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뒤늦게 만나 사랑하다
인생을 알고 신앙을 선택한 작가 8인의 가톨릭 입문 이야기
박완서 - 나는 왜 가톨릭을 믿게 되었나
아들이고 딸이고 가리지 않고
우리 집에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그렇게 기쁘고 극진하게 모시는
시어머님은 지금 생각해도 특별한 분이셨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마중 간 밤에
앞에서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시어머님의 장례를 치르고 나
서 종교를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고 했지만 실지로
세례를 받기까지는 4, 5년이 더 걸렸다. 그때 살던 동네엔 가까이에
성당도 없었고, 가톨릭 신자가 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가
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주일에 명동성당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지
만 그게 교리 공부 등 신앙생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마치 기독교
염탐을 다니듯이 전통 있는 개신교 교회도 몇 차례 기웃거려 보았지
만 어디서도 마음이 크게 움직이진 않았다. 그러다 단독주택에서 잠
실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 상
가 2층에 성당이 들어섰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아이들은 제각기
약속이 있다고 시내로 놀러 나가고, 텔레비전에서도 젊은이들이 쌍
쌍이 혹은 떼를 지어 시내 환락가에 넘치는 모습을 비춰 주고 있었
다. 그때만 해도 강남의 환락가가 아직 형성되기 전이어서 젊음과
환락의 본고장은 뭐니뭐니 해도 명동이었다. 명동의 은성한 불빛과
곧 폭발할 듯 아슬아슬한 젊음의 활기를 화면으로 보면서 집에 단둘
이 남은 우리 부부는 쓸쓸한 소외감을 느꼈다. 내가 먼저랄 것도 남
편이 먼저랄 것도 없이 성당에나가 볼까, 한 것 같다. 바깥 날은 살
갗을 저미듯 혹독했고 전철이 지나가는 굴다리 밑은 불빛도 인적도
없이 어둡기만 해서 성탄과는 상관없는 딴 세상 같았다. 큰 마음 먹
고 나설 때와는 달리 성당밖에는 갈 곳이 없는 우리가 딱하고 청승
맞게 여겨졌다. 상가 2층을 빌린 성당의 성탄 미사는, 신앙보다는
명동성당의 고딕식 건축미 때문에 머리 숙이고 숙연해졌던 성당 체
험 때문인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복도와 계단까지 붐비고 있어 기대한 엄숙한 분위기는 찾아지지 않
았다. 성탄 전야에 우리처럼 갈 곳 없는 사람들도 이렇게 많구나, 그
나마 이런 동류의식이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이윽고 미사가 시작되
자 무질서는 거짓말처럼 해소됐고 자발적인 질서와 엄숙하고도 화
해로운 분위기가 되었다. 젊은이들은 다 명동으로 나간 줄 알았는데
성당에 온 신도들의 연령층도 젊은 부부와 청소년층이 압도적이었
다. 남들이 하는 대로 일어섰다 앉았다를 되풀이하면서 장장 세 시
간에 걸친 자정 미사를 보고 구유 예배까지 보고 밖으로 나왔다. 그
동안에 날이 바뀌어 성탄 새벽을 바라보는 시간의 추위는 어찌나 매
서운지 이빨이 다 딱딱 마주칠 정도였다. 우리 부부는 조금이라도
덜 추우려고 꼭 붙어 걸으면서 우리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서
로 물으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오라고 권한
것도 아닌데 순전히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마중 간 우리의
행동에 우리는 둘 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 후 같
은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받기까지는 같은 단지에 사는 교우의 적극
적인 권면이 있어서였지만 막상 세례를 받을 때도 그날 밤처럼 뜨거
운 기쁨과 감동이 내 마음속 깊은 데서 우러난 것 같진 않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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