도 생활을 선택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강론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과연 나는 어떤 것에 애착하고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이 재물 때문에 당신을 따르지 못하고 물러간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 19,24)

여기에서 '부자'란 단지 재물을 많이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재물에 의지하는 사람, 재물에 집착하여 하느님을 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물'이란 단지 물질적인 재화 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가정, 재능과 지식, 이념과 신념 등 자신이 애착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재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하느님마저도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에 대한 집착이라면, 버려야 하는 재물이요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은 곧 재물 때문이라기보다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하느님을 멀리한 까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부와 재물은 하느님의 축복을, 가난과 빈곤은 하느님의 저주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마태 19,25)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마태 19,26)

이는 구원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자력으로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가진 재물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부자든 가난한 이든 죄인이든 자신(우상)에 대한 애착을 끊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모두가 구원받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마태 19,30)

그러니 오늘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볼 일입니다.

과연 나는 어떤 것에 애착하고 있는가?
혹 나 자신의 몸이나 소유물이나 재능, 지식이나 신념이나 이상, 자기 방식의 사랑이나 자기가 만들어 놓은 공동체 상이나 하느님 상에 애착하고 있지는 아닌가? 

오늘 우리는 내가 바라는 가정이나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가정과 공동체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바라고 믿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하느님이 되셔야 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 19,24)

주님!
재물이 없어도 고집과 완고함으로 제 자신을 채우고 있으니, 분명 저는 부자입니다.
힘과 능력이 없어도 제 자신의 뜻으로 가득 차 있으니, 분명 저는 부자입니다.
제 주장과 의견을 앞세워 결코 물러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자신을 가늘게 부수고 부수어 당신 바늘귀에 꿰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8.19.연중 제20주간 월요일                                                            
                                                                                                        24,15-24 마태19,23-30


                                             ‘영원한 생명’이신 주 예수님
                                                       “나를 따라라”


어제 주일 강론에서 저는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빵, 예수님을 선택할 때,
예수님께 선택될 때 참행복임을 역설했습니다.
참행복에 예수님을 대체할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생명의 빵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참행복이요 모든 행복이 뒤따를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요약하여 흥겹게 노래로 고백한, 모두가 좋아하는 어제의 화답송 후렴 시편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


오늘 복음도 어제의 연속선상에 있는 듯 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이 질문은 옛 사막의 스승을 찾았던 구도자들의 공통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의 내적 갈망을 대변한 어떤 부자의 물음입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저는 이 물음에 속으로 웃었습니다.
바로 생명의 빵이자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이런 질문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접근이 참 치밀합니다.
어떤 부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꿰뚫어 통찰했음이 분명합니다. 


우선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했을 때 어떤 젊은이는 당당히 고백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신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적 목마름은 여전할 뿐입니다.
다음 오고가는 대화가 오늘 복음의 중심입니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켰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바로 사막의 성 안토니오를 결정적으로 회심케한 예수님의 말씀이요,
모두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제자들이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많은 재물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합니다.


과연 이 결정적 시험에 통과할자 몇이나 될런지요.
외적으로 계명을 잘 지킨 삶이었지만 삶의 중심에는 주님이 아닌 재물이 자리잡고 있었던
부자 젊은이였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주님을 따라 제길을 제대로 가는 것입니다.
나무들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면 결코 숲을 벗어나지 못하고 숲안에서 계속 해맬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재물에 소유되어, 탐욕의 무지에 눈이 가려, 길을 잃은, 삶의 전망과 삶의 목표,
그리고 삶의 방향을 잃은 젊은이였습니다.
이보다 더 큰 영적 재난, 불행은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 초대받은 젊은이인데 안타깝게도 그 결정적 구원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계명을 잘 지켜서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고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따르는 것이
구원의 길임을 몰랐던 젊은 부자였습니다.
더 이상 내적성장은 좌절되었고 영원히 영적 목마름을 지닌채 살아가게 된 젊은이입니다.
바로 젊은 부자의 예화를 통해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과연 날마다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따르는 삶에 충실한지 말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어라’, ‘나를 사랑하라’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따라라’ 명령하십니다.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젊은 부자는 주님을 따르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자 청년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은 포기를 명령하지 않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날마다 평생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 됩니다.
여기서 다시 인용하는, 늘 나눠도 새로운 제 자작 좌우명 고백 기도시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은 주님을 따르는 이 길 하나뿐이겠습니다.
재물을 소유하되 재물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종이, 주님의 제자가 되어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묵묵히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이신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버림과 따름의 여정은 그대로 회개의 여정과 일맥상통합니다. 


