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15일 수요일 10:00~ 12:00
성남학아카데미 제6강
<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 >
- 문수진 전 신구대 교수 -
교재 1
교재 2
- '조선'~ 중국의 오래된 역사책 '사기'에 조선에 대한 기록 나옴
고려 때 삼국유사에 '고조선' 실림~ 현재 중국의 북경(?)근처에 '조선'이라는 마을 있었고....흔적이 많이 있음
일제시대에는 '이씨조선' 이라 부름. 지방정부라는 의미의 속뜻이 있는 용어....가급적 사용안함이 좋으리...요즘은 '이씨왕조실록' 이라 안하고 '조선왕조실록' 이라함.
- 신라 때는 성을 쓰는 이가 얼마 안되었음. 귀족의 경우 성이 있음.
고려 때 성이 남발...기러기 날을 때 왕건이 "저 기러기 누가 쏠 수 있겠는가?" 하니 신숭겸이 "몇번째 기러기를 맞힐까요?" 하며 명중 시키니 그 기러기 떨어진 자리를 신숭겸에게 하사했다고 함... 그 자리가 '황해도 평산' 지역임.
'복지겸'은 중국에서 귀화한 사람인데 '면천 복'씨 성을 줌
- 이성계는 전주 이씨... 이성계 6대 조부...고려 말 무신란 때 정중부, 이궐, 이의방 중심인물 이었는데... 세력다툼하여 이의방 정중부 아들에게 살해당함...죽으면서 이의방이 동생에게 "너라도 시골로 내려가라" 권하여 피신했는데... 그 동생이 이성계의 6대 선조 임
5대선조 '이안산' 삼척으로 이동했음... 까닭은 노비문제로 그 지방의 목사와 다투어 이동한 것임...그러나 그 지방관을 삼척에서 다시 만나므로 함흥으로 이동 함
- 원나라의 쌍성총관부가 함흥에 있었음... 쌍성총관부 몰아내는데 이성계와 그의 부친 이자춘이 공헌을 함...최영, 정몽주도 역시 공헌 함
최영과 정몽주 죽이고 조선을 건국... 실질적으로 '태종 이방원'이 한 일...아버지 이성계 보다 조선건국에 더 지대한 역활을 했다고 할 수도 있음...(?)
- 조선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일제시대 일본의 영향 어느정도 있음...강사도 정몽주, 최영을 좋게 생각하고 있음...하지만 고려말 부패한 상황, 불교도 부패한 상황 고려할 때 여러모로 생각해야 함...신진사대부 성리학자 정도전... 조선건국의 지대한 영향 주었음
- 조선 건국 후 100년의 역사는 세계에 자랑할만한 역사이다.
특히 '한글 창제' 가 그러하다...표현못할 글자가 없는 우수성이 돋보인다....동티모르의 공용어가 한글이다... 인도화폐에는 15개 글자가 적혀있다...복잡하고 문맹이 많아 발전이 더디다...베트남은 중국문화권 즉 한자문화권이다. 베트남말을 한자로 표현하는데 불편함 있어 알파벳문자로 표기쓰기를 함... 신부님이 처음 쓰기 시작한 방법을 이용한다고 함.
- '세계문맹퇴치상' 있는데 그 명칭이 '세종대왕상' 이라고 함...이집트의 무바라크 부인이 이상을 수상했는데...얼마전 한국방문 하였으므로 세종대왕에 대하여 알고 갔으리라....(?)
- 옛날 우리나라 '이두'와 같은 성격... 늙은이→'言內,斥,伊'....?
- 대만에 갔는데 "중국말 쓰지 말고 한글을 써라" 했더니 대만사람 왈 "한글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한다...빨갛다 표현이 17가지 이상 가능 하다...깊게하면 어렵다.
- 조선시대가 고려말 보다 국민생활 3~4배 향상되었다...이유는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이라 한다...특히 세종 때...
- 양반은 2가지 개념 있다...문반/무반의 개념과 상류계급을 칭할때의 개념
- 왕족...왕비의 아들은 대군, 딸은 공주 / 후궁의 아들은 군, 딸은 옹주
- 세종대왕 동생 '성령대군' 마마로 죽음, 아들 '광평대군' 도 마마로 죽음...어려서 죽었으나 양자들여 후손 잇게 했음... '수서'에 현재 묘 있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함
- 옛날 영화 '상궁나인(尙宮內人)'... 강사가 대학다닐때 보았음... 상궁은 품계가 5품... 군수 급으로 높은 급임...주인공이 '남정임'... 거침없는 행동과 안하무인 성격...나이든 상궁이 팔을 붕대로 묶고 다님... 연유를 집요하게 물어 알아본즉 "꽃다운 나이에 궁에 들어왔는데... 왕이 팔을 잡아주어 그래서 감고 다니는거라고 말함...주인공 남정임은 왕이 대변 본 매화통을 들고가는데 냄새난다고 말하여 왕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는 그런 줄거리의 영화라함.
