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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40828 글]새로움의 시작-따뜻한 하루[469]/나 먼저 가네-따뜻한 하루[470]

2024년 8월28일(수) 오늘의 글

새로움의 시작 / 따뜻한 하루[469]

  

 

태아는 엄마 배의 춥지도 뜨겁지도 않은 알맞은 온도에서, 생의 가장 평온한 시간을 보냅니다.

게다가 탯줄을 통해 알맞게 영양분을 공급받기에, 먹을 걱정마저 하며 보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태아는 포근히 떠 있는 그곳에서 오래오래 살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는 그렇지 않아서, 열 달이 채워지면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드디어 그 시간이 되면 태아는 엄마와 죽을 각오를 하고 온 힘을 다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태아가 아기가 되려고 세상에 나오면서, 폐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을 '산도'라 합니다.

여기를 통해 태아가 나오며 그 좁은 공간을 벗어나면서, 태아의 폐는 크게 부푸는 순간,

코나 입을 통해 거기로 처음으로 엄마의 양수가 아닌, 대기 중의 공기가 들어갑니다.

 

아기는 폐에 들어온 공기에 놀라 그걸 뱉어내려는데, 이때 '응애'하며 첫울음 터뜨립니다.

그렇게 모든 게 낯선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이번에는 영양공급원인 탯줄마저 끊겨버립니다.

뱃속서 누린 평안이 사라져 죽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더 넓고 새 세계가 열린 겁니다.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 '태어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한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스스로 안락하게 만들어진 생각과 고집을 깨트려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밤에 찾아온 최고의회의원 니코데모에게 이르십니다(요한 3,5).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새로움의 시작은 언제나 지금껏 이어온 것에 대한 대단한 파괴로부터 그 출발이 시작됩니다.

응애하며 울음을 터뜨린 신생아기는 엄마의 양수의 터짐으로 넓은 새 세계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에서 난 이가 영으로 가려면,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야한다고 이르십니다.

이처럼 새로움의 미지의 세계는 오랜 기간의 준비와 각고의 노력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의 삶을 누릴 우리도, 지금 변화할 준비가 되었는가를 자문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

 

  


나 먼저 가네 / 따뜻한 하루[470]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사는 지역이 다르면서 오랜 세월 살아온 두 남자가 있었는데,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늘 생각나고 보고 싶은 형제 같은 정말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어느새 그들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고, 거동도 불편해진 쇠약한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이보게 친구, 나 먼저 가네."

 

깊은 여운 남긴 친구의 그 말에 노인은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렇게 그는 거기서 흘러가는 구름만 쳐다보며, 미동도 전혀 없이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몇 시간 뒤, 친구의 자녀들로부터 아버님이 운명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친구의 '먼저 가네'라는 그 작별 인사에는, 그간의 고마웠다는 감사의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친할 친과  옛 구, 옛날부터 정말 다정하게 지낸 그이가 바로, 소중한 내 친구입니다.

그래서 나이 들면서 동료나 동지는 만들 수 있어도, 친구하나 만들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이는 친구는 만드는 게 아니라, 긴 세월 한가운데서 절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곁에 세월을 함께 해준 그 이가 있다면, 지금 그 친구 다정히 불러봐 주십시오.

 

예수님 십자가 곁에는 성모님과 사랑하는 당신 제자가 있었습니다(요한 19,25-30).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졌다.” 하시며 숨을 거두실 때까지 곁에 서 계셨습니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라는 예수님의 그 마지막 고백이 지금도 들려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그 막판까지 함께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가족과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들을 잃으면 아무도 남지 않기에, 그들을 세상 그 어떤 이보다도 더 중히 여겨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도 성모님과 세 분의 마리아, 사랑하는 제자가 곁에 계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