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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물구경―심육(沈錥·1685~1753)/도봉산 회룡골계곡 5장

 

물구경

아침 되어 물을 보러 누각에 올랐더니
비는 내려 어둑어둑 늦어서도 아니 갠다
높은 물결 덮쳐와서 작은 섬을 뒤흔들고
포효하는 물소리는 미친 우레 구르는 듯
행인은 말 세우고 강 건너기 걱정하고
어부는 배 옮기나 힘에 부쳐 고생한다
성 밑으로 아이들은 앞을 다퉈 낚시하여
작은 붕어 어렵잖게 버들가지에 꿰어 간다.

―심육(沈錥·1685~1753)

觀漲(관창)
朝來觀水上層臺(조래관수상층대)
一雨暝暝晩不開(일우명명만불개)
高浪忽翻掀小島(고랑홀번흔소도)
大聲如吼轉狂雷(대성여후전광뢰)
行人立馬愁難渡(행인입마수난도)
漁子移舟力未回(어자이주역미회)
城下兒童爭設餌(성하아동쟁설이)
細鱗容易柳穿來(세린용이유천래)


조선일보/가슴으로 읽는 한시(2012.7.21)이다. 안대회 교수의 평이다.

 

조선 영조 때 저명한 학자인 심육이 26세 때 관서 지방을 여행하다가 큰 비를 만났다. 대동강에 큰물이 지니 누대(樓臺)에 올라 불어난 물을 구경하였다. 낚싯줄을 드리우고 물고기를 낚은 것을 보면 홍수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장마 때나 태풍이 불 때면 으레 볼 수 있는 것이 물구경이었다. 범람하지만 않는다면 장관을 연출하기에 옛날에는 그것을 '관창(觀漲)'이라 불러 여름철 풍광의 하나로 여겼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흙탕물을 보고 한편으로는 '범람하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멀리 바다로 떠나는 상상도 했다. 얕게 흐르던 강물이 잔뜩 불어 거세게 흘러가는 광경은 보는 이의 혈관에도 힘차고 억센 피가 흐르게 만드는가 보다.


응응'관창(觀漲)'~ 장마 때나 태풍이 불 때면 으레 볼 수 있는 것이 물구경이었다. 범람하지만 않는다면 장관을 연출하기에 옛날에는 여름철 풍광의 하나로 여겼다...^-^

 

나도 어려서 장위동 외가집에서  '관창(觀漲)'을 본 적이 있다...내 생각으로는 잠깐의 폭우였는데...계곡으로 무서운 속도의 흙탕물이 흐르는것 이었다...범람하여 휩쓸리면 어떡하나 생각에 걸음을 재촉하여 외가집으로 달려 온 기억이 난다...지금도 자연의 경이로움 하면 떠오르는 영상이 그 때 그 무서운 속도의 흙탕물이다...^-^

안대회대학교수

소속: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학력: 연세대학교대학원

행장(行狀)~ 하곡 행장은 문인(門人) 심육(沈)의 찬이다. 육의 자는 화보(和甫), 호는 저촌(樗村), 관은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으며 저촌집 47권을 남겼다. 그는 수현(壽賢)의 아들이며 수현은 유(濡)의 아들이고 하곡의 이질(姨姪)이 된다. 그는 하곡 말년에 강화 하곡에 가서 입문하여 줄곧 종유하였고 서거한 뒤에는 제문을 썼으며 아들 후일(厚一)의 자료 제공에 바탕하여 유사 등을 남겼고 행장도 엮었던 것이다. [심육(沈)]

 

도봉산 회룡골 계곡 1

 

도봉산 회룡골 계곡 2

 

도봉산 회룡골 계곡 3

 

도봉산 회룡골 여근계곡 1

 

도봉산 회룡골 계곡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