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사지
경기도 기념물 제119호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198-1, 2, 5
개원사는 조선 인조 2년(1624) 임진왜란으로 파손된 남한산성을 보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승도들을 총지휘하는 본영사찰로 건립되었다.
그후 고종 31년(1894) 갑오경장으로 의승방번(義僧防番)이 폐지될 때까지 370여 년 간 번창헸으며, 전국 사원들의 승풍(僧風)을 규찰하는 규정소가 설치되어 명실상부한 조선 불교의 총본산 역활도 담당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인조 15년(1637) 이래 대장경이 보관되어 왔는데 1970년 화재 때 법당, 누각등의 건물과 함께 전소되었다.
그후 작은 건물 1동이 겨우 남아 있었으나 승려 선효가 신도들과 함께 10여 년 간에 걸친 원력 끝에 대각전, 요사 증의 건물을 신축한 후 새롭게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 군기고 터, 누각 터, 종각 터 등에는 초삭, 돌계단, 박석 등이 남아 있어 옛 개원사의 규모와 배치를 짐작할 수 있다.
[출처 : 개원사지 안내문]
개원사 일주문 : 사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개원사 일주문에서 천왕문 가는 길
개원사 천왕문
개원사지 안내문
개원사 은행나무 단풍
법당으로 가는 계단 아래에 불단을 조성 관세음보살석상(觀世音菩薩石像)을 모셔 놓았다.
개원사 범종각(梵鐘閣) : 정면 3간 측면 2간 팔각지붕 형태의 2층 누각형식
대각전 앞마당 왼쪽 아래에 아담한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죄측 : 불유각(佛乳閣) 우측 : 화현전(化現殿)
개원사 대각전(大覺殿) : 정면 3간, 측면 3간, 팔각지붕
개원사 대각전 앞마당 삼층석탑
개원사 대각전
개원사 화현전(化現殿) : 정면 3간, 측면 2간, 맞배지붕
개원사 삼층석탑
개원사 안심요(安心寮) : 요사, 정면 4간, 측면 1간, 맞배지붕형식
개원사 안심요
개원사 삼층석탑
개원사 대각전 외벽 : 심우도
심우도는 방황하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단계로 나누어 묘사한 그림이다.
개원사내 전경
개원사 천왕문 옆 사적비 1기(가장 큰 비) , 공덕비 3기
개원사 [ 開元寺 ] 연혁
유형 : 유적
성격 :절, 사찰
건립시기/연도 : 미상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정의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남한산성 동문 안에 있었던 절.
내용 :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남한총섭(南漢總攝)이 있던 오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로서, 군기(軍器)·화약·승병이 집결한 사찰이었다. 이 절에 관한 역사는 『남한지(南漢志)』에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1637년(인조 15) 대장경을 실은 배가 서호(西湖)에 닿았는데, 사람은 없고 그 함 위에 ‘중원개원사간(中原開元寺刊)’이라고 쓰인 책함만 있었다. 그를 전해들은 인조는 전국에서 개원사라는 이름의 절을 찾아 봉안하도록 함으로써, 대장경을 금란보(金襴褓) 열벌로 싸서 당시 유일의 개원사였던 이 절에 봉안하였다.
1666년(현종 7) 이 절의 화약고에서 불이 일어나 불길이 매우 심하였으나, 갑자기 바람이 반대로 불어 대장경은 타지 않았다. 1694년 겨울에도 불이 나서 5칸 누각이 전소될 위기에 있으나 많은 비가 내려 불이 꺼져, 누각 안에 봉안되어 있던 대장경과 무기들은 화재를 면하였다.
또한, 이 절에는 『소학지남(小學指南)』·『천의소감(闡義昭鑑)』·『천의소감언해』·『역전(易傳)』·『주역본의(周易本義)』·『서집전(書集傳)』·『시집전(詩集傳)』·『대학장구 (大學章句)』·『논어집주(論語集註)』·『중용장구(中庸章句)』·『통감절요(通鑑節要)』·『십구사략통고(十九史略通攷)』·『삼략(三略)』·『병학지남(兵學指南)』·『천자문(千字文)』·『택당집(澤堂集)』·『만휴집 萬休集』 등의 장판(藏板)이 있었다.
1636년에는 숭은전(崇恩殿)에 봉안하였던 원종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 봉안하였다가, 병자호란이 끝난 이듬해에 다시 숭은전으로 옮겼다. 이 절에 관한 기록과 폐사연대 등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개원사지(開元寺址)가 경기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 남한지(南漢志)』
『한국고인쇄기술사(韓國古印刷技術史』(김두종, 탐구당, 1974)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0,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진 : 니콜라이
글 : 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