오늘 제1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는 예수님은 물론 참된 제자의 예표가 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생애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을 나타내는 상징이 됩니다.
주님은 에제키엘 예언자의 아내의 죽음을 상징으로 삼습니다.
두 말씀이 그대로 하나로 이어집니다.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네 눈의 즐거움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너에게서 앗아가겠다.
너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


이어지는 모든 말씀이 주님의 처사에 동요하지 말고 주님의 제자답게 묵묵히, 담담히 받아들이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상징하는바 우상들을 섬기며 많이도 탈선했 죄를 지었던 이스라엘의 불행입니다. 


“나 이제 자랑스러운 힘이고 너희 눈의 즐거움이며 너희의 영의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너희가 두고 떠나 온 너희 아들딸들도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참된 제자의 예표가 되는, 부단히 주님께 돌아와 주님을 따르라는
회개의 예표가 되는 에제키엘 예언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따르는 회개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8/20(화)[(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되새김 구절

 

1.  부자일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자신의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이웃에게 나눌 수 있다면 하늘나라의 문은 언제든지 활짝 열려 있습니다.(조재형 신부)

 

2. 1090년 프랑스 귀족 가문의 촉망받는 자녀로 태어난 베르나르도는 다정다감하고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22살의 나이에 시토회에 입회해서 수도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인품과 지도력, 그리고 놀라운 언변과 감수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입회하기 전 그는 여러 형제들과 친구들을 영적으로 잘 지도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0명이나 되는 동료들을 하나로 모았고 의기투합한 그들은 당시 개혁파 수도원으로

‘뜨고 있던’ 시토회에 동반 입회를 하게 됩니다.

 

초기 양성 기간을 마친 베르나르도는 장상의 지시에 따라 동료 수도자 12명과 함께

그 유명한 클레르보 계곡으로 내려갑니다.

척박한 황무지였던 클레르보에 작고 소박한 수도원을 건립한 베르나르도는 오랜 기간 동안

철저한 고행과 단식, 집필과 일에 전념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았고, 숨을 쉬었으며, 또 그 결실을 형제들과 나누었습니다.

점차 클레르보는 수도생활 개혁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 19,24)

주님!
재물이 없어도 고집과 완고함으로 제 자신을 채우고 있으니, 분명 저는 부자입니다.
힘과 능력이 없어도 제 자신의 뜻으로 가득 차 있으니, 분명 저는 부자입니다.
제 주장과 의견을 앞세워 결코 물러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자신을 가늘게 부수고 부수어 당신 바늘귀에 꿰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생명의 빵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참행복이요 모든 행복이 뒤따를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요약하여 흥겹게 노래로 고백한, 모두가 좋아하는 어제의 화답송 후렴 시편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이수철 신부)

 

8/20(화)[(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60일차 기도

 

복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오늘의 말·샘 기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 19,24)

주님!
재물이 없어도 고집과 완고함으로 제 자신을 채우고 있으니, 분명 저는 부자입니다.
힘과 능력이 없어도 제 자신의 뜻으로 가득 차 있으니, 분명 저는 부자입니다.
제 주장과 의견을 앞세워 결코 물러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자신을 가늘게 부수고 부수어 당신 바늘귀에 꿰소서!
아멘.

 

- 2024년 8월20일(화) 10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