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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눈썹을 빼고도 남을 그 아름다운 나이에 무엇보다도 연애를 해라. 네가 밤늦도록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두드리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몹시 흐뭇하면서도 한편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단다. 그동안 너에게 수없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마는, 또한 음악이 주는 그 고양된 영혼의 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마는, 그러나 책보다 음악보다 컴퓨터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역시 사람이 사람을 심혈을 기울여 사랑하는 연애가 아니겠느냐. 네가 허덕이는 엄마를 돕겠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를 하거나 분리된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갈 때면 나는 속으로 울컥 화를 내곤 한단다.
딸아! 제발 그 따위 착한 딸을 집어치워라. 그리고 정숙한 학생도 집어치워라. 너는 네 여학교 교실에 붙어 있던 신사임당의 그 우아한 팔자를 행여라도 부러워하거나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혹은 장차 결혼을 생각하며 행여라도 어떤 조건을 염두에 두어 계산을 한다거나 뭔가를 두려워하며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아닐 테지.
딸아! 너는 결코 그 누구도 아닌 너로서 살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당당하게 필생의 연애에 빠지기 바란다. 연애를 한다고해서 누구를 카페에서 만나고 함께 극장에 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종류를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리라. 그런 것은 연애가 아니란다. 사람을 진실로 사귀는 것도 아니란다. 많은 경우의 결혼이 지루하고 불행한 것은 바로 그런 건성 연애를 사랑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딸아! 진실로 자기의 일을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응석 떨지 않는 그 어른의 전 존재로서 먼저 연애를 하기를 바란다. 연애란 사람의 생명 속에 숨어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푸른 불꽃이 튀어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말한다. 그 에너지의 힘을 만나보지 못하고 체험해보지 못하고 어떻게 학문에 심취할 것이며 어떻게 자기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냐. 그러나 세상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깊고 뜨겁고 순수한 숨결을 내뿜는 야성의 생명성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하게 말못할 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제일의 소원의 하나로 연애를 꿈꾸고 있단다. 오랫동안 시를 써왔지만 그보다 더 오랫동안 수많은 덫과 타성에 걸려서 거짓 정숙성에 사로잡혀 무사하게 살아왔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그런 범주였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딸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발 이제부턴 다이어트를 멈추어라. 지본주의 상인의 줄자나 저울에 맞는 그 나약한 몸으로 21세기를 어떻게 살아내려고 몸무게을 줄이느냐. 날씬한 허리, 균형 잡힌 몸매를 원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을 생각할 때 딱 한 가지뿐이다. 땀 흘려 일하고 입을 쩍 벌려서 상추쌈을 먹고 늑대 같은 야성의 힘으로 아이를 낳고 또 사랑을 하는 그런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이 되거라. 탐스럽고 비옥한 대지와 무한한 생산성이야말로 여성의 진정한 힘이요, 미의 원천이란다. 다가오는 세기의 진정 아름다운 여성은 그렇듯 넘치는 야성과 넓고 순수한 힘을 지닌 여성일 것이다. 20세기의 업적의 하나로 남녀 차별과 고정관념이 무너진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제 말라깽이가 아름답다는 고정관념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얼굴이 검은 여자도 아름답고 뚱뚱한 여자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보아라. 얼마나 시원하고 편하고 멋있느냐. 몸이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지 않니? 자신의 몸을 자본주의 상인들이 만든 유치한 옷걸이로 전락시키거나 짧은 수명의 유행 상품으로 변장시킨 줄도 모르고 끝없이 몰려다니는 가련한 미인군이나 막무가내의 소비의 인질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딸아! 지금 막 코앞에 다가오는 세기는 틀림없이 여성의 세기가 될 거라고 한다. 어서 네 가슴 속 깊이 숨쉬고 있는 야성의 불인 늑대 (archetype)를 깨워라. 그리고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포효하며 열정을 다해 연애를 하거라.
-시인 문정희, "월간 작은 이야기 6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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