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말 - 박경리 -
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 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잡고 여까지 왔네 |
바다울음 - 박경리 -
바다 우는 소리를 들었는가 어떤 사람은 울음이 아니요 샛바람 소리라 했지만 나는 지금도 바다울음으로 기억한다
수평선에 해 떨어지고 으실으실 바람이 불면 바다는 뭍을 치고 울부짖었다
새문안 고개 - 박경리 -
-------중략------- 두개를 취하는 어머니와 하나를 고집하던 나 늘 우리 모녀는 그런 일로 다투었다
나는 꿈으로 살려했고 어머니는 생활에 발 묻고 사셨다
꿈을 버리면서 나는 세상과 등졌고 어머니는 철없는 것 한탄하며 땅속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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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박경리 -
나는 겁장이다 성문을 결코 열지 않는다
나는 소심한 이기주의자다 때린 사람은 발 옹그려 자고 속담을 믿어왔다
무기 없는 자 살아남기 작전 무력함의 위안이다 수천번 수만번 나를 부셔 버리려 했으나 아직 그 짓을 못하고 있다
변명했지 책상과 원고지에 수천번 수만번 나를 부셔버리고 있노라
그러나 알고보면 문학은 삶의 방패 생명의 모조품이라도 만들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운명론자도 아니다 |
문필가 - 박경리 -
붓 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 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그게 참여다 |
원작료 - 박경리 - 원작료 꽤 큰돈이 들어온 날 나는 외로워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주술같이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인생의 끝의 끝처럼
야채 조금 먹고 이따금 동태 한 마리 끓여 먹고 쌀 보리 서너 줌이면 내 하루 족한 것을 눈 내리는 날 창가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이면 족한 것을
비정한 눈동자 염치없는 손들이 나를 외롭게 한다 흐느끼게 한다 소유욕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
배추
- 박경리 -
대추나무 밤나무 잣나무 잎새들 다투어 떨어지고 하마 오늘 밤은 서리 내릴라
낙엽 쌓인 밭고랑 누비며 살며시 정답게 배추 보듬어 짚으로 묶어준다
목말라하면 물 뿌려주고 푸른 벌레들 괴롭히면 돋보기 쓰고서 잡아주고 떨어진 낙엽 털어주고 폭폭 흙 파서 거름 묻어주고
배추의 입김 살아있는 것의 갸날프고 때론 강한 입김 느끼며 기르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여름 한철 나는 외롭지 않았다 |
차디찬 가슴 - 박경리 -
가면들이, 가까이, 멀리서 움직인다 다가오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 도시의 쓸쓸한 석양
가면들도 외로울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외로울까 전봇대에 머리 짓찧지도 못하고 울타리에 매달려 통곡하지도 못하고 소리, 소리 지르며 대로를 누리지도 못하고
삶의 방식은 싸늘한 가슴 경쟁의 무기 역시 싸늘한 가슴 오늘은 그것을 자유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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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2 - 박경리 -
하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조각보 같은 푸른 하늘 얼음조각 같은 구름 먼 훗날 같이 떠 있네 아파트의 숲 창구마다 고달픈 인생 걸려있네 |
도망 - 박경리 -
내 은신처 대문에는 이끼가 끼고 밤이면 왔다갔다 커피 끓이는 집안에도 이끼가 끼고 나는 이끼로 숨 쉬었다
-----중략------
나는 살아 있고 싶은 것이다 거짓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거짓은 자유가 아니다
인간은 도시 몇 시간이나 살아 있는 걸까. |
박경리 전 소설가, 전 대학 교수
- 생몰: 1926년 10월 28일(경남 통영시) ~ 2008년 5월 5일 (향년 81세) | 호랑이띠, 전갈자리
- 데뷔: 1955년 단편소설 '계산'
- 학력: 진주여자고등학교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이있게 그려낸 문제작을 발표했다.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결혼했으나,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된 후 딸과 함께 생활했다. 시인 김지하는 그녀의 사위이다. 1970년대 후반에 강원도 원주시로 거처를 옮기고 창작활동에 전념하여 1994년 8월 대표작 대하소설 〈토지〉를 완결지었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 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 黑黑白白〉이 〈현대문학〉에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이어 〈현대문학〉에 단편 〈군식구〉·〈전도 剪刀〉·〈불신시대〉·〈영주와 고양이〉·〈반딧불〉·〈벽지 僻地〉·〈암흑시대〉 등의 문제작을 계속 발표했다. 195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단편을 쓰다가 1959년 〈표류도〉(현대문학, 1959. 2~10)를 발표한 뒤로는 주로 장편을 썼으며, 1963년 단편 14편을 모아 소설집 〈불신시대〉를 펴내면서 작가로서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의 후기에서 〈암흑시대〉가 〈불신시대〉를 잇는 작품임을 암시했는데, 두 작품은 여주인공의 형편이나 아들의 죽음이라는 극적 체험과 심적 변화 등의 면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불신시대〉가 종교와 병원을 중점적으로 비판한 반면에 〈암흑시대〉는 무책임하고 경박한 의사와 간호원들의 횡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어 6·25전쟁을 소재로 한 장편 〈시장과 전장〉(1964)을 발표했다.
그녀의 소설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대표작 〈토지〉에서 최씨 집안의 중심인물이 두 여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장편 〈김약국의 딸들〉·〈시장과 전장〉·〈파시 波市〉의 주요인물도 여성이다. 〈김약국의 딸들〉에는 한 가정에서 운명과 성격이 다른 딸들이 나오는 반면에 〈파시〉에는 6·25전쟁 직후에 부산과 통영을 무대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주로 전쟁 미망인을 등장시켜 악몽과 같은 전쟁으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모습을 그린 초기의 작품들을 작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또는 사소설(私小說)이 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간 집필된 대하소설로서 1890년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배경으로 했으나 역사소설로 굳어진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인물들이다. 유방암 선고와 사위 김지하의 투옥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토지〉의 집필을 계속하여 그녀는 윤씨부인-별당아씨-서희, 그리고 그 자식들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恨)을 새로이 부각시켰고, 이로써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박경리는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설립했으며 1999년 강원도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세웠다. 박경리는 문학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2003년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했고, 2004년 자신이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올 모아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을 출간했다. 2008년 그녀가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까지 썼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유작 시 39편이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로 발표되었다. 소설집으로 〈표류도〉(1959)·〈김약국의 딸들〉(1962)·〈가을에 온 여인〉(1963)·〈파시〉(1965)·〈박경리단편선〉(1976)·〈박경리문학전집〉(1979)·〈토지〉(1989)·〈가설을 위한 망상〉(2007) 등이 있다. 그밖에 시집 〈우리들의 시간〉(2000), 에세이 〈원주통신〉(1985)과 〈가설을 위한 망상〉(2007) 등이 있다. 1957년 현대문학상, 1959년 내성문학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칠레정부 선정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기념메달(1996), 금관문화훈장(2008) 등을 받았으며,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1999)으로 선정되었다.
문경~ 꿀떡고개 안내기둥, 돌탑, 성황당, 수령 300여년(?) 느티나무...^-^
문경~ 꿀떡고개의 성황당...뒤로 수령 300여년(?) 느티나무 있습니다...^-^
문경~ 꿀떡고개의 수령 300여년(?) 느티나무...우측에 성황당...우측 끝에 꿀떡고개 안내기둥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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