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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저녁별처럼- 문정희

 

저녁별 처럼

 

기도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홀로 서서
제자리 지키는 나무들처럼

기도는 땅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흙 속에
입술 내밀고 일어서는 초록들처럼

땅에다
이마를 겸허히 묻고
숨을 죽인 바위들처럼

기도는
간절한 발걸음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깊고 편안한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저녁별처럼

―문정희(1947~ )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2012.5.18)이다.

장석남 시인이 시평을 썼다.

 

기도란 무엇을 구하는 형식인가? 기도란 자기를 줄이고 버리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여기 아름다운 기도의 형식이 있으니 고요히 서 있는 저 나무의 자세와, 초록을 다해 일어서는 풀잎들, 겸허히 숨죽인 바위들의 자세가 그것이다. 다만 침묵에 귀 기울여 스스로 고요해지는 그것이다. 그리하면 깊고 편안한 저녁별의 세계에 도달하리라.

 

문정희(文貞姬, 1947년 5월 25일 ~ )는 대한민국시인이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에 《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문정희 시집》, 《새떼》,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수필집 《지상에 머무는 동안》 등을 출간했다.

2007년 현재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도는 나무들, 초록들, 바위들, 저녁별 처럼 하는 것이다. 하늘의 소리를 듣고, 땅의 소리를 듣고, 이마를 겸허히 묻는 바위처럼, 간절한 발걸음으로 저녁별처럼 편안한 곳으로 가는 것이다....^-^


 

 

비망록 / 문정희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 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 거린다


남 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딸아! 연애를 해라!

 

호랑이 눈썹을 빼고도 남을 그 아름다운 나이에 무엇보다도 연애를 해라.

네가 밤늦도록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두드리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몹시 흐뭇하면서도 한편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단다. 그동안 너에게 수없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마는, 또한 음악이 주는 그 고양된 영혼의 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마는, 그러나 책보다 음악보다 컴퓨터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역시 사람이 사람을 심혈을 기울여 사랑하는 연애가 아니겠느냐.

네가 허덕이는 엄마를 돕겠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를 하거나 분리된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갈 때면 나는 속으로 울컥 화를 내곤 한단다.

 

딸아! 제발 그 따위 착한 딸을 집어치워라.

그리고 정숙한 학생도 집어치워라.

너는 네 여학교 교실에 붙어 있던 신사임당의 그 우아한 팔자를 행여라도 부러워하거나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혹은 장차 결혼을 생각하며 행여라도 어떤 조건을 염두에 두어 계산을 한다거나 뭔가를 두려워하며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아닐 테지.

 

 

딸아! 너는 결코 그 누구도 아닌 너로서 살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당당하게 필생의 연애에 빠지기 바란다.

연애를 한다고해서 누구를 카페에서 만나고 함께 극장에 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종류를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리라.

그런 것은 연애가 아니란다.

사람을 진실로 사귀는 것도 아니란다.

많은 경우의 결혼이 지루하고 불행한 것은 바로 그런 건성 연애를 사랑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딸아! 진실로 자기의 일을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응석 떨지 않는 그 어른의 전 존재로서 먼저 연애를 하기를 바란다.

연애란 사람의 생명 속에 숨어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푸른 불꽃이 튀어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말한다.

그 에너지의 힘을 만나보지 못하고 체험해보지 못하고 어떻게 학문에 심취할 것이며 어떻게 자기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냐. 그러나 세상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깊고 뜨겁고 순수한 숨결을 내뿜는 야성의 생명성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하게 말못할 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제일의 소원의 하나로 연애를 꿈꾸고 있단다.

오랫동안 시를 써왔지만 그보다 더 오랫동안 수많은 덫과 타성에 걸려서 거짓 정숙성에 사로잡혀 무사하게 살아왔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그런 범주였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딸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발 이제부턴 다이어트를 멈추어라.

지본주의 상인의 줄자나 저울에 맞는 그 나약한 몸으로 21세기를 어떻게 살아내려고 몸무게을 줄이느냐. 날씬한 허리, 균형 잡힌 몸매를 원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을 생각할 때 딱 한 가지뿐이다.

땀 흘려 일하고 입을 쩍 벌려서 상추쌈을 먹고 늑대 같은 야성의 힘으로 아이를 낳고 또 사랑을 하는 그런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이 되거라.

탐스럽고 비옥한 대지와 무한한 생산성이야말로 여성의 진정한 힘이요, 미의 원천이란다.

다가오는 세기의 진정 아름다운 여성은 그렇듯 넘치는 야성과 넓고 순수한 힘을 지닌 여성일 것이다.

20세기의 업적의 하나로 남녀 차별과 고정관념이 무너진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제 말라깽이가 아름답다는 고정관념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얼굴이 검은 여자도 아름답고 뚱뚱한 여자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보아라.

얼마나 시원하고 편하고 멋있느냐.

몸이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지 않니? 자신의 몸을 자본주의 상인들이 만든 유치한 옷걸이로 전락시키거나 짧은 수명의 유행 상품으로 변장시킨 줄도 모르고 끝없이 몰려다니는 가련한 미인군이나 막무가내의 소비의 인질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딸아! 지금 막 코앞에 다가오는 세기는 틀림없이 여성의 세기가 될 거라고 한다.

어서 네 가슴 속 깊이 숨쉬고 있는 야성의 불인 늑대 (archetype)를 깨워라.

그리고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포효하며 열정을 다해 연애를 하거라.

 

 

-시인 문정희, "월간 작은 이야기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