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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문인

병상에 누어 보니! - 법정 스님

병상에 누어 보니! - 법정 스님



병원에는 친지들이 입원해 있을 때 더러 병문안을 가곤 했는데,
막상 나 자신이 환자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흔히 이 육신이 내 몸인 줄 알고 지내는데,
병이 들어 앓게 되면 내 몸이 아님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내 몸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앓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며 따뜻한 손길이 따르기에 결코 자신만의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병을 치료하면서 나는 속으로 염원했다.
이 병고를 거치면서 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인간적으로나 수행자로서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지내온 내 삶의 자취를 돌이켜 보니 건성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주어진 남은 세월을 보다 알차고 참되게 살고 싶다.
이웃에 필요한 존재로 채워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앓게 되면 철이 드는지 뻔히 알면서도 새삼스럽게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나를 에워싼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으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병상에서 줄곧 생각한 일인데 생로병사란 순차적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자연사의 경우는 생로병사를 순차적으로 겪지만 뜻밖의 사고(事故)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은 차례를 거치지 않고 생(生)에서 사(死)로 비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삶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인생을 하직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되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언제 어디서나 삶은 어차피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순간을 뜻있게 살면 된다.

삶이란 순간순간의 존재다.

 

 

법정스님 : (박재철) 전 승려, 전 수필가

생몰: 1932년 10월 8일(전남 해남군) ~ 2010년 3월 11일 (향년 77세) | 원숭이띠, 천칭자리

학력: 해인사대교과

 

법정(法頂, 속명(본명) 박재철(朴在喆), 1932년 10월 8일 ~ 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불교 승려이자 수필가이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해 왔다.

1954년에 승려인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다.

2010년 3월 11일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入寂)하였다. 기일은 불교식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1월 26일로 지낸다.

 

<생애>

1932년 10월 8일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목포시에서 지냈다. 목포고등상업학교(현 전남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 상대에 진학했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때인 1954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종교간 화합>

1997년 12월 14일에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 한국 천주교 성직자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자, 이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 24일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져 종교간의 화합을 보여 주었다.[2

 

<입적>

법정은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그의 저서들은 모두 절판, 품절 되었다. 그 후 그가 쓴 책들의 수요가 늘어 일부 책들은 가격이 10만 원 가까이 치솟을 만큼[3]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저작권자가 절판 유언을 남겼더라도 출판권은 출판사에게 있기 때문에 더 출판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3월 22일, 법정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그의 유언을 존중하여 모든 책을 절판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쓴 책들의 가격은 10만원 이상 가격이 오르게 되었다.[4] 이와같이 혼란이 벌어지자, 법정의 저서에 대한 저작권을 양도받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출판사 측은 2010년 말까지만 그의 저서를 판매하기로 결정하였다. 세부적으로는 2010년 7월 30일까지 그의 저서를 서점에 보급하고, 이를 같은해 12월 31일까지만 판매토록 한 후에는 모두 수거하여 완전히 절판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출판가의 혼란은 다소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위키백과

 

 

길상사 일주문

 

길상사 극락전

 

시주 길상화 '김영한'님 공덕비

 

길상사 관세음보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