- 중종의 후궁 경빈박씨 '도지원'이 "뭬야!" 하면서 연기했는데 그의 큰아들이 죽음...문정왕후는 윤원형의 누이동생인데 아들을 늦게 낳았음...후에 명종
- 광해군 역시 후궁의 아들 / 선조가 왕비(후비)- 인목대비 맞아 영창대군 낳아 갈등 생김...광해군은 대북, 영창대군은 소북...광해군 축출되고 인조반정으로 인조 왕 되었으나 후에 병자호란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지정되면 전쟁 때 보호받을 수 있다...이라크전쟁 때 메소포타미아 문화재 많이 파괴 되었으리라 추측함
- 종묘의 정전에는 정식 왕과 왕비의 위패 들어감
- 성종의 아버지 '덕종'(추존왕)... 인수대비(청주한씨) 남편... 세조의 큰며느리...지금의 덕수궁 자리에 인수대비가 2명 아들 데리고 살던 사가... 성종이 왕 되고나서 월산대군이 살았음...인수대비 왈 "왕비는 못 되었으나 대비가 되겠다" 했다고 함....큰아들 월산대군의 처가는 별로였으나 '자산군- 후에 성종'의 처가는 한명혜 였음
- 월산대군의 묘는 고양시에 있음... 임진왜란 때 경복궁, 창덕궁 파괴되어 의주로 피난갔던 인조가 월산대군 집에서 살음... 광해군때 인목대비가 그집을 '서궁'이라 하여 유폐되었고...고종이 그곳에 살면서 '덕수궁' 이라 함... 오래오래 살라는 뜻
- 덕종의 묘는 서오능에 있음...인조의 아버지 '원종' 추존왕 임
- 종묘 정전의 왕의 위패 19분이나 왕비는 29분? 정도 됨... 왕비는 원비, 후비 모두 정전에 모심...숙종의 왕비는 세분 임
- 종묘 정전 건물은 목조건물 중 옆으로 길이가 제일 길이가 긴 건물임... 세계문화유산 등재
- 궁정동 7궁~ 아들은 왕인데 후궁인 사람의 사당...숙빈 최씨가 대표, 육상궁이 사당 있던곳 임...숙빈 최씨 파주의 보광사에 위패 모심...파주에서 나무심고 서울로 팔러가는 나무꾼을 영조가 상을 내림
- 영조의 정빈 이씨 큰아들은 '진종'으로 추존왕 / 영빈 이씨 큰아들은 '사도세자'...영빈이씨 사당 세워 영조가 제향...정조가 선희궁이라 명함...육상궁 합했다가 궁정동 7궁에 합설
궁정동 7궁~ 1.숙빈최씨 사당(영조모친)-육상궁 2.영빈이씨 사당(사도세자 생모)-선희궁(정조때) 3. 저경궁(인빈김씨)- 추존왕 원종(인조의 부친)의 생모, 선조의 후궁
4. 대빈궁(숙종후궁 장희빈) 5. 연우궁(추존왕 진종(영조의 장남)의 생모 청빈이씨) 6.경우궁(순빈박씨-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
7. 덕안궁(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인 순비 엄씨의 사당)
- 대빈묘...원래 하남시에 있었으나 서오능으로 옮김
- 고종 때 황제의 칭호 씀... 직계선조 5대조를 모심
* 태조→ 진종→ 정조→ 순조→ 익종→ 헌종→ 고종
- 익종은 추존왕, 익종→ 헌종 이어지나 철종은 빠짐....※익종~ 헌종의 아버지, 효명세자로 22살 사망
- 서울대 김철준 교수...30여년전 칼럼에 시골에 낚시가서 시골의 유지와 밤새 이야기해도 안 지더라!!... 이것이 문화의 저력이다!...시골 노인에게 배우고 왔노라.
- 내시~ 고려 때는 일반관리로 명문가문 자제...원나라 영향으로 성불구로 충당...중국은 환관의 횡포가 심함...중국의 공주를 우리나라왕과 결혼시키는데 딸려온 환관의 횡포가 심했음...중국경호 맡기 위해 공녀와 환관의 차출을 요청함...종2품(상선)은 참판급(차관급)...연산군때 상선 '처선' 유명
- 중인~ 2품이상 출세 못함...
서얼~ 무과 볼 수 있음. 2품이상 못 올라감...허준- 서얼출신...임진왜란 공이 큼...종1품 까지 올라감
화원~중인...김홍도...왕(정조)이 현감을 시킴
- 아전~ 관아의 '아' 와 밭 '전' ... 지방근무를 '아전', 중앙에 근무를 '서리' 라 함...직접 실무 담당...세금 얼마를 내라! 등...
특히 전라도에서 횡포가 심한 이유는 비옥한 땅의 주인은 서울거주하면서 지방 중간관리자에게 실무를 맡김...이들이 아전으로 횡포 많이 부림
경상도는 양반의 횡포가 컸음...동인과 남인이 경상도 였음
- 조선시대 의사는 양반의 밥...개화기 때 의사 역관등이 개혁 주창...의사 유대치(유홍기). 역관 오경석... 유대치는 무교동에 살면서 김옥균, 박영효 가르침...개화파 대두...갑신정변 일으킴...나중에 유대치는 잠적
- 평민은 일반서민으로 과거로 급제가 가능했으나 중인은 묶였음....정도전도 양반 된 인물
- 서울인구 세종 10년때 5부로 나누었는데 18,522호, 이때에 노비가 반이었음 / 후기 인조 때 95,569호 / 현종 때 194,030호
- 전농동...임금이 농사를 선보이는 곳 '선농당' 있는 곳에 제사를 지내는데 '제기동' 이라 함...국밥 주는데 이를 '선농탕'→ 설렁탕 이라 함
제6강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 강의 장면
사진 · 글 : 수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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