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 국청사(國淸寺) 연혁
본 도장은 이조인조3년(서기1625년) 긱상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각성대사는 인조대왕으로부터 8도총선총절제중군주장(八道摠攝總節制中軍主將)으로 임명 받은 후 전국팔도에서 승군(僧軍)을 모아 남한산에 성을 축성하시고 9개사찰을 창건하시었다.
병자호란으로 인한 수모를 또다시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승군을 훈련하고 군기(軍器)며 화약, 군량미를 비축하였으니 그 중 하나인 국청사이다.
선사의 유시(維是)로 국난에 대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든바, 일제 침략시 일본군에 위하여 방화소진(放火燒盡)되었던 것을 서기 1968년 중건 되었으나 서기 1986년 불자 최계순(불명 원만행)께서 부지 1,003평(대웅전, 요서채)를 기증하시었으며, 이 모든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 광도중생(廣道衆生)을 기원하기 위하여 현주지 선걸(禪杰)스님께서 삼성각, 요사채를 신축하시고 서기 1998년 대웅전을 중건중수하시었다.
본 도장의 삼존불은 신라 헌안왕 3년(서기 859년) 강원도 철원 보개산 심원사에 조성 봉안하였던 천불 중 서기 1393년 심원사 화재와 임진왜란 때 소실 도난 되었던바 그중 삼존불중 한 분만이 본 도장 국청사에 모시었다.
불기 2543년 4월
서기 1999년 5월
대한불교 조계종 국청사
[출처 : 국청사 안내문]
국청사[ 國淸寺 ] 연혁
유형 : 유적
시대 : 조선
성격 : 절, 사찰
건립시기/연도 : 1625년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정의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남한산성에 있는 절.
내용
1625년(인조 3)에 각성(覺性)을 팔도도총섭총절제중군주장(八道都摠攝總節制中軍主將)에 임명하고, 팔도의 승군을 동원하여 남한산성의 축조를 담당하게 할 때 7개의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국청사이다.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담당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비밀리에 군기(軍器)와 화약ㆍ군량미 등을 비축하였던 사찰이다. 그 뒤 한말에 의병의 군기창고로 사용되다가 비밀이 누설되자 일본군이 불태워서 절터만 남아있던 것을 1968년에 보운(普運)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삼문(成三問)의 친필이라고 전하는 병풍 1점과 송시열(宋時烈)의 친필책자 3권이 전해오고 있다. 절 근처에는 국청사정(國淸寺井)이라고 하는 조그만 우물이 있는데, 금닭이 나와 홰를 치며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 상(上)』(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0,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