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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오피니언

[조선'신문화']'건강 아동 선발대회' 열었더니 참가자 상당수, 굶주린 아이들…/서울 경교장 2장

[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73] '건강 아동 선발대회' 열었더니 참가자 상당수, 굶주린 아이들…

 조선일보 문화 김명환 사료연구실장 입력 : 2012.09.12 23:04

 

 

1926년 5월 14일 이른 아침부터 경성 시내 인사동 태화여자관이 운영하는 태화진찰소 앞마당이 200여명의 아기들과 부모들로 꽉 찼다. ‘백설 가티 흰 옷’을 입은 의사들과 간호부들은 생후 3개월에서 5살까지의 어린이들을 심사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에 처음 보도된 ‘어린이 건강 진찰’ 대회, 요즘 말로 하면 ‘우량아 선발’ 행사였다. 2일간의 심사를 거쳐 뽑힌 1·2·3등 어린이들은 표창장과 상품을 받았다(1926년 5월 15일자).

이 땅의 많은 동포들이 배불리 먹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아이는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건강아동 대회’에 도전했다. 1933년 7월 경남 통영에서 ‘어린이 현상 건강 진찰’을 개최했더니 “그 염천(炎天·더운 날씨)에 더움을 무릅쓰고 참집(參集·참가하기 위해 모인)한 인원이 1000명이 넘어” 수백여 어린이가 진찰조차 못 받고 돌아갔다(1933년 7월 25일자).

1927년 6월 3일 열린‘태화진찰소 현상 건강진찰’에서 뽑힌‘우량아’들(1927년 6월 6일자).

건강 아동 대회가 흐뭇한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1933년 11월 23일 안국동 유치원 자모회는 ‘제1회 건강아동 표창식’을 열었지만 42명 중 특등으로 뽑힌 4세 여자 어린이조차도 체중이 4.240관(약 15.9㎏)으로 오늘의 보건복지부 표준체중(16.3㎏)에 미치지 못했다. 2등으로 뽑힌 4년5개월의 남자 어린이 체중은 3.160관(11.85㎏)으로 현대 표준체중의 73%밖에 안 됐다. 의사는 “성적이 조치 못한 편”이라며 “섭섭하다”고 했다(1933년 11월 25일자). 1934년 6월 21일 열린 건강아동 표창식에서 아이들 건강은 더 나빠졌다. 심사를 맡은 의사는 “넘우나 엄청나게 (아이들) 체질이 납분데 놀랫습니다”라며 “40명에 달하는 아동 중에 하나도 음식을 합리적으로 먹여 길운 아이가 업섯습니다”라고 밝혔다. 대부분 편도선염, 충치, 피부병 등을 앓고 있었다(1934년 6월 23일자).

문제는 어린이들이 제대로 못 먹는 데 있었다. 1934년 경성부가 어린이들 건강을 조사했더니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는 소학교의 남자 아동 중 영양상태가 좋은 아동이 35%였는데 조선인이 다니는 보통학교의 경우엔 영양상태 좋은 아동이 18%밖에 안 됐다. “조선 아동들은 대개 가정이 경제적으로 윤택치 못하야 음식물의 공급이 시원치 못한 까닭”이라고 조선일보는 안타까와했다(1934년 7월 1일자). 1920~1930년대 이 땅의 건강 아동 선발대회는 아이들 건강을 확인하는 행사라기보다, 아이들이 건강하기 힘들던 시대에 ‘꿈’을 펼쳐보려던 행사였던 것 같다.

 

배고파1934년 경성부가 어린이들 건강을 조사했더니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는 소학교의 남자 아동 중 영양상태가 좋은 아동이 35%였는데 조선인이 다니는 보통학교의 경우엔 영양상태 좋은 아동이 18%밖에 안 됐다. “조선 아동들은 대개 가정이 경제적으로 윤택치 못하야 음식물의 공급이 시원치 못한 까닭”이라고 조선일보는 안타까와했다(1934년 7월 1일자).

 

격세지감...지금은 영양과잉으로 비만이 걱정이고...."1식3끼"... 3끼는 챙기되 식사는 1식만 하자..."단식이 보약" 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 2012년 10월4일 목요일 시청 앞 싸이의 공연이 있다고 하는 날...오후 9시10분...수산나 -

서울 경교장...사적 제465호...시대:1938년

 

서울 경교장 안내문...사적 제465호...시대:1938년